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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다정과 기데레 6~8화
W.쿠키가죠아
길고 긴 90분이 드디어 끝났다… 이번 브라질전은 너무나 힘겨운 게임이었다 그만큼 결과 또한 최악이다. 0:3 대한민국의 완패, 비록 브라질이 축구의 명가라고는 하지만 일방적인 공격에 우리는 무참히 깨져버렸다. 전반 초만 해도 우리의 공격은 꽤 위협적이어서 브라질의 골문을 열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런데 전반 끝에 한골을 내준 우리 수비는 처참히 무너져갔다. 후반 초에 자철이까지 교체되어 나갔을 때는 너무도 힘들었다 녀석이 나에게 완장을 건네줄때의 표정은 끝까지 같이 못해줘서 미안하다는 표정이었다 녀석의 그런 표정에 아니라는 듯 웃었지만 씁쓸했다 그동안 생각보다 더 많이 쌓였던 피로들이 한꺼번에 날 짓누르는 것 같다. 후반 중간 교체되어 들어온 주영형의 포기하지마 발언… 맏형의 듬직하고 강인한 모습 그것이 그 순간 우리들에게 너무나도 큰 힘이 됐다 그 이후 더이상의 추가골은 먹히지 않았지만 만회골도 없었다. 경기가 끝나고 정말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럴 기운도, 기분도 없었다. 모두들 라커룸에 들어섰을 때 캡틴 구자철도 맏형 주영형도 아무말이 없었다 브라질 전으로 인해 우리의 사기가 급격히 저하됬음이 현저히 눈에 보였다 몇분이 흘렀을까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감독님이 들어오신다 그리고 우리의 모습을 가만히 보고 계시다가 비장한 목소리로 입을 여신다
"포기하지 말자. 더 중요한 경기인 한일전이 남아있다"
그말로 인해 다시 우리들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 절대 물러설 수 없는 한경기가 남았다 그것이 우리의 최종목표다 감독님의 말씀은 뇌리에 박혀 나를 다시 움직이게 만들었고 나 또한 한마디를 보탰다.
"다들 오늘 경기는 빨리 잊자, 우리에겐 아직 원숭이 퇴치가 남아있다!"
그제서야 조금씩 라커룸의 분위기가 밝아지며 떠들썩해졌다. 만족스런 얼굴로 자철을 보니 녀석도 어느정도 회복했는지 웃으며 옆사람과 떠들고 있다 그렇게 마음을 재정비한 대표팀은 얼른 짐을 챙겨 버스에 올랐고 이번엔 다시 구자봉이 내 옆에 앉는다
"망할 놈, 캡틴주제에 혼자 폼잡다 분위기나 가라앉히고 말이야, 그래도 되는거냐?"
"그러게, 나 정말 못된짓했지? 동료들한테"
그러면서 녀석은 자신의 볼을 감싸고 짝짝 때리더니 반성반성거린다 녀석은 저렇다, 금새 풀 죽어 있다가도 저런식으로 기합을 넣고는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 실력을 더 끌어올린다 마지막 경기는 병역 문제도 걸렸있는데, 정신 똑바로 차려야지 옆에서 들리는 녀석의 말에 넌 크게 상관 없지않냐? 하니 무슨소리하는거냐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한다
"야, 한국 축구의 미래 18명의 선수들의 병역이 나랑 왜 상관없냐 나는 6개월이라 치더라도 다 합하면 무려 34년 6개월이라고,
이번에 이기면 우리나라 축구가 34년 6개월만큼 일찍 발전할 수 있을지 누가 아냐"
"논리에 너무 벗어난거 아니냐?"
"에이, 쪼잔한건 따지지 말고 아무튼 축구 미래가 걸린 만큼 이건 나에게도 중요한 문제 아니겠냐?"
진지한 녀석의 말에 그냥 웃었다, 주위에 앉아있던 다른 동료들도 그말을 들었는지 키득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정말로 모로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어찌됐든 녀석은 기운을 차렸고, 팀 분위기도 더 좋아졌으니 뭐, 오케이다
"야, 성용아 우리 골내기하자"
"뭔소리야, 난 골 넣는 포지션도 아닌데"
"왜, 재밌잖아 하자하자 포지션은 아니어도 넌 프리킥 찬스가 있잖아 너라면 충분히 넣을 수 있잖아"
뜬금없는 자철의 말에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거부했지만 녀석이 슬슬 내 심기를 건드리며 도발한다 뭐야, 너 자신없는거냐? 명색이 니가 그렇게 싫어하는 한일전인데 통쾌하게 한골 넣어줘야하는거 아냐? 란다 그래, 내가 한일전을 그렇게나 싫어하는 건 맞는데 이번 내 포지션은 수비형 미드필더인데 뜬금없이 왜 나한테 골타령이냐고 그건 네 일 아니냐?
"에이, 정말 자신 없나보네 한일전에선 한 골 넣는건 기본이라고 항상 떵떵거리더니, 실망이야"
"… 좋아, 해 너 그말 뼈저리게 후회하게 해주지"
"오, 그래그래 그럼 골 더 많이 넣는 사람이 이기는거다? 벌칙은 진사람이 이긴사람 소원들어주기 어때?"
