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에릭남 & 치즈 - 사랑인가요
처음 연습실에 들어갔던 날. 그날을 나는 잊을 수가 없었다.
오디션을 보고 겨우 회사에 들어왔던 다른 멤버들과 다르게 나는 길거리 캐스팅이었으니까.
연습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이미 진이 빠져서 바닥에 널부러져 있던 멤버들의 모습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안녕하세요..."
사교성이 그다지 좋지 않은 편인지라 눈동자를 데록 굴리며 겨우 한 마디 내뱉었다.
그리고 그 한 마디에 대한 대답은
"너가 걔니?"
싸늘했다. 잊을 수 없을 정도로.
사랑해도 될까요?
02
w. 복숭아 향기
마주하고 싶지 않아도 마주해야 할 때가 있다.
지금 내가 멤버들을 만나는 것도 그런 이유겠지. 대표님의 얼굴은 이미 수척해진지 오래였고.
스케줄이 끝나자마자 회사로 달려왔다. 그리 크지는 않지만 그래도 우뚝 서있는 건물을 바라보니 기분이 이상해졌다.
이 건물도 결국은 내가 세운 건데.
뭐 이런 영양가 없는 생각이 자꾸만 들어서.
"이름아."
대표님은 나를 보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셨다.
나를 처음으로 이 회사에 데리고 온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었다.
때문에 회사에서 그다지 좋지 않은 소문이 돌았던 모양이었다. 그런 거 있잖아. 낙하산.
연습생들 중 유일하게 길거리 캐스팅을 당한 사람이고 입사 하자마자 바로 데뷔조로 들어갔으니 그런 소문이 도는 게 이상하지도 않다만.
대표님 앞에는 멤버들이 쪼르르 앉아있었다.
하루..? 이틀..? 만에 보는 얼굴들인데 왜 이렇게 낯설게 느껴지는 걸까.
잠시 아무말 없이 그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당연한 소리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그 어떠한 미안함도 죄책감도 드러나지 않았다.
"..."
"앉을까요?"
"...그래."
생각보다 목소리가 담담하게 나와서 속으로 좀 놀랐다.
흔히 드라마에서 나오는 것처럼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라는 식으로 악을 지를 줄 알았는데.
역시 드라마랑 현실은 다른 건가.
고개를 들어 은주 언니를 바라보았다.
잊을 수 없던 그 말을 처음으로 내게 내뱉은 사람. 우리 팀의 리더. 그리고 가장 연습생 생활을 오래했던 선배.
"이야기나 들어보자."
"무슨 이야기?"
"언니도 알잖아. 내가 무슨 말하고 싶은지."
"난 틀린 말 한 적 없어."
"..."
"사실이잖아. 너 은근히 우리 무시하고 싸가지 없게 대한 거."
사실이었다.
싸가지 없게 대했다는 거는 내가 할 말이 없었다. 빼도박도 못하는 사실이거든.
그런데 내가 멤버들을 무시했던가. 아닌데. 나는 내가 아닌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관심을 주지 않고 지내왔다.
멤버들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고?"
"뭐?"
"나 호텔 왜 갔는지 알잖아."
"말로만 그렇게 하고 무슨 일이 있었을지는 내가 어떻게 알아?"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막말로 너 회사 들어온 것도 몸 대주고 들어온 거 아니야?"
언니...
은주 언니 옆에 있던 하늘이가 입술을 잘근 깨물며 은주 언니를 불러왔다.
언니는 왜 저렇게 화가 난걸까.
왜 저렇게 화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내게 저런 폭언들을 쏟아붓는 걸까.
내가 왜 미운 걸까.
"열등감으로 똘똘 뭉쳐있고 그러면서 내가 주는 돈은 잘 받아 처먹고 있으면서."
"...너 방금 뭐라고 했어?"
"생각보다 머리가 더 나쁜 사람이었나봐, 언니는."
"성이름!"
"그냥 닥치고 가만히 있었으면 내가 주는 돈 계속해서 받을 수 있었잖아."
"..."
"이제 뭐... 내 이미지도 바닥치게 생겼으니 그 돈들도 다 끊기게 생겼지만."
