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골목 06
꿈결같아서 멍한 표정으로 구급차의 끝에 기대 앉아 있었다. 수갑이 채워진 채로 연행되는 흉악범을 보면 꿈이 아니라는 것 쯤은 알 수 있었다. 놈에게 잡힌 갈비뼈 쪽에 통증도 생생히 느껴졌다. 그가 있었다는 자국들이 이렇게나 선명했으나 믿기질 않았다. 신기루같았다. 건드리면 사라지는.
대충 상황 정리는 끝낸 황경감이 수고했다며 내 어깰 두드렸다. 뒤늦게 도착한 그들은 녀석을 보지 못 했다. 날 덮친 놈을 제압한 녀석은 몇 분 간 말 없이 내 눈을 바라보더니 많은 발자국 소리가 가까이 다가오자 사라져 버렸다. 자기가 영화에 나오는 히어로라도 되는 줄 아나. 괜히 애꿎은 입술만 물어 뜯었다. 배어 나오는 피가 비렸다.
인상을 쓴 채로 그 흉악범과 대치하고 있었으니 황경감은 당연히 나를 구급차에 태워보냈다. 갈비뼈에서 느껴지던 통증은 이제 거슬리지 않았다. 차가 이동하는 내내 피곤함이 밀려왔다. 그렇다고 눈을 감기엔.
방금 전 불현듯 나타난 놈의 얼굴이 아른 거렸다.
새벽의 응급실은 앓는 소리로 가득했다. 그 소리 위로는 분주함이 덮여 있었다. 소독약 냄새가 다 부서져 쓸만한 물건이라곤 하나 없는 우리집을 연상시켰다. 사람을 살리는 알코올이나 망치는 알코올이나 내 코엔 별반 다르지 않았다. 멍하게 있는 내게 간호사가 자길 따라오라며 손짓했다.
“영수증 주세요.”
제대로 된 진료를 받지도 않은 것 같은데 많은 금액이 나왔다. 들고 가서 청구해야지 별 수 있나. 갈비뼈의 통증은 금이 가서 그런 거랬다. 갈비뼈는 깁스도 못 하니까 자연 치유를 해야한다고. 가급적이면 잘 움직이지도 말고 몸도 많이 쓰지 말라는 내가 절대 지킬 수 없는 말을 하는 의사였다. 대충 알겠다며 고갤 끄덕였다.
약을 받아들고는 영수증을 훓었다.
“무슨 주사가 이렇게 비싸."
주사 한 대 맞았다고 병원비에 숫자 하나는 더 달렸다. 쓸데 없이 열심히 일했다. 월급이 오르는 것도 아닌데. 병원 밖을 나오며 흡연 구역을 찾았다. 보통 병원 밖에 있던데. 뒷주머니를 뒤적였다. 그러고보니 담배가 없다. 병원 편의점으로 방향을 바꿨다. 담배 한 갑과 라이터 하나를 계산하고 나올 때였다.
“하, 진짜.”
밖으로 나오는 날 주시한 상태로 목을 좌우로 돌리며 내게로 왔다. 조금 전 날 두고 영웅 놀이하던 영웅께서. 그러더니 내 담배를 채갔다.
“미쳤어?”
제멋대로인 행동에 언성을 높였다. 몸에 힘을 주자 갈비뼈가 뻐근했다. 의사말대로 다치긴 한 모양이다.
“너야말로 미쳤어?”
영웅이 날 보며 인상을 구겼다. 아주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얼굴을 하고서. 얘는 나한테 무슨 불만이 이렇게 많은 건지. 차 수리비는 줄테니 더 이상 나타나지 말라고 입을 여는 순간 손에 따뜻한 게 쥐여졌다. 손을 보자 비타민 음료 하나가 안에 들어와 있었다.
“바꿔. 담배랑.”
나는 호의에 익숙하지 않았다. 내게 호의를 베푸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고 부담스러웠다. 호의를 받았으면 그에 상응하는 보답을 해야할 텐데 내겐 그럴 돈도 따뜻한 마음씨도 없었다. 그래서 항상.
“필요 없어.”
거절했다. 나의 거절 의사를 들은 자들은 보통 포기했다. 더러는 악담을 남기는 자들도 있었다. 평생 그렇게 살다가는 죽을 때까지 혼자일 거라며. 그들이 틀렸다. 난 원래 혼자라 그런 건 악담 축에도 끼지 못했다.
“어디 다쳤는데.”
꽤나 다정함이 묻은 말투로 내게 물었다. 약봉지를 보고 짐작했을 것이다. 놈이 한 발짝 가까이 다가왔다. 보폭 사이로 향수 냄새와 담배 냄새가 풍겨왔다. 값싼 담배 냄새. 비흡연자인 놈에게 담배 냄새가 났다. 내게서 나는 담배 냄새와는 어딘 가 달랐다. 어디선가 맡아본 적 있는 냄새였다. 왜 너한테 이런 냄새가 나. 느낌이 이상했다.
“너.”
