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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혁 몬스타엑스 샤이니 온앤오프
휘파람 전체글ll조회 541l 1

 

 

 

 

#0

비가 오고 있었다. 먹구름이 우글우글한 하늘 때문에 그리 늦지 않은 시간인데도 거리는 이미 어둑어둑해서 늦은 저녁인 것처럼 보였다.

공부하겠다며 독서실에 온 주제에 멀거니 창밖만 내다보고 있으니 덕분에 더 일찍 잠이 오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이왕 공부하겠다고 독서실까지 끊은 거, 돈이라도 안 아깝게 조금이라도 해야겠다는 결심으로 겨우겨우 창에서 눈을 떼고 책으로 고개를 돌렸다.

시선은 책에 꽂혀있는데, 시야는 점점 흐려지면서 머리가 멍해졌다.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가 규칙적으로 귀에 꽂히고 있었다. 비가 내리고 있다. 세상에도, 내 책에도. 다시 풀어보려고 펜을 잡아도 금세 손에 힘이 빠진다.

왜 틀린 건지, 내가 뭘 풀었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걸 꾸역꾸역 해내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헤맬 시간이 없는데, 없는 건 아는데. 무언가가 자꾸만 손을 타고 흘러서 손가락 사이로, 손끝으로 빠져나가는 것 같은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움켜쥐어도 흘러버리는 그것들이. 아무리 용을 써도 쫒아 따라갈 수 없는 무언가에 대한 상실감. 그런 거.

나는 뭘 하고 있는 걸까. 나사가 하나 빠진 것 같다. 당장 딛고 선 바닥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난 이럴 시간이 없는데.

책을 태워버릴 듯 노려보다가, 터져나갈 듯 머리를 맴돌던 무수한 생각들이 점점 줄어들었다.

줄어들고, 줄어들어서 종래에는 아무 의미 없이 눈을 뜨고만 있을 때,

누가 뒤통수를 잡아 올리는 것처럼 붕 뜨는 기분이 드는 가 싶더니 갑자기 주변의 모든 것이 나와 전혀 다른 곳에 떨어져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삽시간에 멀어지는 감각과 차가워지는 손끝에 지레 겁이 나 거칠게 머리를 뒤흔들었다.

난방기 소리가 뚝, 하고 끊겼다.

주위가 일순 고요해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귓가에 웅웅대던 기계소리가 일시에 사라지며 도서실의 억눌린 침묵이 방해꾼이 사라진 귀로 스며들었다.

펜 사각거리는 소리, 책장 넘기는 소리, 창문 밖 시원한 빗줄기가 세상을 내리치는 소리, 사람들이 내쉬고 들이쉬는 숨소리. 눈을 감고 그 소리들을 듣고 있다가,

그대로 잠이 들었다.

그런 느낌이 있다. 깊은 잠을 자다가도 갑자기 끌어올려지듯 일어나는 느낌. 퍼뜩 눈을 뜨자 누군가 빈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어떤 연애담 B 上 | 인스티즈

 

..!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자 그가 씩 웃었다.

 

- 오래도 잔다. 데리러 왔지 오빠가.

 

어떤 연애담 B 上 | 인스티즈

 

놀란 눈을 깜빡거리기만 하자 유난히 길고 마른 손으로 내 책을 하나하나 챙긴다.

펜 하나, 지우개 하나까지 모두 필통에 넣어 가방에 담으면서 여전히 속삭이듯이 조용조용 말하는 그였다.

- 시간이 너무 늦었잖아 이 아가씨야. 비도 오는데.

다른 사람을 위해 작게 말하면서 바닥으로 깔리듯 낮게 속삭이는 목소리가 좋아 멍하니 그가 가방을 싸는 걸 보고만 있다가 겨우, 마찬가지로 속삭이는 대답을 내어놓았다.

-깜빡 잠들었나봐.

-그래. 가자.

내 가방을 자신의 어깨에 걸고 먼저 문을 나서는 그를 잠시간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가 돌아봤으면 좋겠다. 어서 따라 나오라고, 나를 봐주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는 문을 닫고 나가서 독서실 출구 쪽으로 사라졌다. 나는 느리게 일어섰다.

