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가는 시간 01 w.클레오파리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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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을 삼키는 적나라한 소리가 진료실 내부 가득 울려 퍼졌다. 검사 결과를 알려주겠다며 자신을 불러놓고, 한참 동안이나 아무 말 없이 검사 결과만 바라보고 있는 의사의 표정에 목이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다리 위에 올려둔 손을 만지작거리며,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는 숨 막히는 정적을 받아들였다.
“ 제 말, 잘 들어주세요. 아시겠죠? ”
갑작스레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고개를 들자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의사의 모습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얀 가운을 입고, 감정이라곤 하나도 실리지 않은 냉철한 시선으로 자신을 훑는 그 눈빛이 무서웠다. 두려움 때문에 마주 잡고 있던 손을 비비는 속도가 빨라졌다. 한시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숨이 턱턱 막히는 그 기분. 얼른 이곳에서 나가고 싶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손을 만지작거리던 행동을 멈추고,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한숨을 푹 내쉬는 의사의 묵직한 숨소리가 들렸다.
“ 어떻게 말씀 드릴까요. 돌려서? 아니면 직설적으로? ”
그 물음에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듯 했다. 두 눈을 천천히 감았다 뜨며, 안경 속에 감춰진 두 눈을 곧게 바라봤다.
“ 중간이요. 너무 돌리지도, 그렇다고 해서 너무 직설적이지도 않게요. ”
무서우니까요. 제 말을 알아들은 의사는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여 검사 결과가 적힌 차트를 쳐다봤다. 자신의 요구대로 더하지도, 그렇다고 해서 덜하지도 않게 말을 하기 위해 생각하는 듯 손에 쥐고 있는 펜을 딸깍였다. 그 모습이 지속되면 지속 될수록, 심장박동이 빨라졌다. 계속 해서 뜸을 들이는 그 모습 때문에 온몸에서 초조함이 가득 묻어났다. 마주 잡고 있던 두 손을 비비는 것도 모자라, 정신 사납도록 달리를 떨고. 초조한 마음에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입술에 침을 축여도 보고, 그렇게 짧지만 긴 그 시간을 외로이 기다렸다.
“ 혹시 요즘 운동도 안 했는데 살이 빠지고 식욕도 없고 복통도 자주 있으시죠. ” “ …네. 먹어도 흡수를 못하니까, 그냥 안 먹어요. ”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인 말에 고개를 끄덕인 의사의 펜을 쥔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마치 제 대답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그 모습에 침을 꼴깍 삼키며 숨을 내쉬었다. 차트에 제 증상을 쓰는 것인지, 무언가 휘갈겨 쓰고 있던 의사의 손이 멈췄다. 다시 이어질 말을 기다리고 있을 때, 차가운 의사의 두 눈과 눈이 마주쳤다. 몸이 흠칫 떨렸다. 분명 진료실 안은 따뜻하다 못해 더울 정도인데, 몸이 추웠다. 쌀쌀한 느낌에 두 팔을 감싸 안고 팔을 비비고 있을 때였다.
“ 앞으로 살도 눈에 띠게 많이 빠지고, 음식도 못 드실 겁니다. 자주 복통을 호소하기도 하고… ” “ 아니. 잠시 만요. 제가 병에 걸린 것…. ”
자꾸만 이상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의사의 말에 반박하려던 찰나였다. 자신을 무너지게 하는 한마디가 들려온 것이.
“ 췌장암이시네요. ” “ …네? ”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되묻는 자신의 시선을 피하며, 차트를 보는 척 고개를 숙이는 의사의 행동에 헛웃음을 뱉었다. 쉴 새 없이 떨고 있던 다리도 멈추고, 의자를 바짝 당겨 앉았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믿기지 않는 그 말에 계속 해서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왜 자신이 그런 병에 걸린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기에.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하고 있는 자신에게 위로라고 하는 말인지, 전혀 위로 같지 않는 말이 제 귀에 꽂혔다.
