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요! 이거 떨어뜨리셨어요!."
"헐, 대박 겁잘."
"네...?"
"엇, 아니에요. 지갑 주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다정스레 웃으며 말하는 남자가 나는 내 짝사랑의 열병을 앓게 할 남자인 줄 몰랐다. 스포티하게 각을 맞춰 떨어지는 후드티, 긴 다리에 맞게끔 핏이 떨어지는 스키니진 차림에 나는 입을 벌리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세상에, 우리 동네에 저렇게 잘생긴 남자가 있었어!!나는 한참 그 남자의 잔상을 잊지 못한 채 생활했으며 그가 내가 면접 보러 갈 카페의 사장이란 것은 뒤늦게 알았다. 그리고 그의 이름도 그 얼굴과 매우 찰떡이게 김상균이란 것도.
"네, 합격 되셨구요. 다음주부터 출근 나와주시면 돼요."
"감사합니다!"
김상균은 갓벽하다. 갓벽하다라는 말은 갓+완벽의 합성어로써 김상균을 위해 파생된 단어가 아닐까 싶었다. 높은 콧날, 도자기 같은 얼굴형 웃을때 심각하게 접히는 눈은 우리카페를 뒤집어 놓기에 충분했다. 안녕하세요 하고 물결을 붙인 음성 뒤 그가 카페 문을 넘을 때 알바를 보러 온 면접자들은 모두 함성을 질렀다. 그 우월한 핏을 감상할 시간도 잠시, 그는 우리가 애닳게 면접을 평가할 탁자에 곱게 앉았다. 그리곤 보통의 인간이라면 꽤 재수없을 만한 다리꼬기와 턱괴기를 하는데 그게 그렇게 빛나보일 수가. 뛰어난 외모와 부족하지 않은 스펙은 그의 모든 행동에 빛을 불어넣었다. 그도 그럴것이 젊은 나이에 학교를 조기 졸업하고 자기 사업에 대한 신념으로 개인 카페를 차린 것은 더더욱 그의 후광을 입증했다.
이쯤되면 뭐 하나 성격에 하자가 있다던가, 뭐 싸가지가 없다던가 했을텐데 그런것도 아니었다. 그는 늘 웃고 있었고 차분했으며 다정했다. 근데 그 다정함의 범위란 것이,
"아름씨, 오늘 내가 선약이 있어서 15분 일찍 미리 나가야 될 것 같은데 가게 단속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아, 네 사장님!! 저 대신...내일 혹시 시간 괜찮으시면..."
"제가 내일도 시간이 없을 예정이라서요."
특유의 서글서글한 다정 포인트를 놓치지 않고 웃으며 말한다. 시간이 없으면 그냥 없는 거지, 시간이 없을 예정은 무엇인가. 저건 그냥 나 너 마음에 안드니 한 번만 더 대쉬하면 실직이다 라는 것을 매우 우호적으로 말씀하신 것이 분명하다. 그러게 왜 철벽 칠 때도 다정하냐 이거다. 나는 아름씨의 거절을 듣고 내가 차인 것처럼 아픈 가슴을 여미었다. 여차하여 차라리 냉정하게 나 너 싫어 하고 단호하게 말해줬으면 모를까, 태생적으로 사람이 친절했던 김상균은 거절마저 오히려 광팬들의 추종을 불허했다. 혹시나 여자친구가 있냐고 물어 본 적이 있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그냥 김상균은 일 빼고 모든 것에 관심이 제로인 인간이었으며 사람들에게 딱 비즈니스만큼만 다정했다. 그의 핸드폰 연락 목록 가족(4)가 그것을 방증하는 듯 했다. 김상균은 누구와도 가까이 지내려 하지 않았으며 이따금 사업자들과 술을 마시거나 카페 사람들과 와인 한 잔을 기울이는 것이 친목의 전부였다.
"사장님은 연애 할 생각 없어요? 젊고, 잘생기셨고...."
"응, 없어요. 여주씨 할 일 없으면 여기 와서 케이크 맛 좀 볼래요?"
짤주머니를 쥐고 케이크 아이싱에서 눈도 안떼도 말한다. 너무 단호해서 단호박 죽 쪄먹는 줄 알았다. 일에 미친 인간을 꼬시는 것이 바람둥이 인간보다! 쑥맥인 인간보다! 더 어렵다고 했던가... 일과 사랑에 빠진 김상균을 꼬시는 건 하늘에 별따기라고 알바생들 사이에서 구전이 자자했다. 말 하지 않아도 알 것 같다. 나는 아름이와 이따금 커피를 마시며 김상균의 대시 차임에 삼삼한 위로를 전했다. 덕택에 나를 포함한 모든 여알바생들은 그를 바라보는 데 의의를 두었으며 여알바생들을 노리고 있던 남자 알바생들은 쓴 술잔을 기울였다.
"동한아, 절대로 안되겠지?"
"...응! 절대 네바네버 안돼."
