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초콜릿이랑 편지, 그거 사실은 내가 둔 거야.
…….
좋아해.
씨발 존나 역겨워.
주간소년열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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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억.”
침대 매트리스가 반동 때문에 한 번 흔들거렸다. 아, 꿈이었구나. 식은땀은 또 얼마나 흘렸던가 앞머리가 축축한 게 느껴졌다. 승우는 탁상시계를 한 번 곁눈질로 훑었다. 샤워하고 나갈 시간은 있겠다.
* * *
전학 첫날부터 악몽이라니 꽤 최악이라는 생각과 그 녀석 특유의 어조로 역겹다고 말하는 목소리가 머릿속을 웅웅거리다가 토스터에서 빵이 튀어나오는 소리가 그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딸깍. 안방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
아버지라는 사람과 단둘이서 먹는 아침 식사는 몇 년이 되어도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 승우였다. 그의 어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신 후 이 사람의 과묵함은 더욱 심해졌다. 승우의 어머니가 이 지경이 되기 바로 직전까지 일 때문에 연락하지 말라던 사람이었다. 사실 그도 딱히 이 사람과 말을 섞고 싶은 마음은 없다.
“오늘부터 학교에 가는 모양이지?”
“예.”
“학교생활은 영국에서 하던 대로만 하면 돼. 수준은 좀 떨어지겠지만.”
저 사람은 항상 저런 식이다. 자기도 한국 사람이면서 한국 사람들의 수준이 낮다고 얘기한다. 이걸 내로남불이라고 하던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결국, 영국이나 한국이나 돈 좋아하는 건 똑같던데. 승우는 빵 한 면에 땅콩 잼을 듬뿍 발라서 한 입 크게 베물어 먹었다. 빵은 영국에서 지겹게 먹어서 따끈한 된장찌개에 밥을 먹고 싶었지만, 오늘은 가정부 아주머니가 쉬는 날이라고 하더라. 이 개 같은 아침 식사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빵을 우걱우걱 씹으며 게걸스럽게 입안을 가득 채웠다. 목구멍이 빵으로 가득 찬 느낌이었다. 답답함에 우유를 마시려고 했지만 이 사람은 무슨 이유든 식사 도중에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을 죽도록 싫어한다. 승우는 눈을 가늘게 뜨고 죄 없는 화분만 '뚫어져라' 바라봤다.
접시에 남은 잼을 바르지 않은 빵을 손에 들고 승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일어나보겠습니다.”
식사 도중에 일어난 승우가 마음에 안 든다는 그 남자의 헛기침 소리를 승우는 애써 모른 척했다.
* * *
중학교 1학년 때 좋아하던 사람이 한 명 있었다. 그 녀석과 말을 많이 섞어본 것도 아니었고, 딱히 친한 것도 아니었다. 아예 관심이 없었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마 7월, 무더운 여름이었던 것 같다. 방과 후 선생님의 심부름을 마치고 교실로 돌아오는데, 그 녀석이 교실에 혼자 있었다. 툭 하면 책상에 엎드려서 잠만 자는 녀석이라 수업이 끝날 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는데 오늘은 녀석의 친구들이 단체로 장난이라도 친 건지 자는 그를 그냥 버리고 간 것 같았다.
평소에 오지랖이 넓은 편도 아니었고 내 일이 아니면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인데 하필 녀석의 자리가 바로 건너편이라서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었다. 승우는 미동도 없는 녀석을 깨우지 않아도 일어나길 바라며 발을 쿵쿵 구르며 요란스럽게 자리에 앉았는데도 녀석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승우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 승우가 책상에 머리를 박은 채로 고개만 돌려 그의 이름을 불렀다.
“민윤기.”
반쯤 열려 있던 창문에서 옅은 바람이 불어왔다. 그 바람에 윤기의 눈을 가리고 있던 머리칼이 살랑거리며 녀석의 감긴 눈이 드러났다. 녀석의 잠든 얼굴을 그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의 피부가 하얀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눈을 덮을 정도로 살짝 길어버린 앞머리 사이로 반듯하게 감은 눈을 한참 동안 바라보는데 갑자기 녀석이 눈을 떴다. 잔뜩 당황해서 동공에 지진난 승우와는 달리 그 자세 그대로 승우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윤기였다.
눈이 마주친 그 순간, 승우는 심장이 거세게 뛰는 게 느껴졌다.
마침내 녀석이 몸을 일으켜서 텅 빈 교실을 휘휘 둘러보다가 가방을 챙겨 뒷문을 나갈 때까지 승우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사랑에 빠진 것이다.
* * *
“원래 이 동네에서 살았는데 중학교 2학년 때 영국으로 유학을 갔다고.”
“네.”
“승우는 성적도 우수하고, 착하니까 학교에서 생활하는 데 지장은 없을 거야.”
“네.”
“혹시라도 괴롭히는 사람이 있으면 선생님한테 말하고.”
“네.”
승우는 한 치수 작은 슬리퍼를 직직 끌며 제 담임 선생님을 따라 복도를 걸었다. 사실 오랜만에 보는 한국 고등학교에 한 눈이 팔려 승우는 대답만 열심히 하고 선생의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남자밖에 없는 칙칙한 남고라서 조금 아쉽기도 하겠다.”
“…….”
승우는 선생에게 자기 첫사랑이 남자라는 말을 하려다가 그냥 입을 다물기로 했다. 아버지와 함께 하는 재미 없는 아침 식사 같은 시간을 이겨내고 선생이 멈춘 곳은 [2-8]이라는 팻말이 있는 교실 문 앞이었다. 문이 드르륵 열리자 시끄럽던 교실 안이 금세 조용해졌다. 승우는 개인적으로 시끄러운 공간을 싫어하지만, 지금은 조금 시끄러워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너무 조용해서 누군가가 숙덕거리는 소리까지 다 들릴 정도였다. '야, 미친. 전학생인가?' '그런 듯.'
“오늘부터 2학년 8반에서 같이 공부하게 될 이승우라고 한다.”
“…….”
“앞으로 잘 지내보도록.”
박수 소리와 함께 다시 교실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승우는 저기. 오른쪽 맨 뒤에 앉은 - 옆에 앉아라.”
주위가 너무 시끄러운 탓에 승우는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승우는 선생을 바라보며 되물었다.
“네? 누구 옆이요?”
“저기 오른쪽 맨 뒤에 앉은 윤기 옆에 앉으면 돼.”
선생의 입에서 '윤기'라는 이름이 나오자마자 승우의 얼굴이 딱딱하게 얼어붙었다. 에이 설마.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도 아니고 설마 하는 생각을 한 승우는 시선을 바로 잡은 순간 몸 전체가 차갑게 식는 느낌이 들었다. 오른쪽 맨 뒤에 앉은, 중학교 교복이 아닌 고등학교 교복은 입은 그의 첫사랑 민윤기가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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