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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식사 자리는 냉기가 가득했다. 앞에서 익는 먹음직스런 냄새를 풍기며 익는 고기에게 미안할 지경이다. 마주 앉은 둘은 서로에게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처음 만난 사이에 기싸움이라도 하는 거야 뭐야. 둘의 이유 모를 행동에 괜히 젓가락으로 고기를 집어 깨작거렸다. 왜 내가 둘의 눈치를 보는 거냐고.
“무슨 문제라도...?”
“없어.”
두 사람에게 조심스럽게 꺼낸 내 말은 이번에도 별 효용이 없었다. 다른 곳이었다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지만 밥상머리 앞에서 이러는 건 참을 수 없다. 젓가락을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여기서 문제라면 둘은 내 행동에 일말의 관심도 주지 않는 것이었다. 민망함이 살짝 올라왔지만 할 말은 하기로 했다. 어딜 신성한 고기 앞에서 유치하게.
입을 여는 순간 정국이 웃음을 터뜨리는 바람에 입술이 닫혔다. 얘는 산통 깨게 왜 갑자기 웃는 거야. 상에 고이 놓인 내 젓가락의 민망함이 느껴졌다. 녀석을 얄궂게 째려보자 내 시선을 의식한 녀석이 귓속말을 했다.
“고기가 그렇게 좋아?”
녀석의 낮은 목소리에 섞인 숨결과 말하는 내용이 너무나 이질적이었다. 선배만 노려보고 있더니 내 생각은 언제 읽은 거람. 얼굴이 조금 달아올라 손부채질을 했다.
“여주야 화났어?”
윤기 선배가 내 쪽을 보며 물어왔다. 선배가 나를 보는 표정은 정국을 볼 때와 확연히 차이가 났다.
“두 사람 서로한테 악감정 있어요?”
“처음 만났는데 그럴 리가.”
선배의 대답이 믿음이 가질 않았다. 그런 게 아니면 이 살벌한 분위기는 어떻게 설명 하냐고. 고개를 홱 돌려 정국을 쳐다보자 녀석은 모른다는 듯 어깨만 으쓱였다. 답답해 죽겠네 진짜. 시험도 끝났고 즐거운 날인데 이게 뭐냐고. 컵에 남아있는 콜라를 벌컥벌컥 들이켜고 내려놓았다. 이제야 둘은 나를 바라보았다.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깊은 숨을 내쉬었다. 가방을 챙겨서 일어났다.
“저는 먼저 가볼 테니까 무슨 문제인지는 몰라도 두 분이서 잘 해결하세요.”
내 이름을 부르는 전정국을 무시하고 식당을 나왔다. 후에 전정국이 집으로 들어오면 뭐냐고 따질 생각이었다. 같이 식사하겠다고 한 건 본인들이었으면서 고기 앞에서 뭐하는 짓이야. 생각할수록 이해할 수 없는 둘의 행동이었다. 이 상황에서 고기가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건 뭐람. 다 먹지 못한 고기 생각에 집에 고기를 사들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났다. 넉넉하게 사서 석진 오빠랑 강우랑 같이 먹을까. 전정국은 빼고. 선배와 전정국이 있는 쪽을 한 번 째려보고는 걸음을 재촉했다.
***
“돌연변이.”
윤기가 귀를 긁적였다. 정국이 자신에게 하는 말임을 알고 일부러 한 행동이었다. 돌연변이라……. 틀린 말은 아니기에 웃음이 픽 흘러나왔다. 윤기가 정국을 한 번 보고는 바지 주머니에서 향수를 꺼내들었다. 여주가 있을 때는 참았지만 이제 둘만 있으니 더 이상 참을 필요가 없었다. 석진 만큼이나 독한 향을 풍기는 놈을 또 만나다니.
윤기가 뿌린 향수가 퍼지자 정국이 얼굴을 찌푸리고 향기를 쫓기 위해 팔로 저의 앞을 막 휘저었다. 코 안으로 들어오는 인간의 향기는 기분 나쁘기 그지없었다. 여주가 마치는 다섯 시에 맞추어 데리러 가서 만난 윤기는 반갑지 않은 놈이었다. 여주가 윤기와 아는 사이라는 것부터 짜증이 치밀었다. 하필 저 돌연변이가 선배라니. 집에 돌아가서 여주의 기분부터 풀어줘야 하는데 저 자식 때문에 여주의 기분이 나빠졌다는 걸 생각하자 윤기에게 품고 있던 감정이 극대화되었다.
