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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각/구도] 시티헌터 (City Hunter)

Written by. Morning

 

 

 

 

 

 

 

 

 

 

 

 

띵- 소리와 함께, 5층에 도착했다는 빨간색의 숫자를 확인한 우현과 아란이 잔뜩 긴장해 굳어버린 몸을 이끌고 조심스레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내리자마자 인상을 찌푸리며 비틀거리는 우현을 재빨리 부축한 아란이 걱정스럽다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입을 삐죽였다. 괜찮겠어, 정말? 그에 우현은 별 거 아니라는 듯 살짝 웃어 보이며 이상하리만치 조용한 복도를 눈으로 훑었다. 조용하면 감사해야 하는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기분은 그닥 썩 좋지 못했다. 우현이 조금 더 살피려고 마악 발걸음을 떼었을 때, 약간은 다급해 보이는 성열의 목소리가 고막을 타고 흘러 들어왔다.

 

 


- 오른쪽 코너에서 경호원 세 명 걸어오고 있어요.

 

 


그 말에 우현과 아란이 재빨리 발걸음을 돌려 뒤편에 있는 코너로 몸을 숨겼고, 그와 동시에 경호원들의 구두소리와 말을 주고받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은 무전기에 대고 뭐라고 소리쳤지만, 무전기의 주파수가 제멋대로 왔다 갔다 하는 바람에 다른 층의 동료들에게도 연락을 할 수가 없는지 저들끼리 신경질을 내며 쿵쿵, 발을 굴렀다. 이렇게 조금은 저들이 화내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재밌겠다 싶어, 우현이 그대로 벽을 타고 주저앉아 허공에 뜨거운 숨을 내뱉었다. 그에 아란도 함께 우현의 옆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조용히 눈을 감고 있는 우현의 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 하여간, 커플끼리 고집 센 것도 닮았어.”

“ 푸흐….”

 

 


아란의 말에 재미있다는 듯, 땀으로 젖은 머리를 탈탈- 털며 양 입 꼬리를 끌어 올려 씨익- 미소 짓는 우현이었다. 그다지 칭찬을 하는 뉘앙스는 아니었지만 왠지 모르게 성규와 닮았다는 그 말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런 그의 모습에, 아란 또한 장난기 가득 어린 얼굴을 하고는 크게 숨을 한 번 내뱉었다.

 

 


“ 고마워, 우현아.”

“ …어? ”

“ 17살부터 쭈욱- 죽은 듯 살아왔던 김성규를 살려줘서.”

 

 


아란의 말에 우현은 그 어떠한 말도 하지 않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김성규를 살렸다라…. 자신이 성규를 살렸다고? 아니다. 그건 틀린 말이다. 오히려 나 자신이 성규로 인해 살아났다고 하는 것이 맞는 말일 것이다. 그 누구보다 슬퍼하고 미친놈처럼 살던 나를 구원해준 것이 김성규다. 사실 우리는 말로만 복수를 꿈꿔왔지, 셋이서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런 우리에게 복수의 기회를 마련해 준 것도, 행복했던 그 시절의 감정을 다시 일깨워 준 것도 성규였다.

 

 


“ 내가 성규를 살린 게 아니라, ”

“ ……… ”

“ 그가 나를 살린 거야.”

 

 


아란은 그렇게 말해오는 우현을 그저 아무런 말없이 바라보다 이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방금 내가 너에게 했던 말을 그 녀석에게 한다면 과연 무슨 반응이 나올까. 아마도 너와 같은 말을 하겠지. 내가 우현이를 살린 게 아니라, 그 아이가 나를 살린 거야, 라고.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얼굴에 더 환한 웃음이 일었다. 너흰 참 닮았어.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큰 상처를 받은 것도, 서로를 위하는 그 마음도.

 

 


“ 아아- 부럽다.”

“ 뭐가? ”

“ 알콩-달콩. 서로 사랑하는 그 모습이.”

“ 푸흐, 너도 얼른 남자친구 만들어. 너 정도면 남자들이 목을 매고 달려들 것 같은데? ”

“ 아아, 그건 맞는 말이니 부정하진 않을게. 그치만 주위에 이렇게나 잘생기고 멋진 남정네들이 일곱이나 있어서, 다른 남자들은 눈에 차지도 않는다. 특히 김명수 고 놈. 참 멋지구리 하단 말이야. 탐이 나.”

“ 풉-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동우 형이더니, 이번엔 명수야? ”

“ 내가 사실 바람기가 엄청나거든. 너도 조심해. 내가 언제 너한테 작업 들어갈지 모르니까.”

 

 


장난기 가득 머금을 얼굴로 귓가에 속삭이는 아란의 모습에, 우현이 참지 못하고 조금 크게 웃음을 터뜨려버렸다. 금방 입을 틀어막긴 했지만 손 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웃음을 어쩔 수가 없는지 간간히 웃음소리가 작게 튀어나왔다. 여전히 머리가 띵하고 어지럽긴 했지만, 그래도 아란 덕에 기분은 많이 나아진 우현이 싱긋- 미소 지었다. 그렇게 사소한 이야기로 웃고 떠들며 상황과는 맞지 않게 즐거워하던 우현과 아란이, 뚜벅뚜벅 자신들 쪽으로 가까워지는 구두소리를 듣고는 천천히 일어나 먼지 묻은 엉덩이를 탈탈, 털고는 몸을 풀기 시작했다. 이 정도 시간을 끌었으면 곧 호원과 명수도 올라 올 테니 먼저 싸우고 있어도 되겠지 싶은 우현이 제자리에서 가볍게 몇 번 뛰고는, 아란에게 시선을 돌린 채 말했다.

 

 


“ 너 괜찮겠어? ”

“ 안 괜찮아도 어쩌겠어? 몸싸움은 잘 못하는 편이지만 열심히 싸워보는 수밖에.”

“ 나도 최대한 널 보호하는 쪽으로 싸우긴 하겠지만, 컨디션이 최상은 아니라 장담은 못하겠다.”

