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Cloud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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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언니가 죽었다. 먼 타지에서 죽음을 택한 언니였다. 정말 많은 이들이 언니의 죽음을 애도 하고 있다. 내 눈 앞에 보이는 언니의 웃고 있는 영정 사진. 이렇게 환히 웃고 있으면서 대체 왜... 내게 다가온 한 외국인은 언니의 친구냐고 물어왔다. 장소가 외국인 만큼 언니의 한국 이름을 불러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언니의 다른 이름을 부르며 흐느끼는 소리가 귀에 맴돈다. 귀를 막고, 눈을 감아도 벗어날 수가 없다. 쓰고 있던 모자를 더 푹 눌러 쓰고는 장례식장에서 나왔다. 떨어지는 눈물을 억척스럽게 쓸어 내렸다. 울컥하는 게 마음에 얹혀 숨조차 쉬기 어려웠다. "...전세희 나쁜 년." 주먹을 꽉 쥐었다. 더 울지 않으려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힘이 들어갈 수록 눈물은 내 눈 앞을 가리기만 했다. 눈 앞에 보이는 택시를 아무 거나 잡았다. 그리고는 주소가 적힌 쪽지를 기사에게 건냈다. 돈이 꽤 나올 거라는 기사의 말이었다. 언니가 죽기 전, 언니에게 마지막으로 온 메일에 적힌 주소가 적힌 쪽지였다. 돈 따위는 신경 쓸 겨를 없이 택시의 유리에 기대 눈을 감았다. 나는 앞으로 일어날 일은 한 치 앞도 모른 채, 길을 나섰다. 나는 아직도 궁금하다. 언니는 왜 내게 언니의 남자친구를 잘 부탁한다고 했을까. - 기사가 날 흔들어 깨웠다. 바보 같이 자면서도 흐르는 눈물을 얼른 닦아 냈다. 내게 매우 비싼 값을 부르는 기사였다. 그 정도의 액수가 나올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가방에서 아무렇게나 돈 뭉치를 꺼내서 건내주고 택시에서 내렸다. 도착하는 동안 어느새 밤이 되버렸고, 어둠 밖에 남지 않은 이 곳은 더욱 화려했다. 결코 담백하지 못한 거리. 여기 저기서 눈을 피곤하게 만드는 조명하며, 여러 음악이 섞인 채로 시끄러운 거리였다. 지금 껏 이런 곳에서 산 걸까. 머리가 지끈 거렸다. "한국에서는 잘만 있었으면서.." 머리를 한 번 넘기고, 주소에 적힌 집을 찾기 시작했다. 폰으로 보는 지도에, 자꾸만 전화가 걸려왔다. 이미 쌓인 메세지와 부재중 전화들. 그 모든 발신인은 나와 같은 쌍둥이이자, 동생인 '전정국' 이었다. '전화 받아.' 자꾸만 울리는 전화기에 아예 전원을 꺼버렸다. 다 진절머리가 난다. 전정국은 지금 쯤 장례식장 주변 호텔에 있겠지. 한국에 계신 부모님께는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할까. 언니가 죽었어요. 우울증 이었대요. 너무 형식적이다. 세희 언니가 하늘로 갔어요. 그 동안 힘들었대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뭐가 그리 부족해서 힘들었는데. 유명하신 기업인 아버지에, 명성이 높으신 교수인 어머니. 화목한 집안 아래에서 어려움 없이 사랑만 받으며 자란 세쌍둥이의 맏언니. 미국으로 유학을 가고, 미국에서조차 1등을 놓치지 않은 엄친딸. 성격과 인물마저 훤하여, 항상 빛만 받으며 살아온 딸. 그런 딸이 대체 왜 우울증에 걸리고, 자살을 했을까. "대체 왜 나만 두고 가는데..." 결국 주저 앉았다. 눈물이 다시 터져 나왔고, 어린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나한테 조차 힘들다는 한 마디도 안 해놓고, 이렇게 가버리면 끝이냐고. 서러웠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것은 참으로 고통스러웠다. 지나가는 술에 취한 이들도 나를 건들지 않았다. 아마도 울면서 소리 치는 내가 건들면 안되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Halo."그래. 넌 날 건들면 안됐다.