그를 보자 더욱 무거워진 몸은 꼭, 한발 내딛을 때마다 바닥이 발목을 꾹 잡았다 놓는 것 같았다. 늘 그렇게 멀었다.

그가 서 있는 곳으로 가는 길이.

#1

-, ..!

나는 다 뱉지도 못한 말도 먹고, 튀어나오던 분홍색 마음도 먹었다. 딸랑거리려던 카페 문에 달린 조그만 종도 그 소리를 먹고 딱 멈춰버렸다.

늘 이러는 것 같다. 당신을 보면 여기 어딘가에서, 막 몽실몽실거리고 부드럽고 예쁜 파스텔 톤 마음들이 몽글몽글 피어오르다가, 금세 먹색이 되어 버린다.

숨어버린다. 침침한 마음이 돼서 내 안으로 다시 들어오면, 딱딱하고 모나서 속을 다 할퀴고, 그럼 나도 모르게 헛구역질이 났다.

어떤 연애담 B 上 | 인스티즈

 

-그래서 면접관이 요새 이슈가 되는 사회문제 중에 가장 관심있는 걸 말해보라잖아. 말은 아무거나 된다는데... 그게,

-그래 아무거나가 아니지. 당 사, 부서, 내 지원서 다 들어맞는 사회문제를 말해보라는 얘기 아냐.

-그래서 뭐라고 했는데?

-그냥, IT, 원격진료에 대해서 얘기했지. 요새 원격진료며 유비쿼터스 헬스케어며 난리잖아.. 그런..

오빠와, 오빠 주위 사람들이 입고 있는 반듯한 정장들이, 그 중에서도 하필 중심에 서서 이런 저런 대화를 주도하며 웃고 있는 오빠가 너무 어른이었다.

그래, 당신은 늘 그렇게나 어른이었다. 카페의 유리문에 비친 밋밋한 맨 얼굴과, 살집이 올라 몸에 딱 맞는 교복을 입은 어린애가 겁먹은 얼굴로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그래, 난 어린애였다. 순식간에 세상에 먹구름이 가득 꼈다. 방금까지 세상은 그렇게 밝고 맑았는데, 온통 하얗고 노랗고 파랗고 분홍색이었는데.

춥고 싸하고 딱딱하게, 검어졌다.

거짓말처럼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우산이 없었다. 어쩌면 우산이 필요 없는 비였다.

-***! 왜 들어왔다 그냥 가.

할 수 있는 한 제일 빠른 걸음으로 집을 향해 열심히 가고 있는데, 손을 뻗어 잡지 않아도 내 발을 붙드는 목소리가 뒷덜미를 확 잡아챘다.

-, 지호오빠..

-. 왜 그냥 가? 숙제 있어? 아오 달어. 이거 너 먹어라.

그냥 주지, 꼭 손을 잡아서 컵을 꼭 쥐어준다. 꽉 잡고 있으라는 듯이 두 손으로 모아 쥐어주는 것도 그렇다.

애 취급을 하는 건지 뭔지 몰라도 심장이 미친 듯이 콩콩 뛴다. 맨날, 그런다.

-근데 야. 넌 가방이 왜 이렇게 무거워? 키 안 큰다고 했지. 이리와.

장난감 다루듯이 홱 돌려서 가방을 열고 책을 한 아름 집어간다. 지퍼를 닫으면서 무슨 책을 이렇게 많이 가지고 다니냐고 타박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불만스럽게 쳐다보자 흘끗 내려다보면서 피식 웃는다.

이씨, 웃을 때 더 가늘어지는 긴 눈꼬리, 그리고 저 입꼬리. 너무 멋있다.

어떤 연애담 B 上 | 인스티즈

 

-지호야! 너 어디가 갑자기?

-아 나,

카페 문이 열리면서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진다. 그 많은 사람들이 다 오빠를 찾는다. 그 중에서도 원피스 정장을 곱게 입은 아주 예쁜 언니가 손짓해 부른다.