“ 내 걱정은 하지 말고 네 몸이나 지켜. 여자라고 해서 보호해달라는 약한 소리 하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니라서 말이야.”

 

 


딱, 정아란다운 그 말에 우현이 비식, 웃음을 흘리며 정면을 응시했다. 아마도 저쪽에서도 타이밍을 보는 듯 복도 끝 코너 쪽에서 발소리가 끊겼다. 우현과 아란이 발소리를 죽인 채 천천히 복도를 걸었다. 하지만 복도 끝에 거의 다다랐을 때쯤, 예기치 못하게 갑자기 튀어나와 주먹을 날리는 경호원 덕에 놀란 우현이 재빨리 몸을 뒤로 빼 주먹을 피하고는 다시 자세를 바로 잡았다. 인원수는 세 명. 여전히 머리가 띵해 초점도 제대로 잡히지 않는 자신과, 여자인 아란이 상대하기엔 꽤나 버거운 숫자였지만, 이렇게 마주친 이상 별 다른 방법도 없어, 최대한 버티는 식으로 싸워야했다. 이윽고 경호원 두 명이 우현에게, 나머지 한 명은 아란에게 달려들었다. 우현이 입술을 꽉- 깨물며 주먹을 뻗었다.

 

 

 

 

 

 

 

 

 

* * *

 

 

 

 


“ 우현아!! ”

 

 


아란이 다급하게 우현을 불렀지만, 우현은 대답할 기력도 없는 상태였다. 초반엔 꽤나 잘 싸웠던 우현이었지만 이내 곧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눈의 초점도 맞지 않아, 분명 제대로 뻗었다고 생각한 주먹은 엉뚱한 곳으로 날아갔고, 그 기회를 잡은 남자들이 쓰러진 우현을 작정하고 구타하기 시작했다. 최대한 몸을 웅크린 채 급소를 피해 맞고 있기는 해도 계속 저렇게 맞다간 정말 큰일이 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란이 움직이지 못하게 자신의 팔을 꽈악- 힘주어 붙잡고 있는 남자의 손가락을 겨우 잡아 그대로 꺾어버리고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남자의 복부를 있는 힘껏 세게 걷어 차버렸다. 여자인 아란의 반격에 꽤나 큰 충격을 받은 듯 남자가 주춤했고, 이내 기회를 잡은 아란이 허리춤에 차고 있던 총을 꺼내어 총체로 남자의 머리를 내리찍어 기절시켰다. 그리고는 거친 숨을 내뱉을 틈도 없이 곧장 우현 쪽으로 달려갔다. 우현은 다행히도 다시 일어나 두 남자를 상대하고 있었다. 그 얼굴이 몹시 힘들고 지쳤다는 듯, 잔뜩 구겨져 있긴 했지만.


아란이 숫적으로 불리한 우현을 돕기 위해 그나마 덩치가 좀 작은 경호원의 무릎을 그대로 걷어찼다. 뻐걱- 하는 소리와 함께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은 경호원 덕에, 조금 더 수월하게 남은 한 명을 상대하는 우현이었다. 이 정도면 자신이 좀 도움이 된 것 같아, 뿌듯한 마음을 안고 웃으려던 아란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진 건 순간이었다. 무릎을 걷어차인 덕에 잠시 주저앉아 있던 경호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뒤돌아 서있는 아란의 긴 생머리를 한 손에 가득 움켜쥔 채 그대로 호텔 벽에 아란의 머리를 내려쳤다. 쿵- 소리와 함께 아란의 이마에게 피가 주르륵, 새하얀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 모습을 본 우현이 놀라 다급히 아란을 불렀다. 머리가 웅웅- 울려대고 끔찍한 통증이 몰려와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우현의 고함소리는 정확히 자신의 고막을 타고 흘러 들어왔다.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을 천천히 들어 올린 아란이,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나 우현에게 다가가고 있는 경호원의 어깨를 턱- 잡아 돌려 세우곤, 주먹에 감정을 실어 날렸다. 여자여도 무시 못 할 그 힘에 경호원이 그대로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고, 그를 때린 아란도 어지러움에 함께 넘어졌다. 여전히 머리를 살살 좌우로 흔들며 정신을 차리려고 애를 쓰고 있는 아란과는 달리, 금방 정신을 차린 경호원이 일어나 다시 한 번 아란에게 손을 뻗는 그 순간, 우현이 남자의 명치부근을 발로 세게 걷어찼다. 그리곤 고통에 허덕이는 남자의 얼굴을 그대로 아까 아란이 당했던 것과 똑같이 벽에 내동댕이치고는 피를 흘리며 쓰러진 남자의 얼굴을 다시 한 번 발로 걷어찼다.


주저앉아 있던 아란이 갑자기 조용해지자 눈을 뜨고 주위를 살폈다. 아까 우현에게 끈질기게 달라붙어 있던 덩치 산만한 남자는 저 멀리 피를 흘리며 나가 떨어져 있었고, 방금까지만 해도 자신에게 주먹을 뻗던 다른 한 남자도 죽은 듯 엎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 거친 숨을 내뱉으며 위태위태하게 서있는 그. 남우현이 있었다. 그런 우현을 올려다보던 아란의 눈이 놀람으로 인해 크게 떠진 건 그 순간이었다.

 

 


“ 우현아! ”

 

 


위태롭게 서있던 그가 결국엔 바닥에 털썩, 하고 쓰러졌다. 아란이 일어나 거의 엉금엉금 기다시피 우현에게 다가가 상태를 살폈다.

 

 


“ 하, 세상에….”

 

 


무리를 해서인지, 아침까지만 해도 약간의 미열 정도만 있던 우현의 몸은 지금 현재 불덩이나 다름없었고, 남자 둘을 상대할 때 다친 상처들도 우습게 볼만한 것이 아니었다. 아란이 입술을 꾸욱- 깨물었다. 그리곤 아무래도 이 사실을 성규에게 알려야겠다고 판단해, 인이어에 손을 얹으려는 그 순간, 그 손을 우현이 탁- 잡아왔다.

