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시작되었다. 원래 장마가 시작 되도 비가 잘 오지 않았던 우리 지역은 오랜만의 폭우에 어쩔 줄 몰라 했다. 나는 비가 싫
었다. 한 번 비가 오면 공기가 습해지고 괜히 몸이 끈적거리고 말 그대로 불쾌한 날씨였다. 또 비가 내리면 그리웠다.
항상 무언가가, 나는 그리웠다. 비가 잠시 멈춘 것 같아 우산을 두고 집 앞에 미용실로 움직였다. 많이 자란 머리가 덥수룩해 답답했다.
비 오는 날은 머리만큼 마음도 답답했다.
"어서오세요."
근데 이 남자는 한 없이 밝았다. 기분이 좋아 보였다. 손님이 없어 쉬고 있던 남자를 귀찮게 만든 것 은 아닌지
했던 생각도 곧 사라졌다.
"그냥 짧게 깎아주세요."
남자와 나는 별 말없이 머리만 다듬었다. 거의 다 완성되어 갈 때 남자는 바로 앞 거울 속 에서 나와 눈이 마주쳤다.
살풋 웃는 모습이 귀여웠다.
"머리는 다 했는데, 집에는 어떻게 가시려구요?"
"네?"
당황한 나의 대답을 보고 남자는 문 밖을 가리켰다. 언제 멈췄었냐는 듯 비는 다시 앞이 안보일정도로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괜찮아요. 집이 바로 여기 앞 동 이라서."
"우산 빌려줄게요. 뛰어가더라도 홀딱 젖을 것 같은데. 우리 가게 우산 많아요."
남자는 어딘가 불편 해 보이는 다리를 절뚝거리며 검은색 장우산을 내게 내밀었다.
"..고마워요."
"뭘요, 비오는 날 싫어해요?"
남자는 또 살풋 웃었다.
"아, 네...그냥 좀.. 끈적거려서.."
"그렇구나, 전 비오는 날 제일 좋아해요. 비가 오면 온갖 복잡한 생각들이 다 싹 빗물이랑 섞여 내려가는 것 같아서.
근데 이제 장마가 곧 끝나가서.."
"아..다리는..왜 그런지 물어봐도 될까요?“
“그럼요, 그냥 교통사고였어요. 전 애인이랑 같이 비오는 날 차타고 가다가 쭉 미끄러졌어요. 저는 그냥 영원히 절뚝거리며 살면
되지만, 제 애인은 살릴 수가 없었죠. 그래도 나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아요. 오히려 비오는 날 그 사람이 생각나서 더 좋죠.”
더 그리워지잖아요. 라고 남자는 조용히 말을 덧 붙였다. 남자의 손가락의 끼워진 반지가 그 날을 기억하듯 흠집이 남아 있었다.
남자는 내 명찰을 쳐다봤다.
"조심히 가요, 종인 학생. 저는 도경수 에요."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집에 와서 침대에 풀썩 엎어진 나는 생각했다.
내일도 비가 왔으면 좋겠다고.
경수형, 도경수가 보고 싶었다. 왠지 모르는 그리움이 생겼다. 그리고 눈을 뜨니 나의 기도를 들어준 것인지 오늘도 비가 왔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집 앞 어제의 미용실을 찾아갔다.
"..어? 어서와요, 종인학생."
어제처럼 웃어주는 그 얼굴이 미치도록 그리웠었다.
"이거..우산이요. 감사했어요."
도경수는 내 손 위에 우산을 멀뚱히 바라보더니 고개를 들었다.
"안 가져 왔어도 괜찮은데.."
또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아니요..오늘은 제 우산도 있고.. 빌린거니까.."
"고마워요. 그래도,"
도경수는 나에게 유자차를 건넸다. 따뜻했다. 상큼한 냄새가 풍겼다. 컵 밑으로 가라앉은 유자가 도경수 같았다. 손 뻗으면 사라
질 것 같은, 언젠가는 저 깊숙이 손이 닿지 않을 거리로 깊게 가라앉을 것 같은 도경수 였다.
"아직도 비가 싫어요?"
나는 유자차가 담긴 컵으로 시선을 내렸다.
"...아니요, 아니요. 좋아요. 비 오는 날이."