가까이 오는 놈을 피해 뒤로 물러났다. 내 목소리에 놈이 걸음을 세웠다. 다가오지 말라는 내 뜻을 알아채 다행이었다. 내 앞에서 깜빡이는 눈동자가 지나치게 부담스러웠다. 어딘가 빛나 보여서. 빛나는 눈동자를 지녔으나 왠지 모르게 걸리는 데가 있다.
“너 뭐야.”
질문을 던졌다. 절대 답을 하지 못할 질문. 사실은 내가 답을 듣고 싶지 않은 질문.
“나도 같은 질문 하려고.”
놈이 다시 내 쪽을 향해 걸어왔다.
“너 뭐야.”
내게로 던져진 질문이다. 그래, 뭘까.
뒷골목 06
“해외에서 건 전화래요. 그래서 정확한 추적은 불가능하다고.”
불어터진 짜장면을 비비며 박지민이 말했다. 그 때 전화. 까맣게 잊고 있었던 일이다. 내게 걸려오는 서의 전화는 일부러 받지 않았다. 혹시 그 놈이 수리비를 청구하는 전화를 걸까 싶어서. 이후로 신경 쓰이는 일도 없었고 그냥 넘어갔다. 내 몫의 짜장면 그릇 비닐을 벗겼다. 면들이 끼리끼리 들러붙어 떨어지질 않았다. 요즘같이 예민한 날엔 이런 별 거에도 짜증이 치밀어 오른다.
조용하던 서 내가 소란스러워졌다. 교통과가 순찰을 마치고 서 안으로 들어왔다. 다들 신경이 곤두 서있었다. 몇 명은 날 한껏 째려봤다. 그들의 시선을 맞닥뜨리는 날이면 부친이 밖을 나간 날이다. 오늘도 따가운 시선을 아무렇지 않게 넘겼다.
“진짜. 한두 번도 아니고. 대체.”
아직 어린 티가 나는 순경이 투덜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몇 달 전 다른 서에서 온 순경이었다. 오밀조밀한 이목구비와 아담한 체구가 남자들의 눈길을 마구 끌었다. 오고 나서 한 동안은 저 아이의 이름이 서 내에서 안 들리는 날이 없었다. 성민영. 내가 이름을 외울 지경이면 그 유명세는 알아줘야했다. 성민영의 뒤로 교통과 동료들이 나를 보며 한 마디 씩 더했다.
“딸이 경찰이면 좀 단속을 잘하던가.”
“부끄럽지도 않나?”
“흉악범 잡기 전에 자기 아버지부터 잡으라 그래.”
별 다른 내용 없는 말들을 지껄였다. 이왕이면 좀 새로운 소재로 뒷담했으면. 관심이라도 가져 보게. 교통과 사람들은 특히 나를 싫어했다. 허구한 날 술에 쩔은 부친이 밖에서 진상 짓을 해댔기 때문에. 밤이고 낮이고 부친은 주정을 부렸다. 안에서 물건을 깨부수고 악을 쓰는 건 나은 편이었다. 밖에 나가서 남들에게 시비를 붙이고 싸움판을 벌이고 도로에 뛰어들어 난장판을 만드는 것보다야.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교통과 계장님이 내 사정을 헤아려주시는 점이었다. 딱히 접점은 없는 사이라 왜 그런지는 잘 모른다. 그저 동정심에서 나오는 배려일 거라 생각한다. 부친이 저 유치장엔 들어가지 않도록 편의를 봐주거나 벌금을 낮게 책정해주는 선의를 베풀었다. 그 선의도 이제 한계에 이른 모양이지만.
“이제 나도 더 이상 봐줄 수가 없다. 그냥 내고 와.”
벌금이 무려 15만원이었다. 썩을. 맛이라곤 하나도 없어 보이는 짜장면을 두고 일어났다. 이럴 거면 시키질 말 걸 그랬다. 존나 아까워.
황경감에게 받은 외출 허가는 두 시간 짜리였다. 한 시간 이상 외출을 내어주는 법이 없는 사람이 오늘은 시간을 넉넉히 줬다. 예전에는 한 시간 안에 해결하는 것도 버거웠으나 이젠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오랜만에 나온 시내이긴 했으나 볼 일도 없었다. 외출 시간을 줘봤자 어차피 사용하지도 못 한다.
시간을 확인하려고 핸드폰을 보았다. 보이라는 시계는 안 보이고 화면에는 익숙해진 번호 11자리가 띄워져 있다. 통화 거절 버튼에 손가락을 댔다. 그런데.
- 어.
난데 없이 놈의 목소리가 들렸다. 잘못 눌렀다. 빌어 먹을.
- 끊으면 수리비 두 배.
몇 번 만난 적도 없는 놈은 내 약점을 잘 알았다. 돈 얘기를 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전화를 받았다. 놈이 음성이 귓전을 울렸다.
- 마지막으로. 밥 한 번만 먹자.
의도를 알 수 없는 말이 들려온다. 볼수록 속을 알 수 없는 놈이다. 그냥 전화를 끊어버릴 참이었다.
- 먹어주면 수리비는 없던 걸로 할게.