“ 워낙 잘 발견되지 않는 병이라 이제 발견된 겁니다. ” “ 아니. 그러니까 이게 왜 저한테…. ” “ 병에 걸리는 거는 순서가 없죠. ”
의사의 말에 입술을 꽉 깨물었다. 피가 나올 정도로. 눈물이라도 나오면 좋으련만, 단 한 방울도 그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럴 리가 없다고. 자신이 그럴 리가 없다고. 아직도 현실을 부정하고 있는 성규의 모습에 한숨을 푹 내쉬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은 의사가 쥐고 있던 펜을 내려놓고 성규를 빤히 쳐다봤다. 김성규 환자님…. 자신을 부르는 의사의 한 마디에 정신이 멍해졌다. 나사 하나가 풀린 표정으로 의사를 가만히 쳐다보며, 아랫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환자님…. 환자님…. 환청이 들리듯, 제 귓가에서 울리는 환자님이라는 그 말에 결국 피식 웃으며 눈을 꾹 감았다. 속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무언가가 제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 늦더라도 내일부터 입원하셔서 약물을 병행한 항암 치료를…. ” “ 잠시 만요. 의사 선생님, 물어볼게 있어요. ”
제 책상 위에 올려 져 있는 서류를 뒤적이며, 말을 이어나가던 의사의 행동이 멈췄다. 고개를 살짝 들어 성규를 바라보자 진료실 안으로 들어올 때와는 사뭇 다른, 짊어지고 있던 제 세상을 다 내려놓은 것 같은 성규의 힘없는 목소리가 진료실을 가득 메웠다.
“ 저 얼마나 살 수 있어요? ”
그 말에 말을 잇지 못하고 가만히 있는 의사를 향해 다시 한 번 물었다. 얼마나 살 수 있느냐고. 이 현실을 받아들이고 싶지가 않아, 지금 당장이라도 진료실을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피한다고 해서 피해질 것이 아니었으니까. 이제야 밀려오는 울음을 꾹꾹 내리누르며, 자신의 말에 대답을 해줄 때까지 계속 해서 물었다.
“ 수술 치료나 항암 치료를 하셨을 경우 최대 6개월, 여기서 더 사시는 분들도 있구요. ” “ …그 치료 안 하면요? ” “ 치료 하시면 완쾌하시는 분도 있어요. ” “ 아니요. 안 하면요. 안 하면…얼마나 살 수 있는데요? ”
생기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는 그 목소리에 마음을 다잡았다. 이대로 포기하기에는 너무나 안타까운 나이었기에. 지금 힘이 들더라도, 젊은 나이인 만큼 항암치료만 꾸준히 한다면 완전하게는 아니어도 완쾌까지 가능하게 해줄 수 있었다. 살고 싶다는 의지만 있다면. 어떻게든 설득을 해보고 싶었지만, 다른 이야기를 듣지 않겠다는 성규의 눈빛에 고개를 푹 숙였다. 사람에게 남은 수명을 말해주는 것만큼 잔인한 것이 없었다. 특히나, 앞길이 창창한 젊은이들에겐. 의사의 대답을 기다리는 듯, 메마른 입술에 침을 바르며 초조함을 견뎌내고 있을 때였다.