 

 


“ …성규한테, 얘기… 하지 마.” 

“ 하지만, 너 지금 상태가…! ”

“ …괜찮아. 이 정도, 쯤은….”

 

 


우현이 잔뜩 갈라진 목소리를 내며 천천히 일어나 벽에 몸을 기대었다. 괜찮다고 말해오는 것과는 달리,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위태롭게 호흡을 이어가는 우현이었다. 그런 그가 걱정스럽긴 했지만 그 고집을 꺾을 방법이 없어, 아란이 작게 웃으며 그와 마찬가지로 벽에 등을 기대앉았다.

하지만 그 평화로움도 잠시, 갑작스레 들려오는 여러 명의 구두소리에 아란과 우현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두 사람 모두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는 상태여서, 지금 현재 누군가 자신들을 잡으러 온다고 해도 그대로 잡혀갈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그나마 힘이 좀 남아있는 아란이 몸을 일으킴과 동시에,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새까만 정장차림을 한 덩치 좋은 남자 세 명이 우현과 아란이 있는 곳으로 걸어왔다.

 

이젠 모두 끝이다. 라고 생각한 그 순간, 띠링-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는 소리와 함께, 믿을 수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 둘 다 아주 그냥 피떡이 돼 있구만? ”

“ 이…호원.”

“ 얼씨구, 정아란 넌 왜 그 모양이냐? 남우현 저 자식은 말도 아니고. 제기랄, 누구냐. 저 새끼들이야? ”

 

 


자신들이 올 때 까지 기다리라고 했건만, 결국엔 먼저 싸워 이미 다칠 대로 다친 두 사람의 모습에, 화가 난 듯 호원이 인상을 찌푸렸다. 명수 또한 잘생긴 미간을 구기며 아란과 우현을 번갈아 바라보고는 주먹을 꽈악- 쥐었다. 그 주먹을 쥔 손이, 하얗게 질려 부르르 떨리는 것이 보였다. 사실 호원과 명수의 상태도 썩 좋지는 못했지만 현재 싸울 수 있는 사람이라고는 자신들 둘 뿐이라, 어쩔 수 없이 다시 한 번 몸을 풀기 시작하는 호원과 명수였다. 호원은 자신들을 노려보고 있는 덩치 큰 경호원들을 응시하며 감정이 실리지 않은 목소리로 아란에게 말했다.

 

 


“ 정아란, 너는 먼저 방송실로 가서 녹음본 좀 틀어줘. 여기는 우리가 맡을 테니까.”

“ 괜찮겠어? ”

“ 너나 걱정해라, 임마.”

 

 


호원의 말에, 고개를 한 번 끄덕인 아란이 입을 앙- 다물곤 그대로 뒤돌아 방송실을 찾아 뛰기 시작했다. 저 멀리 뛰어가는 아란의 모습을 보며 호원이 손목을 살살 돌렸다. 아무래도 혼자는 좀 위험할 텐데…. 호원이 눈앞의 세 남자를 보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3대 1은 아무래도 좀 무린가. 그런 호원의 눈빛을 읽은 건지, 명수가 장난기 어린 얼굴로 말해왔다.

 

 


“ 무리에요.”

“ 뭐야, 너! 신기 있냐? ”

“ 형 눈이 딱 그랬거든요. 어쨌든, 형 혼자서는 안 돼요. 형이 아무리 잘 싸운다 할지라도.”

“ 어째서? 야, 어떻게 잘만하면 세 명은 가능할 수도 있… ”

“ 형, 그 손. 멀쩡해요? ”

 

 


명수의 말에, 호원이 자신의 오른쪽 손을 내려다보았다. 아까 싸울 때 잘 못 때린 것인지 손목이 벌겋게 부어 올라있었고, 손가락을 조금만 움직여도 인상을 찡그려질 만큼 욱신욱신 쑤셔왔다. 최대한 감춘다고 감췄는데 눈치 챘을 줄이야. 호원이 무섭다는 듯 명수를 밉지 않게 쏘아보며 장난스레 혀를 찼다.

 

 


“ 설사 형이 그 손목이 부러질 각오로 싸운다곤 해도 세 명은 무리에요. 그 전에 손목이 망가지고 형이 죽을 거라고요.”

 

 


그에 호원이 인상을 찌푸린 채 다친 제 손목을 바라보며 주먹을 살짝 쥐어보더니 이내 고통에 찬 신음을 내뱉었다. 제 뜻대로 돌아가지 않고 꼬여만 가는 상황에, 꽉 다문 입술 새로는 낮은 욕이 흘러 나왔다. 그런 그를 보던 명수가 한숨을 푹- 내쉬며 여전히 경계만 하고 있는 검은 정장차림의 남자들을 바라보았다. 현재 가장 멀쩡한 사람은 자신이었기에 어쩌면 가능할 수도 있다. 명수가 자신이 혼자 해보겠다고 말을 꺼내려던 그 찰나, 쓰러져 있는 줄만 알았던 우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너희 둘이 여기 맡아줘. 내가, 갈게.”

“ 뭐? 남우현 너 지금 상태가 말이 아닌데….”

“ 어차피 방송실 사람은 일반인이잖아. 그 정도는 나도 어떻게 해볼 수 있어.”

 

 


우현이 손으로 벽을 잡고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그리곤 크게 한 번 숨을 내쉬고는 이내 복도를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그런 우현의 모습을 보며 호원이 혀를 끌끌 차며 생각했다. 참 대단한 정신력이라고. 호원은 여전히 주먹조차 제대로 쥐어지지 않는 자신의 손을 원망스레 바라보며 명수에게 눈을 돌렸다.

 

 


“ 김명수, 네가 두 놈 맡아라. 난 아무래도 한 놈만으로도 벅찰 거 같아서 말야.”

“ 형 정말 괜찮겠어요? 인대라도 늘어난 거면… ”

“ 인대가 늘어나거나 파열된 거 같진 않아. 내가 한두 번 다쳐봐? 걱정 말고 싸워.”

“ 알았어요.”