종료 버튼을 누르려던 손이 멈칫했다.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지만 딱히 놈의 얼굴을 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 내 인생에 더 이상 들여서는 안 되는 부류였다.
“됐고. 계좌 번호나 문자로 남겨.”
- 한 번만 보면 귀찮게 안 할게.
어딘가 모르게 다급한 목소리였다. 내가 아는 놈답지 않게.
뒷골목 06
“너 약은 제대로 먹는 거야?”
놈이 나를 만나자마자 내뱉은 말이다. 실소가 터져나왔다. 웃느라 몸에 힘을 주자 갈비뼈 부근이 뻐근했다. 인상을 구겼다. 놈이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그러고는 잔소리를 해댔다. 깁스도 못 하는 부분을 다쳤으면 몸을 사리고 다녀야 한다며. 밖으로 다니지 말고 경찰서 안에서만 일하라며. 약도 제 때 챙겨 먹어야 빨리 낫는다고. 밥도 제대로 먹고 다니라고. 특유의 싸가지라곤 밥 말아 먹은 말투로 답지 않은 소리를 하는 게 나쁘지 않았다. 괜히 앞에 놓인 파스타를 뒤적였다.
“뭐야. 많이 아파?"
놈이 내 안색을 천천히 살피며 물었다. 갑자기 의문을 표하며 꼬리를 내리는 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왜 그러냐는 의미를 담은 눈으로 놈을 쳐다봤다.
“평소같았으면 닥치라면서 뛰쳐나가야 정상인데. 가만히 있길래.”
진짜 많이 아픈 거냐고 연신 물어왔다. 입술 사이로 웃음이 샜다. 그 눈동자로 물어오는 게 참.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솟았다. 눈길을 아래로 내려버렸다. 바닥에 고개를 박은 채 입을 열었다.
“난.”
고작 한 글자를 밖으로 내놨을 뿐인데 목이 메였다. 대체 왜.
“전화 왔어.”
놈의 담담한 목소리가 울려왔다. 아이를 맡겼던 친구의 전화였다. 아이가 시설에 인도되려면 시간이 조금 더 필요했다.
“응."
야. 이주아. 진짜 미안한데 나 이 애 못 봐줄 것 같다. 급하게 출장이 잡혔어. 제주도. 내일 당장 가야하는데 어떡하냐.
“아냐. 내가 더 미안하지. 오늘 저녁에 퇴근하고 데리러 갈게.”
아무렇지 않은 척 답했다. 당장 아이를 어디서 재울 지 막막했음에도 불구하고. 머리가 지끈 거렸다. 다른 동료들에게 맡기기엔 마땅한 사람이 없었다. 만만한 게 박지민이었지만 지민은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처지였다. 그 집에 애를 재울 수 있는 공간이 있을 리가.
“김기환 딸. 맞아?”
놈이 물었다. 그 이름을 정확하게 알 수가 있나. 언론에는 가명으로 보도되었다. 의아한 기색을 드러냈다.
“소문 다 퍼졌는데. 깡패 새끼 자살했다고.”
아, 소문.
“김기환 아내가 불 지른 것도.”
놈은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난 일을 말하는 것처럼 감정 하나 안 실린 말투로 말했다. 왠지 모를 싸한 기운이 올라왔다.
“그 딸을 왜 네가 맡아.”
“맡아줄 친척을 찾았는데 없어서 시설에 보낼 절차를 밟는 중이라. 그 때까지만.”
통화 내용이 다 들렸나 보다. 나가서 받을 걸 그랬다. 분위기가 살짝 변했다.
“곤란하면 내가 맡을까.”
또 그 빌어먹을 눈동자가 날 보고있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반짝이는 눈동자가. 이상하게 믿음을 줬다. 근거도 없이.
그래도 어린 여자 아이를 잘 알지도 못 하는 사람에게 맡길 수는 없었다. 게다가 놈은 남자가 아닌가. 한참을 고민하는 내게 놈이 말했다.
“우리 여동생한테 부탁할까.”
이 식사를 마지막으로 관계를 끝내려한 건 무산되었다. 친구가 한 명 밖에 없는 내 좁은 인간 관계를 욕해야지 별 수 있나. 놈의 여동생은 방이 두 개나 딸린 집에서 혼자 산다고 했다. 결국 여동생에게 아이를 맡기기로 했다.
여동생이라는 자는 멀리서 봐도 눈에 띠는 화려한 외모였다. 걸치고 있는 장신구들도 커다란 것들이다.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놈을 오빠라고 부르며 웃어댔다. 놈의 표정이 달갑지 않아보였다면 착각일까. 내게도 미소를 보여주는 그 동생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몸을 아래로 하자 입고 있던 청자켓의 단추가 떨어져 나갔다. 옷에 하나 남은 단추였는데.
색이 바래진 단추를 여동생이 주워서는 내게 건네주었다. 단추를 잡은 모양새가 더러운 물건을 집는 듯했다. 미간도 살짝 좁아진 게.
남매가 쌍으로 싸가지가 없었다.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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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가렸는데도 누군지 딱 알겠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