“ 3개월. 최대 3개월입니다. ”
* * *
손에 한가득 들린 약봉지를 내려다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쥐고 있는 약봉지가 그리 무겁지도 않은데, 왜 이렇게 무겁게 느껴지는 것인지. 세상의 짐이란 짐은 자신이 다 짊어지고 있는 것처럼, 지구를 자신이 받들고 있는 것처럼 무거웠다. 회사로 다시 돌아갈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생각에 불과했다. 무슨 정신으로 집까지 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자신을 부르는 곳을 향해 걸어오다 보니 도착해 있는 곳이 제 집 앞이었다. 집으로 오는 길에 바라봤던 하늘은 꽤나 화창했다. 구름 한 점 없는 늦가을의 하늘이 자신을 반겼다.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골목길에 서서 올려다본 하늘이 꼭 자신을 향해 손짓하는 것처럼 느껴져 괘씸했다. 아름답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괘씸하기도 한 그 하늘을 올려다보며 가볍게 산책을 하려던 찰나였다. 갑자기 찾아드는 복통에 두 팔로 배를 감싸 쥐며, 몸을 웅크렸다. 배가 따뜻해지도록 그렇게 한참을 감싸고 있다 차츰차츰 잦아드는 고통에 한숨을 푹 내쉬며 계단을 올랐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씻고 나와 바닥에 널브러져 앉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요즘 들어서 한숨을 너무 자주 쉰다며 자신을 구박했던 제 동생이 생각났다. 얼른 늙어서 죽고 싶으냐고 묻던 제 동생의 물음에 장난스럽게 맞받아쳤던 그 때가 떠올랐다. 그럴 수만 있다면, 일찍 하늘로 가고 싶다고 장난스럽게 대답했던 그 때. 그 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자신이 뱉었던 말을 주워 담고 싶었다. 하루라도 더 많이 살고 싶다고. 벽에 등을 기대고 두 명이 살기에는 꽤나 넓은 집안을 훑었다. 뭐부터 정리를 해야 할지. 어떤 것을 먼저 손대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하나에 손을 대면 그 뒤로는 어떻게든 정리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시작이 너무 힘이 들었다. 일단 자신이 아프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하게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자신이 짐이 되어서는 안 되니까. 자신과 제 동생의 뒷바라지를 다 하시고, 이제야 당신들만의 삶을 찾아 시골로 내려가 계시는 부모님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진 않았다. 그리고 제 동생 명수에게도. 겉으론 무심해 보여도 속은 자신보다 더 여리다는 걸 잘 알고 있기에. 아프다는 말만 들어도 눈물을 글썽이는 그 아이에게 병이라는, 그것도 나을 수 없는 암이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병원에 가서 제 병명을 들었더니, 몸이 더 무거워진 것 같은 느낌에 피식 웃었다. 느낌 탓일지, 아니면 정말 무거워진 것인지 알 수가 없었지만 그 모든 감정을 뒤로 한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렇게 가만히 앉아 있을 시간이 없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은 최대 3개월이었기에. 어떻게든 많이 보고, 많이 즐기고. 후회 없는 삶을 살고 떠나기 위해서라면 지금부터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먼저 제 방으로 들어가 종이를 하나 뽑아 들었다. 이런 걸 제 손으로 직접 쓸 줄은 몰랐는데, 이렇게 쓰자니 마음 한 구석이 먹먹해졌다. 하얀 봉투에 적힌 ‘사직서’라는 이 말. 깔끔하게 적어 명수가 볼 수 없게 책 사이에 꽂아두고, 제 방을 쭉 훑었다. 제 방 한 구석에 놓인 큰 빈 박스를 열어, 방 한 가운데에 놓았다. 사놓고 바쁘다는 핑계로 읽지 못했던 책들, 그간 찍었던 사진들이 담겨있는 앨범 등등 눈에 보이는 것은 죄다 상자 속에 담았다. 금세 빼곡하게 쌓인 상자를 보며, 땀이 송골송골 맺힌 이마를 손으로 훔쳐냈다.
“ 이제 남은 게…옷장이네. ”
조금 전의 짐들을 박스에 박을 때와는 사뭇 다른 표정이 얼굴 가득 지어졌다. 옷장을 조심스럽게 열자, 무관심하게 쳐 박아두었던 기타가 눈에 들어왔다. 팔을 뻗어 한 동안 빛을 보지 못했던 제 기타를 꺼내고, 그 밑에 놓여 져 있던 작은 상자도 꺼내 침대 위로 올라갔다. 제 다리 위에 기타를 올려놓고, 조심스럽게 열어 본 작은 상자 속에는 어렸던 그 때. 아무 것도 모르고 제 부모님의 마음에 못을 박으며, 사춘기 시절을 보냈던 그 때의 추억들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악보들이 빼곡하게 쌓여있었다. 파일 하나 없이, 볼품없이 저들끼리 마구잡이로 섞여있는 악보를 꺼내들고 한 장 한 장 넘겨보며 그 때를 생각했다.