물론 거짓말 이었다.
도경수는 나를 한 번 쳐다보고는 유자차를 마셨다.
"그리고 경수형도 좋아해요."
심장이 정말 목구멍까지 올라온 기분 이였다. 최대한 침착하게 말 했지만 도경수는 분명 당황했을 것 이다. 고개를 들어 도경수
를 쳐다봤다. 도경수가 컵을 내려놓고는 나와 눈을 맞췄다.
"비오는 날, 비가 오면. 그때 다시 와줄 수 있어요?"
도경수는 또 비 얘기를 했다. 축축하기만 하는 그런 비가 어디가 좋은지. 매일 비가 내렸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도경수는
어딘가 나를 닮았다. 그 외로움이.
"그럼요, 그때 꼭 여기 있어요."
"네."
하지만 장마는 끝이 났다.
비가 내리지 않을수록 나는 점점 초조해졌다. 약 3일이 지난 후 에 비가 다시 내렸다. 나는 그대로 달렸다. 하지만 곧 나는 미용
실 앞에서 멈췄다. 문이 닫혀있다. 도경수가 없다. 나는 더 그리워지기 시작한다. 나는 우리 앞집 아줌마를 붙잡고
다짜고짜 물었다.
“여기, 언제부터 닫았어요? 여기 뭔일 있어요?”
“학생, 여기 주인 죽었어. 교통사고라는데, 젊은 총각이.. 반지 하나 남기고 떠났다는데.. 안쓰러워서 참..”
나는 주저앉았다. 갈비뼈가 부서졌단다. 곧 바로 수술실로 들어갔지만 이미 눈을 감았다고했다. 도경수의 대답을 듣지 못했다.
도경수가 소중한 사람을 잃은 날처럼 비오는 날 나도 역시 도경수를 잃었다. 이래서 나는 비가 싫다. 항상 무언가 그리웠고, 뭔
가를 잃을 것 같았던 불안함 때문에. 드디어 찾았던 나의 그리움은 도경수였는데, 다시 그리움이 짙어졌다. 미용실 앞에 앉아 있
는지도 삼십분은 된 것 같다. 비는 그칠 줄 몰랐다. 그렇게 기다리던 비를, 나는 증오한다. 나는 아줌마에게서 받은 도경수의 반
지를 꺼냈다. 흠집 가득한 반지 안 쪽에 무언가가 써 있었다.
Dear. My Rain.
이렇게 매일 반지를 만지며 애인을 생각했었나. 애인을 생각하면서 나를 어찌해야 할지 생각이 많았을까. 이래서 비를 그렇게 좋아했나.
아니, 사실은 누구보다 비를 싫어했을 것 이다.
믿었던 하늘이 도경수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던 날, 그 비가 내리는 날에 도경수는 끝까지 나에게 그리움을 남기고 떠났다.
나는 도경수의 반지를 손가락에 끼워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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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간 눈을 한 애인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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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비가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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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모습으로 나의 죄를 씻겨주던 아름다운 애인이여
![[EXO/카디] 나의 애인이여 | 인스티즈](http://file.instiz.net/data/cached_img/upload/f/8/7/f87b628340428926faa7a8a096ad68e2.png)
외로운 어둠에 성스러운 고요가 내린다.
![[EXO/카디] 나의 애인이여 | 인스티즈](http://file.instiz.net/data/cached_img/upload/0/8/3/083bf73e4177e638fe6dcdc92b81382a.png)
나는 눈을 감는다.
나는 비가 되고 싶었다.
Dear.My Rain 은 사랑하는,나의 비 라는 뜻이에요..^^ 비 같은 존재로 경수는 애인을 사랑했다는 의미..
그만큼 경수가 그렇게 비를 좋아했지만 어쩌면 누구보다 비를 원망했을지도..
결국 경수를 만나지 못하는 종인이도 먼저 떠난 경수도 아마 항상 서로를 그리워하고 의지했을지도 있겠죠.
중간에 나의 애인이여는 문태준님의 '눈 내리는 밤'을 비로 바꿔서 표현했습니다. 정말 좋은 시에요ㅠㅠ
이런 망글 읽어주시는 분들 감사합니다. 오타는 말해주시면 바로 수정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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