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고 싶어서 쓰는 2
: 피겨 황제 황민현 +
14. 너블은 현재 설레 죽을 것 같았다. 사람이 이렇게 순식간에 심장마비로 죽는 게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처음으로 위기감이 들었다.
"왜요? 입에 안 맞아요?"
"...아닙니다."
"그럼 왜 그렇게 못 먹어요? 다른 거 시켜줄까요?"
"...아닙니다!"
"아. 혹시 내가 좀 부담스럽게 굴었어요?"
"...!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황제님!"
"아니면 어서 먹어요. 너블씨 먹는 거 보려고 왔는데 하나도 못 먹으면 어떡해요."
"그치만, 황제님은 잘 드시지도 못하는데..."
"너블씨 먹는 거 보려고 왔다니까요? 걱정 말고 먹어요."
"성은이 망극해서..."
"정말 볼수록 귀엽네요."
"네?"
"아니에요. 꼭꼭 씹어서 천천히 다 먹어요."
15. 저의 황제님은 식단 조절 때문에 먹지도 못하는데 혼자 먹으려니 가슴이 너무 아픈 너블은, 뭔가 방법을 강구하기로 했다.
"황제님!"
"네, 너블씨."
"황제님은 제일 좋아하는 취미가 뭐세요?"
"글쎄요. 취미라."
"하고 싶은 거 리스트를 쭉 뽑아서 저에게 주세요!"
"그건 뭐하려고요?"
"제가 하나씩 들어드릴게요! 물론 제가 귀찮으시다면 비용만이라도...!"
"매번 응원해준 게 고마워서 고작 밥 한 끼 사겠다고 한 건데 리스트를 뽑아달라고요?"
"안 될까요...?"
"...너블씨."
"네?"
"내가 진짜 리스트 뽑아오면 감당 안 될 텐데, 괜찮겠어요?"
16. 요즘 너블은 정말 행복했다. 성덕이 된 기분이란. 아주 그냥 아파트 한 채를 뽑을 수 있을 만큼 세상 만물이 아름답게만 보였다.
"황제님, 뚠뚠. 황제님. 뚠뚠. 화왕제님은 아아름다워 뚠뚠."
"...너 좀 무서워, 배너블."
"그게 무슨 소리야 오빠."
"?!??"
"나는 이제 새 사람이 될 거야. 그리고 오빠의 사랑을 이해해, 내가. 그 언니랑 예쁜 사랑해!"
"미치겠네. 쟤 왜 저래 진짜."
"하하하. 어머, 꽃이 참 아름답게 피었구나! 아 아름다운 밤이야!"
"환장하겠네. 대체 여기 꽃이 어디 있다고."
"...야, 배진영."
"네가 보기에도 이상하지? 그치 박지훈?”
"그게 문제가 아니야.”
“그럼?”
“쟤 저러고 있는 거 보니까 생각났는데, 내가 사실 그 때 피겨 황제한테 배너블 말 못 전했어.”
“...! 야!”
“오늘 얘기해도 되겠지? 나 안 죽겠지?"
“황제니이임!”
“...오늘이라면 괜찮을 것 같긴 하다."
17. 배너블이 다 낫지도 않은 몸으로 경기를 보러 올 것이라 상상도 못한 박지훈은 민현에게 전해야 할 말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런데 왜 기분이 좋아 보이지. 답은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애기들아, 누나는 약속 있어서 나간다!"
"어디? 늦었어!"
"심화 영화 보러 갈 거란다!"
"누구랑? 야, 혼자 가는 거면 나도 같이 가."
"쓰읍. 무슨 소리야 지훈아."
"?"
"지금 이게 얼마나 어마어마한 계를 타러 가는 신성한 길인데! 어딜 나서!"
"? 혹시 민현이 형이랑 만나?"
"댓츠 롸잇. 누나 간다! 기다리지 마라!"
18. 남겨진 지훈과 진영은 어리둥절했다. 언제 저만큼 사이가 발전했지? 어떻게?
- 아, 배 서방 몰랐구나.
"뭐가요?"
- 황민현이 나랑 사촌이라는 거.
"?!"
- 아니 뭐 어쩌다가 네 쌍둥이 동생 얘기 나왔는데. 퍽 마음에 들어 하더라고.
"?!!"
- 애가 또 한 번 마음에 들면 작정하고 다정해지는 타입이라.
"...와."
- 며칠 전에 밥 먹었다고 하더니, 결국 영화까지 보러 갔구나. 하여튼 뭘 해도 성공할 놈이라니까.