 

 


명수가 다부지게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꾹- 다물었다. 슬슬 몸을 풀기 시작하는 두 사람을 보며, 경호원들 또한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 자세를 취했다. 그에 호원이 여유를 잃지 않은 미소를 씨익- 지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 자, 그럼 한 번 해봅시다. 그쪽들이 이기나, 우리가 이기나.”

 

 

 

 

 

 

 

 

 

 

* * *

 

 

 

 

“ 꼼짝 말고 손들어! ”

 

 


생각보다 쉽게 방송실을 찾은 아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가지고 있던 총을 방송실 사람들에게 겨누며 소리쳤다. 한가롭게 방송실이나 지키고 있던 그들은, 갑작스레 총을 들고 타나난 아란으로 인해 소리칠 겨를도 없이 자동으로 손을 위로 올린 채 잔뜩 긴장했다. 방송실 사람은 총 두 명. 성열이 말해줬던 그대로다. 철컥- 총의 안정장치를 푸는 소리가 들리자, 더더욱 긴장한 듯 남자들이 몸을 흠칫- 떨었다. 아란은 여전히 그들에게 총을 겨눈 채 일단은 가장 시급한 CCTV의 전원부터 내렸다. 관리실에서 눈치를 채고 올라온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그 전에 핵심적인 일은 모두 끝나있을 테니. 아란은 여전히 손을 든 상태인 남자들을 한 번 바라보고는 인이어에 손을 얹어 성규에게 무전했다.

 

 


“ 김성규, 방송실 도착했어. 지금 틀어도 되겠어? ”

- 응. 상관없어.

 

 


성규의 말에, 아란이 어쩔 수 없이 총을 내리곤 재빨리 CD를 넣고 재생버튼을 누르려던 그 순간, 얌전히 손을 들고 있던 남자 둘이 아란을 덮쳐 위에서 짓누르며 목을 졸랐다. 그에 아란이 순식간에 바닥에 쿠당탕 소리를 내며 넘어졌고, 목에 가해지는 엄청난 힘에 숨을 쉬지 못하겠는지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 어디 소속이지? 이곳엔 무슨 일로 왔으며, 방금 넣은 저 CD는 뭐지? ” 

“ 하으윽….”

 

 


대답을 하려고 해도 니들이 목을 누르고 있어서 말을 할 수가 없잖아, 이 개새끼들아! 아란은 그렇게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의 목을 누르는 남자는 점점 더 세게 기도를 압박해왔고, 숨은 점점 더 거칠어져갔다. 하지만 포기를 모르는 아란은 그 와중에도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들어 올려 재생버튼 쪽으로 팔을 쭈욱- 뻗었지만 거리가 약간 부족해 버튼을 누르기엔 역부족이었다. 그 행동을 눈치 챈 나머지 한 명이 움직이지 못하게 아란의 팔을 꾸욱- 밟고는 그녀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 굉장히 낯이 익단 말이야? ”

“ 크흑….”

 

 


결국엔 궁금증을 이기지 못한 남자가 아란의 마스크 쪽으로 손을 뻗던 그 순간, 쾅-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고, 우현이 들어왔다. 우현은 새하얗게 질려있는 아란의 모습에 기겁을 하고는 상황 파악할 틈도 없이 아란의 위에 올라타 있던 남자에게 발을 뻗었다. 그러자 남자가 가슴을 부여잡으며 그녀의 위에서 내려와 바닥을 뒹굴었고, 그 덕에 아란이 산소를 한꺼번에 들이마시며 헛구역질을 했다. 고통스러움에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아란은 기어이 재생버튼 쪽으로 기어가 팔을 뻗어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화면에 CD가 재생이 되고 있다는 표시가 떴고, 그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그녀였다.


우현은 일단은 힘이 안 되니 도구라도 써야겠다는 생각에 자신의 발에 맞고 뻗은 남자를 한 쪽 발로 움직이지 못하게 꾸욱- 밟고는 옆에 있던 의자를 들어 바닥에 주저앉아 벌벌 떨고 있는 남자에게 던졌다. 의자에 얼굴을 정통으로 맞은 남자가 끄아악! 하는 고통스런 신음소리와 함께 제자리에서 이리저리 뒹굴었고, 하도 고함을 치는 남자가 시끄러웠던지 아란이 남자의 머리를 총체로 내려쳐 기절시켰다. 이제 남은 이는 한 명. 우현은 제 아래에서 살려달라며 싹싹 빌고 있는 남자를 차갑게 한 번 내려다보고는, 아란에게 시선을 돌렸다. 마치 그 시선이, 어떻게 할까? 라고 물어오는 것 같아 아란이 남자에게 천천히 다가가 씨익- 미소 지었다.

 

 


“ 그냥 조용히 주무세요, 아저씨.”

 

 


곧이어 아란이 감정을 실어 발로 남자의 머리를 걷어찼고, 남자는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정신을 잃었다. 다 끝났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쉼과 동시에, 문이 한 번 더 벌컥- 열리고 호원과 명수가 거의 피떡이 된 얼굴을 해서는 거친 숨을 내뱉으며 들어왔다.

 

 


“ 하아, 하…. 뭐야, 멀쩡하네? ”

“ …그래. 너희보다는 우리가 멀쩡한 거 같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방송실을 훑어보는 호원의 모습에, 아란이 그들을 위아래로 한 번씩 훑고는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싸움이 얼마나 격렬했는지를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 호원과 명수는 얼굴뿐만 아니라 이곳저곳 온갖 상처를 매달고 있는 상태였다. 아란의 말에, 명수가 잘난 얼굴로 씨익- 웃어 보이며 말했다.

 

 


“ 저는 이제 성열이한테 죽었어요.”

 

 


명수의 귀여운 발언에, 세 사람이 약속이라도 한 듯 배를 잡고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명수 또한 작게 웃으며 괜스레 뒷머리를 긁적였고, 그 모습에 아란이 눈에 눈물까지 그렁그렁 매달고는 더 크게 웃었다. 그렇게 한참을 웃다 이내 진정이 된 건지 아란이 눈에 맺힌 눈물을 손가락으로 쓰윽- 닦아내고는 당겨오는 배를 부여잡고는 말했다.

