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술이란 무엇인가.
작은 잔 안에서 찰랑이는 투명한 액체를 보며 나는 생각한다.
술. 그것은 나에게 위로요, 안식이요, 즐거움이요, 고독이요, 약속이며 쾌락이요
인생의 단맛 쓴맛을 한잔에 담아 어우르는 것이니...
아아, 이보다 사나이와 닮은 것이 어디 있으랴!
어린 날 중국에서 살 적에 ,아버지 찬장에서 호기심에 꺼내어 본 고량주는 나에게 똥을 주었으나.
한국에 와서 접한 소주 맥주 동동주 청주는 신세계를 접하게 해 주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친구가 어디 있으랴!
"응? 어디있냐고요......"
이 좋은 날의 유일한 문제라면, 나의 술버릇 중 하나가 머릿 속에 든 것을 모조리 입 밖으로 꺼낸다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이 있는다 한들....응? 마리야, 술을 먹는 건 나! 나 루한이라고! 사람이 이르케 마나도!
여기서 내 유일한 말벗은 술밖에 업숴! 안그래? 말해봐 박찬열 안그러냐고요."
"그럼 그렇고 말고, 나는 친구새끼도 아니야 그냥."
"그라취? 내 말이 맞쥐?"
박찬열이 입술을 꾹 다문채로 뭐라고 중얼 거린 것 같지만 나는 깔끔하게 무시하기로 했다.
"너가 뭐라고 중얼거리고 있지만 마리야....나는 너를 무시할거야....웨인지 아러! 너 따위 내가 알게 뭐야? 으하하하하하!"
그러한 이유 때문에. 자세한 설명은 모두 내 입에서 튀어나와 박찬열의 귀로 그대로 전달되었다.
그래서였을까, 내 몸둥이는 그대로 박찬열의 팔에서 벗어나 허공울 휘젓기 시작했다.
"이 새끼가 빡치게 진짜! 이럴꺼면 너 혼자가 새끼야!"
"흐어? 어,어,어, 세상이 막, 막이케 흔들..."
"왜 데려다 줘도 지랄이야 지랄이."
그렇다. 내가 방금 지랄을 한 모양이었다.
"으응...내가 지랄를 했구나... 그래도 어쩌겠어 내 생각을 말한 것 뿐, 차녈아?"
이 쪼잔한 자식이, 뭐라고 한마디 했다고 삐져가지고 진짜 간다.
와, 속좁은 새끼저거. 안될새끼야 저거는.
"그래 세상은 나혼자! 나혼자 사는거라고오! 혼자혼자혼자혼자....."
쿵쾅거리며 사라지는 박찬열을 뒤로한채, 나는 또 집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어차피 집이 코앞이였다.
왜 저새끼는 다 데려다줘놓고 츤데레야.
"혼자혼자혼자혼자......"
한 단어에 아무렇게나 음을 붙여 흥얼거리면서 그렇게 걸어갔다. 비틀비틀, 흔들리면서.
-
"호온...자, 호오오온...자...."
엘리베이터 층계가 한층 내려올 때 마다 '혼자'를 외쳐가며 기다리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걸어오는지 인기척이 느껴진다.
하지만 난 뒤돌아보지 않을거야. 왜냐면 나는 혼자니까. 시발, 인생은 혼자라고.
"나는 뒤돌아보지 않을거야....왜냐? 나는 혼자니까...시브라알.....인생은 혼자라고...."
나는 그렇게 다짐까지 해가며 후드를 푹 뒤집어 썼다. 왜냐면 나는 혼자니까.
-
새로 등록한 학원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던 세훈은 벽에 기댄 채로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사람 때문에 굉장히 신경이 불편했다.
비틀거리는 꼴을 보니 술에 취한 것 같은데, 이런 사람이랑 같이 엘리베이터 타다가 시비라도 붙으면,
"어휴"
상상하니 괜히 몸이 부르르 떨리는 세훈이었다.
"야."
하지만 인생은 생각하는 대로 된다고 했던가, 술 취한 남자는 모자까지 뒤집어쓴 채 굉장히 갱스터 같은 포즈로 자신을 뒤돌아보는 것이었다.
"왜, 왜요?"
"너 내가 왜 모자를 쓰는 줄 알아?"
대답 안했다가 또 괜히 시비를 걸까 싶어 얼른 대답하니 이상한 질문을 해댄다.
"모르겠는..."
"그건마리야! 인생은 혼자라서 그런거야!"
....오늘 진짜 잘못걸린건가.
"너, 너 여기 살아?"
"네."
"나도 여기 사라아...."
그러시겠죠. 같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근데 너 못보던 얼굴인데?"
"아, 예. 얼마 전에 이사왔어요."
"아아 그래애?"
물론 이 얘기는 나중에 한번 더 해야할 것 같지만. 이 인간 저 상태로는 내일 아침 기상과 함께 모든 기억을 날려버릴게 뻔했다.
마침내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아무도 없던 엘리베이터에 루한이 먼저 비틀거리면서 들어갔다.
세훈은 재빨리 저가 사는 7층을 누르고 최대한 루한과 떨어지기 위해 벽에 착 달라붙었다.
그에 비해 루한은 비틀 거리는 몸을 그대로 냅두며 딩가딩가 정 가운데에 떡 하니 서 있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세훈의 구석구석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괜히 더 귀찮아질까, 세훈이 최대한 몸을 사림에도 루한의 눈에는 오히려 흥미로운 미소 까지 생기는 것이었다.
"저, 저기 버튼 안누르세요?"
"너 나랑 같은 층 살았어?"
그 와중에 숫자는 알아보는게 놀랍다.
"그런가보죠!"
"왜 몰랐스까...."
풀려버린 눈을 데굴데굴 구르는 루한을 보며 세훈은 침을 꿀꺽 삼켰다.
혼자서 덜렁 이사오는 마당에 이집 저집 인사하고 다니기가 남사스러워서 옆집에도 가보지 않았던 세훈이었다.
언젠가 옆집과 마주치면 그 때 정식으로 인사할 예정이었다. 첫 만남이 이렇게 당황스럽게 이뤄질 줄은 몰랐지.
딱딱히 굳어있는 세훈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건지, 루한은 또 무언가를 중얼거리다가 땡 하는 소리에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겼다.
"드, 들어가세요."
"아하! 그러며는!"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기 전에 세훈이 머뭇거리며 인사를 하는데, 루한이 마치 계속 대화를 하고 있었던 냥 박수까지 딱 치며 말했다.
덕분에 세훈은 퍼뜩 놀라서 움찔 거렸다. 하지만 이건 그 다음에 나올 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제부터 오빠라고 불러!"
"........예?"
"루한 오빠~ 해봐!"
"저, 저기요."
"어어, 그렇게 부끄러워 하지 않아도 되는데..... 하여간 여자애들이란."
" 잠시만요? 저는..."
비밀번호를 누르기 시작하는 루한에게 세훈이 다급하게 말했지만 루한의 '흐흥' 거리는 콧소리 때문에 가볍게 묻히고 말았다.
"그럼 다음부턴 오빠라고 하는거다?"
"저는 남....!"
쾅-
그렇게, 루한은 세훈의 뒷말은 듣지도 않은채 집 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남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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