“여주한테는 왜 접근한 거야.”
윤기의 말에 정국이 코웃음 쳤다. 누가할 소릴. 정국이 윤기의 눈동자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생각을 읽어내려는 목적이었다. 정국이 하는 행동을 가만히 보고 있던 윤기가 입을 열었다.
“너 진짜구나?”
방금 전 정국의 행동으로 윤기는 눈치 챌 수 있었다. 정국이 악마 중에서도 질 나쁜 악마라는 것을. 인간의 생각을 읽는 악마를 실제로 마주한 것은 처음이었다.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차고 다녔던 팔찌를 매만졌다. 토파즈 팔찌 덕분에 정국이 윤기의 생각을 읽을 수는 없었다. 윤기는 보통 사람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맡을 수 없는 그들이 내뿜는 특유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인간이었다. 사람의 모습을 한 천사와 악마를 분간할 수 있는 인간, 따지고 보면 정국의 말대로 돌연변이가 맞았다.
악마와 천사를 알아볼 수 있다고는 해도 그들을 실제로 마주하는 건 흔한 일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신기했을 뿐 별 관심도 없었다. 그들로 인해 동생을 잃기 전까지는. 천사, 악마 어쨌든 둘 다 인간의 편은 아니었다. 그들은 믿으면 안 되는 놈들이다.
윤기가 아무것도 모르는 강우를 통해 석진을 지겹도록 쫓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었다. 길에서 우연히 만난 석진은 멀리 떨어져있었음에도 지금껏 본 놈들 중에서 독보적으로 강한 향을 지니고 있었다. 석진이 정확히 보이지도 않는 거리에서 향기만을 쫓아 석진을 마주한 윤기는 석진을 보는 순간 바로 느꼈다. 여태껏 자신이 만난 천사나 악마들은 한낱 조무래기였다는 것을. 그리고 석진을 주시해야한다는 것도. 예상과 달리 석진은 인간 세계를 즐기는 천사였다. 가지고 있는 힘이 무색할 정도로.
그다지 친하지 않은 여주를 인턴 일로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내서 찾아온 것은 석진에 대해 떠보려는 이유였다. 그리고 예상치 못하게 등장한 정국으로 대어를 낚은 셈이었다. 정국과 마주한 순간, 윤기는 여주를 병원 흡연 구역에서 만났을 때 우연히 맡은 강하고 독한 향기의 주인이 정국이란 사실을 단번에 깨달았다.
돌이켜보면 이 모든 일은 강우의 실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석진이 쥐도 새도 모르게 이사를 가는 바람에 석진이 이가 간 곳을 알아내던 강우는 석진이 이사 간 집을 바로 옆집인 여주의 집으로 착각해 윤기에게 석진과 함께 사는 사람이라며 정국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사진으로는 향을 맡을 수 없기에 그 때만해도 석진이 인간 하나를 데리고 산다고 생각했던 윤기에게 찾아온 기회는 여주였다. 강우가 저의 실수를 알았던 날은 여주의 스토커를 잡은 날이었다. 정국, 석진, 여주를 모두 보게 된 강우의 말을 들은 윤기는 석진의 옆집이 자신의 후배인 정여주라는 것을 알았고 오늘 여주에게 석진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려고 했었다. 여주 옆에 제 발로 찾아온 정국의 등장에 일이 조금 틀어졌지만.
윤기를 처음 본 석진의 반응과 정국의 반응은 너무나 달랐다. 석진은 저를 쫓는 윤기를 경계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윤기를 신기해했었다. 반대로 저를 아주 경계하는 정국을 보며 윤기도 정국에 대한 반감이 커졌다. 게다가 정국은 여주와 함께 살고 강우의 말로는 남자친구라고 했으니 윤기의 입장에서 정국이 절대 좋게 보일 리 없었다. 여주가 눈앞의 악마에게 홀린 것이 분명했다. 여동생 생각이 나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여주한테 뭘 한 거야.”
