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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랑이 전체글ll조회 609








* * *

이른 아침부터 가랑비가 대차게 내렸다. 난데없이 떨어져내리는 가랑비에 모두가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건만은, 학연 단 하나만이 갈 데 없이 장례식장 입구에서 서성거릴 뿐이었다. 축축히 젖어가는 어깨와 머리가 꼭 그 비의 무게마냥 학연의 어깨를 짓눌러왔다. 담배가 피고싶은 충동이 절실하게 담배를 필요로 하고 있었으나, 곧 가랑비에 젖어 사라질 불씨를 알기에 학연은 그 막연한 충동을 억지로 참고있을 뿐이었다.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갈까. 마악 그런 생각이 들 무렵의 이야기였다.


결국 주춤주춤 장례식장의 문 앞으로 다가선다. 이미 젖어버린 양복을 벗어 탈탈 털어내고서는, 이윽고 더 이상 털어내어도 물이 떨어져 나오지 않을 때쯤에 서야 학연은 다시금 제 양복을 제 몸에 꿰어입었다. 여전히 젖어있었지만 그나마 한결 무게감이 덜 하는듯 했다. 그제서야 학연은 느릿한 손길로, 제 양복 안주머니에 들어있던 담배를 꺼내었다. 딱 두개피가 남아있었다. 담배 한개피를 꺼내들어 입에 물고 주머니 속 라이터를 꺼내던 그 때,


"담배 피시나봐요."


다가왔다. 그 누군가가.


학연은 멀뚱히 서서 제 옆으로 다가오는 사내를 바라보았다. 저보다 조금 더 큰 키와, 넓은 어깨, 가지런하게 뒤로넘긴 갈색빛 머리. 상주, 혹은 상객이라고 보기엔 그 표정이 너무나 평온해보여 학연은 그가 이 장례식장의 직원쯤이나 될 것이라고-막연히 생각했다.


"죄송해요. 담배가 오늘따라 너무 피고싶어서."


짧게 건네는 학연의 사과에 사내는 낮게 웃으며 손을 저었다. 아니. 괜찮아요. 적당히 듣기좋은 목소리가 꼭 그 누군가와 닮아있었다. 학연은 그를 따라 어렴풋이 웃었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상객이에요?"


"어…아마 그렇겠죠?"


"그런데 왜 안들어가고 여기 계세요."


들어갈 수가 없어서요. 학연은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목울대가 남모르게 일렁였다. 눈동자 안으로 씁쓸하게 퍼지는 감정의 물결을 바라보다가, 사내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다만, 조용히 자신도 따라서 담배를 하나 꺼내들 뿐이었다. 학연은 가만가만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쪽도 담배 피는가보네요."


"핀 지 좀 오래됐어요. 여기 들어올 때부터 피우기 시작했으니까."



아마 한 5년쯤 됐겠죠. 사내는 제가 처음으로 이 곳에 들어왔던 때를 회상했다. 어둡고, 침침하고, 무겁다. 사내가 생각하는 본인의 모습이었다. 고이 놓여있는 영정사진을 보며 가슴 속 깊숙히 박혀있던 울음을 터뜨려내던 그 날. 사내는 처음으로 이 곳에 들어왔다. 참 좋은 사람이었는데. 사내는 씁쓸하게 웃었다. 학연 또한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이름이 뭐에요?"


"차학연이요."


차학연. 사내는 학연의 이름을 되뇌었다. 그러고서는,


"저는 이재환이에요."


하며 작게 웃어보였다. 학연은 그렇구나-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담배 연기가 가랑비 속으로 흩어져 꼭 안개같은 잔상을 만들어내었다.


"비가 참 많이 내리네요."



"그러게요."



이러면 새들이 날지를 못할텐데. 학연은 작게 중얼거렸다. 그 중얼거리는 이야기를 들으며 재환은 새들의 둥지를 떠올렸다. 하지만 새들은 둥지가 있으니까. 괜찮을거에요. 재환은 대답했고, 학연은 비에 잠긴 눈으로 흐르는 가랑비를 보고있을 뿐이었다. 학연의 목소리가, 담배 연기와 함께 흩어졌다.


"그런 새들 말고. 철새 말이에요."



"철새요?"