"나중에 울면서 빌지나 마"
도발에 넘어간 나의 대답에 녀석은 씨익 웃으며 좋아라 룰이며 벌칙이며 지혼자 정한다. 그래 니가 다해먹어라, 아 맞다. 구자봉이 옆에서 내기내기하며 계속 쫑알거리니 순간 지동원과 김보경의 약속이 떠올랐다 속으로 어떻게 골려줄까 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생각을 접었다. 그러기엔 녀석들이 브라질전에서 보여준 플레이는 볼만했기 때문이다 동원은 경기 초반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아슬아슬한 슈팅을 빈번히 날렸고, 보경은 페널티킥이 주어지는 벌칙을 당했음에도 보고도 그냥 넘어가는 주심때문에 기회를 놓쳤다 그런 녀석들을 골려주자니 왠지 그건 좀 아닌 것 같다 그렇게 단념하고 자봉과의 내기에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는 분명 수비형 미드필더이기 때문에 어느정도 내려가면 다시 수비위치로 돌아가야한다 게다가 일본전은 한순간이라도 본래 포지션을 무시한 채 마냥 골넣기 위해 행동하기엔 너무나도 큰 경기이다 아씨 구자봉은 분명 이걸 노린거다 이걸 노리고 이따위 내기를 제안한 것이다. 구자봉의 어색한 도발에 넘어가다니 … 정말 한심하다 진짜
다음날 한일전 대비 훈련시간을 가졌다 익숙하지않은 이런저런 스트레칭도 계속하다보니 어느새 편해졌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이뤄지는 훈련은 거의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 몇명의 선수가 모이자 자봉녀석, 또 뜬금없이 게임을 제안한다 정해진 필드 안에서 패스하고 있는 공 빨리 빼앗기, 주영형을 비롯해 자리에 있던 선수들이 자신있게 받아들였다 나도 꽤 자신있었고 재밌겠다 싶어 흔쾌히 받아들였다 딱밤을 걸고 시작된 게임은 점점 치열해져 갔다. 운동 꽤 한단 사람들의 딱밤을 맞아본 적 있나? 그건 정말 맞아보지 않고는 모를 고통이다 지면 적어도 그런 딱밤을 5대는 맞아야하는데 누가 지고 싶을까,
한명씩 차례대로 하다가 드디어 구자봉 순서가 됐다, 순간 눈이 주영형과 마주쳤는데 날 보는 형의 표정이 묘하다 가만히 바라보다 그 뜻을 알아챈 나는 씨익 웃으며 볼을 찼다 녀석이 필드아웃이다라는 말에도 녀석의 말을 무시한 채 주영형에게 주자 그런 행동에 아, 이건 아니잖아 한다 그러나 이미 한마음이 된 주영형도 역시 녀석의 말을 무시하고 옆사람과 마구 주고 받기 시작한다. 그에 따라 20, 21, 22, 23 … 마구 올라가는 카운터에 녀석을 고래고래 소리질렀지만 그것까지 무시된채 결국 꼴찌는 녀석에게 돌아갔다 게임이 끝나자마자 내가 먼저 달려가 녀석에게 딱밤을 때리니 한명두명 딱딱 소리나게 찰지게 때린다 울쌍을 지으며 우리들을 노려보는 녀석에게 원래 이런건 제안한 사람이 걸리는거야, 하곤 돌아서 숙소로 돌아갔다 그러자 녀석이 이마를 문지르며 따라온다, 슬쩍보니 빨갛게 부어오른 이마에 가서 얼음이라도 줘야겠다, 생각하며 걷고 있는데 녀석이 노려보며 말한다
"야, 여성용 아까 니가 제일 먼저 때렸지"
"응,"
"우씨… 하늘 같은 남편을 지켜주진 못할망정 선두에 서고 그러기 있냐?"
"…뭐?"
순간 걸음을 멈추자 뒤에 바싹 걸어오던 녀석이 나와 부딪혔다. 악, 안그래도 이마 아픈데 또 부딪혔어 하는 녀석을 나는 그저 멍하니 볼 수 밖에 없었다
"야, 구자철 너 지금 뭐랬냐?"
"또 부딪혔다고"
"아니, 그전에"
"응? 내가 뭐랬지? 음… 아! 하늘 같은 남편을 지켜주진 못할망정 선두에 서고 그러기 있냐? 라고 했지"
나는 녀석이 다시 한말을 또다시 곱씹어보았다. 몇번의 필터링을 거쳐 정확히 내 머리에 남은 한 단어는 남.편… 그것도 하.늘.같.은.남.편…? 니가 언제부터 나한텐 필요도 없는 남편이 됐냐? 하, 기가 찬 헛웃음이 절로 나온다, 뭐가 문제인지도 모른채 녀석은 옆에서 왜? 못들었어? 또 말해줄까? 한다
"야, 니가 언제부터 내 남편이었냐? 아니 그전에 나는 남편 필요없는, 아니 있어선 안되는 남자거든?"
"응? 남자인 너랑 또 남자인 나랑 사귀니까, 그렇다면 당연히 남자역은 나 아니냐?"
"뭐? 어째서 니가 남자역이냐? 딱봐도 내가 남자역이지?"
"하? 말도안돼 너는 너무 귀여워서 절대로 남자역 못해"
정말 말도 안된다는 표정을 지으며 또또 저 귀여움 타령이다, 녀석의 눈이 진짜 잘못되기라도 했나 걱정까지 든다. 나 또한 똑같이 말도 안된다는 표정을 지으며 녀석에게 따졌다
"귀엽긴 누가 귀엽냐? 내가 너보다 키도 크고 훨씬 남자답거든?"
"키만 크면 다냐? 그렇게 귀여움을 풀풀 날리면서 남자답긴 깨뿔"
"미치겠네. 그래, 그렇다고 쳐도 그러는 넌 남자역에 어울리기나 하냐?"
"당연하지, 딱봐도 상남자 구자철이잖아 거기다 다정하기까지 해 크, 완벽하지 않냐?"
