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귀엽다, 어디 살아아?”
전봇대가 아까부터 날 따라온다. 아니, 나무?…. 따라오는 것도 모자라 이젠 말도 하네? 요즘 세상 진짜 이상해졌다. 처음 본 전봇대…. 아니지, 처음 본 나무가 따라오면서 말을 걸 수도 있다니. 어, 그럼 저 전봇대는 이 전봇대 친구인가? 왜 아는 척을 안 하지….
“응?… 어디 살아?… 오늘 나랑 놀래?”
“놀아?… 어디서?…”
“음… 그러게… 저기 어때?”
우와, 나뭇가지가 내 어깨를 감쌌어. 요즘 나무들은 가지도 막 휘어지고 나뭇잎도 엄청나게 커서 사람 어깨 같은 건 그냥 잡을 수도 있구나. 신기하다…. 전봇대가 아니라 진짜 나무였어. 전봇대였으면 난 이미 전기 통구이가 됐겠지? 어, 근데 나무가 건물 안도 들어가네. 생각보다 못 자란 나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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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하게 비추는 무언가에 의해 눈이 떠졌다. 벌써 아침인가. 눈이 아플 만큼 환하게 비추는 것은 아마 아침을 알리는 햇살인 것 같았다. 방금까지 어떤 여자가 운전하는 차에 타서 공포의 질주를 즐기고 있었는데. 눈을 뜨고 보이는 것이 공포의 고속도로가 아닌 사람의 맨 가슴팍이라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잠깐, 가슴팍?….
“뭐야, 아!…”
고속도로가 아니라 사람의 맨 가슴팍? 여자의 봉긋한 것도 아닌 밋밋하고 평평한 가슴팍에 놀라며 일어나니 이번엔 하반신을 찌르는 고통에 놀라버리고 말았다. 고통이 밀려오는 허리를 붙잡으니…. 왜 맨살이 만져지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고개를 숙여보니 섬유 쪼가리 한 올 걸치지 않은 상반신이 보였다. 설마….
“이, 이게 뭐야!…”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었나보다. 떨리는 마음으로 방금까지 배꼽과 다리를 가리고 있던 새하얀 이불을 걷어내자 보이는 건 상반신과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안 입은 나체의 하반신. 새하얀 이불과 더불어 새하얀 시트에 묻은 얼룩덜룩한 자국에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러버리고 말았다. 그 바람에 내 쪽으로 펼쳐져 있는 남자의 손이 살짝 움직였다. 씨발 이게 뭘까. 두 손으로 입을 막으며 옆에 누운 남자를 바라봤다. 역시 처음 보는 남자.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다.
방금까지 내가 베고 있던 베개와 나란히 하며 뻗어있는 남자의 팔을 보니 난 베개가 아니라 이 남자의 팔을 베고 잔 것 같다. 아니 이게 문제가 아니라고! 다시 한 번 내 옆에 누워서 자고 있는 남자를 바라봤다. 남자 역시 이불 위로 드러난 상반신은 나와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걸쳐져있지 않다. 그럼, 하반신은?….
“…나 이제 어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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