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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O/징어] 구름밤, 초아『서장 (序章)』 | 인스티즈   

   












구름밤, 초아












 경성의 혼마치는 오늘도 북적북적, 기모노와 양복을 입은 사람들로 붐볐다. 저마다 일본말로 재잘재잘거리면서 쇼윈도에 전시된 옷을 보기도 하고, 미쓰코시 백화점에 들어가기도 하며 다들 제 갈길을 가고 있는 모습이었다.


 사람들이 일본말을 사용하고 일본옷을 입고 있는 이 거리는 이곳이 조선이 맞는건지, 징어에게 의아함이 들게 했다. 아니, 정확하게는 속을 게워내야 할 것만 같은 역겨움이 느껴지게 했다. 여기는 조선인데, 분명 조선인데, 일본의 거리와 다를 바가 없는 경성 혼마치의 모습에 징어는 저절로 한쪽 입꼬리를 비틀며 쓴웃음을 지었다.


 "뭘 그리 꾸물대는 게냐? 어서 오지 않고."
 "…죄송해요, 아버지."


 징어의 걸음이 느려진 탓인지, 앞서서 걸어가고 있던 그녀의 아버지가 엄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어서 오라며 재촉하자 징어는 주변을 돌아보던 시선을 거두고 재빨리 아버지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오늘 조선에 있는 일본 고위급 간부들과 회의가 있어 아침 일찍부터 채비를 하고 나온 징어와 그녀의 아버지는 혼마치의 고급 식당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조선의 충실한 신하였다. 갑신정변이 일어나도 꿈쩍하지 않던 아버지는 일본이 조선을 삼킨, 을사년의 조약 이후 완전히 바뀐 삶을 살고 있는 중이었다. 일본에 빌붙어 아주 잘 나가는 조선인들 중에 한명으로 꼽힐 정도로 가문의 위세가 대단해졌다. 그리고 덩달아 그녀는 그 집안의 딸로서 잘 산다는 조선인 남자들 뿐만 아니라 그녀를 따라하고 싶은 여성들, 그리고 조선에 있는 일본인들까지 그녀의 이름이 마구 퍼질 정도가 되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런 소문을 듣자마자 적극적으로 징어를 회의나 간부들의 술자리에 데려가기 시작했다. 자신의 딸을 소개하면 가문은 더욱 잘 될 것이라는 아주 계산적인 생각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징어는 그런 요구를 받을 때마다 거절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겉으로는 하하호호 웃으면서 그 사람들에게 예쁘게 보여야 한다는 그 자체가 너무 역겨웠다. 위선적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거절할 수 없었다. …아무리 역겨운 사람이라도 그녀를 길러준 사람인데. 이 세상에 나오게 해준 사람인데.

 그녀는 자신의 가문이 정말 싫었다. 그 지조 높던 절개와 굳은 의지는 어디로 가 버렸는지 일본의 개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아버지를 보며 징어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방금 둘러보았던 혼마치의 역겨움 그 이상의 혐오감을 가지고 있었다. 조선이 일본에게 먹히기 전까지만 해도 아버지에게 커다란 존경심을 갖고 있었던 징어는, 그 날 이후로 겉으로만 아버지, 라고 부르는 존재로만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부르면서도, 그렇게 느끼면서도 징어는 그런 요구를 거절할 수 없는 자신에게 미치도록 화가 났다.


 "여기다. 조심해서 올라오거라."
 "…네."


 어느 새 도착한건지 그녀의 아버지가 먼저 신을 벗고 다다미가 깔린 안쪽 방 사이로 들어가며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알겠다며 네, 하고 대답한 징어는 기모노를 입은 자신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조심스레 게다를 벗었다. 할 수만 있다면, 고운 한복을 입고 예쁜 버선에 신을 신고 오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그녀는 아래 입술을 깨물며 다다미 방으로 들어섰다.






