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난 지금 뭘하고 있는가. 내가 남우현이란 말은 안했는데 이 두 사람은 어떻게 알고 있는건지 두 사람은 다급한 표정으로 학교를 뛰쳐나갔다. 물론 나도 끌고. 우리 세 사람은 먼저 남우현이 자주 간다는 피씨방을 갔다가 가끔 혼자 출몰한다는 공원도 돌고 당구장에도 갔다. 하지만 남우현은 어느 곳에도 있지 않았다. 결국 다시 돌아온 학교 앞. 명수 선배가 담벼락을 세개 걷어찬다.
"씨발! 이 병신새끼 어딜 간거야?"
"쭈구리. 너 다시 전화해봐."
"꺼져있ㄴ…."
"아 개새끼! 야, 명수야. 또 어디 없냐? 걔네 집은?"
"그 새끼 며칠 전에 이사 갔잖아. 내가 며칠 전에 가봤는데 없어."
"아, 씨발. 야, 어떡해."
"몰라, 씨발!"
저..저기...내가 머쓱하게 서서 머리를 긁적이고 있는 건 상관하지 않는다는 듯 두 사람은 공중에 대고 화풀이를 하기 시작했다. 성열선배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남우현에게 전화를 거는 듯 하다가 꺼져 있다는 여자의 음성이 나오자 휴대폰을 집어 던지려다가 멈칫한다.
"아, 씨발. 할부 개새끼!"
"아, 설마. 설마 아니겠지 성열아?"
"몰라. 그 새낀 진짜....아, 미친."
성열선배가 제자리에서 발을 동동 구른다. 명수선배는 답답한 듯 담벼락에 기대어 마이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찾다가 담배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마이를 벗어서 바닥에 내팽개친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나는 그저 멍하니 그런 두 사람의 행동을 지켜볼 뿐이다.
"야야, 맞다. 그 새끼 한달 전에 주유소에서 알바 했었는데 거기 안 가봤다."
"그걸 왜 이제 말해 미친새끼야!"
"정신이 없으니까 그렇지. 야, 빨리 가자. 야, 쭈구리. 넌 여기 지키고 있어라."
"네? 저기…."
그렇게 두 사람은 나만 혼자 덩그러니 놔두고 증발해버렸다.
하아...혼자 한숨을 크게 내쉬고는 담벼락에 기대어 주저앉았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남우현한테 무슨 일이 있는거야? 왜 나만 모르는 거야? 또다시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온다. 오늘따라 너무 무리한 탓인지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기도 하다. 병원이라도 가봐야 되나 자리에서 일어나니 두통이 더 심해진다. 심장이 미친듯이 뛰기 시작한다. 머리를 부여잡고 다시 자리에 주저앉았다. 속도 울렁거리기 시작한다. 숨이 가빠지고 숨 쉬기가 힘들어 지는 것 같다. 병원...병원에 가야해. 담벼락을 부여잡고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니 다리에 힘이 빠진다. 다시 넘어지려는 걸 간신히 버티고는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기 시작했다. 아, 여기서 죽으면 안되는데...
"야."
"…."
남우현이다. 남우현이 내 앞에서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는 날 경멸하는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다. 그런데 남우현이 두 명이다. 왜 두명이지? 내가 다 죽어가는 얼굴로 쳐다보고 있자 남우현이 다시 말했다.
"....아프냐?"
"야, 너...형들이 찾았는데."
"....형들?"
"으응."
남우현의 얼굴이 굳어가는게 살짝살짝 보였다. 눈 앞이 하얘지기 시작한다. 아, 길바닥에서 죽으면 안되는데. 게다가 남우현 앞에서 개죽음이라니...
"야, 야!"
"형들한테 전화해야 되는데..."
몸이 바위처럼 무겁다. 남우현이 뭐라 하는데 들리지가 않는다. 귀에서 삐-하는 소리가 들리고 눈 앞이 하얘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결국 난 중심을 잃고 옆으로 쿵 하고 쓰러졌다.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듯이 쿵쿵 뛰는 소리가 들리고 난 정신을 잃었다.
.
.
.
잔디밭. 난 잔디밭 위에 누워있다. 살랑살랑 바람이 날 깨우는듯 얼굴을 간지러뜨리며 지나가고 난 천천히 눈을 떴다. 하얀 나비가 날아와 내 눈 앞에 앉았다. 돌덩이처럼 무거운 몸을 힘들게 일으켰다. 주변이 온통 산이다. 난 들판 위에 앉아있는 듯하다. 분명 지금은 겨울인데 춥지 않다. 여기가 어디지? 주위를 둘러보아도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김성규!'