Blue Cloud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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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방에 있는 모든 물건을 던지고, 울고, 소리 치고, 모든 난리를 칠 때까지 내게 인사를 건냈던 남자는 내 옆을 지켰다. 모자를 벗어 내팽겨칠 때는 다시 그 큰 모자로 내게서 하늘을 가렸다. 마음 껏 울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어느 정도 울음이 그치자, 자리를 잃고 뒹굴던 물건들을 가방에 다시 넣고는 내게 건내는 남자였다. "이제 괜찮아요?" 충혈된 눈으로 남자를 쳐다 보았다. 부드러운 미소를 입가에 띄우며, 나를 보고 있는 남자. 나는 거칠게 남자에게서 가방을 빼들었다. 바닥에서 일어나서, 그대로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한국말 따위는 듣기 싫었다. 아니, 그냥 아무 것도 듣기 싫었다. "어디까지 가요. 데려다 줄게요." 집요하게 따라오며 말을 거는 남자였다. 짜증이 났다. 미국에서 울며 난리치는 한국인을 처음 봐서 신기해서 따라오는 걸까. 누구의 호의를 받을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내가 우뚝 서니, 나를 따라 서는 남자였다. "여기 위험한 데에요. 특히 동양인 여자 혼자서는." "신경 꺼요." "아, 제 이름은 V에요. 한국 이름은 김태형 이고요." 나는 남자를 노려 보았다. 가라고요. 내 말에도 남자는 끄덕도 하지 않았다. 그저 퉁퉁 부은 내 눈을 응시할 뿐이었다. "... ..." 이상하게 눈 마주치는 기분이 참 더러웠다. 모든 것이 꺼림칙한 남자였다. 그런 남자를 무시하고, 겨우 주소에 적힌 집을 찾고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 "... ..." "들어와요." 자연스레 집 문을 따는 김태형 이라는 남자는, "나 찾아온 거 잖아요." 언니의 남자친구 였다. - 집 안은 난장판이었다. 아무렇지 않게 널브러진 옷들과 이불. 치워지지 않은 상들과 식탁. 내가 알던 언니의 모습이 아니었다. 대체 어떻게 살았던 걸까. "자주 왔어야 했는데.." 항상 영상 통화로는 웃고만 있던 언니였다. 실상은 이리도 끔찍했나. 보이지 않았던 영상의 밑편은 이리도 어두웠는가. 눈을 질끈 감고, 숨을 정리했다. 이미 퉁퉁 부은 눈이 아릿거렸다. 다른 한 쪽에 나열된 액자 사이로 익숙한 언니 모습이 보였다. 잘 웃는 언니답게 사진에서도 활짝 웃고 있었다. 뒤에서 날 지켜보는 저 김태형 이라는 남자와 함께. "한 잔 해요." 내게 차가운 커피를 건내는 김태형 이었다. 집 안을 살피니, 줄곧 저 남자와 함께 산 듯 싶었다. 아까 내 가방을 챙겨주던 모습과 달리, 집 안은 지저분 했다. "저 따뜻한 것만 먹어요." 좀처럼 김태형은 내게 커피를 건낸 손을 거둬가지 않았다. "따뜻한 거 안 먹잖아요." 김태형은 마치 나를 잘 안다는 듯 말했다. 처음 보는 사이면서. 나는 어렸을 때부터 마시는 건 다 따뜻하게 먹었다. 들고 있던 액자를 내려 놓고, 다시 한 번 거절했다. 찬 거 저랑 안 맞아서 안 먹어요. 내 말에 김태형은 아무 말 없이 부엌으로 가, 커피를 버렸다. 그리고는 입을 다문 채, 다시 커피를 타기 시작했다. "언니랑 같이 살았던 건가요. 가족들은 몰랐는데." "세희가 같이 살자고 해서요." "언니가요?" 의외였다. 언니가 먼저 동거를 하자고 할 성격 이었던가. 내가 알던 전세희가 맞는 걸까. 자꾸만 낯설게 느껴지는 언니의 흔적에 더 이상 생각하길 포기하고 소파로 가 앉았다. "눈치 채셨겠지만 전세희 쌍둥이 동생, 전세이 입니다." 김태형은 아무런 대답도 않고, 그저 상에다가 김이 나는 따뜻한 커피와, "이란성 쌍둥이에요." 얼음이 가득 가득 그릇을 건내었다. 따뜻한 커피와 얼음. 분명 찬 걸 안 먹는다고 말했는데도 내게 건내었다. 기분이 불쾌 해졌다. 즐겨 마시던 커피에도 눈길 하나 주지 않았다. "언니 장례식장에 왜 안 왔어요." "세희가 바라지 않았어요." 바라지 않았다니. 죽을 걸 알고 있었다는 걸까. "언니가 이럴 줄 알고 있었어요?" "글쎄요." 그를 보는 눈에 힘이 들어갔다. 힘을 뺄 생각도 없었다. 날카로운 눈빛이 곧게 그를 향해도 그의 눈빛을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우울증 이었잖아요." "언니는 원래 안 그랬어요." "사람이 너무 힘들면, 사람이 바뀌어요. 