오빠는 여전히 내 교과서를 들고, 내 책가방 끈을 한 손으로 붙들고 있다. 그 사람들 손에는 전공서적과 뭔지 모를 서류들이 한 아름이다.

나는 표지에 낙서가 한가득인 내 교과서와, 그 사람들의 두꺼운 서적들을 계속 번갈아봤다.

-나 동생! 같이 집에 가려고.

-아 니 동생이야? 고딩? 완전 귀엽다!

-헐 우지호 동생 있어?

-어디! .. 완전 애기.

-아 친동생 아니야. 옆집 동생. 예쁘지?

사람들이 정신없이 오빠를 부르고, 미운 말만 골라서 한다. 어째선지 더 얄밉게 내 눈치를 흘끔흘끔 살피던 오빠가, 내 얼굴에 꽁한 기색이 드러났던 모양인지

내 어깨를 꾹 잡았다 놓는 것이었다. 왜 그러는지도 모를거면서. 난 애꿎은 그 어깨가 순식간에 타들어가는 것처럼 뜨거워져서 얼굴을 굳혔다.

놀랐어? 아이를 달래듯이 속삭이더니 주머니를 뒤져서 사탕을 꺼낸다. 주섬주섬 까서 입에 물려주는데, 그 눈이 왜 다정하고 그렇게, 아이를 보는 것 같은지,

그게 너무 미워서, 눈물이 확 몰리는 느낌이 들어 고개를 숙였다.

-헐 그 유명한 옆집 동생??

-지호야 너 그거 범죄다!

-맞아! 아청법 걸려!

-아 다 꺼져!

입에서 느껴지는 사탕의 단 맛이 점점 써지는 것 같았다. 뒤에서 미운 말을 하던 사람들이 지호야, 지호야 부르면서 무어라 얘기하는데도

그냥 손만 휘휘 젓고 내 등을 떠민다. 가자. 왜 안가. 하고 낮게 얘기하면서 툭툭 미는 손이 더 미웠다.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이 원래 설레는 건가. 난 그냥 늘 깝깝- 했다. 설레는 순간은, 분홍빛 세상은, 금세 먹구름에 덮여 내게서 멀리 달아나곤 했다.

내 인생, 갈 길이 너무 바쁜데. 내가 이렇게 그 사람 신경 쓰면서 허비하고 있는 시간도 아깝고, 그래서 멍청하게 아무 것도 못하는 나도 한심하고 그냥 그랬다.

그 사람을 보면서 내가 초라해지는 게 싫었다. 시간이 갈수록, 좋아하면 좋아할수록 그 사람 어쩜 그렇게 대단하고 잘나보여서 너무 슬프니까.

그러니까, 그 사람이 날 그냥 내버려뒀으면 좋겠다. 예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밤늦게 와도 데리러 오지 않았으면 좋겠고, 동네에서 마주치면 꼭 날 주려고 가지고 다니는 것 같은 사탕을 하나씩 물려주지 않았으면 좋겠고,

집에 가는 길에 만나면 내 무거운 가방에서 꼭 책 한 짐씩을 꺼내 가져가 들어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매너가 없거나 개념이 없으면 좋겠다.

아니면 멍청하던가, 그것도 아니면 게을렀으면 좋겠다. 배나 벅벅 긁으면서 동네를 돌아다녔으면 좋겠다. 그래서 차라리 당신을 싫어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면 그토록 어른인 당신도 이렇게 밉지는 않을텐데.

나는 한 번도 얼른 자라 어른이 되기를 바란 적이 없었다. 왜냐면 당신이 어른이니까.

내가 어른이 됐는데, 어른인 내가 당신보다 못한 사람이어서 지금보다 더 멀어질게 두려워서 나는 어른이 되지 않고 싶었다.

그러나 신호등이 바뀌고, 해가 짧아지고, 드라마가 끝나고, 군대에 갔던 친척오빠가 제대하고. 그렇게 시간은 개의치 않고 흘렀다. 나는 19살이 되었다.

 

     #2

19살 겨울, 세상이 끝났다.

