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由貞操 written by. 한빛 HER 이제는 나도 내가 우스울 뿐이다. 헤어진 옛 연인을 붙잡아 두고서 그리워하는 꼴이라니. 그래도 잊어보려고 노력했었다. 떠올리지 않으려고 노력했었다. 일부러 풀타임 알바도 뛰어보고 뜻 없던 연합동아리활동도 했다. 그래도 술만 마시면 떠오르는 너의 모습에 그조차도 포기하고 말았지만. 술만 마시면 떠오르는 너이기에 너를 그리워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너와의 기억을 안주 삼아 술을 들이켜고 있다.
“여주야, 사귈래?” 고등학교 2학년 봄, 우리가 만난 지 채 3개월도 안 됐을 때였다. 아무 관계도 없던 우리였기에 너의 고백은 너무 어이없고 황당했다. 하지만, 자기 전 누워서 떠오르는 너의 모습에 슬그머니 미소 짓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말 이후로 네가 보여주는 끊임없는 관심에 그렇게 우리의 연애는 시작되었다. 우리의 연애는 여느 고등학생들의 연애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같이 자습실에 남아 공부하고 너는 항상 내 손에 저녁 시간에 사 두었던 피크닉을 쥐여주고, 주말에는 영화관이든 카페든 어디든 놀러 다녔다. 그러다가 우리는 담임선생님께 연애가 발각되었고, 연애금지가 교칙이었던 우리 학교에서 우리는 나란히 ‘교내봉사 30시간’이라는 징계를 받았다. 그래도 우리는 좋았다. 교내봉사 30시간조차 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행이다.” “왜?” “선생님이 헤어지라는 말씀은 안 하셨잖아. 봉사만 하라고 하셨지.” “ㅋㅋㅋㅋ 참 다행이다” “왜 장난 아니고 진심인데ㅎㅎ”
그렇게 달달하던 우리가 서먹해진 것은 아마 3학년에 올라가고 나서 너의 성적에 오류가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을 때였을 것이다. 3학년 1학기 성적은 수시로 대학을 가야 하는 너에게 가장 중요했다. 너는 모의고사는 모의고사대로 내신은 내신대로 안 나오는 성적에 힘들었었다. 그리고 너의 옆에는 선생님들 사이에서 ‘내신 1.3'이라고 불리는 내가 있었으니 더욱 힘들었을 것이었다. 나는 항상 지쳐 보이고 힘들어 보이는 너에게 ’힘내‘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고 너는 그 말조차 지쳤던 것 같다. 그렇게 우리는 여느 고3처럼 성적 때문에 서먹해졌다. 어쩌면 나는 너와의 이별을 예감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는 눈앞에 놓인 수능이 더 중요했었던 것 같다.
“헤어지자, 여주야” 너의 이 한마디에 모든 감정이 교차했었던 것 같다. 슬픔. 섭섭함. 또는 후련함. 그리고 ‘굳이 이 말을 수능 3달 전에 해야 했을까?’ 하는 너에 대한 원망까지. 그리고 너도 나도 공부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사실, 네가 어땠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랬다. 그렇게 공부해서 나는 꽤 괜찮은 대학의 괜찮은 과에 입학했다. 너도 꽤 괜찮은 대학의 괜찮은 과에 입학했다고 들었다.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둘 다 이별의 충격에 휩싸이지 않고 공부에 집중한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시간이 지날수록 아니였다. 다행스러움은 대학에서 합격전화를 받고 난 하루동안이였다. 대학에 합격하고 난 뒤 이성적인 사고를 하기 시작했다. 너와의 추억이 생각났고 너의 이별 선고에 대한 나의 쓰레기같았던 태도를 깨달았다. 우리 모두 끝났으니 다시 시작해보면 안되냐고 물어볼 수도 없었던 이유였다. 남은 시간동안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너를 보며 참 많은 생각을 했다. 너에게 다시 돌아갈 수도 없는 나는 너가 다시 나에게 말 걸어주기를, 다시 내 손을 잡아주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너를 기다리고있다. 자유정조 -한용운- 내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기다리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기다려지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정조보다도 사랑입니다. 남들은 나더러 시대에 뒤진 낡은 여성이라고 삐죽거립니다. 구구한 정조를 지킨다고. 그러나 나는 시대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인생과 정조의 심각한 비탄을 하여 보기도 힌두 번이 아닙니다. 자유 연애의 신성(神聖)을 덮어놓고 부정하는 것도 아닙니다. 대자연을 따라서 초연생활(超然生活)을 할 생각도 하여 보았습니다. 그러나 구의(究意), 만사가 다 저의 좋아하는 대로 말한 것이요, 행한 것입니다. 나는 님을 기다리면서 괴로움을 먹고 살이 찝니다. 어려움을 입고 키가 큽니다. 나의 정조는 '자유정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