"그럼, 그럼 매형."
- 응?
"그거 배너블 짝사랑 아니에요? 혼자 흘러넘치는 덕심 아니었어요?"
- 지금은 아닐걸? 말 했잖아. 작정하고 잘 해줄 거라고. 어젠가 그제는 여주한테 물어서 여자들이 뭐 어떤 거 좋아하는 지나 묻고 있더라니까.
"와씨. 미쳤다, 배너블."
- 아니 근데 영화라니. 황민현 영화 보는 거 별로 안 좋아하던데, 별일이네.
19. 성운의 말대로 사실 민현은 밀폐된 공간에 오래 있는 걸 딱히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영화도 자주 보러 가지 않았다.
"황제님 식단 조절 하셔야 하니까 팝콘과 콜라는 쳐다도 보지 말아요, 우리!"
"먹고 싶으면 먹어도 돼요, 너블씨."
"아닙니다! 혹시 만약에 제가 팝콘 먹다가 추한 꼴 보이면 어쩐답니까! 황제님 비위 상하세요!"
"...정말 못 당하겠네요."
"어어? 영화! 황제님! 뭐하세요? 들어가시죠!"
"네. 들어가요."
"근데 황제님 심야 영화 좋아하셨어요? 어쩜... 저도 혼자 영화 보러 다니는 거, 특히 심야에 영화 보는 거 너무 좋아하거든요!"
"그래요?"
"그래서 혼자도 많이 다니고 배진영이나 박지훈이랑도 자주 보러 왔는데!"
"...박지훈이요?"
"어? 모르시려나? 제 쌍둥이, 아! 쇼트트랙 선수 중에 배진영이라고 아세요?"
"알죠, 그 아이는."
"신기하네요! 아무튼 그 배 친구 중에, 같은 쇼트트랙 선수인데 박지훈이라고 저랑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낸 애가 있거든요!"
"...알 것도 같네요."
"? 정말 신기하네요. 별로 존재감 있는 애들이 아닐 텐데."
20. 진영과 지훈을 하찮게 여기는 건 배너블 하나임이 분명했다. 동계 국대 라면 다 한 번씩은 들어본 유명한 이름들인데도 말이다.
"유명해요, 둘 다. 특히 배진영. 그 아이는 거의 신화라고 하던데요?"
"에이. 아무렴 황제님 만할까요."
"정말요?"
"당연하죠. 쇼트트랙이 다 무슨 소용입니까. 피겨 황제님이 계신데."
"듣기 좋은데, 쌍둥이 오빠가 들으면 속상하겠어요."
"필요 없어요. 제가 항상 말하죠? 황제님이 최고시라고!"
"하하. 고마워요."
"...!"
"응? 왜 그래요?"
"제가 초면에도 말했지만,"
"?"
"황제님 진짜 잘생기셨어요... 제가 감히 은애해도 될까요...?"
21. 아니 뭐 이렇게 저돌적이지. 민현은 갑작스런 고백에 귀 끝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들어도 들어도 적응이 되지 않아 미칠 것 같았다.
"? 황제님 어디 더우세요?"
"아, 아니에요."
"헐. 설마 저 때문에 감기 기운이 옮은 걸까요?"
"정말 아니에요, 그런 거."
"...사실대로 말해주세요. 진짜면 황제님 반경 1KM, 아니 10KM로 떨어질게요."
"너블씨."
"네, 말씀하세요. 어떤 벌이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그런 거 말고 약속 하나만 해요."
"? 무엇이죠?"
"그런 말 다른 사람 앞에서는 절대 안 하겠다고."
"당연한 거 아닌가요? 제가 이런 말을 황제님 아니면 어디서 해요."
"그리고, 무엇보다."
"?"
"그렇게 웃는 거. 사람 빤히 쳐다보는 거, 절대 다른 사람한테 하지 않겠다고."
22. 이번에는 너블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미친 황제님. 사람을 아주 들었다 놨다 하시는구나. 황제님을 알게 된 이후로 너블의 삶은 정말 피폐해지고 있었다.
"...여, 영화가 시작하려나 봐요!"
"그러게요."
"...와. 그렇게 웃지 마세요. 황제님..."
"왜요? 설레요?"
"...!"
"하하, 농담이에요. 영화에 집중해요 이제."
"......"
"너블씨?"
"...아무래도 다시는 황제님과 영화는 못 보겠어요."