 

 


“ 자, 이제 여기서 둘둘 나눠지면 되는 거지? ”

“ 응. 나와 아란인 29층 VVIP층으로, 그리고 호원이와 명수는 이 층에 폭탄설치를 맡아줘.”

 

 


알았다는 듯, 호원이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려보이자 우현이 작게 웃으며 이만 가자며 그녀를 이끌었다. 아란은 우현에게 끌려 나가면서도 내내 얼굴에 웃음을 매단 채 가만히 서있는 호원과 명수에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 무사히, 웃는 얼굴로 호텔 밖에서 보자! 행운을 빌어! ”

 

 


여전히 장난스러운 아란의 모습에, 못 말린다는 듯 웃는 호원과 명수였다. 서서히 멀어져가는 우현과 아란의 뒷모습을 보며 호원이 더 활짝 웃었다.

 

 


너희도 행운을 빈다.

 

 

 

 

 

 

 

 

 

 

 

 

* * *

 

 

 

한 편, 스피커를 통해 음성이 흘러나오고 있는 호텔 연회장은 한 마디로 혼비백산. 그 자체였다. 활짝 웃는 얼굴로 파티를 즐기던 국회의원들은 갑작스런 음성에 다들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갔다. 기자들은 방송이 나오자마자 이건 예삿일이 아니다, 라고 여겨 곧바로 녹음기를 틀어 음성을 녹음함과 동시에, 당황스러워 하는 국회의원들의 표정도 빠짐없이 카메라에 담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연회장의 스크린에 불이 켜졌고, 이윽고 그곳엔 명수에게 자백을 하러 왔던 국회의원들의 사진이 차례대로 나열되었다. 기자들은 연신 대박사건이라며 셔터를 누르기 바빴고, 그 음성과 사진의 주인공들은 재빨리 단상위로 올라와 스크린을 가려 보려 애를 썼지만 그 대형 스크린을 가리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여유롭게 샴페인을 한 모금 들이키는 성규였다. 웃겼다. 저들이 저질러 놓은 죄를 직접 듣고 당황하는 꼴이라니. 그 중에는 이건 모함이라며, 사진을 찍지 말라고 고함치는 의원도 있었고, 그저 멍하니 허공만 응시하는 의원도 있었다. 성규가 마시던 샴페인을 탁, 하는 소리와 함께 테이블에 올려놓고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저런 반응은 재미없다. 조금 더 난리를 쳐줘야 놀아주는 쪽에서도 재미를 느끼지 않겠어? 성규가 장난스레 웃으며 다리를 꼬았다. 모두가 음성에 집중한 터라, 웨이터 복장의 남자가 샴페인을 마시던, 자신들이 음식을 먹던 테이블에 건방지게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있던 그 누구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성규는 마지막 남은 한 모금의 샴페인을 남김없이 입 안에 털어 넣고는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아아, 시시해라.

 

 

 


성규가 테이블에서 내려와 먼지 묻은 엉덩이를 털어내고는 여전히 혼란스러워 하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씨익- 미소 지었다. 그 미소는 굉장히 아름다우면서도 소름이 끼치는 미소였지만, 가면으로 가려져 있어 그 누구도 성규의 그 얼굴을 볼 수 있는 이는 없었다. 아직 게임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겁을 먹은 모습을 보니 굉장히 우스웠다. 성규가 허공에 뜨거운 숨을 한 번 내뱉고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 쓰레기들을 처리해줄 차는, 아직 도착하지도 않았어요.”

 

 


그러니 우리 조금만 더 이 상황을 즐기는 게 어때요? 성규가 테이블 위에 올려져있는 와인 잔을 들어 위로 들어 올렸다. 마치 건배를 하는 듯, 불그스름한 와인이 담겨있는 잔이 허공에서 춤을 췄다. 그와 동시에 성규가 슬프게 미소 지었다.

 

 

 

 

 

 


당신들의 아름다운 최후를 위하여.

 

 

 

 

 

 

 

 

 

* * *

 

 

 

 

우현과 아란이 윗층으로 올라간 뒤, 호원과 명수는 곧바로 방송실에서 빠져나와 성규에게 조심스럽게 건네받았던 초소형 폭탄을 허리춤에 매단 가방에서 꺼내었다. 스위치는 어차피 성규에게 있었기 때문에 잘못 건드려서 터질 일은 없었다. 호원이 조금씩 거리를 둬 가며 능숙하게 폭탄을 설치하는 모습에, 명수가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 우와, 형 무슨 폭탄설치반이었어요? 왜 이렇게 능숙해요? ”

“ 아아- 창선이가 폭탄 전문 처리반이었거든. 지금은 아니지만.”

“ 창선…이요? ”

“ 아, 넌 모르겠구나. 있어, 내 국정원 동료. 걔한테 보고 배운 게 좀 돼서.”

 

 


호원의 말에, 여전히 신기하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는 위아래로 고개를 끄덕이는 명수였다. 마치 선생님에게 수업을 듣는 소년마냥. 의외로 이런 데서 드러나는 명수의 귀여운 모습에, 호원이 작게 웃음을 흘리며 굽히고 있던 다리를 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끄응- 관절이야…. 늙은이 같은 호원의 말에 명수가 풉,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 세 개 다 적당한 거리로 설치했어. 우리 일은 여기서 끝.”

“ 그럼 이제 나갈까요? ”

“ 잠시만.”

 

 


잠깐만 기다리라며 아까 나왔던 방송실로 다시 들어간 호원은, 서서히 정신을 차리려고 하는 듯, 손가락을 움직이는 방송실 담당 사람들을 보며 작게 웃었다. 이 정도 시간이면 자신들이 쓰러뜨렸던 경호원들도 하나 둘 깨어났겠지. 사상자는 생기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호원이 뿌듯한 마음을 안고 방송실에서 나와 그만 나가자며 명수의 등을 떠밀었다.

