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은 안쓰셔도 됨니당
아돈케얼 나능야 쿨한 작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예헷
댓글 써주신 분들은 매우매우매우 감사드려요 사랑합니다
민석은 루한의 말에 속아넘어가지 않으려고 애썼다.
"내가 기분 좋아지게 해줄까?"
"충분히 기분 좋은데요."
"목소리는 전혀."
"조용히 좀 하세요. 청소 방해되니까."
"진짜 좋아져. 속는 셈 치고 먹어볼까, 우리?"
"네. 쌤 많이 드세요."
"사랑하는 제자 얼굴에 근심이 가득해서 그러지."
"누구때문인데요."
"한 알만 먹어볼까?"
"쌤이 만든 약을 어떻게 믿어요."
"아무 탈도 없다니까."
"글쎄 안 먹는다니까요."
유리막대로 책상위를 뚜덕거리며 박자를 맞추던 루한이 인상을 팍 구기며 그것을 바닥에 내리쳤다. 깜짝놀란 민석이 먼지를 떨던 것을 멈추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사방으로 튄 유리조각이 위험하게 반짝였다. 빗자루로 파편들을 쓸어모으려던 민석의 손목을 세게 잡아당긴 루한이 빤히 눈을 마주쳐왔다. 넌 이걸 먹어야 해. 왜냐구? 이걸 먹어야 하니까. 말도 안되는 소리들을 나불대던 루한을 확 밀쳐낸 민석이 유리조각들을 싹싹 쓸어모았다. 쳇. 알약을 손가락 사이에서 굴리던 루한이 창문을 열어 있는힘껏 그것을 창밖으로 던져버렸다. 이 곳에서 내 존재는 청소부 겸 실험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구나. 문득 서글퍼진 민석이 쓰레기통에 유리조각을 쓸어넣고 터덜터덜 쇼파에 가 앉았다. 오래된 쇼파는 괴이한 소리를 내며 기우뚱거렸다. 영어 본문이나 외워야지. 책장을 넘기려는데 손 끝에 알싸한 통증이 퍼졌다.
"아!"
무의식에 내뱉은 신음을 캐치한 루한이 성큼성큼 다가와 민석의 앞에 섰다. 쓰읍- 하고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대는 민석의 팔을 강한 힘으로 잡아당긴 루한이 당황한 그를 연구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또 무슨 짓을 하려고. 골치아픈 그의 행동에 민석은 반항할 힘도 없이 질질 끌려갔다. 유리장 안에서 채혈용 주사기를 꺼낸 루한이 그것을 휘리릭 돌리더니 손에 착 감기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 루한의 얼굴에서 수상쩍은 낌새를 느낀 민석이 황급히 손을 빼려고 버둥거렸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라이터에 바늘 끝을 몇번 지지던 루한은 얇게 베인 민석의 손가락에 거침없이 주사바늘을 꽂았다.
"아, 뭐하시는 거에요!"
"채혈."
이런 것도 모르냐는 듯 한심한 표정을 짓던 루한이 쭈욱 빨려올라가는 주사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적정 양이 될 때까지 주사기를 뽑지 않으려는 심산이었다. 쓰라린 상처에 주사바늘을 꽂으니 고통은 배가 되었다. 마구 일그러진 얼굴을 옆으로 돌린 민석이 차마 그 것을 볼 자신이 없어 눈을 감았다. 느릿하게 빨려 올라오는 검붉은 피가 주사기의 반 정도를 채웠을 때, 주사기를 거칠게 뽑아 든 루한은 새로운 유리병에 그것들을 쏟아부었다. 소매치기를 당한 느낌이었다. 발 밑으로 뚝뚝 떨어지는 피를 보며 입술을 꽉 깨물던 민석은 피를 닦을 요량으로 손수건 같은 것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이 놈의 과학실은 무슨 천 쪼가리도 없냐. 민석의 중얼거림을 듣고 있던 루한은 약병이 꽉 밀봉된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민석에게 다가왔다.
"연고라도 발라주랴."
"제발 신경 꺼주세요."
"어찌 신경을 안쓰나. 내 소중한 실험체를."
허- 기가 찬 웃음을 흘리던 민석의 손을 감싸쥔 루한은 쉴새없이 떨어지는 핏방울을 꿈뻑꿈뻑 바라보고만 있었다. 민석의 피가 루한의 하얀 손을 흥건히 물들일 때 쯤, 루한이 망설임없이 그것을 제 입 안으로 넣었다. 생경한 감각에 몸을 작게 떤 민석이 루한의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이내 역부족이란 것을 깨닫고 체념하듯 제 손가락을 빨고 있는 루한을 올려다보았다. 눈까지 꼭 감은 채 정성스레 빠는 모습이 영락없는 변태같다고 생각했다. 커튼 새를 비집고 연구실 안으로 쏟아진 햇살 새로 공기 위를 부유하는 먼지들이 보였다. 빛에 비친 루한의 머리는 불타는 황금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비현실적인 광경을 넋놓고 바라보고 있던 민석은 살며시 고개를 내리 깐 루한과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다. 넋이 빠진 민석을 보고 살풋 눈을 접어 웃던 루한이 피가 멈춘 손가락을 입에서 빼더니 피 묻은 손을 하얀 가운에 슥슥 닦아냈다. 으으, 피비린내.
"실험체에게 이런 대접을 하다니. 정성이 더할 나위가 없구만, 아주."
"황송해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아주 좋은 자세야."
핏자국으로 더러워진 가운을 벗어제낀 루한이 기분나쁘다는 듯 손바닥을 한 번 쳐다보고는 주머니에 손을 꽂고 홀연히 연구실을 빠져나갔다. 저어기, 세 번째 진열장 맨 밑에 구급상자 있다. 반창고까지 붙여줘야 되는 건 아니지? 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
"궁금한 거 있는데."