"네?"
"진짜 죽을 것 같아요. 만져볼래요? 저 지금 심장 너무 터질 것 같이 뛰는데."
23. 영화를 보는지 마는지, 는 다 구라고. 언제 설렜냐는 듯이 영화에 온 신경을 쏟아 부은 너블은 영화의 여운에 숨도 못 쉬고 우는 중이었다.
"흐끅. 영화가, 허어. 미쳤어요. 어떻게, 흐끅. 어떻게 그래에."
"그렇게 슬펐어요?"
"황제님은, 흐윽. 황제님은, 으허. 피겨 황제라서 심장이 얼어붙으셨나요? 흐끅."
"너블씨가 이렇게 우는데 나까지 울면 안 되잖아요."
"허어엉. 엄마아. 왜 이렇게 상냥하세여어, 허어."
"영화 때문에 우는 거예요, 나 때문에 우는 거예요?"
"몰라요, 흐끅."
"뭐든 그만 울어요. 내가 다 속상하네요."
"흐읍."
"뚝. 그만 뚝 해요. 이거 보자고 한 내가 미워지려고 해요, 지금."
24. 시간이 조금 지나고, 황제님의 토닥임으로 정신을 차린 너블은 쥐구멍이라도 있다면 숨고 싶었다.
"...그만 보세요. 저 지금 되게 도망가고 싶어요."
"괜찮아요. 귀여웠어요."
"거짓말 치지 마세요. 엄청 추하게 울었잖아요, 아까."
"진짜 귀여웠어요."
"...아무래도 당분간 황제님을 뵈러 가지 못 할 것 같네요."
"아, 왜요."
"제가 강에 뛰어들고 싶을 정도로 쪽팔리거든요."
"어. 그럼 안 되는데."
"네. 그러니까 저는 잠시 잠수를 좀 타겠습니,"
"너블씨."
"네?"
"근데 정말 귀여웠어요. 이런 말 이상하긴 한데, 우는 거 너무 예뻤어요."
"황제님...?"
"나 좀 변태 같은가."
25. 결국 너블은 황제님을 거역할 수 없었다. 여김 없이 출석한 경기장에서 너블은 곧 있으면 선수촌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황제님의 말에 차오르는 눈물을 훔쳤다.
"저번에는 세상 다 무너지는 것처럼 걱정하고 있더니, 오늘은 울고 있네요."
"?!"
"반가워요. 또 보네요."
"예쁜 언니!"
"기억하네요?"
"그럼요! 제가 원래 예쁘고 귀엽고 잘생긴 것만 기억을 잘 해요."
"오늘도 황제 보러 왔어요?"
"당연하죠! 황제님이 가시는 그 곳이 바로 제가 갈 곳! 운명의 데스티니!"
"...듣던 대로 진짜 귀엽네요."
"네?"
"아. 인사가 늦었어요. 저는 여주라고 해요."
"?"
"하여주요."
"...? 제가 아는 그 여주 누나요? 배진영의 여주님이 맞으신가요?"
"맞을 걸요?"
"와. 와 대미친. 돌았다."
"그리고 너블씨가 그렇게 응원하는 황민현, 황제 사촌이기도 해요."
"...!"
"? 진짜 쌍둥이가 똑같네요. 너블씨 오빠도 매번 말하기 전에 설레는 표정부터 짓는데."
"언니, 사랑해요."
"갑자기요?"
"제 사랑을 받아주세요. 저는 쭉 언니를 흠모해온 것 같아요."
26. 여주와 너블은 굉장히 친해졌다. 시종일관 귀엽다는 듯 쳐다보는 여주의 눈엔 꿀이 떨어지는 것 같았고, 너블은 여주를 동경하고 선망하는 존재를 보듯 굴었다.
"그래도 황제는 선수촌에 늦게 들어가는 편이야."
"그쵸. 배진영이나 박지훈은 일찍이 짐 싸들고 갔는데."
"들어보니까 이 경기까지만 하고 들어가겠다고, 황제가 떼를 좀 썼나 봐."
"진짜요? 왜요?"
"왜겠어?"
"...설마 저 때문이라고 하시면 저는 여기 눕습니다. 제 무덤이 될 거에요."
"여기가 무덤이 되면 황제가 슬퍼할 텐데?"
"...! 그럼 포기할게요."
"볼수록 똑같다. 너희."
"배랑 저요?"
"응. 너희 둘 다 귀여워."