"너 말 다했어?"
"이러니까 내가 무시를 하지. 머리가 나쁜데 언니 취급을 해줄 수가 있나."
나를 미워하는 사람에게 굳이 친절하게 대할 필요는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대표님께 간단히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사무실에서 은주 언니가 거의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이 말하곤 하지.
팩트 폭력이라고. 내가 한 말 중에서도 틀린 말은 없었다. 전부 사실이었고 그들이 입 밖으로 꺼내고 싶지 않아하는 말이었다.
그래도 나름 몇 년을 같이 지내오고 그랬는데.
이렇게 한 순간에 무너지는 건가. 괜시리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집 가는 길에 달달한 거 몇 개 사가던지 해야지. 집이 아니라 호텔인가. 아무래도 이사를 해야할 때가 된 것 같았다.
-
"나 진짜 가?"
"스케줄이잖아."
"캔슬된 건데 오빠가 잘못알고 있는 건 아니고?"
"내가 그 정도로 무능력하지는 않다."
샵에 들리지도 못해 그냥 후줄근한 옷차림이었다.
당연히 화장도 하지 못했으니 그냥 썬크림만 바른 얼굴에 안경을 쓰고 나왔고.
최대한 편안한 옷차림으로 오라고 했단다. 아무리 생각해도 취향이 좀 이상한 감독님인 것 같았다.
그런 사진이 돌고 있는데도 아무렇지 않게 나를 그대로 여자 주인공으로 캐스팅하려고 하는 걸 보면.
해명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단순한 식사자리였다고 감독님 역시 말을 했지만 그 말이 통할 리가 있을까.
나 뿐만 아니라 감독님 본인에게도 이미지 타격이 꽤나 컸을텐데. 정작 나를 미워해야 할 사람은 나를 미워하지 않는다니.
역시 사람은 참 아이러니한 존재였다.
그나저나 오늘 주인공들끼리 만나는 자리라고 했지.
그럼 김석진도 나오겠네.
어제 방탄소년단 멤버들은 내가 무대를 끝마칠 때까지 계속해서 내 무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솔직히 조금은 부담스럽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렇잖아. 친분 하나도 없는 사람들이 갑자기 그렇게 우르르 와서 대놓고 바라보고 있으면... 부담되는 건 사실이지.
무대를 마치고 내려오자 한 멤버가 내게 다가왔었다. 그리고 말했지.
'우리 진 형 잘부탁드려요!'
'...네?'
'우리 형이 좀 많이 먹거든요. 잘부탁드립니다!'
이건 뭐지... 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그리고 그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다른 멤버가 내게 다가왔다.
'옆에서 이상한 개그 쳐도 그냥 무시하시는 게 좋을 거에요.'
'...'
'받아줘도 계속하고 무시해도 계속하니까 그냥 무시하세요.'
'저... 가봐야 하는데...'
'야야. 작작해라. 작작.'
이제와서 말린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이미 초면에 저 사람들은 내게 할 말을 다 했는데.
김석진이 무슨 말을 했길래 나한테 잘부탁하네 마네 이런 말을 하는 거지?
게다가 또 다른 멤버는 김석진 뒤에서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절대로 곱지 않은 시선으로.
이봐요. 내가 무슨 짓을 했길래 그 쪽한테 그렇게 째림을 당해야 하는 건데요? 라고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주위에서 바라보는 시선들이 꽤나 많았기에.
"영화 찍는 거 때문에 잘부탁한다고 한 건가..."
"이름아. 불렀어?"
"아니야. 아무것도."
무튼 오늘 이야기 좀 해보면 어떻게든 알게 되겠지.
한숨을 내쉬며 후드 끈을 만지작거렸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차는 쌩쌩 잘도 달리고 있었다.
신호 한 번 안걸리고 타이밍 좋게 정말 쌩쌩.
-
"또 뵙네요."
"..."
"감독님은 좀 늦으신대요."
일찍 오라고 했던 사람이 늦는 건 뭐지.
"식사 하셨어요?"
"에, 뭐..."
"여기 브런치 종류도 맛있는데 먹을래요?"
"생각 없어요."