"지랄하네, 미친놈 니가 어딜봐서 상남ㅈ…"
가만 녀석에 말에 발끈해 따지고 있긴 한데 뭔가 이상하다, 뭔가가 자꾸 거슬린다 하던 말을 끊고 그게 뭔지 고민에 빠졌을 때 녀석이 왜 말을 하다말아, 아하 인정했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그래, 인정할 수 밖에 없ㄷㅏㄴ…"
"야, 근데 너랑 나랑 사귄다는게 무슨말이냐? 내가 너랑 언제 사겼어"
녀석의 말을 듣다 그제야 신경쓰이는 것을 알아차린 나는 녀석의 말을 끊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내말에 녀석의 표정이 오만상으로 구겨졌다. 순간 흠칫 놀랄 만큼 무서운 표정이다 또 눈은 너무나도 시리다 저 눈… 본 적 있는 눈이다. 그때의 눈도 아직 생생한데 저 눈은 더 시리도록 차갑다 그 눈에 몸이 얼어붙은 듯 경직된다 하지만 마주하고 있는 눈을 피할 수도 없게, 그렇게 만드는 눈이다 차마 떨어지지 않는 입을 겨우 파르르 떨며 녀석의 이름을 불러도 녀석은 아무 말이 없다 그저 가만히 나를 응시할 뿐이다
"… 미안, 내가 또 혼자 설쳤네"
"…"
긴 침묵 끝에 열린 녀석의 입에서 나온 소리에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대꾸할 수 없었다 내가 녀석을 그렇게 만든 꼴이니, 뭐라 답할 수 있겠는가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알아챈 나는 또다시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아, 내말뜻은 그게 아니라…"
"됐어, 알겠으니까 변명 안해도 되"
"아니, 그게 아니ㄱ…"
"안해도 된다니까,"
녀석은 굳이 차갑게 내 말을 뚝뚝 끊고는 내 옆을 슥 지나친다 녀석을 잡아야 할 것 같았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그저 녀석이 지나치게 놔두고 녀석이 뚜벅뚜벅 걸어가는 발소리만 듣고 있을 뿐이었다 한참을 지나서야 몸을 홱 돌아 녀석이 지나간 방향을 보았지만 이미 녀석은 없었다 재빨리 방으로 달려갔지만 녀석은 없었다 어디간거지, 슬슬 커지는 불안감에 입으로 손톱을 물어뜯었다. 정말 극도로 불안해질때만 나오던 행동이 지금 상황에서 나오자 당황했다. 큰일이 아닐꺼라고 생각하고 싶은데 마치 몸이 너 큰일이다 알려주는 것 같았다 밖에 나가 자철을 찾아봐야 하나? 아님 그냥 여기서 자철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모르겠다. 한참을 방문 앞에서 왔다갔다 했을까 갑자기 방문이 확 열렸다 녀석인가 하고 재빨리 문쪽을 바라보니 동원이다. 웬일이냐, 김빠진 목소리로 말하자 녀석이 다짜고짜 무슨일이에요, 대체 하고 묻는다 알아듣지 못한 채 서있는 나를 보며 한숨을 작게 쉬더니 일단 방에 들어가 앉아서 얘기 좀 해요 한다 쭈뼛쭈뼛 문 쪽을 자꾸 돌아보며 의자에 앉으니 녀석이 빤히 쳐다본다
"뭐냐"
"형, 아무리 문쪽 쳐다봐도 형이 기다리는 사람 안올껄요"
"뭐?"
"자철형, 오늘은 여기로 안올거라구요"
다 알고 있다는 듯한 녀석의 말에 그게 무슨소리야 물었다 그러자 하는 말이 충격 그 자체였다 동원이 이번 룸메이트인 태희와 방에서 게임하고 있을 때 갑자기 자철이 찾아왔더랬다. 그런 자철이 자신들의 방에 들어오자마자 동원에게 자신과 방 좀 바꿔달라고 했고 , 무슨일이냐고 물었지만 자철은 그냥 좀 바꿔줘 하며 막무가내로 자신의 침대에 몸을 눕혔는데 아무리 일으켜보려해도 끝내 일어나지 않는 자철이 이상해 혹시라도 나와 관련된 일이지 않을까 싶어 찾아왔다는 동원의 말에 내 머릿속은 새하얗게 변했다. 뛰쳐나간 나를 땀까지 흘리며 찾으러 왔던 자철이가,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내 옆을 절대 떠날 것 같지 않았던 자철이가 자신이 먼저 나와 함께 있는 공간을 거부했다
손이 덜덜덜 떨린다.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떨리는 손을 발견한 동원이 형 괜찮아요? 하며 물었지만 들리지 않았다 아니, 들렸지만 머리가 인식하지 않았다 나는 그대로 일어나 천천히 걸음을 뗐다 동원이 형 어디가요 하며 나를 잡았지만 그 손을 탁 쳐내고는 멍하니 동원과 태희 방으로 향했다 굳게 닫혀진 문이 과연 열릴까, 덜덜 떨리는 손으로 겨우 방문을 두드렸지만 열리지 않는다, 자철은 누워있다 쳐도 태희는 어디라도 간것일까 노크에 대한 반응이 전혀 없다 나를 쫓아온 동원이 덜덜 떨리는 내손을 잡고는 형 진짜 괜찮아요? 안색 너무 안좋은데 일단 다시 돌아가요 하면서 내 몸을 돌려 세운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동원의 어깨를 잡고 흔들며 다급하게 물었다
"동원아 방키… 방키 좀 줘, 너네 방이니까 키 있을거 아니야, 좀 줘봐"
"형, 진정해요 자철형 지금 자고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알았어, 그래 조용히 들어갈테니까 방키 좀 줘 제발"
"… 아까 태희녀석 있어서 방키 놓고 나왔는데요…"
녀석의 말에 아, 탄식을 내뱉으며 그대로 주저 앉았다 동원이 급하게 부축하려 했지만 그 손을 거부한 나는 주저앉은 채 구자철의 이름을 소리치며 문을 두드렸다. 한참을 불렀음에도 불구하고 자철은 끝내 나오지 않는다, 점점 눈시울이 뜨거워지자 입술을 꼭 깨물며 눈물을 참았다 비릿한 피 맛이 나지만 꽉 깨문 입술을 풀 수 없었다. 그 때, 동원의 폰이 딩동하고 울린다 문자를 확인한 동원은 안절부절하다 조심스럽게 말을 했다
"형… 자철형 문자에요"
"뭐? 뭐래! 나 좀 보여줘!!"
"아, 저기… 그게…"
자철이라는 말에 당장 녀석에게 달려들어 문자를 확인하려 했지만 녀석이 당황하며 폰을 뒤로 뺀다 거세게 몰아치는 불안감이 더욱 거세지고 더욱 몰아친다 머뭇거리며 망설이던 녀석은 내 강요에 못이겨 결국 문자 내용을 천천히 읽어줬다
-기성용 시끄러우니까 얼른 데리고 돌아가
녀석이 보낸 문자 내용이다. 하… 망설이는 녀석의 목소리 덕분에 억양은 완화됐지만 내 심장을 푹푹 쑤시는 이 말에 왈칵 눈물을 쏟아냈다 동원 녀석이 당황하며 나를 부축해 내 방으로 들어왔다, 이번엔 녀석이 날 이끄는 데로 아무 미동없이 그저 걷기만 했다 나를 침대에 눕힌 동원은 일단 좀 진정해요 하며 내 어깨를 토닥인다 하지만 눈물은 그칠 줄 모르고 쉴 새 없이 흘러내린다 나쁜 구자철, 내 말은 들어보지도 않은채 나보기를 거부하기만 하는 구자철이 원망스럽다… 아… 전에 녀석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지금의 구자철과 지난 날의 내 모습이 겹쳐 더 가슴이 아리다.