10년 남사친과 고즈넉한 분위기에서 술 한 잔 까면서 씹을 안줏거리로는 역시 연애가 있을것이다. 포장마차에 엉덩이를 걸치고 술술 털어놨더니 김동한은 두 손을 모아 엑스자 표시를 그렸다. 그냥 포기하고 병나발이나 불어라 이 뜻이었다. 한숨이 나온다. 그 동안 알바생들이 까였던 수많은 역사를 회고하자니 눈에 희뿌연 것들이 방울방울 차오른다.김동한 이 개새낀 친구가 이렇게 힘들어 하고 있으면 등이나 토닥여줄 것이지 술기운에 눈물을 글썽이자 존나 미친 듯이 처웃는다. 김상규운...
"엉엉...나 김상균 포기 못해..."
"야 울지마 울지 말라고!! 울면 더 못생겼다고!!"
결국 그 날 동한이와 같이 술 10병을 불고 집안에 가서 그대로 고꾸라졌다. 나는 변기를 쥐고 그날의 설움들을 모두 게워냈다. 한 바탕 오바이트가 속 쓸어내리는데는 도움이 되었던지 긴장감 없이 침대에 몸을 붙였다. 그게 문제였다. 눈을 뜨고 일어나니 노란색 여명이 깃든 커튼이 따사롭게 나를 쬐었다. 까치가 된 머리를 쉴 새없이 손으로 부빈다. 날이 쓸데없이 따사롭고 매우 개운하다. 왜 그 옛날에 그런 소리 있잖은가. 잠을 잤는데 신체가 너무 개운할때는 반드시 의심해 봐야 한다고.
"미친, 지각이네????
지각을 의심해 봐야 한다고!! 나는 꽃이 그려진 이불을 황급히 걷었다. 말했던가. 일에 미친 김상균의 다정함이 누그러지는 딱 한 순간이 있었다. 실수를 해도 너그럽게 용서해주고, 선약이 있다하면 제가 무리해서라도 카페에 나올 정도로 온화로운 인간이었다. 그런 김상균이 딱 하나 용서할 수 없느 순간이 있었다. 나는 황급히 콤팩트를 내 얼굴에 던졌고 정성껏 발랐던 마스카라도 칠하는 둥 마는 둥 했다. 왜냐하면 김상균이 가장 싫어하는 순간이
"사장님, 죄송합니다!"
"지금 몇 시에요?"
..가장 싫어하는 순간이 지각이었기 때문이었다. 시부럴!
주방 식탁, 시계에서 눈도 떼지 않고 차가운 목소리가 쏟아졌다. 알바생들은 하나 같이 커피를 만들면서도 그 서릿발같은 목소리에 휘핑을 올리는 둥 마는 둥 했다. 스푼을 쥔 알바생들의 손이 벌벌벌 흔들렸다. 이미 오후 3시는 훌쩍 넘어가 버렸고, 다들 바쁘게 일하는데 나 혼자만 늦은 것이 너무 죄송하였다. 김상균이 그런 알바생들과 나의 눈치를 느꼈는지 입술을 꾹 물고 풀어진 목소리로 말했다.
"늦을 거면 저한테 문자나 전화로 미리 알렸어야죠."
"...죄송합니다."
"술을 마실거면 다음 날 지장 없게 조절을 하셨어야 하고요."
"..진짜..죄송합니다."
김상균은 말을 마친 뒤 그대로 케이크에 눈을 돌렸다. 그 눈돌아감과 동시에 잔뜩 숨을 움켜쥐고 있던 알바생들의 흉부가 내려가며 깊은 한숨을 뱉었다. 휴- 어찌나 겁을 잔뜩 집어먹었던지 남자나 여자나 성별을 막론하고 알바생들 얼굴에 식은땀이 몽골몽골 맺혔다. 나는 황급히 유니폼을 두르고 커피를 제조하기 시작했다. 김상균은 화난지 아닌지도 모르게 또 한 번 손님들에게 특유의 자상한 미소를 날리며 커피를 서빙했다. 남자 여자를 막론하고 날려대는 꽃미소에 여자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번호를 물어봤고 남자들은 부러움이 섞인 감탄사를 날렸다. 술기운 때문에 쓰린 속 때문인지 나의 불안함 때문인지 얼굴을 마구 찌푸려진다. 하기야,
"저기요, 진짜 잘생기셨어요."
"감사합니다."
이런 말을 듣는 것이 하루에 다반사니, 어찌 안 불안할 수 있겠는가!
제발 거 쓸데없이 아무한테나 그 눈웃음 날리지 맙시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저것이 관심이 아닌 태생적인 친절함에서 밴 미소란 것은 가게에 있는 손님들을 제외하고 알바생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나는 손님들에게 줄려고 타놨던 커피에서 몰래 얼음 하나를 꺼내 와드득 깨물어 먹었다. 시발, 시발, 시바알!! 김상균은 서빙을 마치고 화난 얼굴로 얼음을 깨물어 먹는 나와 눈이 마주쳤다. 공중에서 눈빛이 한 번 튀기자, 나는 황급히 눈을 돌렸고 김상균은 아무 말 없이 내 얼굴을 2초동안 바라보다가 다시 얼굴을 돌렸다.