 

아무 의심도 사지 않고 호텔로비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온 호원과 명수는, 서서히 노랗게 저녁 해가 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리곤 그동안 어떻게 서있었냐는 듯, 두 사람 모두 계단에 털썩- 주저앉아버리고 말았다. 그와 동시에 호원과 명수가 동시에 환하게 미소 지었다.

 

 


<이 호원, 김 명수. 무사탈출>

 

 

 

 

 

 

 

 

 

 

 

 

* * *

 

 

 

 

“ 너는 여기 앉아서 쉬어.”

“ 나 아무렇지도 않…”

“ 아닌 거 다 알거든? 어차피 연막탄 던지고 화재벨만 누르면 되는 거니까 이 정도는 내가 할게.”

 

 


그를 복도 구석진 코너 쪽에 앉힌 뒤, 우현이 대답할 새도 없이 재빠르게 코너를 돌아 나와 버린 아란이었다. 어휴- 저 고집 센 커플을 내가 어떻게 당해. 질렸다는 듯, 입을 삐죽이며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 아란이었다. 그리고는 호원과 마찬가지로 바지에 매달아 둔 가방에서 연막탄을 꺼내 복도 저 멀리로 던져버리고는, 뿌얘서 잘 보이지 않는 길을 뚫고 간신히 벽을 더듬어 화재벨을 찾아 버튼을 꾸욱- 눌렀다. 귀를 찢을 듯한 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지고, 각각의 개인 경호원들에게 보호를 받으며 나오는 VVIP룸의 고객들을 확인한 아란은 우현에게 가려다, 다시 발걸음을 돌려 혹시라도 남아있을 사람을 고려해 방을 하나하나 다 뒤졌다. 굉장히 큰 룸 덕에 한 층에 방이 겨우 세 개 밖에 되지 않아 모든 방을 확인하는 데에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한 사람도 없는 것을 확인한 아란이 다시 우현에게 돌아와 그의 팔을 자신의 목에 걸치게 하곤 부축해 엘리베이터에 태웠다.

 

 


“ 어때? 여자라도 꽤나 쓸 만하지? ”

“ 그냥 쓸 만한 게 아니라 굉장한 도움이 됐어.”

 

 


우현의 대답에 기분이 좋은 듯 아란이 어깨까지 들썩여가며 아이처럼 맑게 웃었다. 콧노래를 부르며 도착한 1층 호텔로비. 저 멀리 문밖으로 보이는 호원과 명수의 뒷모습에, 아란이 더더욱 신나게 웃었지만 상태가 좋지 않은 우현을 고려해 최대한 천천히 걸어 밖으로 빠져나왔다. 밖으로 나오니 계단에 앉아있는 호원과 명수가 있었다. 그 옆에 우현을 앉히곤 자신도 따라 털썩- 엉덩이를 대고 앉은 아란이 지쳤다는 듯 크게 숨을 내뱉었다.

 

 


“ 하아- 제기랄. 국대 훈련보다 오늘 하루가 더 빡센 거 같아.”

 

 


아란의 말에 세 남자가 재미있다는 듯 양껏 웃음을 머금었다. 이제 호텔에 남아있는 자신들의 동료는 단 한 명. 성규가 전부였다. 우현은 무사히 빠져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안에 남아있는 성규의 걱정에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꽉- 깨물었다. 고개를 젖혀, 노란색에서 붉은색으로 점점 더 짙게 타오르고 있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성규야, 우린 이렇게 무사히 다 탈출했어. 이제 너만 나오면 돼. 너만 무사하게 나오면, 우린 이번 일도 큰 부상자 없이 잘 해낸 거야. 그러니까 성규야, 제발 제 시간 안에 탈출해줘.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이 불안한 감정은 모두 다 쓸 데 없는 거라고, 부질없는 거라고 그렇게 말해줘.


우리 얼른 만나자. 웃는 얼굴로 보자, 우리.

 

 

 

 


보고 싶어, 성규야.

 

 

 

<남 우현, 정 아란. 무사탈출>

 

 

 

 

 

 

 

 

 

 


* * *

 

 

 


네 명 모두 무사히 빠져나갔다는 무전을 받은 성규가 작게 웃고는 여전히 혼란에 빠져 있는 연회장 안의 사람들을 한 번 훑었다. 기자들은 이미 자신이 언질을 해두었던 대로 화재벨 소리를 듣자마자 장비를 챙겨 부랴부랴 밖으로 대피한지 오래였다. 다른 사람들은 기자들이 단체로 밖으로 빠져나가자,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그저 두 눈을 멍청하게 뜬 채 그 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바지 주머니 안으로 느껴지는 매끈한 플라스틱의 감촉. 이제 이 버튼 하나만 누르면 우리가 낮에 보았던 이 크고 아름다운 호텔은 사라지는 것이다. 더불어, 당신들의 부유하고 아름다운 그 인생들도.


성규가 아무런 감정 없이 버튼 위로 새하얀 손가락을 올려 꾸욱- 눌렀다. 그러자 엄청난 굉음과 함께 건물이 미친 듯이 요동쳤다. 지진이 난 것 마냥 건물이 흔들리자, 놀란 사람들이 자신의 경호원들과 함께 허겁지겁 연회장을 빠져나갔다. 성규는 아직도 상황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는 국회의원들을 바라보며 차갑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는 뚜벅뚜벅. 카펫 위로 천천히 발걸음을 내딛었고, 이내 단상위로 올라가 마이크를 잡았다. 국회의원들은 웨이터 따위가 단상위에 올라가 마이크를 잡은 것에 분노한 듯 당장 내려오라고 소리를 지르기 바빴다. 그런 그들을, 가면으로 철저하게 가려진 얼굴로 한껏 비웃으며, 성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 지금 이 상황이, 화가 나세요? 아니면 두려우세요? ”

 

 


성규의 말에, 국회의원들은 할 말을 잃은 듯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우스웠다. 국민들의 투표로 그들의 대표가 된 주제에, 온갖 비리란 비리는 다 저지르다 못해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고 오로지 자신들만을 위한 나라를 만들고 있는 국회의원이라는 작자들이 우스워 견딜 수가 없었다.