“친하지도 않은 후배한테 과한 관심 아닌가?”
정국이 허리를 뒤로 젖혀 의자에 완전히 기대었다. 윤기가 차고 있는 팔찌가 상당히 거슬렸지만 정국은 저깟 보석에 굴복하는 힘없는 악마들과는 달랐다. 게다가 돌연변이를 직접 본 것은 처음이라 윤기는 흥미로운 존재였다. 윤기가 정국에게 누구보다도 호의적이지 않은 인간이라는 것은 잘 알았지만 모순적이게도 정국은 윤기를 계속보고 싶어졌다. 굳이 이유를 대라면 익숙함이었다. 계속 윤기를 마주하고 있으니 윤기가 익숙하게 느껴졌다. 분명 오늘 처음 본 놈이었는데 여주보다 익숙한 것 같은 느낌에 혼란스럽기도 했다. 지금 와서 우리가 언제 만난 적이 있냐고 물어보면 미친 악마 취급을 받겠지. 느낌은 느낌으로 묻어두기로 했다. 시간이 늦어짐에 따라 집에 먼저 보낸 여주가 걱정스럽기도 했기에. 정국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또 보자. 돌연변이.”
자리를 떠나는 정국에게서 윤기는 눈을 떼지 못했다. 독한 놈이 천사 하나, 악마 하나. 둘이라니 성가셨지만 쓸데없는 정의감에 모른 척할 수도 없었다. 윤기가 강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세 번 정도 울리고 어린 티가 나는 목소리가 들렸다.
- 여보세요.
“강우야. 김석진 옆에 전정국.”
- 정국 형이요?
“김석진만 보지 말고 전정국도 같이 눈여겨봐.”
- 그 형은 왜요?
“보수는 두 배로 쳐줄게.”
- 그래요.
“그리고 강우야.”
- 또 뭔데요?
“둘이랑 친해 지지마. 절대.”
오늘 완전히 휘몰아 쳤지요!!
제 부족한 필력에 노파심이 들어서ㅠㅠ 사족 덧붙일게요.
윤기는 인간이지만 냄새를 통해 천사와 악마를 분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요.(정국이가 이걸 두고 돌연변이라고 했죠.) 석진이 여주의 옆집으로 이사오기 전에 윤기는 이미 석진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끼고 강우를 시켜 뒷조사를 하고 있었어요.(강우는 여주랑 같은 그냥 인간입니다!) 이 때부터 석진은 윤기를 알고 있었구요. 그러다 석진이 이사를 가면서 소식이 끊겼구요. 강우는 석진이 이사 간 곳을 알아내고 있었는데 여주의 집을 석진의 집으로 착각합니다. 따라서 여주의 집에서 나오는 정국을 석진과 함께사는 사람이라며 윤기에게 사진을 찍어 보내줬지요. 강우가 착각했던 시기가 하필 여주에게 스토커가 따라붙은 시기였고 석진이 여주의 스토커인 줄 알고 강우를 잡아버려 들킨 강우가 자신이 석진의 집을 착각했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후에 석진에게 얹혀 살게 된 강우는 옆집에는 여주와 정국이 산다는 것을 알게되고 윤기에게 여주의 존재를 알립니다. 여주의 이름을 들은 윤기는 자신의 후배인 정여주라는 것을 알고 여주에게 밥을 먹이며 석진에 대한 것을 물으려고 하죠. 이 때 우연히 여주를 찾아온 정국이 저번에(9편) 병원에서 맡은 독한 냄새의 주인이라는 것을 윤기가 눈치채고 정국은 돌연변이인 윤기가 여주와 아는 사이인 점이 거슬려서 둘은 서로를 경계합니다.(윤기와 정국은 처음 본 사이가 맞아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설명을 썼어요ㅠㅠ
다들 잘 이해하셨을 거라 믿어용
혹시나 궁금하신 점이 있다면 댓글 써주세요!!
이해 못하신 건 다 제 탓입니다ㅠㅠ
자주 올게요. 응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독자님들도 파이팅!!
감사합니다♥
W. 사프란(Spring Croc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