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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다정과 기데레 25~26화
W.쿠키가죠아
"… 미안, 내가 또 혼자 설쳤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녀석이 변명을 하려 했지만, 나는 그말을 막았다. 내가 성용을 지켜본게 얼마나 됐는데, 녀석의 생각하나 알지 못할까. 충분히 녀석의 말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녀석이 너무나 미워보였고 순간적인 충동에 나는 녀석을 슥 지나쳤다. 녀석이 나를 붙잡으려 하지도 않아 더 화가 났다. 제기랄, 행복해야하는데 또다시 이렇게 어긋나버리고 말았다. 성큼성큼 방으로 걷던 나는 이내 잠시 멈추고 발길을 돌렸다. 어느새 동원과 태희의 방 앞에 도착한 나는 벨을 눌렀다. 두세번 눌렀을까 동원의 누구세요? 하는 목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문이 열리자마자 실례, 한마디만 던지고 불쑥 들어가 누구의 침대인지는 모르지만 한 침대에 털썩 몸을 눕혔다.
"형?"
"동원아, 방 좀 바꿔줘"
"네? 갑자기 뭔소리에요?"
"그냥, 아무것도 묻지 말고 좀 바꿔줘"
"휴… 또 싸웠어요?"
"몰라, 젠장"
일일히 설명하기 귀찮기도 하고 그럴 기분도 아니어서 누워서 몰라, 하며 얼굴을 묻고 있으니, 태희와 동원이 숙덕숙덕대더니 누군가 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태희의 목소리가 들려오는걸 보면 아까 나간 사람은 동원인가보다. 분명 성용이한테 간거겠지.
"형, 진짜 여기서 잘거에요?"
"응,"
"… 진짜로?"
"응."
"진짜진짜진짜로?"
"아, 진짜진짜진짜!!"
안그래도 성용이녀석때문에 머릿속이 복잡한데, 옆에서 자꾸 귀찮게 하는 태희에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 인상을 찡그린 채 마주한 태희의 얼굴은 울쌍이었다. 뭐야, 저녀석. 나랑 방쓰기가 싫기라도 한건가. 불만이야? 라고 물어도 아무말 없이 나를 노려보기만 할 뿐이라 고개를 갸웃거리며 녀석을 살피는데 갑자기…
"… 우씨, 형 미워요!!"
하고 뛰쳐나가버린다. 그에 나는 한동안 멍하니 녀석이 뛰쳐나간 문만 바라보았다. 저녀석, 나를 저렇게 싫어했었나…? 새삼 녀석에게까지 상처까지 받아버린 나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침대에 다시 벌러덩 누웠다. 아무 생각없이 얼마나 누워있었을까, 문 밖에서 문 부서져라 두드리며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성용이다. 당장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두 손을 그대로 꽉 쥐었다. 얼마나 녀석이 난리를 쳤을까 나는 결국 폰을 들어 동원에게 문자를 보냈다. 물론 딱딱한 말투로…
하아… 성용아, 내가 널 도대체 어떻게 길들여야 하는걸까, 아까까지만 해도 분명 화가 났었는데, 아까의 떨리는 눈빛이 마음에 걸려 금새 후회하는 나 자신도 참 단단히 임자 만난 것 같다. 이런저런 생각하다 결국 나는 이참에 성용에게 확실히 각인시켜 내꺼로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내가 잘 참을 수 있을지가 제일 문제지만, 그래도 일단 성용을 안달시켜 정신 바짝 들게 해야한다. 그렇게 굳센 결심을 하며 혼자 결연의지를 보이고 있을 때 동원이 다시 왔다. 혼자라는 말에 문을 열어주자, 내 눈치를 살살보며 조심스레 말을 걸어오는 것을 보니 일단 상황은 간단하게나마 듣고 온 듯 싶다.
"형, 진짜로 방 바꾸려고요?"
"응, 보아하니 상황 다 듣고 온 것 같은데 좀 바꿔줘"
"에이, 형. 방을 바꾸는게 최선책은 아니잖아요. 이럴때는 더욱 옆에서…"
"됐어, 한동안은 얼굴 보기 싫어서 그러니까 좀 바꿔줘."