잘 알 거 같은데." 그는 내 눈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즐기는 듯 싶었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말투며, 대하는 행동이며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언니가 줄곧 저런 사람과 있었다니. 언니를 챙기지 못했다는 자책이 분노와 함께 일어 올랐다. "하나만 묻죠." 언니를 사랑하긴 했어요? 저런 눈에서 사랑이 나올 수나 있을까. 전혀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다. 가까이 하고 싶지도 않은 사람인데, 언니가 저런 사람과 같이 살기까지 했다니. 이해가 가질 않았다. 내가 알던 언니는 김태형과 사랑에 빠질 수 없었다. "세희는 날 사랑했어요." 난 김태형 당신을 물었다. 당신은 전세희를 사랑했냐고. 왜 김태형의 입에서는 언니의 마음이 나오는 걸까. 더 물으려는 내 말은 자리에서 일어난 김태형에 의해 막혔다. "자고 가요." 욕실로 들어가버린 김태형의 뒷모습 이었다.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헝클었다. 기분만 상할 대로 상한 기분. 지고 이길 문제가 아닌데 완전히 진 거 같은 비참한 기분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김태형이 들어가고, 들리는 물 소리만이 집을 가득 채웠다. 자꾸만 김이 식어 버린 커피와 조금씩 녹아서 제 본체인 물을 내보이는 얼음이 눈에 띄었다. 도대체 이 얼음은 뭘까 커피에 얼음이 들어가봤자, 다 녹고 말 텐데 말이다. 꼭 깊숙한 미로에 빠진 기분이었다. 김태형이 가르킨 방에 들어가 보니, 방 안은 깨끗했다. 사실 정돈이 잘됐다기 보다는 깨끗할 수 밖에 없는 거 같다. 방 안에 든 것이 별로 없다. 벽지는 연한 하늘색에 하얀 구름들이 그려져 있다. 이 곳은 하늘인가. 난 지금 완전히 밑바닥을 치고 있는데. "아, 편하다." 침대에 뻗어 버렸다. 침대는 정말 구름 위에 있는 거처럼 폭신했다. 눈을 감았다. 이렇게라도 구름 위에 있어봐야 겠다. 이내 눈에서는 눈물이 참지 못하고 삐져 나온다. 이 곳이 하늘이라면, 언니한테도 데려가주면 좋을 텐데. 내 한숨이 내 위로 둥실 떠올라가 먹구름을 만든다. 내 위로 천둥이 치고, 결코 짧지 않은 소나기를 내린다. 그래서 그렇다. 이 침대가 젖어 가는 건, 내 눈물이 아니라 이 비다. 결코 끝나지 않을 거 같은 이 비. 장마의 시작인 걸까. 나는 장마가 아닌 들이닥칠 폭풍우의 시작이라는 걸 몰랐다. - "..아.." 방에서 나왔다. 그러자 마주친 김태형이었다. 아직 채 마르지 않은 머리를 수건으로 털고 있었다. 흰 반팔은 방금 씻고 나온 걸 말해주듯이 곳곳에 그의 살결을 비추고 있었다. 물기가 어려 있는 그를 똑바로 마주할 수 없어, 먼저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럼에도 내 옆 얼굴에 꽂힌 그의 시선이 거둬지지 않았다. "거기서 뭐해요." 그의 말에 다시 그를 마주했다. 입술이 바짝 말라왔다. 씻으려고요. 아무렇지 않은 척 그를 지나, 화장실로 향했지만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화장실 문을 닫기 전, 그의 손이 문 틈 새로 들어왔다. 놀란 내가 뭐하냐는 거냐 묻자, 그는 태연한 얼굴로 화장실로 들어왔다. "칫솔 이거 써요. 수건은 여기가 둘게요." 새 수건과 새 칫솔을 주었다. 너무 예민하게 반응한 것이 무안해질 만큼 그는 용무가 끝나자, 바로 뒤돌아 나갔다. 아직 다 날라가지 않은 수증기 때문일까, 몸이 후끈했다. 얼른 문을 닫으려는 새로, 이미 다 녹아버린 얼음과 식은 커피를 버리는 김태형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닫기 직전, 뒤돌은 그와 시선이 맞닿았다. 쿵- 문을 닫고서도 소리는 계속 되었다. 심장에서 내는 쿵쿵 대는 소리를 숨기려, 얼른 물을 틀었다. 차가운 물로 식혀 보아도, 여전히 열은 가시지 않았다. 난 그렇게 한참을 차가운 샤워기 밑에서 있어야 했다.-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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