"… 흡, 씨발 그래도… 그래도 나쁜 놈… 흑, 진짜… 구자철, 이 나쁜 새끼야… 흐어엉"
펑펑 우는 나를 처음보는 동원의 표정이 가관이다, 눈은 동그래가지고 어쩔줄 몰라하며 괜찮아요? 울지마요라는 소리만 할 뿐이다. 나도 이렇게 당황하는 동원은 처음 보는 것 같긴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동원이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오직 구자철 생각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엉엉 울기만 할뿐이다. 구자철 이개새끼, 왜 사람말도 안듣고 어쩜 변해도 저리 변할까 완전 다른사람이 된것같다. 녀석은 이렇게 평생 날 안볼생각인가 그라운드에서조차 전혀 웃어주지도 않고 차갑게만 바라보려는 것 아니야?
나쁜놈, 진짜 나쁘다… 젠장
한참을 그렇게 울었을까 겨우 그친 울음에 그동안 옆에서 쩔쩔 매던 동원이 그제야 한숨을 쉬며 안도한다 뒤집어쓴 이불을 조금 내려 얼굴만 빼꼼 내밀곤 녀석을 보았다. 눈이 빨개져 퉁퉁 붓기라도 했는지 녀석이 당황한다 왜, 내얼굴이 그리도 못났냐 지금? 하자 피식 웃더니 아니에요, 하며 조심스레 묻는다 혹시라도 내가 다시 울면 어쩌나 고민하는게 눈에 훤히 보인다
"대체… 무슨일이에요?"
"…"
"형, 그러지말고 말해봐요,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그게…그러니까"
그래, 혼자 끙끙 앓는것보다는 낫겠지 잠시 머뭇거리던 나는 버스사건 이후부터 차례대로 다 털어놓았다 얼굴을 붉히기도 하고 인상을 찡그리기도 하면서 열심히 설명하고 나니 속은 조금 후련해졌나 싶다 열심히 설명을 해준 나의 말을 경청하고난 동원의 표정은 묘했다, 아니 저건 확실히 왜그랬냐는 질타어린 표정이었다
"…형, 이번엔 진짜 형의 잘못이네요"
"…"
"부정 안하는거 보니 이미 그렇게 느낀거에요?"
"… 응"
"휴… 그건 다행이네요. 일단 자철형하고 얘기를 해야 풀어질것같은데 우리 방에 들어가 꿈적도 안하니…"
"…"
말꼬리를 늘어뜨리며 녀석이 하는 말에 또 울컥한다. 하지만 울지 않았다 마냥 울기만 하다간 이대로 진짜 끝나버릴 것 같아서, 그런 바보가 되긴 싫었다.
"형, 일단 제가 자철형한테 가볼게요, 어디가지 말고 그냥 방에서 얌전히 누워있어야해요. 알았죠?"
"…응, 미안하다 괜히 신경쓰이게 만들었네"
"우와, 형 그말 엄청 섭섭한거 알아요?"
"그래도…"
"에이 됐어요, 기다려요 일단 자철형이 무슨 생각인지 알아야겠으니"
비장하게 동원이 나가고 난 방안은 텅 빈 것처럼 공허함이 느껴졌다. 이 방이 이렇게 컸던가… 항상 녀석과 붙어 다니다보니 혼자 있는 것이 어색하다. 뭔가 혼자 덩그러니 버려진 기분… 하… 가만히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다시한번 차가운 녀석의 얼굴이 떠오른다
"하… 언제부터 내가 이렇게 된거지"
답답한 마음에 혼자 중얼거렸지만 대답이 들려올리 없었다 마음속의 응어리가 풀어지지 않는다 어느샌가 구자철이란 존재가 이렇게 커졌다 그저 같이 축구를 하고 통하는게 많아 막연히 친한 친구로써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언제부턴가 이렇게 커지고 커져 남들과는 다른 좋아해까지 가버렸다 좋아해? 좋아해…
"좋아해, 좋아해, 좋아해? 사랑해 …"
한참을 혼자 멍하니 있으니 얼마나 지났는지 자철을 만나러 갔던 동원이 돌아왔다 침대에서 일어나 녀석을 쳐다보니 안좋은표정으로 고개를 절래절래 젓는다
"형… 어떡하죠, 자철형 생각보다 많이 화난 것 같아요 쉽게 풀리진 않겠어요"
"하… 어떡하지… 동원아 나 지금은 어떡해야 하는걸까"
"일본 경기 전까지는 해결했으면 좋겠는데, 큰일이네요"
"… 진짜 미쳐버리겠네"
"일단 자철형이 조금이나마 풀어지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겠어요, 형 괜찮을거에요! 이럴때일수록 힘내고 빠짝 정신차리고 있어야 하는거에요!"