"… 형, 그렇게까지 많이 화난거에요?"
"가서 기성용이나 챙겨,"
"하아…, 알았어요. 일단 여기서 머리 좀 식혀요"
한숨을 길게 쉬면서 발걸음을 돌리려던 동원이 다시 나를 불러 태희의 행방을 물었지만, 아는 게 없는 나는 어깨만 으쓱하니, 머리를 긁적이던 녀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갔다. 태희 이녀석, 진짜 어디간거지? 뭐… 어딘가에서 내 욕이라도 하고 있나? 그건 됐고, 자 일단 동원녀석에게까지 저렇게 말해놨으니 그걸 전해들은 성용이는 아마 애간장 좀 녹겠지? 실실 웃으면서도 한편으로 성용이 걱정되었지만, 간신히 마음 꾹꾹 누르며 참았다.
일부러 이 상태를 일본전까지 유지했다. 녀석과 잠시 마주칠때마다 당장 달려가고 싶어 온몸이 부르르 떨려와 휙휙 외면했다. 그렇게 행동한건 내 선택이었지만 날로 쌓여만 가는 스트레스에 누가 살짝만 건드려도 폭발할 것 같을 지경에 이르렀다. 구자철, 진짜 미련하게 애쓴다. 그나저나 녀석의 눈이 저리도 빨간거 보면 또 밤새 운 것 같은데 경기에 지장있진 않겠지? 새삼 청용과의 약속이 떠올랐다.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몸이 움찔했다. 청용이 성격에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섬뜩해질런지. 또 청용에게 달려가기 전에 일을 마무리 지어야했지만, 그래도 일본전이 끝날때까지는 버텨야한다.
일본과의 경기, 유독 우리나라에게 파울을 많이 주는 주심에 살짝 독기가 올랐다. 재석이와 성용에게 열로우 카드를 내밀어 빡빡하다 생각하긴 했지만, 정확한 내 태클에도 호루라기를 불더니 카드를 꺼내드는 주심의 행동에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가 한번에 터져버렸다. 와이?! 분명히 공을 먼저 찼는데 기어코 카드를 받은 내가 주심에게 따지고 드니 모든 선수가 달려와 말린다. 그 사이에 성용이도 있었지만, 일단 핀트 나가버린 나는 녀석의 손을 쳐내버렸다. 녀석의 표정이 눈에 띄게 변했지만, 아직은 그런 성용을 챙길 수 없었다. 그만큼 내 결심은 단호했다.
그나저나 내 계획대로라면 이때쯤 골이 나와야하는데… 물론 전반에 빡주형의 골로 리드를 하고 있었지만, 그게 중요한게 아니다. 난 내 한골이 필요했다. 결국 죽어라 달리던 내게 골찬스가 생겼다. 그대로 골까지 연결시킨 나는 그제야 한시름 덜어놓을 수 있었다. 끝에 성용에게 골을 넣을 찬스가 생겼을 때는 가슴이 철렁했다. 팀에 있어서는 미안하지만 혹시나 내 계획이 무산되버릴까 걱정부터 들었다. 그렇게 2:0으로 경기를 마무리되자 나는 바로 성용을 찾았다. 역시나 나를 바라보고 있는 녀석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그대로 끌어안았다. 당황하며 움찔하는 성용에게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 구자철?"
"… 내기 내가 이긴거다"
"…?"
"내 소원은 널 가지는거다, 넌 내 마누라로써 평생 내곁을 못벗어나는거야, 이제"
"뭐?"