목도리를 한가득 두르고, 손에는 도시락 통을 들고, 어제 저녁의 내 다급한 마지막 미련이 한 짐 가득 들어있는 무거운 가방을 등에 짊어지고서,

후들거리는 다리와 아직까지 달달 떨리는 두 손을 꼭 부여잡고 낯선 학교의 교정 어딘가에 가만히 서있었다.

친구들은 부모님과 함께 다정하게 걸어 교문을 나서면서, 내게 몇 번이고 손을 흔들었다. 보이지 않는 척 고개를 돌렸다.

핸드폰에서는 수고했다는 문자가 쏟아지고 있었다. 하필 오늘, 끝나는 시간을 착각한 부모님은 지금 출발해도 늦는다며 그냥 집으로 오라고 했다.

나는 갈 수 없었다. 어디로도 갈 수가 없었다. 가고 싶지 않았다. 등에 맨 가방도 너무 무겁고, 손에 든 도시락도 너무 무겁고, 신발도 너무 무겁고..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부모님 차에 몸을 싣고 눈 꾹 감고 집에 가고 싶었다.

돌아가는 길을 생각하며 내 두 발로 걷고 지하철을 갈아타고 다시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 그 긴 시간이 너무 무서웠다.

누가 봐도 수능 친 학생인데, 울고 있으려니 사람들이 계속 쳐다보는 것도 짜증나고, 하필 오늘 부모님이 날 데리러오지 않은 것도 짜증나고, 가방이 무거워서,

거치적거리는 도시락통도, 추워서, 먼저 가버린 친구들이 짜증나고 그냥 다.. 모든 게 끝난 순간 내가 혼자여야 한다는 게. 그게 제일.

나는 지하철역에 멍하니 서있었다. 지하철을 몇 대나 지나보냈다.

계속 눈물도 나고, 콧물도 나고, 눌려서 끅끅거리는 울음소리도 났다. 이제 눈물이 나는 명확한 이유도 없었다. 이젠 누구 탓을 할 수도 없었다.

**. 어디야?

-......

받아놓기만 한 핸드폰 너머에서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목소리가 넘어오고 있었다.

너무 좋아해서, 나를 너무 쉽게 흔들기 때문에, 지금은 차마 대답도 할 수 없는 목소리. 그 목소리가 너무도 설게 들리는 내 이름을 불렀다.

야 너는, .. 대체 지금 시간이 몇 신데.. 아직도 집에 안 왔다며. 전화도 안 받고. 아저씨 아줌마, 지금 걱정 많이 하신다.

-.......

걱정하실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살면서 내가 이렇게 무작정 연락을 안 하거나, 안 받거나, 늦게까지 돌아가지 않은 적이 없으니까.

답답할 정도로 별 일 없는 자식이 아니었던가. 게다가 날도 날이었다.

너 지금 오빠 말 듣고 있어?

나는 겁이 많았다. 그래서 아무리 화가 나고 짜증이 나도 해야 할 일이 있으면 그것부터 했고, 아무리 학원이 가기 싫어도, 아무리 아파도 울면서라도 학원에 갔다.

학교도 마찬가지였다. 내내 한 번도 지각도 결석도 해본 적이 없었다. 잔뜩 반항적인 마음을 집어먹고 집을 나서도 발은 저절로 익숙한 길로 갔다.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하면 안 돼는 일을 하거나, 모르는 길로 한번 가보는 건 나한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건 내가 성실하거나, 부지런해서라기보다는 겁이 많아서였다. FM적인 길에서 벗어나는 것에 대해 나는 유달리 겁을 집어먹곤 했다.

그게 아무리 사소해도 정도(正道)에서 벗어나는 일이라면 뭐든 무서워했다. 그리고 그건 다 당연히 당신 때문이었다.

왜 대답이 없어. 듣고는 있냐? 걱정되게 이러지 말고..

나는 좋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오빠 옆에 섰을 때 내가 초라하지 않은 어른일 수 있도록, 바르게 자라고 싶었다.