"응… 너라도 있어서 다행이야"
"뭘요, 저뿐만이 아니라구요 모두 형편이죠. 그리고 자철형이랑 형은 떨어지면 안되요, 절대로 마치 식빵과 한라봉 쨈처럼 세트로 다녀야 하는 맛있는 관계? 뭐 그런거라구요"
"푸핫, 뭐냐 그게"
"요새 인터넷이 많이 뜨던데 몰라요? 기식빵과 구자봉, 엄청 유명하잖아요 . 하하"
녀석의 농담덕분에 이제야 조금 웃음이 흘러나왔다 내웃음을 본 동원도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요, 그렇게 있으면 되는거에요 한다
"고맙다, 진짜…"
하지만 결국 일본전을 하기 위해 경기장으로 가는 순간까지 자철은 나와 한마디를 나누지 않았다. 간혹 마주칠 때에도 내 부름을 무시하며 피해버리거나 다른 사람과 갑자기 말을 하거나 한다… 결국 그대로 경기장에 들어섰다. 그런 나를 보는 동원의 눈에는 걱정스러움이 가득했다 어색하게나마 웃어주었다. 그게 더 불안했는지 더욱 걱정스럽게 날 쳐다본다 경기 내내 공을 쫓으며 열심히 달렸지만 여느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몸이 무겁고 모든게 귀찮다 평소라면 가벼운 태클로 뺏을 공이었지만 깊게 들어간 태클은 반칙이 되고 옐로우 카드까지 받았다 그때서야 정신이 들었다 나혼자 하는 경기도 아닌데 여기서 멍하니 정신 놓을 순 없다 여기서 흥분하면 또 다시 경고로 퇴장당할 수도 있으니 침착하게 조심해서 나쁠 것 없다 다시 경기가 시작되고 오늘따라 잦은 호루라기 소리가 또 들린다
또 다시 반칙 선언, 그냥 가벼운 제지겠거니 하며 호루라기 소리가 들린 곳을 바라보니 자철이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옐로우카드가 나오고 그런 주심의 판정에 자철이 아, 왜!! 와이!!!! 노!!! 하며 거세게 항의한다. 놀랐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팀 전체가 다 놀랐다. 평소 내가 조금 심하게 항의할라 치면 침착하게 날 말리면서 중재하던 구자철이, 캡틴이라는 위치에 묶여 항의도 점찮게 하던 구자철이 저렇게 흥분하는 모습이라니… 녀석은 분명 공을 먼저 찼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항의했지만 심판은 그의 항의를 받아 들이지 않는다 주심과 일본선수에게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한 기세에 우리팀은 자철을 말렸다 나 또한 녀석을 붙잡으며 말렸지만 녀석을 나를 밀어냈다. 왠지 그 행동이 어제의 연장선 같아서 가슴이 아프다…
세장의 옐로우카드 까딱하면 퇴장도 나올 가능성이 많아졌다 한동안 조심스런 경기운영을 하던 중 드디어 골이 나왔다, 이번 선제골은 주영형이 폭풍드리블로 일본의 네명의 수비수를 제치고 난 멋진 골이었다 관중석에 큰 함성과 함께 모두가 주영형에게 달려갔다 하지만 기쁨을 나누는 동시에 자철과 눈이 마주쳤다 살짝 미소를 지었지만 녀석은 그대로 얼굴을 돌린다 그 골을 지키며 전반전을 끝냈다, 자철을 찾았지만 또 피해다니는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미안한 마음이 크지만 이제는 화가 난다 무시를 해도 정도가 있지… 이건 진짜 너무하잖아!!! 얼굴이 벌게져 씩씩거리며 앉아있는데 동원이 다가와 자철형은요? 하고 묻는다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니 오히려 녀석이 더 시무룩해진다 애써 웃으며 너까지 힘빠지지마 라며 녀석의 이마에 딱밤을 때리는 순간 머리가 번뜩였다
"그래!! 골내기!!!!"
내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지르자 동원이 깜짝놀라 휘청거린다. 뭐, 뭐에요? 하고 물었지만 난 혼자 생각하기 바빴다 골내기, 그래 바로 그거다! 골을 넣어 소원으로 내말을 들어달라고 하면 되는거잖아!! 그렇게 정하고 생각을 마치자 후반전이 시작되었다. 물론 경기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정도로 해야하지만 그래도 기회만 생기면 바로 들어가서 넣으면 되는것아닌가, 그렇게 정한 나는 힘차게 후반전에 임했다. 그러나 골 기회는 쉽사리 찾아오지 않았다… 골문 근처에 가는 것도 눈치보여 자꾸 수비로 내려오게 된다 그러다 후반 12분, 구자철이 골을 넣었다 망했다 젠장… 안그래도 기회가 안찾아오는데 완벽하게 골을 넣어버린 녀석덕분에 내가 이기기 위해선 두골이나 넣어야 한다 한골도 어려운데 두골이나 넣어야 한다니, 그나저나 저녀석은 그 내기를 기억이나 하고 있을까…
후반 끝날 때 쯤 드디어 골넣을 수 있는 찬스가 왔지만 결국 놓치고 말았다 아씨… 어떻게 온 기회였는데… 아쉬움에 머리를 쥐어 뜯었지만 그 후 결국 골을 넣지 못한 채 경기는 2:0 그대로 유지되고 5분 남은 상황. 이대로 경기가 끝난다면 내기는 1:0 나의 패배… 그럼 녀석에게 소원이 돌아가지만 녀석이 그 소원을 쓸 것 같진 않은데 지금 상태로 봐서는 이대로 나는 구자철에게 변명도 못한 채 녀석은 독일로 나는 스코틀랜드로 돌아가야 할판이다 한일전의 승리가 가까워진만큼 기뻐하고 싶지만 마냥 기쁘지 않다 한일전의 승리보다도 구자철이 더 신경쓰인다. 그리고 5분이 지나 주심의 호루라기가 불린다 경기가 끝이 났다
"헉, 헉, 후우, 하아…"
잠시 멍하니 고개를 숙이고 숨을 고르다 다시 머리를 드는 순간, 구자철과 눈이 마주쳤다 … 이번에도 피하겠지 했지만, 녀석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굳은 표정으로 나에게 성큼성큼 걸어온다 침을 꿀꺽 삼킬 뿐 꼼짝도 못하겠다 녀석과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내 심장소리가 점점 커진다 그 소리가 그라운드를 뛰어다닐 때보다 더 큰 것 같다 이러다 심장마비로 죽을 수도 있겠다 싶을만큼 그러다 녀석이 내 앞에 다가와 선 다음 내 심장은 멎은 것만 같았다
-꽈악-
구자철이 나를 안았다 … 이 포옹의 의미는 뭘까? 동료로써 나누는 기쁨의 포옹일까? 아니면 이제 다 끝났으니 각자의 길로 돌아가자는 이별의 포옹일까? 머릿속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든다 하지만 내 머리는 내게 이것만은 아니라고 계속 말한다 널 사랑한다는 사랑의 포옹은 아니라고… 나는 가만히 서서 안긴 채 녀석을 불렀다 그러자 녀석이 내 귓가에 뭐라뭐라 속삭인다
"… 구자철?"
"… 내기 내가 이긴거다"
"…?"
"내 소원은 널 가지는거다, 넌 내 마누라로써 평생 내곁을 못벗어나는거야, 이제"
"뭐?"