"아, 진짜 말 자꾸 못알아들을래? 너 내꺼라고, 이제부터 너랑 나랑 사귀는거고 당연히 니가 내 마누라인거고"
"…"
"하…, 둔한 기성용때문에 당연한 일로 소원을 날려버렸잖아. 원래 내 소원은 이게 아니었는데"
이제야 속시원하게 털어놓은 나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멍하니 있다 그동안 내 행동에 대해 따져오는 성용에게 사실을 말해주었더니 발끈하려 하자, 급히 동메달 얘기로 화제를 돌렸다. 물론 성용에게 화가 났었지만 어쨌든 이건 기성용 길들어보려한 거짓행동이었으니까 나 역시도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동메달 얘기에 아이처럼 신이나서 아무일 없었다는 듯 나에게 안겨오는 성용에 그동안의 행동을 후회했다. 그래, 넌 웃는게 이렇게나 이쁜데. 나는 내생각에 괜한 너를 울려버렸네. 미안해, 기성용. 사랑해, 기성용. 이제 정식으로 사귀게 됐으니, 많이많이 웃게 해줄게.
그리고, 내가 빌고싶었던 원래의 소원이 녀석과의 므흣한 생활이라는 것은 성용에게만 비밀.
***
경기가 끝나고 밤까지 미친듯이 축하파티를 즐긴 나는 또다시 먼저 잠들어있는 성용의 옆에 슬쩍 누워 잠이 들었다.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마신건지 머리가 깨질듯한 고통에 일어나 기마누라에게 물을 찾았다. 이제는 약간 투덜거릴뿐 순순히 인정하는 녀석의 모습에 실실 웃다가, 아이패드를 꺼내 기사들을 확인해보았다. 일본전 승리를 기쁘게 다루고 있는 기사들을 흐뭇하게 읽던 나는 다른 주제를 안고있는 기사제목에 표정을 굳혔다. 웃옷 벗어던진 기성용, 요염한 자태 뽐내…? 아무리 봐도 이쁘게 봐줄수 없는 기사제목이 포털사이트 메인을 떡하니 자리잡고 있다. 클릭해 기사를 확인하자 더 가관이었다. 웃옷을 훌러덩 벗고있는 기성용 사진과 함께 기사내용은 너무나도 색스러웠다. 다른 기사들도 찾아 읽으며 더욱 인상을 쓰는 내게 다가온 성용이 물었고, 내가 아이패드를 건네주자 녀석도 당황한 모습을 비췄다. 우씨, 기자들이 눈만 높아서는 왜 남의 애인을 건드리는거야
기사를 가지고 한참을 입씨름하던 중 순간 튀어나온 내 과거연인 발언에 당황했지만, 그보다 당황스러웠던건 녀석의 전여자친구 없었음 발언이었다. 말도안돼! 어떻게 이렇게 귀여운 녀석을 가져보겠다고 마음먹은 녀석이 한명도 없을 수 있는거지? 아, 아니지. 경악스러운 사실이라는 건 맞지만 이건 내가 기뻐해야할 일인가? 나 역시도 여자친구는 많았지만 누굴 이렇게나 좋아해본 것은 성용이 처음이었기에, 내가 첫 연인이라는 성용의 말이 뿌듯하고 너무나 듣기 좋아 웃음이 새나왔다.
***
마지막 결승 경기인 멕시코 대 브라질 경기를 보러왔다. 나는 전에 놓쳐버린 소원을 빌어볼까 생각하며 다시 내기를 제안했다. 녀석의 대답도 듣지 않고 선심쓰며 녀석에게 선택권을 주었다. 그러자 예상외로 멕시코를 고르는 성용에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내심 쾌재를 불렀다. 그래도 축구명가라는 브라질의 승산이 더 높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는 2:1 멕시코 승, 즉 나의 패배였다. 제기랄… 또다시 무산되버린 내 소원에 통곡했지만, 곧 정신차리고 성용을 보챘다. 얼른 보채서 쉬운 소원이나 들어줘야겠다는 약간 얍삽한 생각을 했지만, 녀석의 입에서 나온 소원에 나는 눈이 커졌다.
"데이트하자"
"그래 알았ㅇ… 엉?"
"데이트 하자고"
"데이트? 그 애인들끼리 하는 데이트?"
"데이트가 그거 말고 또 있냐?"
"… 우와"
"왜, 싫어?"
