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cm - 사랑은 은하수 다방에서
[오전 2시 7분]
“아... 망했다... 진짜 괜히 나댔어, 아...”
1시 40분이 지났는데 그 손님이 오지 않는다. 어제 많이 부담스러웠나 보다. 진짜 망했다. 이제 안 오려나 보다. 나는 하염없이 문만 쳐다보다 지쳐 카운터에 엎어졌다.
딸랑-
“아, 어서 오세요...”
“아가씨, 담배 하나 줘 봐.”
“어떤 거 드릴까요?”
“아무거나 줘 봐. 아, 아가씨가 피우던 것도 좋겠네.”
아, 진짜 진상이다. 안 그래도 쪽팔려서 기분도 안 좋은데 진상이라니. 또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속으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손님, 저는 담배 안 피우고요, 여기서 이러시면 안 돼요.”
“이게 나이도 어린 게, 내가 잘못한 게 뭐가 있다고 그래? 어린 년이 아주...”
저 진상 언제 보내지- 하고 걱정하고 있었는데
“아저씨, 그만하시고 가시죠, 좀. 학생 앞에서 그러고 싶으세요? 아빠뻘 되시는 분이, 참 그러시네.”
그 손님이다. 1시 40분 그 손님.
누구는 잠드는 시간, 또 누구는 신나게 불태우는 시간, 새벽 1시 40분만 되면 그 손님이 온다.
♥ 사랑은 편의점에서 ♥
“야, 너 뭐야? 똑같이 어린 새끼가 바락바락 대들고 앉아있네. 너 내가 누군지 알아?”
“그런 거 알고 싶지도 않습니다. 아저씨, 경찰서 가서 더 말하고 싶으시면 계속하시고, 아니면 그냥 나가시죠.”
“이 싸가지 없는 것들... 너 나중에 보자.”
딸랑-
진상이 나가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철퍽 앉았다. 긴장이 풀려서인지 아니면 그 손님이 앞에 있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주책맞게 눈물이 났다. 그 손님은 내 눈물에 당황해 어쩔 줄 몰라했고, 덕분에 난 펑펑 울었다.
***
“이제 다 울었어요?”
“네... 네... 아, 진짜 죄송합니다...”
“그쪽이 죄송할 게 뭐가 있어요. 많이 놀랐나 보네요.”
“아, 아니 자주 있는 일인데... 오늘은 왜 이랬지... 진짜 죄송해요...”
쪽팔려서 죽을 뻔했다. 아니, 지금도 쪽팔려서 죽을 것 같다. 어제는 까이고, 오늘은 펑펑 울고. 울어서 얼굴도 못생기게 보일 텐데 손님은 가까이 있고...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진짜 편의점만 아니었으면 당장 뛰쳐나가고 싶을 정도였다.
“저... 이제 저 괜찮으니까 가셔도 되는데... 바쁘신 분 아니에요...?”
“... 아, 오늘은 일 다 끝내고 와서 괜찮아요. 잠깐 저쪽에 가 있을게요. 정리 다 되면 불러요.”
슬쩍 고개를 들어 말했는데 엄청 추했나 보다. 손님이 간 사이에 휴지로 축축하게 젖은 얼굴을 닦아내고, 헝클어진 머리도 대충 손으로 빗어 정리했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난 후 엄청난 미안함이 몰려왔다. 미안함에 뭘 해야 할지 머리를 굴려 생각해 나온 건 하나였다.
“저... 진짜 죄송해요...”
“아, 괜찮아요. 다 됐어요?”
“네. 덕분에요. 저, 제가 해 드릴 건 없고... 이 커피 드시죠? 이거 오늘 드릴게요. 아니, 매일 드릴게요. 원하시면 빵도...”
“저 진짜 괜찮아요. 이런 거 바라고 한 것도 아니고...”
“아니, 제가 죄송해서 그래요...”
“그러면 오늘만 받을게요. 고마워요.”
손님이 항상 사는 커피를 들고 가 건네자 손님은 환하게 웃으며 커피를 받았다. 손님의 미소는 나보다 예뻤다. 차가운 커피를 건네며 스친 손님의 손은 그 무엇보다 따뜻했고, 손님의 미소 때문인지, 아니면 따뜻한 손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면 손님의 마음 때문인지 내 심장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빨리 뛰었다. 너무 빨리 뛰어서 심장 소리가 들릴까 무서울 정도였다.
“저기... 원래 이런 일 자주 있어요?”
“네. 이것보다 더 심한 일도 있었어요. 경찰도 오고...”
“위험한데 왜 새벽에 일해요.”
“일할 시간이 새벽밖에 없어서요. 낮에는 할 일이 많거든요.”
“아... 힘들겠네요.”