"아, 진짜 말 자꾸 못알아들을래? 너 내꺼라고, 이제부터 너랑 나랑 사귀는거고 당연히 니가 내 마누라인거고"
"…"
"하…, 둔한 기성용때문에 당연한 일로 소원을 날려버렸잖아. 원래 내 소원은 이게 아니었는데"
녀석의 말에 한동안 대꾸를 할 수 없었다. 날 평생 안볼것처럼 행동하던 녀석이 이제와서 하는 말은 평생 자신의 곁에 있으라니… 그럼 여태까지 했던 행동들은 무엇이란 말인가, 왜 방을 바꾸고, 나를 피해다니고, 무시하고…
"어째서…?"
"뭐?"
"어째서? 여태까지… 나를 무시했잖아, 화냈잖아, 웃어주지도 않았잖아"
내 말에 녀석은 명쾌하게 한마디를 내뱉는다 아, 같이 있다간 너한테 무슨 짓 할 것 같아서, 뭐? 무슨 짓이라니? 녀석의 말을 이해못해 그저 멍하니 녀석을 바라봐도 녀석은 그저 씨익 웃고는 계속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때는 진짜 화났었거든. 난 당연히 사귄다 알고 있었는데 너는 그게 아니었다니, 충격이었어"
"아! 그건…!!"
"알아, 내가 확실하게 말 안해서 그렇다는거"
"… 그런데 어째서 그렇게…"
"뭐, 이해는 했는데 자꾸 생각해보니 괘씸하잖아. 둔한것도 정도가 있지. 날 좋아한다고 고백도 한 주제에"
"…"
"솔직히 말하면 화는 그 날 혼자 태희네 방에 있을 때 다 풀렸는데 음… 앞에 이유도 있고하고 너 반성 좀 하라는 의미에서 내가 눈물을 머금고 좀 떨어져 준거지"
"…하, 지금 날 놀렸다는거야?"
"놀리다니? 벌 준거라니까"
"야!!"
"아아, 일단 승리를 만끽하자고 우리 동메달 땃어!!!!!!"
"!!!
맞다, 구자철의 황당하고 어이없는 말에 잊고 있었지만 우린 동메달리스트, 그것을 자각하자마자 앞에 있는 자철을 꽉 껴안았다 와, 하고 소리지르며 좋아하고 있는데 또다시 귓가에 녀석의 목소리가 들린다.
"또 발뺌하면 큰일나니까 확실히 말할게, 기성용 사랑해, 나랑 사귀자"
"… 응, 나도 사랑해. 구자철"
내 대답에 날 안고있는 녀석의 팔에 힘이 들어간다, 나도 따라 힘을 더 주며 꽈악 안았다 서로의 듣기좋은 심장 박동소리를 들으며… 한참을 안고 있으니 다른 녀석들이 우리들에게 달려온다 그제야 나도 다른 동료들과 함께 진정으로 한일전 승리의 기쁨과 동메달의 기쁨을 마음껏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일본 선수들도 다가와 유니폼 교환을 했다 막상 주고받긴했는데 땀에 쩔은 일본의 유니폼을 입기 싫어져 그냥 옷을 벗은 채 그라운드를 방방 뛰어다녔다. 태극기를 들고 흔들며 뛰고, 감독님 헹가레도 하고, 서로 물을 뿌리며 기쁨을 만끽했다 왠지 어디선가 따끔한 시선이 느껴지지만 기쁨에 잠겨 그냥 넘어간 채 그저 웃고 즐겼다. 라커룸에서는 더 가관이었다 옷이고 신발이고 심지어 가방안에 있던 물건들까지 모두 위로 던지며 승리를 축하했다 들뜬 기분에 트위터에는 공개고백까지 해버렸다, 뭐 사람들에겐 그저 친한 친구에게 한 말로 보이겠지만…
-짜식, 골 안넣었음 너 현해탄에 잠수시킬려고했다.!! 역시 쿠주장 너무 고맙다 팀 잘 이끌어줘서 사랑해.
진심이었다, 녀석이 골을 안넣고 나도 골 못넣어서 소원도 못쓰고 우리 둘 사이가 아까 그상태로 끝나버린다는 생각에 나는 구자철을 현해탄에 빠뜨리고 나도 빠질 생각까지 했었다 마지막에 사랑해는 정말 많이 고민했다. 몇번을 썼다 지웠다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금새 올라온 자철의 답 멘션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런 망할놈 고맙다 정말.. 그냥 다 고맙다.. 오글거려서 더 못쓰것다. 사랑한다 친구야.
평소에는 더 오글거리면서 오글거리는 척은, 하지만 평소와 같은 녀석이다. 항상 틱틱대면서도 다정하게 챙겨주던 구자철이다 지금 나에게 더없이 큰 행복은 구자철이 내옆에 있고 또 그와 같이 동메달리스트라는 값진 결과물을 냈다는 것이다. 이미 내 삶이나 행복, 목표 등 모든 것들이 구자철이 되버렸다. 하… 구자철이 없으면 못살것같은 나라니 구자철, 하여튼 이상한 놈이다
그래도 이미 난 널 사랑하게 되버렸어, 제대로 책임져 구자철
***
으윽.. 어제 경기가 끝나고 숙소로 돌아와 광란의 파티를 보냈는데 눈 떠보니 방이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는데 뭔가 묵직한 느낌에 옆을 보니 역시 구자철이 멀쩡한 침대 놔두고 내 침대에 누워있다 그러고보면 일인용침대에서 건장한 남자 둘이 자는데 떨어지지 않는 것이 신기하다 목이 탈 듯한 갈증에 물을 마시기 위해 부스럭거리며 일어나려 하는데 마침 일어난건지 원래 깨있던건지 녀석이 내 손목을 잡는다
"어디가?"
"물 마시러,"
"아, 나도 가져다줘 기마누라"
"뭐?"
"나도 물 달라구, 마누라"
"하…"
저 놈의 마누라 소리에 녀석의 입을 확 꼬매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지만 꾹 참았다 일본 전 사건을 겪으면서 깨달은 하나가 있다. 저녀석과 나의 관계에 관해서 부정하거나 따지면 손해보는건 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난 결국 마누라 소리를 묵인하기로 결심했다. 저딴식으로 벌써부터 기둥서방 노릇을 하려하니 언젠가 분명 난 폭발할 것이다 그래, 그때를 노리자. 구자봉 두고봐라 언젠가 꼭 뒤집어주겠어
냉장고에서 생수한병 꺼내 반을 컵에 따르고 난 생수병에 든 물을 마시며 녀석에게 돌아가니 어느새 침대에서 아이패드 화면을 못마땅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다. 컵을 건네며 아이패드를 슬쩍보며 뭐보냐? 물으니 너… 하더니 나를 노려본다
"뭐야, 그 눈은?"