-







 징어가 들어서자마자 느껴지는 건 그녀를 향한 시선이었다. 일본 간부들 뿐만 아니라 태생적으로는 조선 사람이지만 자신의 아버지처럼 행동하는, 흔히 말하는 친일파인 사람들도 몇몇 있는 이 자리에서 그녀는 주목받을 수 밖에 없었다. 여자가 이런 자리에 오는 것은 거의 없는 일이나 마찬가지인데다가, 그녀에 대한 소문은 이미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아버지가 앉은 자리의 옆쪽으로 앉은 징어는 앉을 때까지 그녀를 쳐다보는 시선을 느껴야만 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이 자리를 박차고 나오고 싶었기에 한숨을 조용히 내 쉬자마자 맨 앞에 앉은 사람이 회의를 시작하려는 듯 말을 꺼냈다. 자연스레 사람들의 시선이 그 사람으로 향했기에 징어는 조금이나마 숨을 쉴 수 있었다.

 문득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들어 시선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눈을 돌리니 왠 남자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당황한 듯 시선을 급히 돌려 앞에 앉은 사람으로 향하며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는 그 남자의 모습에 징어는 고개를 갸웃했다. 왜 저렇게 쳐다봤지. 무언가 잘못되었나.

 그렇게 한참 동안 생각하고 있을 때 갑자기 들리는 모두의 웃음소리에 그녀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니, 그냥 그런 느낌이었을 수도 있잖아. 정신차리자 오징어.


 "이 아이는 제 여식(女息)입니다. 인사하거라."
 "…오징어입니다."
 "거 참, 어머니를 닮아서 그런지 미모가 빼어나구려."
 "과찬이십니다. 허허허."
 

 그리고 나서 간발의 차로 아버지가 자신을 모두에게 소개해 징어는 겨우 대답할 수 있었다. 대답이 끝나자마자 저마다 칭찬을 하기 시작했다. 그 칭찬에 그녀의 아버지는 기분이 좋은 듯 너털웃음을 지었고 징어는 그런 사람들의 모습에 억지로 입꼬리를 당겨 웃었다. 사실은 전혀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그저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조금만 더 있으면, 억지로 먹었던 음식이 저절로 나올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답답했다.


 "그럼 징어야, 나가 있거라."
 "네."


 더 이상은 들으면 안 되는 이야기인듯, 그녀의 아버지는 징어에게 잠시 나가 있으라며 눈짓을 주었다. 징어는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것만 같았는데 잘 됐다 싶어 네, 하고 대답하고 조심스레, 그리고 재빠르게 그 방을 빠져나왔다.








-






 방에서 나와 벗어놓았던 게다를 신은 징어는 음식점 뒤에 있는 자그마한 누각 같은 곳으로 올라갔다. 이제는 조금은 살 것 같았다. 여기도 일본인의 세상이라는 건 변함이 없지만, 저렇게 비좁은 공간에서 일본인 행세를 하는 것보다는 훨 나았다.

 가만히 불어오는 바람에 징어는 그대로 몸을 내 맡겼다.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고 언제까지나 계속 지속될 것만 같은 일본인의 세상에 한 줄기 바람이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다. 바람 내음새에 눈을 감았다. 현실을 잠시나마 잊고 싶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현실을.


 "뭘 그리 생각하십니까?"
 "……!"


 갑자기 뒤에서 들려오는 남자의 목소리에 깜짝 놀란 징어는 감고 있던 눈을 뜨고서 재빠르게 뒤를 확 돌아보았다. 누각 뒤에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방에서 징어를 쳐다보던 그 남자였다. 당황한 모습이 역력한 징어와는 다르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자신도 누각으로 올라오는 그 남자는 웃으면서 징어 옆에 섰다.


 "…날씨가 참 좋습니다. 그렇죠? 적당히 불어오는 바람에, 햇빛은 따뜻하고."
 "……."


 징어 옆에 선 그 남자는 앞을 한참이나 바라보더니 뜬금없이 날씨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무슨 말을 하려고 날씨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지. 의아하게 생각한 징어가 그를 빤히 쳐다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자신은 상관없다는 듯 남자는 혼잣말일지도 모를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날씨완 다르게 참 마음에 안 드시죠? 지금의 조선이."


 그리고 징어는 남자가 한 말에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자신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정곡을 제대로 찔린 징어는 그를 쳐다보던 시선을 황급히 앞으로 돌렸지만 이미 때는 늦은 듯 그 남자는 피식, 하고 살짝 웃고서 징어를 바라보았다.