 

 


“ 당신들을 위해 준비한 우리들의 서프라이즈 파티가, 마음에 드셨나요? ”

“ 너, 너는 대체 누구냐! ”

 

 


계속해서 알 수 없는 말만 하는 성규가 답답했던지, 결국엔 손가락질까지 해가며 누구냐고 묻는 의원들이었다. 그에 성규가 소름이 끼칠 만한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차갑게 내뱉었다.

 

 


“ 진리는 반드시 따르는 자가 있고,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 어때요, 되게 멋있는 말 같지 않아요? ”

“ 네, 네 놈은 대체…”

 

 


그 순간, 서서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는지 건물이 전보다 더 심하게 흔들렸다. 하지만 성규는 아랑곳 하지 않고 그저 자신의 앞에 놓인 단상을 가늘고 길게 뻗은 손가락으로 톡톡, 치며 장난을 치다가 이내 표정을 굳히곤 듣는 사람 모두가 소름이 돋을 만큼 냉기가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로 말을 해왔다.

 

 


“ 우리는, 그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모인…”

“ ……… ”

 

 

 

〈EM>…시티헌터입니다.〈/EM>

 

 

 

시티헌터라는 말에, 국회의원들의 얼굴이 거짓말처럼 새파랗게 질렸다. 그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성규를 바라보았다. 그들에게 벗어나기 위해, 도망치기 위해 발버둥을 쳤건만. 결국엔 그것조차 그들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꼴밖에 되지 않은 것이었다. 의원들이 이를 바득바득 갈며 자신들의 경호원들에게 당장 저 놈을 당장 잡으라고 소리치려던 그 찰나, 드디어 그들이 있는 4층에까지 피해가 오기 시작했는지 천장에서 자잘한 돌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그에 기겁한 의원들은 바로 앞에 있는 성규를 잡으라 말할 정신도 없이 개인 경호원에게 보호를 받으며 허겁지겁 건물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한심하고, 어리석은 족속들. 성규가 허탈한 웃음을 픽, 흘렸다. 그리고는 모두가 빠져나갔다 생각하여 가면을 벗으려 손을 올린 그 순간, 눈앞에 보이는 믿을 수 없는 인영.

 


…김상철.

 

 

 

모든 의원들이 빠져나갔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그 자리에 우뚝- 서서 말없이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빛이 묘하게 슬프고 가슴이 아파, 성규가 먼저 그의 시선을 피하고 말았다. 하지만 이내 김상철 그도 그만 나가셔야 한다고 재촉을 해오는 경호원으로 인해 발걸음을 돌려 연회장을 빠져나갔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피가 날 정도로 주먹을 꽈악- 쥐는 성규였다.

 

 


“ 어째서 나를 그런 눈으로 쳐다본 거야…. 어째서…! ”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십 년이나 보지 않았으니 자신의 얼굴을 알아볼 리는 없었다. 더더군다나 자신은 현재 가면을 쓰고 있는 상태여서 알아보는 것은 정말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김상철 그는 자신을 꼭, 아는 사람인 것처럼 쳐다보았다. 마치 미안하다는 듯이. 다 내가 잘못했다는 듯이…. 성규가 거칠게 가면을 벗어 바닥에 세게 던졌다. 이내 챙- 하는 소리와 함께 가면이 산산조각이 났고, 드디어 드러난 그의 온전한 얼굴이 차가운 공기와 맞닿았다.

 

 


“ 제기랄….”

 

 

저절로 욕이 새어 나왔다. 성규가 땀에 젖은 머리를 거칠게 쓸어 넘겼다. 지금 현재 굉장히 복잡하고 머리가 아팠지만 일단은 이곳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에, 여전히 미간을 찌푸린 채 발걸음을 재촉하는 성규였다. 건물이 미친 듯이 흔들렸다. 걸음을 떼기도 힘든 상태여서, 성규가 낮게 욕을 읊조리며 엘리베이터보다는 안전한 비상계단을 통해 재빨리 내려갔다. 2층에 다다랐을 때 쯤, 연이어 건물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성규가 새빨간 피가 흐를 정도로 입술을 꽈악- 깨물고는 1층으로 내려가지 않고 2층 비상구문을 열고 나갔다. 그리고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허리춤에 차고 있던 리볼버를 꺼내 들어 강화유리로 되어있는 유리창에 방아쇠를 당겼다. 탕- 한 발의 총성이 울리고 창에 금이 갔다. 탕- 그곳에 대고 또 한 번의 방아쇠를 당기자, 이내 유리가 산산조각이 나 이리저리 바닥으로 흩어졌다. 성규가 넓게 뚫린 창문을 보며 그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밑을 바라보았다.

 

 


“ 이정도면 뭐….”

 

 


죽지는 않겠네. 참 성규다운 생각이었다. 1층을 통해 나가기엔 너무 늦을 것 같아 2층에서 뛰어내리기로 한 성규였다. 그는 눈을 감은 채 한 번 심호흡을 하고는 이내 눈을 치켜뜨곤 망설임 없이 밖으로 뛰어내렸다. 성규의 가녀린 몸이, 거짓말처럼 바닥으로 추락했다.

 

 

 

 

 

 

 

 

 

 

 


* * *

 

 

 


“ 성규야, 김성규! …제기랄!! ”

 

 


건물은 하나 둘 무너지고 있는데 성규는 나오지 않고, 심지어 무전도 되지 않는다. 이 미칠 것만 같은 감정에, 우현이 자신의 머리를 거칠게 헤집으며 끓어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고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 안 되겠어. 내가 가야겠어.”

 

 


더 이상은 안 되겠다고 판단한 우현이 호텔로 가려고 몸을 틀자, 그와 마찬가지로 불안감에 떨고 있던 세 사람이 우현을 붙잡아 세웠다. 그 세 사람 모두가 마치, 절대로 안 된다고 말해오는 것 같아 우현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심지어는 그들에게 배신감마저 들었다.

