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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참한 사람들 

바니컷 

 

 

 

 

 

 

 

 

 

 

 

 

 

 

"형, 얼마나 남았어?" 

"세 병... 정도." 

"며칠 지나면 끝이겠네." 

 

 

 

민석은 고개를 두어번 끄덕였다. 둘의 시선은 자연스레 낡은 가죽 가방으로 향했다. 커다란 가방 속에 유리병 서너개와 마른 빵조각 몇 개가 굴러다녔다. 형제의 마지막 남은 식량이었다. 

 

 

 

"우리 이제 어떻게 해?" 

 

 

 

이미 피폐해진 어린 아이의 머릿속에 부정적인 말을 덧대여서는 안 된다. 하지만 희망적인 사실은 없다. 아홉살. 거짓말은 쉽게 알아챌 나이다. 민석은 울망이는 눈동자로 제 행동 하나하나를 붙잡듯 쫓는 이 핏덩이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입이 말랐다. 

 

 

 

"...형이 곧 구해올게, 넌 걱정마. 일단은 일어나. 오늘 잘 곳을 구해보자." 

"응... 형." 

 

 

 

 

 

 

 

전쟁이 발발했다. 여타 또래와 다름없이 학교를 다니며 공이나 차던 민석은 제대로 된 생각을 할 틈도 없이, 무리에 휩쓸려 펜 대신 총을 잡게 되었다. 총알받이나 다름 없던 학도병. 전선에서 앞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마구잡이로 총알을 쏘고, 시체를 마주하며, 그렇게 산으로, 들로. 가족과 생 이별한 채, 죽지못해 죽기위해 살던 날들의 연속. 운이 좋았던 것일까 나빴던 것일까. 민석은 성한 다리를 잃는 대신 그 생 지옥에서 남들보다 조금 더 빨리, 목숨을 부지한 채 살아서 나올 수 있었다. 

 

모양이라도 성히 붙어 있는게 고마운 걸까. 왼쪽 발목에 흉하게 패인채로 아문 상처를 더듬던 민석은 바지를 걷어 내렸다. 

 

 

 

"내가 들까 형?" 

"됐어 인마." 

 

 

 

민석은 씨익 웃으며 절룩이는 제 걸음걸이를 쳐다보는 동생의 머리를 두어번 쓸어주었다. 

 

 

 

 

 

 

민석이 겨우 고향에 도착했을 즈음엔 전쟁은 거의 끝나있었다. 하지만 목숨을 부지하고 고향에 도착했다는 것은 그에게 기쁨을 쥐어주지 못했다. 걸어도 걸어도 익숙함이라곤 보이지 않는, 폐허가 된 마을. 절름거리는 발걸음으로 다다른 집에 남아있는 것이라곤 지저분한 꼴을 한 채로 웅크려 있던 막냇동생 하나 뿐이었다. 

 

아버지는 이미 옛적에 돌아가셨다고 했다. 어머니와 여동생은 제가 도착하기 며칠 전, 승기를 잡은 채 들떠 돌아가던 적군에게 강제로 끌려갔다 했다. 어찌저찌 숨겨진 막내만이 살아 남은 것이라고. 딱해서 어찌하냐는 이웃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그 날 기억의 마지막이었다. 

 

 

 

반 즈음 실성해 덜덜 떠는 막내를 품에 안고 다 쓰러져가는 낡은 집터에서 소리없이 며칠을 울었다. 조국은 전쟁에 패했다. 아버지는 돌아가셨으며, 어머니와 누이는 생사를 알 수 없다. 그리고 자신은 절름발이가 되었다. 죽고 싶었다. 하지만 죽을 수도 없었다. 제가 책임져야하는 어린 핏덩이가 살아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났다. 여기저기 일거리를 찾아 떠돌아다니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몸이 성치 못한 민석을 받아주는 곳은 많치 않았다. 입 두개를 풀칠하기에도 턱없이 적은 급여. 그마저도 벌기 힘든 현실. 하지만 꿋꿋하게 버티며, 웃으며, 동생 손을 꽉 붙잡고 떠돌았다. 그나마 민석이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이 작은 온기였다. 매일을 풀린 눈으로 벙어리처럼 보내던 동생은 민석의 지극정성 덕에 이제 이전의 모습을 조금씩 되찾고 있었다. 