그렇게 정적이 흐르고 어색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공기조차 어색해 숨쉬기도 힘들 정도였다. 손님은 말없이 커피를 마셨고, 나도 말없이 초코우유만 마셨다. 내가 마시던 초코우유가 바닥을 드러내고, 어색함에 빨대만 잘근잘근 씹고 있던 중, 그 손님이 말을 건넸다.
“저, 혹시 이름이 뭐예요?”
“저 김탄소예요. 혹시 그쪽은...”
“저는 민윤기요. 이름 예쁘네요. 탄소 씨 나이는 어떻게 돼요?”
“저는 스물둘이에요.”
“아, 동생이네요. 저는 스물다섯이거든요.”
“아아... 그렇구나...”
“저기, 아니, 탄소 씨, 저 여기 근처 살거든요.”
“아, 네... 근처 사시는구나...”
“혹시 위험한 일 있으면, 오늘처럼 이런 일 생기면 제가 바로 올게요. 괜찮으면 번호 줄래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원래 단골 손님들은 이렇게까지 신경 써 주는 건가? 아니면 설마 손님이 나를 좋아해서? 그러면 어제 무시하고 갔던 건 뭐지? 온갖 생각이 훅훅 지나쳐갔고, 이내 내 머리는 다시 새하얘졌다.
“탄소 씨 부담스러우면 안 줘도 괜찮아요.”
손님의 말을 들은 순간 머릿속에서 사이렌이 울리며 소리가 들렸다. 김탄소, 빨리 준다고 말해. 후회하고 싶냐? 이 바보 병신 호구야! 순간 정신이 번쩍 들어 편의점이 무너질 정도로 크게 말했다.
“아, 아니요!!! 드릴게요, 손님!! 제 번호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내 말에 빵 터진 손님은 끅끅거리며 웃었다. 손님은 빵 터져 웃고, 나는 부끄러워 얼굴이 빨개져 빵 터질 것만 같았다.
“아, 웃어서 미안해요. 아니 탄소 씨가 너무 귀여워서요.”
“죄송해요... 놀라셨죠...”
“아니에요, 진짜 귀여워서 웃었어요. 폰 주세요. 제 번호도 줄게요. 탄소 씨는 제 폰에 번호 저장해서 다시 주세요.”
폰을 받고 엄청 고민했다. 뭐라고 저장해야 하나 엄청 고민했다. 김탄소? 아니면 탄소? 그것도 아니면 편의점 알바?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편의점 김탄소라고 저장했다.
“자, 됐어요. 저장했으니까 무슨 일 생기면 연락해요. 평소에 연락해도 괜찮고요.”
“아, 아, 네...”
“더 있고 싶은데 시간이 늦어서 가 볼게요. 탄소 씨도 좀 쉬어요.”
“네... 감사합니다... 조심히 가세요.”
“그러면 수고해요.”
딸랑-
정리가 되지 않았다. 이 짧은 시간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그러니까 나 지금 번호 따인 건가? 나한테 관심이 있어서 그런 건가? 아니면 그냥 호의인가? 한참 머리를 굴리던 중 낯선 이름으로 메시지가 왔다.
[오늘 많이 놀랐죠? 앞으로 더 자주 갈게요. - 윤기 오빠 AM 03:09]
[아, 그리고 제 이름은 손님 아니고 민윤기예요. 내일부터는 제가 번호에 저장한 이름으로 불러 주세요. - 윤기 오빠 AM 03:09]
[제가 오빠니까 말도 편하게 할게요. 그래도 괜찮죠? - 윤기 오빠 AM 03:10]
[그러면 내일 보자. 내일 갈게, 탄소야. - 윤기 오빠 AM 03:10]
엄마... 저 좋아하는 사람 생긴 것 같아요...
***
“아... 진짜 대단하다, 민윤기.”
처음으로 번호를 땄다. 무슨 용기로 따고 메시지까지 보냈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의자에 털썩 앉아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던 중, 핸드폰이 울렸다.
[진짜 감사해요. ㅠㅠ 아, 말 편하게 하셔도 괜찮고, 내일 오면 꼭, 꼭 저장된 이름으로... 입에 익숙하지가 않아서... 그렇게 부르도록 노력할게요... 윤기 오빠... ㅠㅠ 오늘 진짜 감사했어요. 그러면 내일 봬요! - 편의점 김탄소 AM 03:27]
“허... 참... 문자도 자기처럼 보내내...”
나한테만 그렇게 보이는 것인지, 문자에서도 귀여움이 뚝뚝 흐르는 것 같았다. 말하는 것 하나하나 귀여웠다. 오늘 처음 얘기 나눴는데, 처음이라는 말이 이상할 정도로 설렜다. 한눈에 반한다는 게 이런 건가. 와중에 저장된 이름이 거슬렸다.
“... 아, 됐다. 이제 자자.”
[편의점 귀여운 애: 010-0613-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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