"철새들은 겨울에 떠나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비가 내리면, 비에 젖어서 날지 못할 것 같아서요."


푸드덕 거리며 날아가는 철새를 바라본 적이 있는가. 학연은 그 언젠가 자신이 보았던 철새의 모습을 떠올렸다. 무리지어 날아가던 철새들은 쉴 틈 없이 저들의 갈 곳을 찾아 날고, 또 날았다. 지금이면 다시금 그 철새들이 돌아왔다가, 날아갈 시기일텐데. 비가 온 탓에 철새들이 떠나지 못할 수도 있었다. 혹 날아가다 떨어질 수도 있는 처지였다. 이 가랑비가 그쳐야 할텐데. 학연은 생각했다.


"그러면 그칠 때까지 기다리면 되죠. 가랑비라 그렇게 오래 내리지 않을 거예요."


"그렇겠죠?"


학연은 조용히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한참을 웃다가, 큼, 큼, 하며 목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회상에 잠긴 눈. 그 아득한 눈동자는 어느 먼 곳의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삼년 됐어요. 사귄지."


"……."


"사귀는 동안 싸우고, 화내고, 울고…. 도저히 좋은 기억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을 것 같은데, 막상 헤어지니까 좋은 기억밖에 안남더라구요."


학연은 제 기억 속의 택운을 그렸다. 하얀 얼굴, 얇은 선, 저를 향해 웃어보이던 입술. 저와 함께 있을 때는 그렇게도 떠오르지 않던 그 얼굴이, 그 평온하고 온화하던 얼굴이, 이제사 이렇게 자꾸만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아마 학연이 철새이기 때문일 것이다. 더 이상 날지 못하는, 빗 속의 철새.


"그런데, 죽었대요."


"……."


"저랑 헤어지고나서 딱 일주일 뒤에 죽었다고, 누가 그러더라구요."


연락을 받고 허겁지겁 차를 몰던 제 모습이 그다지도 처량할 수가 없었다. 거의 다 태워진 담배 연기가 가랑비 속으로 사라져갔다.


"미운 놈. 못된 놈. 그렇게 욕을 하면서 달려왔는데, 들어갈 수가 없어서, 이렇게 그냥, 서성이고 있었어요."


"들어가면 되죠."


"미안해서요."


"뭐가요?"


"그냥. 모든게 다."


재환은 조용히 손을 뻗어 학연의 머리 위에 손을 턱, 올렸다. 가지런히 정돈되어있던 머리가 조용히 흩트러진다. 이제는 다 피워버린 담배를, 학연은 입에서 떼어내었다. 흙 속에 담배를 떨어뜨리고서 비비작 비비작, 검은 구두 하나가 무참히 담배를 짓이겼다. 


"학연씨."


"네?"


"철새들의 습성이 뭔지 알아요?"


학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둥지를 틀지 않는 거예요. 그렇게 말하면서 재환은 저도 따라 담배를 입에서 떼어냈다. 담배 연기가 뭉글뭉글 허공으로 피어오르다, 곧 흙 속으로 사라졌다.


"나랑, 사귈래요?"


"……."


"어쩌면 학연씨가, 철새가 아닐지도 모르잖아요."



가랑비가 내렸다. 어디선가 철새 하나가 날아와 둥지를 틀었다.



* * *


적는다던 하숙집은 안적고 갑자기 필받아서 휘갈긴 조각글.
원래 이런 분위기를 너무 사랑해서 한 번쯤 적어보고 싶었는데, 이제서야 적어보게 됐네요.
저는 헌정앨범 음원을 기다리며 이제 하숙집을 적으러 가는걸로..@.@!!!
설정된 작가 이미지가 없어요
대표 사진
독자1
헐 이게 무어예여 ㅠㅠㅠㅠㅠㅠㅠ 슬픔에 가득찬 학연이와 재환이의 뭔가모를...... 이 분위기 어쩔꺼예여 ㅜㅠㅠㅠㅠ
11년 전
대표 사진
딸랑이
그저 이런 분위기를 좋아해서 한 번 적어본 거였는데 이렇게 좋아해주시다니..감사해서 몸둘 바를 모르겠네요ㅠㅠㅠ읽어주셔서 감사하고 좋아해주셔서 또 감사합니다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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