 

 

 

"여기서 좀 쉬자." 

 

 

 

얼기설기 천막이 쳐져있는 좁은 골목길에 걸음을 멈추며 형제는 지친 몸을 모포 한 장 안에 우겨넣었다. 오늘도 노숙이었다. 날이 따듯해서 망정이지, 겨울이라도 오면 노숙도 할 수 없다. 하루빨리 터를 잡고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돈이 없었다. 거리의 돈은 승전국의 사람들이 쥐고 있었다. 자신과 같은 패전국 출신의 사람들은 그들 밑에서 개같이 일하고 적은 돈을 받았다. 하물며 절름발이에게는...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 일거리를 잡으면 좋을텐데. 제 옆에 딱 붙어 마른 빵 조각을 우물거리는 동생의 뺨을 쓸어내리며, 민석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여기서 잠자코 기다려. 어디 돌아다녀선 안 된다." 

"알았어. 절대로 안 돌아다닐게." 

"혹여라도 누가, 먹을 거 준다고 해도 안 돼." 

"응응. 먹을 거도 장난감도 옷도 다 안 따라가." 

"착하다. 형 다녀올게." 

"...얼릉 와, 형." 

 

 

 

아이에게 물 한 병과 빵 하나를 품 안에 쥐어주고 모포를 잘 감싼 후 민석은 불안한 걸음을 떼었다. 간신히 잡은 일터에는 어린 아이를 데려갈 여건이 안 되었다. 동생을 곁에서 떼어놓고 싶지는 않았지만 , 며칠을 마른 빵 조각으로 끼니를 떼운 아이의 배를 더 곯게 할 수 는 없었으니까. 

 

 

 

민석은 높다란 담 뒤에 우뚝 솟아있는 큰 저택을 보며 눈을 꿈뻑였다. 어렵사리 구한 일은, 이 집 저 집의 쓰레기를 치우고 마당을 깨끗하게 하는 일이었다. 고된 일이었지만 패전국 출신의 제게 대문을 여는 집은 몇 없었기에 이것 자체가 민석에겐 감지덕지한 일이었다. 잘 부탁한다며 인자하게 웃는 안주인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곤 민석은 앞마당 구석에 세워진 빗자루를 집어들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매일 꼬박꼬박 지급되는 급여로 형제는 끼니 걱정을 덜 수 있었다. 패전국 출신을 제 종 부리듯 하는게 익숙한 사람들과는 달리 이 집 사람들은 친절했다. 제 아버지도 그들에게 죽임을 당했고, 어머니와 누이도 그들에게 끌려가 생사를 알 수 없었기에 승전국 사람들에게 심한 적대감을 가지고 있던 민석도 이 곳에서 만큼은 그런 속을 좀 누그러트리게 되었다. 

 

집 안의 쓰레기통을 비우며 떨어진 찌꺼기를 치우던 민석은 코를 문질렀다. 유난히 이 방은 향내가 진했다. 아마 이 집의 아들이 쓰는 방인듯 했다. 딱 한 번 마주쳤었지만, 스쳐 지나갔을 때에도 그에게 나른한 쟈스민 내가 났었으니까. 이 집 안주인을 닮아 꽤 곱게 생긴 그 도련님은 외모와는 다르게 차가운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방에서 처음 마주쳤을 때의 싸늘한 눈빛이 아직까지 생생했다.  

 

아마 제 부모님과 달리 제게 여타 다른 그 나라 사람들처럼 패전국 출신에게 냉소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는. 그러니까 그렇게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있었겠지. 

 

또래처럼 보였는데. 

 

사는 모습이 이렇게 다를 수도 있구나. 민석은 쓰레기 봉투를 질끈 묶으며 헛헛히 웃었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났다. 짧다면 짧다고, 길다면 길다고 느낄 이 시간동안 어느새 민석은 천천히 이 집의 일부가 되고 있었다. 쓰레기를 치우고, 마당을 쓸어내는 모습이 익숙해졌다. 

