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사)친
대망의 댄스 동아리 오디션이 열렸다. 전에 지영언니와 대화를 나눴던 것을 생각하면 이 자리에 이동혁도 있어야 하는데 내 옆에 있어야 할 녀석은 보이지 않고, 전에 급식실에서 봤던 황인준만 보이는건가. 그때는 흘깃 쳐다보고 웃는 모습만 봐서 잘 몰랐는데 이렇게 보니까 되게 순수해보였다. 계속 흘깃 쳐다보니 그도 내 시선을 느꼈는지 내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나는 그를 보지 않은 척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으나 결국 그에게 걸렸다.
"김여주? 너 진짜 여기로 온거야?"
"어? 어."
"이제노 말이 사실이었네. 이동혁 미친놈이네, 이거."
"어, 그게 무슨 말이야?"
"안녕하세요? 댄스 동아리 회장 박지성입니다."
뭐야, 저 일학년이 동아리 회장인가. 어우, 이거 제대로 개족보가 되기 쉽겠네라고 생각했지만 그것도 잠시 뭐 씹은 표정으로 떨떠름한 말투로 말을 하는 거 보니 그럴 일은 없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옆을 봤더니 황인준은 오우 마이 캡틴 박이라고 칭송을 하고 있었다. 뭐야, 방송부인 재현 선배로 인해 학교 일은 내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재현 선배가 방송부를 그만 뒀다는 소문을 듣고 안 들어서 그런가 박지성이 유명한 지는 처음 알았네.
"박지성, 쟤 유명해?"
"아니. 내 알바야?"
"근데 웬 캡틴 박?"
"축구선수 말한건데?"
그럼, 그렇지. 내가 아무리 재현 선배 때문에 학교 소식통을 그만뒀다고 하더라도 내가 우리학교 유명인을 모르겠어? 그나저나 언제 오디션 시작해. 회장은 텔레비전을 틀었다. 노래가 2D도 아닌데 굳이 모니터까지 켤 필요가 있나 싶어서 봤더니 파일명 ☆박지성★.adv를 클릭했다. 뭐야, 저거 제 영상 트는 거 아니냐.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얼른 문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이상한 꼬마애가 문 앞에 서 있어서 어떻게 할 수도 없었다.
'스타트'
"그럼 시작하죠. 1번 황인준 님."
시발, 존나 자기애가 강한 녀석이었잖아. 황인준은 깨끗하게, 맑게, 자신있게 앞으로 당당히 나갔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한 번도 당황한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던 황인준이 갑자기 표정이 굳어졌다. 그 이유는 바로 문 앞을 가로막았던 꼬마 남자애가 황인준보다 더 당당하게 녀석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박지성은 아무것도 아니란듯이 황인준의 동아리 가입서를 보면서 말했다.
"아, 중천러 이 아이가 지휘를 해줄거에요.'
박지성의 말은 황인준은 물론, 나까지도 몸으로 하지 못하는 팝핀을 동공으로 할 뻔 했다. 아니, 여기가 혹시 성악부인가요? 아니면 합창단? 아니면 합주단? 분명 댄스 동아리로 알고 온건데요. 황인준의 표정을 보니 굉장히 빡쳤지만 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인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다란 표정으로 음악과 지휘를 느끼기 시작했다는 개뿔, 삼 초도 안 지나가서 끝났던 걸로 기억한다.
"요, 레스기릿~~~~~~~~~~~"
"오우,,,,,,,,,,,,,시발,,,,,,,,,,,,,,,,,,,"
남(사)친
천방지축 얼렁뚱땅 말썽쟁이 짱구가 왔다간듯한 오디션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끝난 건 오 메이비 메이비 이건 사랑일지도 모르는 박지성이 탈락시킨 황인준의 멘탈이랄까. 다음 김여주 님 나와주세요. 아, 시발 황인준과 중천러의 무대를 존나 꺽꺽대서 봤더니 나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골대에 골키퍼-중천러-도 없고 오히려 골을 넣으라고 먹여준 꼴이었는데…. 아니다, 박지성의 표정을 보니 왜 안왔냐고 나중에 내 반으로 찾아와서 멱살을 잡았을 것만 같다.
음악파일을 박지성에게 건네고 든 생각인데 도대체 뭐부터 다시 시작할 건지 궁금해졌다. 박지성 파일을 누를 것인지 아닐 것인지가 제일 궁금했다. 다행히 그 영상은 그냥 오디션 시작을 알리기 위한 것이었는 지 다시 재생을 하진 않았다. 뭐, 중천러는 아직도 제 앞에 있지만 나는 얼른 탈락할 생각밖에 없기 때문에 박자 무시할 거라서 굳이 세워놔주지 않아도 되는데.
'이 자태를 보고 합격시키면 넌 회장직 내려놔라.'
시발, 어디 붙여볼테면 붙여봐라란 생각으로 췄던 것 같다. 그런데 어디서 박수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황인준이 비웃음의 끝판왕으로 박수를 쳐주는지 알았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박지성이 박수를 쳐줬다. 뭐, 황인준 대신해서 쳐주는 그런건가. 이렇게 개같은 댄스는 처음 봤다, 뭐 이런거?
"오우, 지휘자의 감성을 잘 따라해준 것 같아요. 마음에 드네요, 합격."
"오우, 그래요?"
는 개뿔,
나한테 찔려서 사망해서 영화감상부에 틀어지는 영화에 나오지말고 얼른 나 탈락시키라고.
박지성이 궁예가 아닌지라 관심법은 통하지도 않고 텔레파시도 통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허탈하게 자리에 돌아와 앉았는데 황인준이 화가 나 보였다. 내 마음을 알아준건지 대신 화를 내주나보다 싶었다. 인준아, 그만해. 제 마음에 든다잖아, 어쩌겠어. 일 년 동안 죽어나가면 뭐 어떻게든 되겠지. 괜히 선후배간에 일 일으키지 말자고. 내 말에 황인준은 더 화가 나 보였다. 아, 뭘 그만해. 녀석은 저 말을 하고선 무대 앞으로 나왔다.
"야, 내가 김여주보다 잘 췄는데 왜 난 탈락이야?"
"아, 뭐, 선배도 잘했는데 뭐랄까,,,쓰읍,,,,그,,,쀨이 좀 그랬달까. 뭐, 그래도 잘했으니깐 합격 드릴게요."
"오케오케, 그럼 내일 부터 나오면 되는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