"...언니. 아무래도 제가 사랑의 큐피트가 좀 되어야겠어요."
"? 무슨 소리야?"
"오늘 언니는 배진영의 전화에서 벗어나지 못할 겁니다. 배진영이 언니 말이라면 껌뻑 죽거든요."
27. 경기가 끝나고, 너블은 여주의 가족 찬스를 받아 황제 대기실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아직 의상을 갈아입지 않고 땀을 흘리고 계신 황제님을 보며 너블은 입을 틀어막아야 했다. 섹시해... 저게 뭐야...
"...황제님..."
"어, 왔어요?"
"...아름다우세요... 한 폭의 명화다, 명화... 벌써 영화 한 편 다 봤어...“
“너무 치켜세우지 말라니까요.”
“황제님 연기는 오늘도 최고였답니다... 정말 너무 황홀해서 눈이 멀어버리는 줄 알았어요..."
"하하. 너블씨 말 진짜였어, 여주야?"
"...내 눈에는 그냥 그랬는데?"
"그렇다는데요, 너블씨?"
"...! 그럴 리가 없는데? 황제님 오늘 진짜 난리 났어요! 아주 제가 다 짜릿했어요!"
"고마워요. 매번 힘나는 말 해줘서."
"누누이 말하지만 황제님은 저에게 존재 자체가 힘이 되는 사람이랍니다...“
“...아.”
“?”
“정말.”
“왜요? 혹시 어디 불편하세요? 제가 뭔가 도움이라도...!”
“너블씨 나한테만 이러는 거 맞죠?”
“? 몇 번을 말해요! 저의 아가페적 사랑은 황제님 한정이라니까요?”
“진짜 약속 지켜요. 잘 지키면, 올림픽 끝나고 나도 소원 하나 들어줄게요.”
“...대박. 진짜요?”
“네. 그러니까 연락 잘 받고,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요. 알겠죠?”
28. 그리고 사실은.
“잘 달래줬지?”
“그래. 어제 내 전화 잘 받아줬으니까 내가 또 이렇게 은혜를 갚잖아.”
“그래서 썸인지 아닌지 결론은 내린 거야?”
“? 오빠가 같이 결론 내려준 거 아니야?”
“...그새 마음이 바뀌었나 했지.”
“그럴 리가 있나. 무튼. 내 얘기는 나중에 하고, 황제.”
“왜?”
“아니 너블이가 오빠 선수촌 들어간다고 울먹거리는 걸 왜 하필 나한테 달래라고 한 건데? 오빠가 직접 해주면 좀 좋아? 물론 덕분에 너블이랑 친해진 건 고마운데.”
“여주야.”
“응?”
“너블이 우는 거 진짜 너무 예쁘다니까.”
“?”
“아직 정식으로 사귀자는 말도, 좋아한다는 말도 못했는데 막 끌어안아 버리면 어떡해.”
그냥 보너스 +
“...황제 드디어 돌았구나.”
“그런가 보지.”
“하구름이 보면 경악을 하겠어.”
“구름이는 이미 알 만큼 알아.”
“그게 제일 충격적이네.”
“아, 그보다 여주야.”
“뭐. 왜. 또 헛소리하기만 해봐.”
“나 선수촌 들어가기 진짜 싫다.”
“...삐약이도 다니엘도 잘만 가더라. 그만 하고 좀 가.”
“아니 솔직히 그렇게 귀엽고 예쁜 애들 두고 어떻게 가, 내가.”
“......”
“볼 때마다 아까워 죽겠어. 나 어떡해, 여주야?”
“나는 갑자기 두통이 엄청 밀려와. 어떡해, 오빠?”
“내가 어제 그렇게 얘기를 들어줬는데? 이렇게 무시를 해?”
“응.”
“...하여튼, 하여주. 우리 너블이 성격 반만 좀 닮아보지.”
“그래. 우리 너블이는 내가 잘 챙기고 있을 테니까 진짜 좀 가라. 나 피곤하다, 황제.”
“알겠어. 갈게. 다음에 봐.”
“경기 잘 하고.”
“응. 안녕, 여주야. ...아!”
“그래! 안부 전해줄 테니까 더는 말 걸지 마! 나 화낸다!"
“......”
“제발 좀 가라고... 나 피곤하다고....”
"너만 믿는다...?"
"어... 그래... 알겠어..."
"진짜...?"
"...한 마디만 더 해. 오빠랑 섞인 피 다 뽑아 버릴 거야."
"응. 나 진짜 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