"아… 아니아니! 감동받아서"
진짜 너무 감동받았다. 설마하니 녀석의 입에서 먼저 데이트하자는 소리가 나올줄은 몰랐다. 워낙 낯간지러운 것을 싫어하는 녀석의 입에서 데이트라니… 그 얘길 꺼내면서 얼마나 부끄러웠을까, 이미 얼굴이 새빨게져 있는 녀석이 너무도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밖이고 뭐고, 녀석의 얼굴을 붙잡고 쪽, 입을 갖다댔다. 주위의 시선이 한데 몰렸지만, 성용이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일제히 딴짓하는 척하는 사람들에 피식, 웃었다. 이런 사랑스러운 녀석이 내꺼다. 자랑스럽게 떡하니 내 어깨가 벌어졌다.
지그시 성용의 얼굴을 바라보던 나는 문득 아버지에게 녀석을 인사시키고 싶었다. 물론, 지금은 그저 같은 팀 동료이자, 친구로써 소개를 시키겠지만 그래도 이녀석을 하루라도 빨리 소개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성용에게 슬쩍 우리집 가자, 말을 꺼내보니 녀석이 잠시 고민하는 듯 하다 흔쾌히 허락했다. 아싸, 웃으며 좋아하자 녀석 또한 따라 웃는다. 이런 귀여운 녀석
***
한국으로 귀국하기 위해 탑승한 비행기에서도 역시 성용의 옆자리는 내자리였다. 동료들이 전에 뽀뽀하는 것을 봐서인지 이제는 버스에서도 알아서 자리를 비워두고 오히려 비행기좌석을 확인하면서까지 손수 바꿔주러 찾아왔다. 기특한 녀석들, 실실거리며 자리에 앉아 있는데 성용이 한숨을 쉬며 앉는다.
"하… 또 너냐"
"당연하지, 나 아니면 누가 니옆에 앉겠냐"
"그래, 알아"
"어? 내가 애들한테 신신당부한거 알고있었어?"
"…뭐?"
"니 옆자린 내꺼니까 꿈도 꾸지말라고 애들한테 말하고 다닌거… 뭐야 너 몰랐지? 아씨 비밀이었는데, 너는 모르면서 왜 다 아는 척 하고 그러냐"
아씨, 진짜 괜히 아는척하는 녀석때문에 내입으로 술술 불어버린 꼴이 되버렸다. 이걸 들으면 녀석은 분명히 길길이 날뛸텐데… 역시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해져 소리치며 물어오는 녀석에 순순히 대답해줬더니, 내 머리를 팍, 때린다. 기성용, 손은 진짜 무지 맵다. 끙끙대는 나를 보며 획 몸을 틀어 안대까지 끼며 잠을 자려하는 녀석에 나는 칭얼거리며 말려보았지만 무시한채 녀석은 그대로 잠이 들었다. 그런 녀석을 가만히 지켜보던 나는 괜히 심통이 나서 녀석을 흔들어 깨웠다. 녀석이 인상을 찡그렸지만, 눈에 보이는 스튜어디스 한명을 콕 집어 살살 도발했다. 하지만 녀석은 시큰둥하게 대답하더니 오히려 불러줄테니 직접 말하란다. 아씨, 하라는 질투는 안하고 오히려 다른 여자를 가리키며 나를 놀려대는 녀석덕분에 오히려 내가 진지해졌다.
"아, 섹시하게 생기셔서 그만 넋놓고 바라보게 됐네요, 실례했습니다."
와씨, 옆에 떡하니 애인 두고서 저런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다. 시작은 내가 먼저 했지만, 어느새 내가 울쌍을 짓고 있다. 나중에 되어서야 내 생각을 알아차린 녀석이 일부러 그랬다고 하지만, 아까 그말을 들은 이후로 성용을 힐끗힐끗 보는 여자 승무원에 눈에 독기가 올랐다. 승무원을 빤히 노려보다 눈이 마주치자 승무원이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다.
"하… 진짜 길들이기 힘드네, 기여우"
지친마음에 혼자 중얼거리자 옆에서 녀석이 나를 불렀다.
"구자철"
"왜,"
"아까 내가 한말 기억해?"
"무슨말?"
"섹시하게 생겨서 넉놓고 보게 된다는 말."