‘ 아버지. 저 공부 말고 다른 거 하고 싶어요. ’ ‘ 그건 대학교 가서 하면 돼. 지금 네가 할 건 공부니까…. ’ ‘ 음악 할래요. ’
아버지의 마음에 비수를 꽂았던 그 어린 시절. 안 된다고 끝까지 말리는 부모님을 모른 척 하고 집을 나와 친구들 집에서 하루하루를 지내다, 가족들이 전부 잠들어 있는 새벽에 옷가지를 가지러 들어갔을 때, 잠을 자지 않고 뜬 눈으로 거실을 지키고 있는 제 아버지가 있었다. 다녀왔다는 말도 하지 않고,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방으로 들어가 버리는 제게 한숨을 내뱉으시고는 했던 그 말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했다. 그렇게 음악이 하고 싶으면 하라고. 대신 집에는 들어와야 하지 않겠느냐고. 자신이 잘못 했다는 아버지의 말은 들리지 않고, 음악을 해도 좋다는 말만 듣고 평생 안아드리지도 않았던 아버지를 꼭 껴안아드렸었다. 씁쓸해 하던 아버지의 표정은 보지 못 하고, 그저 제 행복에 눈이 멀어서. 하지만 그 뒤로 자신의 뒷바라지를 하며 힘들어 하는 부모님과 자신을 보며 커가는 동생을 볼 때마다 과연 이 길이 옳은 길인지 생각하고, 음악이란 제 꿈을 내려놓고 뒤를 돌았을 땐 몰라볼 정도로 폭삭 늙어버린 제 부모님과 훌쩍 커버린 제 동생이 있었다. 아마도 그 때부터였을 거다. 가지고 있던 기타를 옷장에 처 박아두고, 밖에 나가서 노는 것을 그토록 좋아했던 자신이 책만 부여잡고 살았던 것이. 조금 더 일찍 깨달았으면 좋았을 거라고, 그렇게 항상 친구들에게 말을 하면 늘 이렇게 말을 했었다.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자신들은 괜찮으니 앞만 보고 달리라는 그 말. 그렇게 이를 악물고 지금까지 달려와 아직 부모님께 이렇다 할 효도도 하지 못하고, 한 번이라도 제대로 안아드리지 못한 자신에게 떨어진 죄 값이 너무 무거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변한 게 하나도 없네. ”
피식 웃으며, 먼지도 내려앉지 않은 제 기타를 쓰다듬었다. 꿈을 버릴 수 없었지만, 어쨌든 자신의 치부로 생각하고 있는 기타를 거들떠보지 않을 때 이 기타를 보살펴 준 건 다름 아닌 제 동생이었다. 자신이 집에 없을 때마다 제 방에 들어와서 기타를 꼼꼼하게 닦고 나간다는 걸 자신이 모를 리가 없었다. 명수의 정성 때문인지, 세월이 흘렀어도 예전의 모습을 잃지 않은 기타를 매만지며 생각했다. 남은 이 삶은 자신이 원하는 거 하다 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고. 꽃을 피우기도 전에 죽어버린 제 꿈을 찾아서 떠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가졌다.