"리코타 치즈로 주문할게요. 음료는 아메리카노?"
"..."
이럴 거면 물어보지나 말지.
계속 말하면 이야기만 길어질 것 같아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았다.
카페 안은 꽤나 한적했다. 일부러 사람들이 자주 오지 않는 구석진 곳으로 장소를 정했다고 한다.
장사는 되려나. 은퇴하면 이런 카페나 지어서 장사할까.
아니다. 이런 생각은 카페를 운영하는 다른 사람들한테 실례가 될 수 있는 말이었다.
이들은 이들 나름대로 아둥바둥 열심히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는 거니까.
"여기는 빵도 아침마다 새로 굽는대요."
"..."
"지난번에 멤버들이랑 와서 포장해가지고 먹었는데 맛있더라고요."
"..."
"치즈도 계속 새로 만들어서 하는 거라는데 진짜 어디서 사서 쓰는 거 못지 않게..."
"말이..."
"네?"
"말이 되게 많은시네요. 생각보다."
"이름씨가 아무 말도 안하니까요."
"..."
계속 얼굴 보고 지낼 사이인데 아무 말도 안하고 지낼 수는 없잖아요.
김석진은 나를 향해 작게 웃어보였다.
영화를 찍는 동안 계속 얼굴을 보고 지낼 사이는 맞다만...
혀로 입술을 훔쳐내며 그가 들고 온 머그잔을 그러쥐었다. 따듯했다.
"거기 정자 사람 진짜 안오죠?"
"거기 안갔는데..."
"진짜? 왜요?"
"..."
그런 거 까지 일일히 말을 해야하나.
"어제는 미안했어요. 멤버들이 갑자기 달려들어서."
"알면 됐어요."
"이름씨 나한테 화났어요?"
"아니요."
"근데 왜 화난 것처럼 말을 해요?"
"대화 끝내려고요."
"왜?"
"..."
"여기는 기자도 없고 누가 사진 찍어가도 영화 미팅이라고 말하면 되는데."
사실 영화 찍는 거 자체가 지금 좀 불안하다 라고 말을 하면 뭐라고 하려나.
피해를 끼치기 전에 하차하는 것이 옳다 생각해서 그 생각 전하려고 왔다 그러면 뭐라 할까.
"안믿잖아요."
"뭘?"
"사람들이 그 말을."
"이름씨.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네."
"..."
"진짜 영화를 찍으면 그 해명이 말이 되는 거잖아요."
"진짜 영화를 찍으면 정말 스폰을 했다는 말이 될 수도 있죠."
"너무 복잡하게 생각한다. 무슨 볶음밥이에요?"
"..."
"영화 내용도 다 알고 있으면서."
"..."
"절대 이거 상업적 목적을 가지고 만든 영화는 아니거든요."
"..."
그냥 간단하게 생각해요. 간단하게.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서 좋겠네요. 라는 말이 입에서 계속 맴돌았다.
나이가 나보다 많은 걸로 알고 있는데 어쩜 생각은 저리 단순하게 할까.
부럽네. 입술을 잘근 깨물며 머그잔만 만지작거렸다.
"궁금하죠?"
"뭐가요?"
"내가 갑자기 이러는 이유."
아니라면 거짓말이지.
"영화 찍으면서 생각해봐요. 내가 왜 이럴까."
"굳이..."
"이런저런 생각 정리도 하고."
"...촬영하면서 생각 정리를 어떻게 해요?"
"아. 몰랐어요?"
"뭐를요?"
우리 영화 시골 내려가서 찍는 건데. 한 달 동안.
...
이건 또 무슨 소리야. 고개를 돌려 매니저 오빠에게 물어보려는 순간 딸랑 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일찍들 와있었네."
사진 속 주인공. 그리고 나를 이곳으로 불러온 사람 중 하나.
감독님이었다.
-
[암호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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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래번클로 틀틀이 7842 쉼표 아듀 우즈 블루문
참고로 여주와 석진이가 찍을 영화는
리틀 포레스트 입니다.
잔잔한 힐링 영화죠.
분량이 좀 짧은 거 같네요. 죄송합니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