"참나, 다른 여자한테 한 말을 내가 뭐하러 기억해"
"너한테 한말이야"
뭐?
'아, 섹시하게 생기셔서 그만 넋놓고 바라보게 됐네요, 실례했습니다.'
이소리가 나한테 한소리라고? 나보고 섹시하대… 그런 내가 이상형이래… 갑작스러운 녀석의 고백에 목이 탔다. 멍하니 녀석을 보다 옆에 있던 물컵의 물로 목을 축이고는 갈라지는 목소리로 나도 달콤한 말을 내뱉었다. 그러자 녀석 역시 어색해하다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아, 진짜 너무 행복하다. 이렇게 가끔식 녀석이 나를 진짜 좋아하고 있다는 마음을 보일때면 너무 행복해 미칠 지경이다. 이런 행복이 꿈만 같게 느껴지지만 생생하게 전해지는 이 느낌은 현실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이 행복이 얼마나 갈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저 영원했으면 하는 바램만이 마음을 가득 채울 뿐이다.
내가 그렇게 하겠어. 이 행복이 영원하도록 내가 그렇게 만들고야 말테다.
***
긴 비행 끝에 인천 공항에 도착한 대한민국 올림픽 축구대표팀. 게이트를 나가는 순간 보여지는 진풍경에 입을 떡 벌어졌다. 게이트 앞은 물론이고 우리들을 보기 위해 꽉차있는 공항의 풍경은 마치 아이돌 부럽지않은 환영이었다. 그것도 잠시 곧 들이닥치는 기자들의 질문 세례에 꾸역꾸역 비집고 나와 해단식을 진행한 후, 각자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는 가족들에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 역시도 공항에 나와있는 아버지와 형을 발견하고 그 쪽으로 다가갔다. 포옹을 하며 인사를 나누고 옆을 보았는데, 성용이 없다. 주위를 둘러보니 조금 멀리 떨어져 멀뚱히 서있는 성용이 보였다. 쭈뼛쭈뼛 거리며 서있는 성용을 부르자 그제야 환하게 웃으며 다가온다.
아버지도 워낙 내게 성용이성용이, 노래를 하셨던 터라 반갑게 맞아주니 성용이 그새 풀어져 살갑게 대하는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집으로 가는 내내 아버지와 형이 성용이를 붙잡고 얘기하느라 정신이 없다. 덕분에 성용이 나와는 대화는 커녕 얼굴 한번 제대로 봐주지 않으니 내 표정은 점점 일그러져갔다. 집에 도착해서 방에 들어올때까지도 아버지와 형하고만 얘기를 나누는 녀석에 토라져 아무말 없이 있으니, 성용이 그제야 나에게 입을 열었다.
"너, 왜그래?"
"이것봐, 역시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어"
"뭐가?"
"넌 나보다 우리 아버지에게 더 잘할거라는 생각"
"지금… 또 그것때문에 질투했단거야?"
"응, 나한테는 틱틱 거리기만 하면서 아버지한테는 완전 웃으면서 살갑더라?"
"풉… 푸하하하"
내딴에는 정말 진지하게 꺼낸 말인데, 녀석은 그저 웃기 바쁘다. 그런 성용의 모습에 이제는 팔짱을 끼고 볼에 바람까지 넣고는 획 딴곳만 바라보며 왜웃어, 볼멘소리를 하니, 녀석이 그제야 눈에 고인 눈물을 닦아내며 내 머리에 딱밤을 놓는다.
"멍청아, 진짜 질투할 걸 해야지. 내가 내 애인 부모님한테 잘보이겠다는데, 그게 그렇게 싫냐?"
"… 응?"
"에휴, 이 바보야. 내가 왜 너희 아버지한테 잘하겠냐. 다 너때문아니야. 좀 더 너랑 같이 있고 싶으니까,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너랑 나 사이가 알려져도 날 싫어하실 수 없게 지금부터 잘 해놔야지"
"…"
"넌 만약 나중에 우리 부모님 만나서도 내가 질투한다고 나한테 하는것처럼 우리 부모님한테도 똑같이 할래? 너나 나나 서로한테 하는 것처럼 행동하다간 밉보이기 쉽상이야,"
"그럼… 지금 내 애인으로써 시부모 비위맞추기 뭐 그런거야?"