 

 

 

"얘, 루한. 이리 와보렴." 

 

 

 

이 집의 안주인은 지금처럼 가끔 마당에 나와, 그녀의 아들과 함께 정원을 구경하곤 했다. 옅게 미소 지으며 그의 어머니 곁으로 가는 모습이 참 고왔다. 아, 이름이 루한이구나. 마당에 쓸어진 잡초 더미를 치우며 민석은 중얼거렸다. 이름 예쁘네. 루한. 루한. 어울린다. 뭐, 알아봤자 그의 이름을 내 입에 둘 일은 전혀 없을 것이었지만. 

 

마당의 잡초를 치운 봉투들을 대문 근처에 모두 가져다 둔 후, 민석은 빗자루를 들고 뒷마당 쪽을 향했다. 그 때, 민석의 발치에 둔탁한 부딪힘이 느껴졌다. 

 

 

 

"...지갑?" 

 

 

 

꽤 고급스러운 가죽 재질의 지갑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저와 같은 고용인은 아닐 것이고, 아마 이 집안 누군가의 물건임에 틀림 없었다. 아, 주워서 어디다 가져다 드려야 할까. 별 생각없이 팔을 뻗던 민석은 순간 드는 생각에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보는 사람이 없어. 민석은 일단 지갑을 주어들었다. 그리고 품 안에 집어넣은 채 뒤를 돌아보았다. 안주인과 루한은 꽃을 구경하는 데에 온 시선을 두고 있었다. 민석은 걸음을 빨리 했다. 구석으로, 좀 더 구석으로. 어느새 뛰다시피 발을 질질 끌며 들어간 정원 나무 아래에서 펼쳐본, 세련되게 가공된 가죽 안에는 상당한 액수의 지폐가 들어있었다. 

 

이거라면. 

 

적어도 동생과 내가 묵을만한 작은 방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몰라. 그게 안 된다 하더라도 당장에 배를 곯지 않아도 돼. 나름의 행운인 것일까? 이 지갑을 떨어트리고 간 주인집 사람은 정도 돈이 없더라도 큰 타격이 없을 것일텐데. 하지만 난 다르다. 당장의 생활이 바뀔 수 있는 돈...  

 

그래. 괜찮아, 괜찮아. 이건 날 위해 행운의 여신이 주고 간 선물인 거야. 민석은 속으로 합리화를 시키며 덜덜 떨리는 손으로 바지 주머니에 지갑을 쑤셔넣었다. 그 때였다. 

 

 

 

"뭐 해, 너?" 

"...!" 

 

 

 

누군가가 주머니 속에 지갑을 넣고 있던 민석의 오른쪽 팔목을 잡아챘다. 뒤에서 끼치는 익숙한 냄새. 나른한 자스민 향. 

 

 

 

"나 참..." 

"도... 도련님." 

"불쌍한 거지를 집에 들여줬는데." 

"그러니까, 이건, 그게..." 

"거지가 아니라 도둑이었나." 

 

 

 

민석은 굳은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경직된 안면이, 흔들리는 동공이 담아낸 것은, 예상대로 루한이었다. 

 

 

 

 

 

 

 

 

 

 

 

 

 

 

 

 

 

 

 

 

 

 

 

 

상중하로 이루어진 단편입니다. 여기서 민석과 루한의 나라는 한국과 중국이 아닌 제가 임의로 지어낸 제3의 국가에요. 시대 배경은 근대 정도를 떠올리면 되실듯.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_^
설정된 작가 이미지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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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헐....대박 짱잼 내스탈 살앙해여 으앙 으엉ㅇ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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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2
헉 작가님 브금 평소에 되게 좋아하던곡인데 역시 이런전쟁물이랑 잘 어울리는거 같아요 ㅠㅠ
루한이랑 민석이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궁금하네요 잘 읽었습니다 신알신하고가요!!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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