"너… 다신 유니폼 벗지마"
"뭐?"
"신난다고 아무데서나 휙휙 옷 벗지 말란말이야"
"뜬금없이 무슨소리야?"
"뜬금없는게 아니야, 자 이거 좀 보라고"
녀석이 들이 민 아이패드 화면에는 녀석이 기성용의 이름을 쳐서 나온 기사들이 쭉 나와있었다. 그냥 그런가보다하고 이게 뭐, 하고 물으니 뭐? 자세히 보라니까? 한다 뭘 보라는거야 대ㅊ… 아, 나는 녀석에게 기기를 건네받아 기사들을 자세히 보기 시작했다 이거… 제목이 다들 왜 이래? 기성용, 섹시한 상의탈의. 기성용, 몸자랑. 웃옷 벗어던진 기성용, 요염한 자태 뽐내… 하나같이 민망한 제목으로 올라온 기사들 뿐이다. 이 기자들 변태냐, 중얼거리자 녀석의 눈매가 더 날카로워진다
"너 나 인터뷰할때도 뒤에서 그차림으로 방방 뛰더만, 전국적으로, 아니 세계적으로 너 몸 팔린거라고"
"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팔렸다는 단어는 좀 그렇다?"
"쳇, 맘에 안 들어"
"야, 노출이라면 니가 더 심하잖아, 골 넣을때마다 배 휙휙 까는 놈이 너잖아"
"그거야 기쁨표출이고"
"나도 기쁨표출이었거든?"
"… 아씨, 그래도 넌 안돼!! 내가 허락 안해 절대 안돼!!"
입을 삐쭉 내밀며 뚱해 있는 녀석에게 내가 반박하자 녀석은 대꾸할 말이 없는지 그저 악을 쓰며 억지를 부린다 휴, 나참 자기야 말로 노출증 환자 버금가면서 왜 나한테는 이 난리인지, 도대체 기자들은 뭔 기사제목을 저따위로 써서 이런 고생을 하게 만드는 거냐고…! 속으로 내가 기자들을 원망하는 중에도 녀석은 옆에서 계속 옷 벗지 말라고, 약속해 빨리 하며 칭얼거린다
"아, 진짜 귀찮게 그럼 너도 배 까지마"
"응"
"…"
녀석의 입을 다물게 하기 위해 던진 말에 오히려 내가 입이 다물어졌다 배까지 말라는 내말에 저녀석이 저렇게 순순히 대답할 줄은 몰랐다
"하… 그래, 내가 졌다졌어 안 벗으면 되잖아 안벗으면, 더워서 쪄죽는 한이 있어도 벗지 않을게"
"아, 죽는건 안돼"
"안되는것도 많네,"
"원래 연애란게 참는 것도 많고 안되는것도 많은거야"
"호오, 연애란거 많이 해본 솜씨다?"
"…"
녀석에 말에 아무런 생각없이 던진 말에 녀석의 입이 다물어졌다 …응? 뭐야, 저녀석 진짜 연애 많이 해본거냐?! 경악어린 시선으로 녀석을 바라보니 녀석이 볼을 긁적이며 어색하게 웃는다
"뭐, 그리 많은 건 아닌데"
"하…"
"왜 그렇게 보는데? 너도 많을꺼 아냐"
"… 없는데"
"그래, 너도 없자… 응? 뭐라고 했어?"
"… 없다고"
"… 내가 처음…?"
"응"
내말에 녀석이 날 멍하니 바라본다. 음… 그게 그렇게나 충격적인가? 뭐… 고백 받은 적이야 몇번 있긴 했지만 그땐 관심도 없었고 좋아하지도 않는데 사귄다라는게 좀 꺼려져 매번 거부했었다 그러고보면 난 쟤가 첫사랑인건가 이거… 좀 억울하다. 저녀석은 나 전에 꽤 있었던 것 같은데 나는 저녀석이 처음이라니… 하지만 곧 생각을 접었다, 억울하다 했어도 나는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과 사귈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 근데 그럼 저녀석은 예전 애인들을 다 사랑했다는 건가… 그건 좀 슬퍼지는데
"좋아했어?"
"응?"
"전에… 전에 사귄 사람들 다 좋아했냐고"
"아니"
"…? 그럼 사랑했어?"
"아니,"
"뭐야? 근데 왜사겼어?"
"음… 안사겨주면 죽어버릴꺼야 하고 협박해서"
"그게 뭐야, 그 한마디에 사겼다고?"
"죽게 내버려둘 순 없잖아,"
"…너 순진한거냐, 멍청한거냐"
전혀 모르겠단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자철, 나참 연애광인줄 알았더니 연애꽝이었잖아 이녀석. 한숨을 쉬며 됐다됐어, 하며 시계를 바라보는데 현재 시각 9 :32…
"자철아… 우리 집합시간 언제였지?"
"9시… 아악! 늦었잖아!!!!!"
"아씨, 구자봉 넌 말이 너무 많다고!!!"
"뭐야? 너도 똑같이 해놓고 무슨소리냐?!"
"몰라, 임마 얼른 준비나 해!"