"으이그, 비위맞추기가 뭐냐? 비위맞추기가? 단어선택하고는… 하여튼 그래, 뭐 그거 비슷한거야"
으이그, 하며 친절하게 해주는 설명에 나는 귀를 기울였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하, 이게 바로 그 편한 시집살이를 위한 포석인건가? 가만, 그럼 이녀석은 나와 결혼같은 생활까지 생각하고 있는거야? 혼자 저만치 앞서가는 생각에 실실 웃음이 새나왔다. 이녀석은 벌써부터 우리 앞에 다가올 시련을 조금이라도 줄여보기위해 이런 노력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시시한 질투만 하고있는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앞에서 엄마같은 미소를 짓고 있는 성용을 꽉 안았다. 아무튼, 애기같고 멍뭉이같은 녀석이지만 이럴때는 꼭 나보다 몇백년은 더 산 여우같다니까.
"알았어, 성용아. 이제 질투 안할게. 진짜 좋아해. 사랑해. 고마워"
"나도, 이제라도 알았으면 나 미움안받게 옆에서 잘 도와야 해. 알겠어?"
"…응,!"
기회는 이때다, 녀석의 맛있어보이는 빨간 입술을 탐하기 위해 녀석의 얼굴을 잡고, 내 얼굴을 가까이 했다. 녀석도 이번엔 쉽게 응하려는지 눈을 감는 모습에 심장이 더 세차게 뛰어왔다. 입을 맞대고 서로의 숨결을 느끼려 하는 순간, 갑작스런 아버지의 등장에 녀석의 입술이 떠나갔다. 웃으며 들어오는 아버지의 저 얼굴이 미치도록 얄밉다. 아버지와 함께 하하호호 웃으며 나가버린 성용에 한숨을 팍 쉬고는 나 역시 따라 나갔다. 그리고 부엌에 서있는 아버지를 본 순간,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맙소사, 아버지의 요리라니?! 그런거 성용이한테 먹일까보냐. 차라리 시켜먹자 제안하려 했지만, 먼저 들리는 성용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성용이 음식을 한다고 먼저 나서는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성용의 음식이라면 전에 먹어본 적 있다. 고작 라면이었지만 물도 못맞춰 낑낑거리던 녀석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저렇게 당당히 음식을 한다고 나서니 의아할 수 밖에… 그래도 아버지의 음식보다는 낫겠지, 하며 아버지가 부엌에서 나가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멀뚱히 서있자, 녀석이 이리저리 분주하게 움직이다 나를 보며 귀찮다는 듯 한마디를 툭, 던진다.
"치우는데 방해되, 도와주던가 나가던가"
"도와줄게"
"그럼 나야 고맙지,"
"이거 하고 해"
"… 이거밖에 없냐?"
"응,"
부엌 한쪽 서랍에 있던 분홍색 앞치마를 건네주자, 녀석이 머뭇거리다 이내 곧 받아 둘러맨다. 나는 그런 성용에 씨익 웃으며 파란색 앞치마를 꺼내 둘렀다. 녀석이 어이없단 눈으로 나를 봤지만, 나는 그저 웃으며 자, 뭘 도와줄까. 능청을 떨었다. 키 큰 성용이 한 분홍색 앞치마는 예상외로 꽤 잘어울렸다. 분홍색 꽃핀까지 달아주면 그야말로 새색시가 될 것만 같았지만 굳이 입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성용이 분주하게 요리하는 모습에 새삼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스코틀랜드에 있으면서 두리형네 집에 뻔질나게 가더니 형수님에게 요리라도 배운것인지, 전과는 다른 요리 솜씨에 혀를 내둘렀다. 그것도 내가 좋아하는 반찬들만 쏙쏙 골라 해주니, 그 모습이 어찌나 이뻐보이던지… 그야말로 일등신.부.감이구나. 킥킥, 요리가 완성되고 아버지와 형에게서 찬사가 쏟아져 나올때는 괜히 내가 더 으쓱해졌다. 좋아라하는 성용의 모습도 보기 좋고, 벌써 한가족이 된것만 같아 기쁘다. 그런데, 예상치못한 아버지의 공격이 들어왔다.