"물어보지마."
"물어보게 해줘요."
"실험체에겐 질문은 사치다. 약이나 제 때 먹어."
빠삐코를 쭉쭉 빨던 루한이 손이 시린 듯 쭈쭈바를 입에 물고 겨드랑이에 손을 끼워넣었다. 루한의 말도안되는 억지에 눈물로 뽕따를 내려놓은 민석은 맘대로 빠삐코 두개를 계산하고 먼저 휘적휘적 걸어가는 루한을 따라 매점을 나왔다. 빠삐코를 먹어서 그런지 루한의 몸에서 초콜릿 향이 더욱 진해진 것 같았다. 그렇게 민석은 낡고 허름한 쇼파에, 루한은 고급 가죽 회전의자에 마주보고 앉아 한겨울에 쭈쭈바를 빨고 있던 것이었다. 민석의 질문을 단칼에 잘라먹은 루한이 따뜻해진 손으로 빠삐코를 녹여먹기 시작했다.
"쌤. 교포에요?"
"예상 외의 질문인데."
"이름이 루한이잖아요. 성이 루고 이름이 한이에요?"
"그럼 너는 성이 청이고 이름이 소부냐?"
"아. 쫌."
민석은 자신의 드립이 꽤 마음에 들었던지 무릎까지 치며 껄껄대는 루한을 살짝 흘겨보았다. 그런 민석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쭈쭈바를 열심히 빨던 루한은 무언가 곰곰히 생각하더니, 불쑥 대답을 꺼냈다.
"중국인이야."
"말도 안 돼."
"말 돼. 내 이름 써줄까?"
빠삐코 껍질을 쑥 빼낸 루한이 가운에 꽂혀있던 펜으로 쓱쓱 능숙하게 한자를 써내려 갔다. 鹿晗. 내 이름. 보기만해도 어지러운 한자를 막힘없이 써낸 루한이 민석에게 빠삐코봉지를 휙 던졌다. 무릎 위로 떨어진 그것을 받아 든 민석이 새삼 달라보인다는 듯한 눈빛으로 루한을 쳐다봤다. 왜 싸인이라도 해줄까? 아니요. 필요없는데요.
"그럼 여기엔 왜 오신 거에요?"
"너 만나러."
"진지함이라곤 눈꼽만큼도 없네요."
"나 원래 눈꼽 없어."
커다란 눈망울로 딱딱한 빠삐코를 가만히 관찰하던 루한이 성큼성큼 책상으로 가더니 조그만 망치를 꺼내서는 그것을 쾅하고 내리찍었다. 뭐하세요, 쌤?! 갑자기 들린 둔탁한 소리에 민석이 벌떡 일어서자,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옆구리가 터진 빠삐코를 쭉쭉 빨며 루한이 손사래를 쳤다. 가운은 이미 초코색으로 뒤덮인 후였다.
"그럼 중국인인데 왜 그렇게 한국말을 잘해요?"
"내가 워낙 두뇌가 명석하지 않냐."
"그럼 중국어 해봐요."
"니쒸팔러마."
"뭐야. 무슨 발음이 그렇게 한국스러워."
"한국인이니까."
"중국인이라면서요."
"응."
"한국인이에요. 중국인이에요."
"일본인. 곤니찌와. 카와이 루한데스."
민석의 머리는 혼돈 속으로 빠졌다. 이 선생님과의 장시간 대화는 정신건강에 매우 해롭다. 빠삐코나 먹자. 먹기 좋게 녹은 빠삐코를 입에 물고 쇼파에 벌렁 드러누운 민석이 잠이 솔솔 쏟아지는 듯 눈을 살포시 감았다.
"세상에서 제일 위험한 짓이 뭔지 알아?"
"선생님이랑 같이 있는거요."
"그거보다 더 위험한거."
"그런 것도 있어요?"
"과학실에서 잠드는 거."
가만히 빠삐코를 음미하던 민석은 눈을 번쩍 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잽싸게 쇼파에 앉은 민석을 보며 호탕하게 웃던 루한이 민석의 머리위에 손바닥을 올려놓고 마구 문질렀다.
"이런 식으로 물기 닦으려고 하지 마요."
"눈치는 빨라요."
끈적거리는 손을 보며 찝찝한 표정을 짓던 루한이 결국 손을 씻으러 과학실을 나가고, 쇼파에서 뒹굴거리던 민석은 시계를 힐끔거렸다. 10분 뒤면 점심시간 끝이네. 점심시간과 종례시간, 약을 먹기 위해 하루 두 번 과학실에 들리는 것이 습관이 되어가고 있었다. 무슨 약인지도 모른 채 무작정 삼켜대는 것도 이젠 슬슬 익숙해지는 것 같다. 물론, 루한은 약의 정체에 대해 털끝만큼도 알려주지 않지만. 점심시간이면 햇빛이 쨍쨍 내리쬐는 과학실은 한겨울임에도 훈훈한 온기가 돌고 있었다. 쇼파에 기대어있던 민석은 점점 눈이 깜빡이는 속도가 줄어드는 것도 모른 채, 창문으로 쏟아지는 햇빛의 따뜻함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아- 좋다. 최면에 걸리듯 눈꺼풀이 움직임이 느려지더니 곧 깊은 잠의 구렁텅이로 빠져들고 말았다. 의식의 저편에서 빨간 불이 세차게 울리고 있었다. 위험해요, 밍쏙. 도망쳐요.
"흐응... 나른하다."
끼이익. 천천히 열리는 과학실의 문소리를 마지막으로 민석은 완전한 잠의 세계로 빠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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