"....."
미친, 뭐야 왜 쳐다보는 거지? 아직 화가 덜 풀렸나? 아니면 뭐 내가 방금 얼음 하나 꺼내서 먹었다고? 와 방금 진짜 냉한 얼굴로 날 쳐다보는데 그대로 무릎이 썰려서 당장이라도 무릎 꿇고 다시 한 번 사죄드릴 뻔 했다. 나는 벌렁벌렁하게 뛰던 가슴을 손으로 억누르고 다시 뒤를 돌았다. 그리곤 어물쩍하던 몸짓을 다시 가다듬고 눈에서 불이 나오도록 커피 제조를 했다. 원두 기계가 쉴새없이 돌아간다. 혹시라도 제 나태한 모습을 김상균이 또 좆같이 쳐다볼까봐 걱정된다. 아 속쓰려...
"수고하셨습니다!"
일을 끝 마치고 다들 허물을 벗듯 유니폼을 벗어 가지런히 개켰다. 김상균은 갈색 폴로 코트를 걸치고 두꺼운 검정색 크로스백을 매었다. 안그래도 잘생긴 얼굴에 사복까지 입으니 더 빛나는 기분이다. 나는 여전히 쓰린 속을 자력으로 달래며 가방을 맸다. 김상균과는 오후에의 냉전 때문에 눈 한 번 마주칠 수 없었다. 그래도 한 번은 웃어주시지..알바생들은 오늘 단체로 술을 마신다며 나 혼자 버스 정류장으로 쓰린 걸음을 옮겼다. 아 시발, 같이 갈 사람도 없고 진짜 하루종일 엉망이네. 한참 그렇게 아침의 흑역사를 다시 한 번 반추하며 버스 정류장에 서자, 누군가 뒤에서 검지손가락으로 나를 톡톡 쳤다.
"여주씨, 집에 가는 길이에요?"
"앗 사장님!"
김상균은 뭔지 모를 종이 컵홀더를 들고 또 특유의 웃음을 보여주었다. 나는 그 웃음 한 번에 아침의 냉전을 싸그리 잊고 또 헤벌쭉 치아를 보였다. 김상균은 누가 훔쳐갈 새라 품 안에 꼭 숨겨 놓았던 컵홀더를 내게 건넸다. 이게 뭔데 주시는 거지...?
"..꿀 물이에요. 계속 속이 안 좋아보이길래."
"다음에 지각하면 안 돼요, 아셨죠?"
유치원생을 어르는 듯한 목소리 톤과 나를 배려하는 다정한 말투. 와 미친, 김상균 개도랐다. 이 말뒤에는 반드시 땀 두개를 붙여야 완성된다. 그래야 김상균의 센스에 놀랐단 나의 감탄을 온전히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어리벙벙한 얼굴로 컵을 받아들었다. 방금 만들었는지 컵이 꽤 따끈했다. 감사의 인사를 하고자 허리를 90도로 푹 숙이자, 특유의 다정한 웃음이 입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김상균은 컵 홀더를 전해주고 금속 시계를 다시 한 번 힐끔했다. 핸드폰을 쳐다보지 않고 시계를 쳐다보는 모습에 나는 다시 한 번 그에게 반하고 말았다. 나와 같이 있을 시간이 없었는지 상균은 나에게 작별인사를 전했다.
"미안해요, 먼저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앗, 네 안녕히 가세요 사장님!"
상균은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158cm의 내 어깨와 시선이 맞도록 고개를 숙였다. 급격히 가까워지는 얼굴에 훅- 숨을 쉬는 세포들이 정지했다.
"후--"
"....?"
차가운 숨의 기운이 속눈썹을 지나친다. 그리곤 뭔가 하나가 빠져나간 듯이 개운해졌다. 그것의 발생지는 오후 내내 나를 텁텁하게 덮고 있던 속눈썹 뭉친 것들이었다. 어쩐지 시발 눈이 무겁더라니!! 아직도 김상균의 잘생긴 얼굴은 나와 30cm간격을 유지하고 있었다. 깜짝 놀라 발을 무르자, 그가 얼굴을 다시 원위치로 돌리며 말했다.
"...아까 눈썹 너무 뭉쳐있길래 신경 쓰여서. 미안해요. 잘 자고 내일 봐요."
+오랜만에 글을 써서 그런지 재미가 1도 없게 느껴집니다...봐주새오...
독자분 1명만 계셔도 이거 완결까지 끌고갈겁니당 짧게 끝낼거기 때무네!!
근데 아무도 안봐주실 것 같은 그런 느낌이어따.
죄송합니다 다신 연중없어요ㅠㅡㅠ
혹시 용국이 글때문에 신작알림 해놓으셨던 분은 죄송합니다ㅠㅠㅠ다시 쓰기에 혹시 몰입력이 떨어지실까봐 재연재가 쉽지 않네여...나중에 텍파로 가지고 오던지 완결해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신알신은 취소해주셔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