저 멀리서 누군가가 날 부르며 뛰어온다. 난 무언가에 홀린 듯 그 사람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맨발로 밟는 잔디에는 이슬이 맺혀있어 걸을 때마다 축축한 느낌이 베어져 왔다. 어느새 그 사람은 한 발자국 앞까지 와있었다. 그렇게 뛰어왔는데 숨을 헐떡이지 않는다. 그런데 시야가 흐릿해서 잘 보이지 않는다. 누구지?
'병신새끼....'
눈물이 툭하고 떨어졌다. 내가 아닌 그 사람 눈에서. 그리고 점점 시야가 또렷해지기 시작했다.
'남우현!'
누군가가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르자 그 사람은 날 지나쳐 도망치기 시작했다. 난 이유없이 그 사람을 쫓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멈추지 않는다. 내가 잡기에는 너무 빠른 속도였다. 난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가슴이 먹먹했다. 삐-삐-삐- 하는 규칙적인 기계음 소리가 고막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난 천천히 눈을 떴다.
#7
"정신이 드냐?"
"…."
여기가 어디지…. 하얀 천장. 바쁘게 뛰어다니는 하얀옷을 입은 사람들. 아, 병원이구나.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찔렀을 때야 난 정신을 차렸다. 고개를 돌려 보니 명수형(이제부터는 형이라 부르겠다.)과 성열이형이 내 옆에 서서 걱정스럽게 쳐다보고있다. 그런데 명수형은 표정이 좋지 않다. 성열이형이 다행이라는듯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 진짜 간 떨어지는 줄 알았네. 너 길가에서 디졌으면 얘랑 나랑 퇴학이었어."
"근데 제가 왜 여기에…."
"너 쓰러졌었잖아. 기억 안 나냐?"
"기억 나요."
"너 진짜 다행인 줄 알아 그때 남우…."
성열이형이 잠시 멈칫하고는 명수형의 눈치를 살핀다. 명수형은 피곤한 얼굴로 머리를 쓸어 넘기더니 자리를 떴다. 아마도 내가 잠들어 있는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나 보다. 성열이형이 한숨을 푹 내쉬더니 앞에 놓여진 의자에 풀썩 주저앉았다.
"아, 진짜 내가 수명이 다 줄겠네."
"무슨 일 있었어요?"
"어? 아, 아니. 몰라."
이 형은 거짓말을 참 못하나 보다.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난 무의식적으로 쓰러지기 직전의 상황을 기억해 냈다. 아, 맞다. 남우현!
"아까 남우현 왔었는데."
"어, 알아."
"근데 어디 갔어요?"
"어?"
성열이형이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짓는다.
"피...피씨방 갔어."
"....?"
성열이형이 무릎을 탁 치며 그런다. 난 어이가 없어 진심이냐는 표정으로 형을 쳐다보았다. 형이 내 시선을 피하며 연신 헛기침을 내뱉는다.
"그나저나 여기 왜이렇게 덥냐? 허, 참."
입고있던 패딩을 벗으며 어색한 미소를 짓는데 딱 봐도 거짓말인게 티가 난다. 하지만 난 피곤해서 별로 형을 추궁하고 싶지는 않았다.
"오빠!"
그때, 언제 연락을 받고 온 건지 응급실 출입문이 스르륵 열리며 내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이 뛰어들어왔다. 누가 연락한거지? 내가 성열이형을 쳐다보자 성열이형이 어깨를 으쓱해보인다. 순식간에 내 앞으로 뛰어온 김현아(작가 曰 연예인 그 분이 맞지만 실제로 두 사람 사이에 친분이 있는지는 모름. 그냥 허구 인물이라고 생각하삼)가 성열이형을 밀치고는 내 두 손을 맞잡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한다.
"괜찮아? 어디 다친데는 없어?"
"....이 손 놓고 얘기하면 안될까?"
"엉엉. 내가 얼마나 놀랐는데. 엄마,아빠는 오늘 결혼기념일여행 갔어. 집에 나 혼자 있다가 전화받고 얼마나 울었는지 알아? 오빠 없으면 내 쉴드는 누가 쳐주고 마중은 누가 나오고 또…."
"흠흠-"
성열이형이 헛기침을 내뱉으며 우리 두 사람의 눈치를 본다. 김현아는 그제서야 성열이형의 존재를 알아차리고는 내 손을 놓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눈물을 슥슥 닦으며
"우리 오빠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가식적인 대사를 내뱉는다. 성열이형은 아니라며 두 손을 내젓는다.
