![[경영&곱등] 내 눈을 바라봐, 넌 행복해지고.. # 1-3. | 인스티즈](http://file.instiz.net/data/cached_img/upload/8/e/9/8e9d38b7463cab2b2f63fe777ad4740d.jpg)
" 곱등.. 곱등.. "
다음 날, 아주 오랜만에 햇살을 받으며 일어났다.
곱순이는 느릿, 느릿.. 더듬이를 흔들며 창가에 앉아있었다.
어제는 바닥에 쿠션을 깔아줬었는데, 어느새 창가까지 튀어오른 모양이었다.
" 잘 잤어? "
내 목소리에 곱순이는 흠칫, 나를 바라봤다.
사람들로부터 구박받던 삶에서 터득한 생존법일까, 나는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검지손가락으로 곱순이의 이마를 쓰다듬어주었다.
" 아침 먹자. "
곱순이는 통통 튀어오르며 먼저 부엌을 향해 가기 시작했다.
어제의 밥을 버리고 새로 지은 밥 한 줌을 덜어 식힌 후, 고깃조각과 함께 덜어놓았다.
쌀밥에 소고기반찬, 이만한 밥상이 있을까?
곱순이의 더듬이가 연신 꿈틀꿈틀거렸다.
" .... "
곱등이를 바라보는 내 눈의 촛점이 살며시 흐트러졌다.
난 깊은 망상 속에 빠져있었다.
곱순이가 사람의 말로 내게 사랑을 속삭이는 그런 상상..
ㅡ 경영의 상상 속
" 오빠! 헤헤. 곱순이는 오빠가 주는 밥이 제일 좋아! "
" 언제까지든지, 얼마든지 먹게 해줄게. 내 전부를 가져도 좋아! "
- 곱등곱등 !
" 아차. 내 정신 좀 봐. 그래그래. 알았어. "
곱순이의 울음소리에 망상에서 빠져나온 나는 급히 밥숟갈을 입에 집어넣었다.
" 휴! "
대충 그릇을 물로 헹궈 싱크대 안에 포개놓은 다음, 나는 정장 한 벌을 차려입었다.
입는 내내 곱순이는 문턱 뒤에서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 나도 일이 있으니까. 집에 혼자 있으면 심심할텐데, 같이 갈까?
오늘은 케이블 TV에서 날 취재하고 싶다네.. "
" 곱등곱등- "
" 응, 같이 가자. 오빠 팔목에 붙어. "
곱순이는 통통 튀어오더니 갈퀴로 내 팔목에 단단히 자리를 잡았다.
곱순이는 내가 단추 매무새를 정리하는 동안 천천히 기어올라와선,
더듬이로 내 목덜미를 간지럽혔다.
" 야, 야 간지러~ "
곱순이는 왠지 들뜬 것 같았다. 한참을 장난을 치더니 그 다음엔 내 머리로 쏙 올랐다.
" 오호.. 그래 곱순아, 넌 거기 있는게 좋겠다. 오빠가 모자를 쓰고 데려가야겠다.
나쁜 사람들 눈에 곱순이 안 띄게.. "
내 정수리에 앉아있는 곱순이를 가리기 위해 중절모를 하나 쓴 채로 나는 집을 나섰다.
ㅡ 여의도, 한 카페..
" 허경영 총재님, 이번 선거에도 출마하실 건가요? "
" 거 물론이죠. 내 눈을 바라봐요. 그럼 알 수 있어요. 우주적으로 이미 예견된 지도자라고,
스스로가 느낄 수 있어요. 카메라맨도 내 눈을 바라봐. 넌 건강해지고.
작가도 내 눈을 바라봐. 넌 살이 빠지고. "
" 우하핫.. 너무 재밌으세요! "
" 안 믿는 건가요? "
" 믿어요, 믿어! 풋! "
날 비웃고 있다. 난 희극인이 아니다.
그렇다고 정치인이라고 불리지도 않는다.
난, 그냥.. 구경거리다.
아니면 가십거리다.
내 스스로가 그렇게 자초했다고 믿으라고?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그들 스스로가 날 내몰고 있다.
" 자- 잠시 쉬었다 가겠습니다. "
... 쉬는 시간이지만 내 근처에는 누구도 오려들지 않았다.
신기한 원숭이를 보듯이 카메라폰을 사진을 찍어댈 뿐..
누구도 내 근황을 묻거나, 살갑게 내게 다가오지 않았다.
저 중에 내 일촌도 있겠지.
하지만.. 그에게 나는 삼촌 오촌 칠촌 구촌도 안 되는 그냥 남남일게다.
순간 바람이 세게 부나싶더니,
내 모자가 휭 하곤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곱순이도 내 머리로부터 달아났다.
" 엇! 야, 알바! 저 모자 좀 잡아드려! "
" 네, 알겠습니다.. "
알바는 뛰어가서 모자를 잡더니, 내게로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 저기, 허 총재님. 여기 모자.. "
" .... 오지마! "
" 예..? "
" 멈추라고! 발 밑! "
" 예? 아.. "
아르바이트는 제자리에 선 채로 밑을 바라보았다.
곱순이가 한 발만 걸으면 밟혀버릴 위치에 있었다.
" 으! 곱등이 아냐! 하마터면 밟을 뻔 했네! "
아르바이트의 발이 곱순이를 밟기 위해 지면을 떠난 순간,
반사적으로 난 의자를 박차고 아르바이트에게로 달려갔다.
" 당장 떨어져, 이 자식아! "
아르바이트의 얼굴에 주먹을 내리꽂자, 아르바이트는 얼굴을 감싸쥐고 땅을 굴렀다.
나는 얼른 곱순이를 모자 속에 숨겨 내 머리에 뒤집어썼다.
" 허.. 허경영 씨 왜 그러세요!? "
" 뭐야, 저 인간 진짜 미친 거 아냐? "
구성원들이 웅성거리며 험악한 분위기가 주위에 퍼졌다.
" 미안합니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요. "
" 엇, 뭔지 알 수 있을까요? 시청자 여러분께 소개시켜드리면 어떨까요? "
이 와중에도 나로부터 방송 분량을 빼낼 수 있을까, 특종을 낼 수 있을까 궁리하는 사람이 있단 사실에
혐오를 느낀 나는 그 사람을 째려보며 외쳤다.
" 여러분은, 지켜주고 픈 누군가가 있습니까? "
" 예에? "
" 상처만 받으며 살아온 자의 아픔은, 알고 있나요? "
" 왜 그러세요.. 허경영 씨.. "
" 난 지켜주고 싶은 누군가가 있어요. 상처만 받으며 살아온 아픔도 알아요.
지금 저 아르바이트가 받은 상처는 아무 것도 아냐.
당신들은 아무 것도 몰라, 가르쳐 주고 싶지도 않아.
당신들은 내가 찾은 이 작은 행복조차 용납하지 못 하는 사람들일테니까!
미안하지만, 인터뷰 그만 하죠. 어차피 과거 영상 사용해서
사람 하나 병신으로 만들어서 내보내는 거, 잘 하잖아요?
편집, 알아서 하세요. 내 눈을 바라봐도 알 수 없는게 있어요.
그게 뭔지 알아요? 나의 진심입니다. 안녕히 계십쇼! "
날 미친 놈이라 매도하는 제작진들의 손가락질을 뒤로한 채
나는 울상이 된 채로 여의도를 떠나야 했다.
내 모잣속에선 작게 곱순이의 소리가 들려왔다.
곱순아, 가자..
우리, 아무도 없는 곳으로 여행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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