* * *
밖에서 들리는 청소기 돌아가는 소리에 인상을 찌푸리게 잠에서 깨어났다. 눈을 깜빡이며, 침대 위를 더듬자 침대 한 편에 놓인 기타가 제 손에 잡혔다. 어떻게 하다 까무룩 잠이 든 것인지 생각이 나지 않아 한참을 곰곰이 생각하다, 지끈지끈 아파오는 머리 때문에 생각을 그만뒀다. 상체를 일으켜 세우자 뭔가 툭 떨어지는 소리에 고개를 숙여 쳐다보자마자 놀란 표정을 지으며 약통을 숨겼다. 진통제였다. 아플 때마다 꺼내 먹으라던 진통제. 정신없이 잠에 든 것을 보아하니, 또 한 차례 진통이 있었구나 하는 바보 같은 생각을 했다. 얼마나 아팠으면 기억조차 못할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제 방에 명수가 들어왔었던 흔적이 없다는 것. 그것이면 충분했다. 방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고개만 살짝 내밀어 본 거실에는 청소기를 열심히 돌리고 있는 명수의 뒷모습이 보였다. 뭘 그렇게 중얼거리는 것인지,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제 귀가 다 간지러운 느낌이 들었다. 자신의 욕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고. 예전엔 집 청소도 제대로 못하던 제 동생이 이젠 청소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닌 양, 척척 해내는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을 때였다.
“ 씻고 와. 오늘 저녁 당번은 형인 거 알지? ” “ 벌써 저녁이야? ” “ 밖 좀 봐. 잠을 뭐 그렇게 오래 자냐. 얼른 씻고 와. ”
명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베란다 너머 밖을 쳐다보고는 욕실 안으로 들어갔다. 얼마나 잔 것인지 몰랐다. 분명 집에 왔을 때가 점심시간 전이었는데, 눈을 떠보니 캄캄한 밤이 자신을 맞고 있어 조금 놀랐다. 간단하게 세수만 하고 거실로 나오자, 바닥까지 깔끔하게 닦은 모양인지 두 팔을 걷어붙이고 허리를 펴고 있는 명수의 모습에 피식 웃으며 다가가 엉덩이를 툭툭 두드렸다. 그에 화들짝 놀라 펄쩍펄쩍 뛰기 시작하는 제 동생의 모습에 어깨를 으쓱이며, 주방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아, 형!! ” “ 형 안 죽었으니까, 씻고 오시지. ”
제 엉덩이를 두드린 것 때문에 온갖 난리를 부리는 명수의 목소리를 배경음악 삼으며, 저녁 준비를 시작했다. 냉장고를 열자마자 텅텅 비어있는 그 모습에 멍청한 표정을 지으며, 한참동안 냉장고 문을 열어두고 가만히 있었다. 분명 오늘 아침까지 생각했었던 오늘 저녁 당번이라는 그 사실을 잊은 자신의 머리를 콩 쥐어박았다. 오늘은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밥을 차려주고 싶었는데, 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매번 하던 된장찌개 재료를 꺼내 들었다. 밥그릇을 긁는 달그락 거리는 소리와 음식을 먹는 소리 말고는 아무런 말도 오가지 않았다. 배가 꽤나 고팠던 듯, 밥그릇에 구멍이 날 정도로 싹싹 긁고 있는 그 모습에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제 밥그릇에 있는 밥을 한껏 퍼서 명수의 밥그릇에 퍼 담았다. 신나게 젓가락질 하고 있던 명수의 젓가락이 순간 멈추고, 제 밥그릇에 쌓인 밥과 성규의 얼굴을 번갈아보던 명수가 싱긋 웃으며 숟가락으로 밥을 가득 펐다. 그리고 식탁 위에 놓인 반찬을 밥 위에 올리고는 성규에게 내밀었다.
“ 자, 먹어. 왜 이렇게 말랐냐 진짜. ” “ 난 됐어. 입맛이 없어서 그래. 너 먹어. ”
아, 팔 아파. 손을 거두지 않고 아프다며 징징 거리는 명수를 보다, 하는 수 없이 밥을 받아먹었다. 깔끔하게 비어진 제 숟가락을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던 명수가 대뜸 물었다.