 

 


“ 어째서? 어째서 안 된다는 건데! 김성규가 저기 안에 있어. 저 무너져 가는 건물 안에 있다고! ”
“ 조금만 더 기다려봐! 섣불리 움직였다간 너도 같이 죽는다고! ”

“ …김성규가 없으면 어차피 난 죽은 목숨이야.”

 

 


호원의 말이 틀린 건 아니다. 하지만 자신의 말 또한 틀린 게 아니었다. 정말 성규가 없으면 자신은 더 이상 살아갈 용기가 없었다. 그를 만나 다시 한 번 웃을 수 있었고, 좋은 동료들을 만날 수 있었으며, 과거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었다. 죽어가던 자신에게 새 목숨을 불어넣어 준 사람. 그게 바로 성규였다. 우현은 호원의 만류에도 호텔입구를 향해 뛰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거짓말 같이. 정말 말도 안 되게도 호텔입구가 큰 굉음과 함께 무너져 내렸다. 입구가 막혔다. 성규가 아직 살아있다 하더라도 빠져나올 방법이 사라졌다.

 

 


“ 아… 아아- ”

 

 


우현이 그 자리에 그대로 털썩- 주저앉았다. 아무런 말도,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입 밖으로 고통스러운 신음만 새어나올 뿐이었다. 우현과 마찬가지로 호원, 명수, 아란의 얼굴도 급속도로 파리해졌다. 아란이 정면을 멍하니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말도, 안 돼….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아란 또한 그 자리에 주저앉아 눈동자를 도로록 굴렸다.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파악이 되지 않았다. 성규가… 김성규가….

 

 


“ 김성규.”

 

 


우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이미 무너져 내린 호텔 쪽으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 걸음걸이가 매우 위태로워, 누가 잡아주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다. 혹시나가 역시나. 우현은 얼마 못가 바닥에 넘어져버렸고, 그는 땅에 손을 짚은 채로 멈춰버렸다. 모두가 망연자실하게 무너진 호텔만을 바라보고 있을 때, 믿을 수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 우현아…? ”

 

 


환청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라고, 성규가 너무 보고 싶어 들려오는 환청일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곧이어 다시 들리는 자신의 이름에, 우현이 곧바로 고개를 들어 올려 소리가 들려온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말도… 안 돼. 하, 이게 대체….

 

 


“ 김…성규….”

 

 


그곳엔 성규가 있었다. 환각도, 환청도 아닌 성규였다. 비록 다리를 다친 듯, 절뚝거리긴 했으나 성규가 맞았다. 죽어 돌아온 김성규가 아닌, 살아있는 김성규였다.

 

 


“ 우현… 아윽! ”

 

 


다시 한 번 들려오는 자신의 이름이 이렇게 반가울 줄은 몰랐다. 우현이 재빨리 일어나 그 자리에 가만히 서있던 성규를 와락- 껴안았다. 덕분에 놀란 성규가 본의 아니게 기괴한 소리를 내고 말았지만 그래도 좋았다. 자신의 품에 온전히 쏙- 들어오는 그가 좋았다. 이 마른 등도, 허리도, 고운 손도. 좋지 않은 것이 없었다. 우현이 열로 인해 달아오른 뜨거운 숨을 내뱉으며 미소 지었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정말.

 

 


“ 보고 싶었어. 보고 싶었어, 성…”

“ 우현아!! ”

 

 


우현은 차마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하고 성규의 품 안에서 정신을 잃고 말았다. 지금까지 버틴 것만 해도 거의 기적이었다. 자신의 품 안에서 쓰러진 우현의 몸은 불덩이처럼 뜨거웠지만, 그의 얼굴엔 편안한 미소가 감돌았다. 그 미소에, 성규 또한 작게 웃으며 식은땀으로 젖은 우현의 머리를 다정하게 쓸어 넘겨주었다.

 

 


“ 나도. 나도 보고 싶었어, 우현아.”

 

 

 

아주 많이.

 

 

 

 

 


호원과 명수, 아란이 환하게 웃음 지었다. 성규도 그들을 따라 웃었다. 우현마저도 편안한 얼굴로 서서히 잠의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노랗던 하늘은 붉게 노을이 졌고, 이내 그 하늘은 어두침침한 옅은 남색 빛으로 물들어갔다. 서서히 차가워져 가는 저녁바람이 임무를 마친 그들의 젖은 땀을 천천히 식혀주었다. 마치, 오늘 하루 수고했다는 것 마냥.

 

 

 

 

 

 


전원 Mission Success

 

 

 

 

 

 

 

 

 

 

 

 

안녕하세요~!!

 

시티헌터의 1,2부는 어제 모두 올려놨구요~

3부 시작부터 24편까지도 모두 올려져있답니다.

이미 40편까지 연재가 되었기 때문에 연재 텀은 빠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재밌게 읽어주신다면 그것 외에 더 바랄 것은 없어요.

 

읽어주시는 분들 항상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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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헐ㅠㅠㅠ김상철은 성규를 알아본 것 일까요ㅠㅠㅠㅠㅠㅠㅠㅠ
10년 전
독자2
헐??이렇게금글이 포인트도짱싸게.... 내일하루이거정주행해야겟어요ㅠㅠㅠ 전이걸왜이제야발견햇는지ㅠㅠㅠ당장1편보러가야겟네요ㅠㅠ
10년 전
독자3
모닝님 홈에서도 봤는데 여기서도 보다니ㅠㅠㅜㅜㅜㅠㅜㅜ 당장 신알신누르고 갈게요ㅠㅜㅠ
10년 전
독자4
포인트도 싸고 내용도 너무알차고 재미있어요 ㅎㅎ
10년 전
독자5
설화에요!!!진짜 전부 미션 성공해서 다행이에요 ㅠㅠㅠㅠㅠㅜㅠ 오늘도 금픽에 감탄하고 다음화로 이동해요 ㅠㅠㅠㅠ♥♥♥
9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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