이미 충분히 잘났으면서 끊임없이 겸손해하며 자기 자신을 채찍질하는 오빠를 닮은 어른으로 자라고 싶었다. 그건 동경하는 사람에 대한 아이의 것이기도 했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당당해지기 위한 여자의 것이기도 했다. 그러려면 오늘이 완벽했어야 하는데, 아니 시험 자체는 완벽했던 것 같은데.

왜 이런 기분이 드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래. 알았다. 그냥 어딘지 말해. 데리러 갈게.

잔뜩 약이 오른 걸 참는 것 같기도 하고, 화가 난 것 같기도 하고, 체념한 것 같기도 한 목소리로 하는 그 말을 듣자 정신이 번쩍 드는 것 같았다.

아니지, 그럴 수는 없었다.

-아니야. 갈 거야. 가고 있어.

다급하게 오래 된 폴더 폰의 종료키를 길게 눌렀다. 희미하게 반짝이며 핸드폰이 종료된다는 메시지가 떴다.

나는 핸드폰을 가방 깊숙이 쑤셔 넣고, 가방을 메고 도시락 통을 손에 들었다. 오늘의 마지막 지하철이 오고 있었다.

나는 소설이나 드라마의 주인공은 아니니까, 여기 앉아서 오빠가 나를 데리러 오길 바라는 짓은 할 수 없었다.

왜냐면 이게 마지막 지하철이고, 오빠는 바쁜 사람이고, 오빠가 만약 여기 날 데리러 와버린다면 내가 여기 앉아있던 게 그저 그 사람을 기다린 걸로 되어버릴 터였다.

나도 그렇고, 오빠도 그렇고, 지금을 그렇게 기억한 채로 넘겨버릴 게 분명했다.

뒤숭숭한 날, 뒤숭숭한 내가 어린애처럼 투정부리느라 거기 앉아서, 누군가 데리러 오기를 그저 기다렸다고.

수많은 고민들이 그저 그 작은이유 안에 갇혀 버릴거다. 왜냐면 나는 그 사람을 좋아하니까.

지하철에 오르자마자 금방 가방을 뒤적여 핸드폰을 꺼내서 다시 켰다. 그런 스스로에게 헛웃음을 지으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 걱정할테니까.

역시나 금세 액정에 그 이름이 떳다.

우지호

차마 입으로 뱉는 것도, 손으로 쓰는 것도 설레고 뭔가 겁이 나서 그 이름 석자 말고는 다른 게 떠오르지 않았던 담백한 저장명이었다.

볼 때마다 심장이 철렁한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따라 더욱. 받지않으면 진짜 화낼지도 모른다는 걸 알고있는데도 멍하니 그 이름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대로 두고 싶었다. 내게 뻗어져오는 당신의 손과 내게 쏠려있는 당신의 신경을. 이게 어린애같은 마음이라면, 어린애라서 어쩔 수 없다고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당신을 따라가야 하니까, 무엇이 되더라도 어린애같은 일이라면 죽어도 할 수 없으니까. 달달 떨리는 손으로 통화키를 눌렀다.

수능이 끝나면, 금방 새해가 될 거고, 그럼 나는 성인이 될 것이다. 그러면 난 꼭, 이 복작복작거리는 마음을 전해야지, 하고 생각하곤 했었다.

그런데 어렴풋이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당신은 내가 자랄수록 멀어질 것이라는 것 같은, 사소한 것들을 말이다.

그러니까 어쩌면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샛노란 컨버스화의 앞코를 바닥에 툭툭 치면서 잔뜩 화가 났을 게 분명한 오빠를 기다리면서 그런 생각이나 하고 있는 게 웃겼다.

오빠가 나를 데리러 오고 있는데, 설렐 수 없는 순간이라니. *** 인생에 별 일이 다 있었다.

어떤 연애담 B 上 | 인스티즈

 

-***.

그 날이 내 수능 날이었다. 그 뒤로 내 인생이 계속되는 동안, 내가 억만금을 줘도 다시 돌아가지 않을 거라고 골백번 말하는 그 날.

내 인생이 한번 끝났던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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