오늘 대표팀 일정은 9시에 집합하여 간단한 회의 후에 브라질과 멕시코의 결승전을 보는 것 10시에 버스 떠난댔는데 구자봉과 투닥거리다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후다닥 준비하고 회의실로 가니 한창 감독님이 말씀중이다끼익 문소리와 함께 안으로 들어서니 감독님이 한마디 하신다
"구자철, 기성용 어제 둘이 2차라도 갔다 왔나, 아니면 다 끝났다고 헤이해지는거냐"
"죄송합니다…"
다행이도 감독님의 기분이 좋으신지 별다른 말 없이 넘어갔다 둘다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자리에 앉는데 옆에 있던 동원이 내 옆구리를 쿡쿡 찌른다 뭐에요, 어제 둘이 사랑이라도 나눴어요? 한다 순간 야!!!!!! 라고 튀어나올뻔 했지만 간신히 참아냈다
"시끄러, 임마"
"푸하하, 그래도 다행이네요 화해해서, 제발 이제 그만 좀 싸워요. 형들네 싸움은 주변사람이 더 지치는 것 같아요"
응? 그러고보니 동원녀석은 그 일을 몰랐나? 방금 말을 들어서는 녀석은 진짜 구자철이 화나있던 걸로 알고 있는 모양인데? 의아함에 자철에게 물었더니 당당히 한마디를 던진다, 적을 속이려면 아군을 속여라! 는 거지. 뿌듯하다는 듯 말하는 자철의 모습에 약간 불쌍해진다. 저런 녀석에게 속아 울고불고 난리친 나나 내내 날 걱정해준 동원이나…
늦게온 덕분인지 자리에 앉자마자 금방 끝이나고 결승전을 보러 가게 됐다. 근데 자철녀석은 내기병에 라도 걸렸는지 경기장에 도착하자마자 이번엔 멕시코와 브라질 중 누가 승리할지로 또 내기하잖다. 대답도 안했는데 녀석은 인심쓰듯 너가 먼저 골라봐, 한다. 나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멕시코를 선택했다. 녀석은 내 선택이 의외였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그럼 내가 브라질이네, 한다
게임 결과는 2:1로 멕시코 승, 정말 상대가 브라질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할 멕시코의 쾌승이었다. 자철 녀석은 옆에서 말도 안돼만 연발한다. 하긴 분명 우리나라는 멕시코와는 무승부, 브라질과는 완패였으니 당연히 브라질의 승률이 더 높았지… 속으로 소원 뭐할까 고민하는데 마땅히 좋은게 생각나지 않는다. 이기리라고 생각도 안했으니 정해놓은 소원도 없다. 옆에서 자꾸 재촉하는 녀석이 시끄러워서 조용히 좀 해, 하니까 그게 소원이란다
"뭐야, 죽을래? 그게 무슨 소원이야"
"그럼 뭔데, 빨리 말하라니까? 이런건 바로바로 말해주는거야 원래"
"아, 좀 기다려봐 생각중이니까"
"빨리 결정해, 아니면 조용히 좀 해로 간다?"
옆에서 시끄럽게 하는 녀석을 무시하려 했지만 너무 쫑알쪼알 댄다 저녀석이라면 진짜 조용히 좀 해를 소원으로 할 것 같아 급한 마음에 처음에 떠오른 소원을 말했다
"… 아 진짜! 그럼 … 데이트하자"
"그래 알았ㅇ… 엉?"
"데이트 하자고"
"데이트? 그 애인들끼리 하는 데이트?"
"데이트가 그거 말고 또 있냐?"
"… 우와"
"왜, 싫어?"
"아… 아니아니! 감동받아서"
녀석의 표정을 보니 정말 감동먹은 표정이다. 메달을 목에 걸었을 때보다 더 벅차보인다. 그 표정에 내가 또 당황했다. 사귀는 사이에는 당연한 데이트하자는게 그렇게 벅찰 일인가 그렇게 좋아? 하고 물으니 녀석이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응, 난 너한테 먼저 데이트하잔 얘기 들을줄은 진짜 전혀 몰랐어."
"… 나도 그런 것쯤은 할 수 있다고"
"응, 근데 진짜 좋다"
녀석의 반응에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녀석의 반응에 괜히 얼굴이 붉어진다. 쳇, 호들갑떨기는 … 하지만 이미 붉어진 얼굴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다 그런 나를 실실 웃으며 바라보는 녀석이 부담스러워 고개를 돌렸지만 곧 녀석이 내 얼굴을 두손으로 감싸고 고개를 돌렸다. 얼굴을 감싼 손을 놓지 않고 마냥 나를 바라보는 자철에게 뭐야, 이제 그만 놔 하는 순간 녀석이 입술에 살짝 자신의 입술을 붙였다 뗐다
"야!!!"
"하하, 부끄러워? 볼이 빨게, 귀엽다"
"밖이잖아!! 뭐하는 거야!"
"뭐 어때, 다들 딴 거하느라 정신없는데 괜찮아"
녀석의 말에 주위를 둘러보니 정말 짜기라도 한 듯 모든 사람들이 자기일에 바빠 우리는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그래도… 혹시나 다른사람이 보기라도 하면 어떡하냐고!! 이미 지나간 일이라 그냥 한번 노려주고 끝냈지만 앞으로 밖에선 이녀석 조심해야겠다 하…
"성용아, 우리 데이트 언제할까?"
"귀국하고나서 하지 뭐"
"음, 귀국하고나서 바로 하자고?"
"피곤하지도 않냐?"
"피곤하겠지? 그럼 귀국하고 우리집 가자"
"너네 집?"
다짜고짜 자신의 집으로 가자는 녀석의 말에 머뭇거렸다. 원래는 집에 가자마자 뻗어서 실컷 잠이나 자려고 했는데… 그러나 녀석의 뒷말이 약간 나를 흔들었다.
"응, 아버지가 너 보고싶어하시고, 나도 소개시켜주고 싶고"
"너희 아버지께서?"
"아들인 나보다 널 더 좋아해, 질투나게"
"아무렴 아들인데 날 질투할게 뭐있냐"
"아닌데, 난 아버지를 질투하는건데"
"뭐?"
"넌 분명히 나보다 우리 아버지한테 잘할거니까"
"하, 질투할 것도 많다"
"당연하지!"
한심하단 내 표정에 욱했는지 부정아닌 강한 긍정을 한다. 하여간 어디로 튈지 모르는 놈이다. 작게 한숨을 쉬곤 아까 녀석이 했던 말을 다시 고민했다. 녀석의 집이라… 한번 가보고 싶기도 하다. 녀석이 도대체 어떤 환경에서 자랐기에 저렇게 능글능글 오글오글 할 수 있는지 궁금해졌기도 하고말이다. 고민 끝에 결정을 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가자. 너희집"
"진짜?"
"응, 나도 궁금해, 너희 아버지도, 너희 집도. 그리고 우리 가족들은 아직 영국에 있을테니까 어차피 한국 가도 혼자 있어야하고"
나의 긍정의 대답에 자철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덩달아 내 입꼬리도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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