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한, 겨울을 흉내내는 봄 같은 소년
그리고, 김민석
살랑이는 바람이 민석의 갈색 머리칼에 맞물렸다. 민석의 머리칼이 흐트려 졌지만 민석은 개의치 않고 소년을 계속 바라 보았다. 민석은 옷가지도 제대로 챙겨 입지 않은채 벚나무 아래서 흩날리는 벚꽃잎을 맞고 있는 소년을 보자니 마음 한구석에서 무언가 울렁이는듯 하였다. 괜시리 마음이 먹먹해지고 시큰거리기 까지 하였다. 소년만을 바라보던 민석은 급기야 소년에게로 달려갔다.
“ 여기서 뭘 하고 있는거야? ”
민석이 소년에게 물었다. 소년은 민석의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그 날 이후로도 민석은 벚나무 아래서 멍하니 서있는 소년에게 말을 걸었다.
“ 밥은 먹은거야? ”
“ … ”
“ 내일은 봄비가 온다던데 우산 꼭 챙겨 나와 ”
“ … ”
일상적인 말을 건네보았다. 허나 소년은 이번에도 민석의 물음에 답을 하지 않았다.
다음날은 민석의 말대로 정말 봄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소년에게로 가기 전에 비가 내림을 확인 한 민석은 우산을 챙겨 들었다. 민석이 소년이 있을 벚나무로 향하자 우산도 없이 내리는 비를 그대로 맞고 있는 소년이 보였다. 멍청히 비를 맞고 있는 소년을 보고 민석은 우산을 떨구고서 소년과 함께 비를 맞았다.
“ 시원하다. 그치? ”
“ … ”
“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비를 맞고 있으면 어쩌자는거야 ”
여전히 소년은 민석의 말에 답을 하지 않았다. 다만 민석과 소년이 봄비를 함께 맞은 이후로 달라진 점이 있다면 민석은 더이상 소년에게 말을 걸지도, 답을 구하지도 않은채 소년의 곁을 지켰고, 소년은 그런 민석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어느새 한달이 지났다. 벚나무의 꽃잎은 모두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이 남았다. 소년이 벚나무 아래서 멍청히 서있는 일도 더 이상 없었다. 벚나무 아래서 봄비를 맞으며 소년을 기다리는 민석만이 남아있을 뿐. 민석은 작은 결심을 하였다. 이대로 소년을 놓치지 않으리라. 소년을 발견하면 꼭… 그때였다. 저 멀리서 벚나무를 향해 뛰어오고 있는 소년이 보였다. 민석을 발견한 소년이 민석 앞에 멈춰섰다. 헥헥이던 소년이 숨을 고르고서 민석과 눈을 마주했다. 그리고서 입을 열었다.
“ 루한 ”
“ … ”
“ 내 이름이야 ”
예상치 못한 소년의 행동에 넋이 나간 민석이 정신을 차리고 보니 소년은 이미 저만치 멀어져 가고 있었다. 민석은 아까 했던 다짐을 되새기며 소년을 따라갔다. 소년에게 가까워진 민석은 소년의 손목을 덥석 잡아챘다.
“ 이대로… 가버릴꺼야? ”
“ … ”
“ 그러니까 내 말은… ”
“ … ”
“ 나랑 같이 가자. 루한 ”
이번에는 소년의 손목이 아닌 손을 꼭 잡았다. 벚꽃잎이 떨어진 길가를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일상적인 대화를 주고 받기 시작했다. 마법 같이 봄비는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