“ 병원은 다녀왔어? 병원에서 뭐래? 운동 좀 하라고 그러지? 형이 병에 걸렸을 리는 없고. ”
뜨끔 하는 마음을 애써 숨기며, 태연한 척을 하며 대답을 했다.
“ 병은 무슨. 그냥 스트레스 받아서 그렇대. ” “ 형이 스트레스 받을 게 뭐가 있냐. 대학생인 내가 받으면 또 몰라. ”
그러니까 팍팍 좀 퍼 먹어. 툭툭 던지면서 그 속에 걱정이 잔뜩 베인 그 말에 울컥 치미는 울음을 꾹꾹 눌렀다. 고개를 들면 붉어진 제 눈가가 들킬까 싶어, 밥그릇에 코가 닿을 정도로 박고 반찬도 없이 쉴 새 없이 숟가락질을 했다.
“ 참, 나 다른 지방으로 갈 수도 있어. ”
뜬금없는 제 말에 숟가락질을 멈춘 명수의 시선이 느껴졌다. 자신의 속까지 꿰뚫어보는 것 같은 그 눈을 차마 마주할 수가 없었다.
“ 발령 나는 거야? 형 회사는 그런 거 잘 없다며. ” “ 아, 응.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 “ 아파서 못 가겠다고 하지. 아니면 집에 아픈 동생이 있다고 거짓말을 하던가. ”
명수의 마지막 말에 쥐고 있던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제 옆에 놓여 져 있는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명수를 바라보며 단호함이 가득 베인 얼굴로 입을 뗐다.
“ 혹시라도 그런 말은 하지 마. 아프다니, 누가 아파. ” “ 장난이지.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그래. 그래서 언제 가는데. ”
실로 오랜만에 보는 성규의 무표정에 입술을 삐죽이며 급하게 화제를 전환했다. 갑작스럽게 발령이 나서 예민한 것이라고, 아무렇지 않게 넘기며 젓가락으로 밥알을 뒤적였다.
“ 글쎄…. 당장 내일이라도 갈 수 있어. ” “ 뭐? 뭐 그런 회사가 다 있어. ” “ 그러게. 뭐 그런 곳이 다 있지. ”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며, 고개를 젓는 명수를 보며 피식 웃었다. 이 넓은 집을 자신 혼자서 치우라는 것은 벌칙이나 다름없다고. 자신 혼자서 살면 거미들이 집 짓고 사는 음침한 곳이 될 거라며, 협박 같지도 않은 협박을 늘어놓는 명수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계속 해서 거실을 쳐다보며, 투덜거리는 그 모습에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명수의 밥 위에 반찬을 올려주었다. 투덜거리랴 밥 먹으랴, 참으로 바쁜 제 동생의 모습을 최대한 많이 담으려고 눈도 제대로 깜빡이지 않고 뚫어져라 쳐다봤다. 오랫동안 기억하기 위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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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생각보다 되게 빨리 왔습니다! 오늘 갑자기 쓰고 싶어지는 바람에 한글 켜서 타닥타닥.
장편이라는 생각을 하다보니 호흡이 다소 느릴 수 있지만, 우현이가 빨리 나올 수 있게 신나게 쓰겠어요.
아마도 우현이는 3편? 2편 끝자락? 그 쯤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소개글에 댓글 달아주신 분들 감사드리구요.
생각보다 새드를 좋아하시는 분이 꽤 계시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어요! 아직 슬프기엔 멀었죠!
우현이도 만나고 둘이 꽁냥꽁냥 하고 막, 네-.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그리고 암호닉 신청해주신 분들 사랑해영T_T
케헹 바카루 무럭자라 규잉 구염 꾸꾸미 파비 사과맛규 감성 월백 라우 김난 렝도찡
암호닉은 계속 받습니다아!
그럼 1편 읽어주신 분들 감사드려요~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차, 낼 뭐 개학하신다고들 하던데. 학교 가시는 분들 잘 다녀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