 "역시 그랬네요. 안에서 쭈욱 지켜봤는데 무표정으로 계속 있으시더군요. 누가 보면 불만이라도 있는 것처럼."


 계속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진 건 착각이 아니었다. 선한 생김새의 그는 보기와는 다르게 날카로운 눈빛으로 자신을 계속 바라보며 관찰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라는 생각이 들자 징어는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 황급히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지만 마음과는 다르게 몸이 움직여주지를 않았다. 젠장, 하고 마음속으로 낮게 읊조린 징어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런 이야기가 자신의 아버지의 귀에, 그리고 지금 있는 사람들 귀에 들어간다면 자신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자신이 다치는 건 상관이 없었지만 겉껍질만 남은 아버지, 그리고 아무 죄도 없는 어머니, 동생까지 다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지금 협박하시는 겁니까?"
 "어? 아뇨. 이야기가 그렇게 되는 것 같나요? 미안합니다."


 징어가 겨우 그에게 협박하는 거냐고 묻자 오히려 그 남자가 당황하며 사과했다. …어라?


 "전 이 조선이 마음에 참 안 들거든요. 당신처럼."
 "…예?"
 "……."
 "징어야. 가도록 하자."
 "아, 제 이름은 김준면입니다. 김준석의 아들이라면 아시려나요. 아무튼 다음에 볼 기회가 있을 겁니다. 그럼."


 당신처럼, 이라는 말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예? 라고 반문한 징어는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는 침묵으로 일관했고, 때 마침 회의가 끝난건지 그녀의 아버지의 부름 소리가 들려왔다. 그 부름 소리를 들은 건지 남자는 자신의 이름을 말하고선 먼저 누각 계단을 내려가 사라졌다.

 김준면. 김준석의 아들. 김준석이라는 사람도 자신의 아버지와 같이 유명한 친일파였다. 그 사람의 아들은 젊은 나이에 아버지를 뛰어넘을 정도의 간부가 되었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이름을 처음 들었다. 바로 오늘, 이곳에서.

 왜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한건지, 왜 자신을 그렇게 빤히 쳐다본건지, 저 남자의 목적은 무엇인지 아직도 의문이 남는 징어는 남자가 걸어간 방향을 빤히 쳐다보다가 자신도 누각을 내려왔다. 자신도 이 조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무슨 의미로 그런 말을 한 것일까.




 하지만 징어는 알지 못했다. 이 만남이 후에 얼마나 큰 파장을 몰고 올지를.






























안녕하세요, 구름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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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헐 우와 대박 헐헐 우왕...이런거 좋아여!!!!신알신하고튀어요!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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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밤
신알신 감사드립니다!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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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2
헐쩐다분위기봐..신알신하고갈게요대박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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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밤
신알신 감사해요 :)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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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3
와 분위기가 완전..신알신하겠습니다ㅠㅠㅠㅠㅠ친일파라니..진짜 배경도 딱 취향저격 탕탕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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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밤
신알신 감사드립니다~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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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4
헐...으앙....작가님...이 글 분위기 최고예여..아.....친일파시대라니...준면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거져..아....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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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5
와..암호닉신청[롱이]로부탁드려여..분위기..괘쩐다..ㅠㅠㅠㅠ!!기대됩니다!!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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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밤
암호닉은 추후에 정리해서 받을게요! 감사합니다 :)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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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6
분위기 오~올! 신알신하고 가여!!! 다음편 기대할게요!!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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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밤
신알신 감사합니다!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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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7
ㅈ짱맨 왔다가는데 올ㅋ 신알신하구가영~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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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밤
신알신 감사드려요~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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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8
이리오세훈이예요! 여기서 암호닉말해도 대나여..,,,,소심.... 글너무 좋아요ㅜㅠㅠㅠㅠㅠㅠㅠㅠ 이시대물은 첨봐요! 경성 ㅜㅜㅜㅜㅜㅠㅠㅠㅠ 좋아여좋어ㅠ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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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9
작가님 ㅠㅠㅜㅜㅜㅜㅠㅠㅜ이글너뮤좋아여ㅠㅠㅠ허유ㅠㅠ신알신해요!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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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밤
신알신 감사드려요!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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