"제가 살린 게 아니고 남…. 아니, 저기. 그게."
"남우현?"
김현아의 눈빛이 순식간에 돌변한다. 그러니까 내가 남우현에게 괴롭힘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집에서 얘밖에 모른다. 내가 일부러 말한 건 아니고 마을 어귀에서 또 셔틀 짓하고 있는걸 남자친구와 걸어가다가 우연히 목격하게 된 것.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방방 뛰는 것을 남자친구를 미끼로 입을 겨우겨우 막아놨었다.
"남우현이 이렇게 했어요? 그 새끼 지금 어딨어요?"
"에이, 그 새끼는 아니고..."
"어.디.있.어.요?"
김현아가 성열이형의 코앞까지 가서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성열이형은 시선을 돌리며 중얼중얼 거렸다.
"피..피씨방 간 것 같은데. 그러니까 어딘지는 나도 모르고. 또 금방 나가버려서 그러니까...음."
김현아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성열이형을 쳐다보자 성열이형은 어색하게 웃으며 화장실에 가야겠다며 얼른 이 곳을 빠져나갔다. 김현아가 씩씩대며 내게 걸어온다. 가끔 내 동생이지만 나도 진짜 무섭다.
"그 새끼가 오빠 또 괴롭혔어? 왜 병신같이 당하고만 있어! 꼬추는 왜 달았냐?"
"내가 단 거냐..."
"지금 그런 말이 나오냐?! 나 엄마아빠한테 말할거야."
"야! 안돼!"
"왜? 넌 그렇게 당하고도 정이 남아있냐?"
그건 정때문이 아니라고...사실 나도 그동안의 일을 생각하면 정따위 꾸깃꾸깃 꾸겨서 쓰레기통에 쳐박아버린지 오래라 맘같아선 그러고 싶지만 그러면 가족들이 나에게 쏟아낼 동정과 주위 사람들의 시선과 복잡한 과정 이런 걸 생각하니 골치가 아플 뿐이다. 그리고 이제 남우현도 좀 변했고 해서 그냥 가만히 있어주면 좋겠는데 이 여동생이란 여자는 갑자기 어디서 나온 건지 모를 정의감이 확확 치솟는 건지.
"나 이제 멀쩡해. 잠깐 기절한거야."
"그래, 그러니까 남우현 번호 불어."
"니가 뭐하게."
"아 가서 따져야 될거 아냐. 아님 치료비라도 내라고 그러던가. 그냥 이대로 있으면 너무 병신같잖아. 아니면 경찰에 신고해서 전학이나 퇴학이라도 시켜 버리던지."
"그냥 제발 좀 가만히 있어주라, 부탁이다."
"아, 진짜 생각할수록 열받네. 지가 뭔데 우리 오빨 때려?! 오빠, 나 요즘 남친따라서 태권도장 다니거든? 내가 가서 날라차기 한 번 날려줄까?"
"아니..."
제발 여기 응급실이니까 가만히 좀 있어줄래?...하는 내 부탁은 허공으로 흩어지고 김현아는 공중에 대고 이상한 발차기를 해댄다. '어때? 위압감 있어 보이지?' 하는 개소리를 해대며. 그때, 커튼 뒤에서 명수형이 불쑥 튀어나왔다. 아까보다 10배는 더 피곤해 보이는 얼굴이다. 뒤늦게 명수형을 발견한 김현아가 다리를 슥 내리며 어색하게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한다. 명수형은 고개를 까딱해 보이고는 내게 다가왔다. 김현아가 명수형에게 눈을 떼지 못한다. 저 가시나, 저거. 반했구만.
"여동생 왔으니까 나 먼저 가볼게. 몸 잘 챙겨라. 집 가면 연락하고."
"네, 안녕히가세요."
"그래."
명수형이 아까처럼 다시 머리를 쓸어올리며 몸을 돌린다. 김현아가 명수형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가식적인 미소를 흘린다.
"안녕히가세요."
명수형은 또 시크하게 고개를 까닥이고는 커튼 뒤로 사라졌다. 김현아가 목을 길게 빼고 명수형이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고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다가왔다. 또 무슨 말을 하려고. 한숨을 푸욱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일켰다.
"오빠, 내일 내가 오빠 마중나가도 되지? 오빠 몸 불편하니까 내가 마중나갈게."
"됐어. 애기도 아니고 무슨."
"대신 이번 일은 비밀로 해줄게. 콜?"
"…."
못된 가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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