"자철인 전에 사귀던 여자친구랑은 어떻게 됐냐, 아직도 사귀고 있는게냐?"
"… 아버지!"
성용의 여자친구를 물어보던 아버지가 갑자기 타깃을 바꿔 나에게 저런 질문을 던지자, 나도모르게 큰소리가 나갔다. 아씨, 속으로 절망하며 녀석의 눈치를 보니… 제기랄, 녀석이 씨익 웃더니 아버지에게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한다. 아버지를 말려봤지만, 성용과 죽이 척척 맞아 시시콜콜한 얘기들을 전부 꺼내놓는다. 나는 결국 벌떡 일어나 방으로 들어와버렸다. 곧이어 성용이 따라 들어오긴 했지만, 나는 그저 침대에 얼굴을 묻고 속으로 연신 욕만 해댔다. 그리고 녀석의 다가오는 느낌에 그냥 거기서 들으라는 뜻으로 입을 열었다.
"제길, 데리고 오는 게 아니였어…"
"어째서?"
"아버지가 그렇게 내 여자친구한테 관심 많은 줄 몰랐거든"
"니 여자친구한테 관심이 많은거냐? 너한테 관심이 많으신거지"
"그래도 저렇게 신나서 떠드실줄이야… 근데 너 저 말 다 믿는거 아니지? 저거 다 거짓말이야!!"
"흐음, 그렇다고 생각하기엔 너무 생생하던데? 음, 뭐였더라. 최근의 여자친구와는 결혼까지 생각했다고?"
"아니야, 진짜 거짓말이라니까?!"
"글쎄, 전적이 너무 화려해서 믿을 수가 있어야지"
다가오던 발걸음을 멈추고 얘기하던 성용이 내 변명에 콧소리를 내더니 다시 쿡쿡 나를 찌르는 말을 꺼낸다. 그에 할말없어진 나는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성용이 나를 조심스럽게 불렀지만 대답할 수 없었다. 솔직히 전에는 여자친구를 그렇게 갈아치우면서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었는데, 지금 이 순간 나는 그런 내가 무척 원망스러웠다. 젠장젠장, 이렇게 성용이가 내 사람이 될 줄 진작 알았다면 그런 여자들따위 집에 안데려왔을텐데… 아니, 아예 사귀는 것 조차 하지 않았을텐데. 하지만 이미 지나간 과거를 탓해서 바뀌는 것 아무것도 없기에 생각을 바꿨다. 지금부터라도 성용에게만 집중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성용이 살금살금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그리고 녀석의 손이 내 어깨에 닿는 순간 녀석의 팔을 잡아 강하게 끌어 침대에 쓰러뜨렸다. 놀란 녀석이 눈을 꿈뻑였고, 나는 그런 녀석을 보며 장난스럽게 입꼬리를 올렸다.
"… 야!!! 무…뭐하는거야!!"
"… 니 잘못이야"
"뭐? 이게 무슨 짓이야! 빨리 안내려와?!"
"흥, 절대 그럴 순 없지. 내 말 안 믿은 벌이야."
"무…!"
어쨌든 이녀석도 나를 좋아하니까 내과거를 늘어잡고 나에게 이런 질투심을 보이는 것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니 이런 귀여운 질투를 하는 녀석이 너무나도 이뻐보였다. 아니, 원래도 워낙 이쁜 녀석이었지만 이런 질투하는 녀석은 색다른 매력이 줄줄 흐른다. 내게서 벗어나려 발버둥치는 모습과 틱틱대는 저 입술까지도 너무 사랑스럽게 느껴져 나는 그대로 녀석의 입술을 막았다. 하도 저항이 심해 초반에는 거칠게 이끌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녀석과 소통하고자 부드럽게 달콤하게 리드하니 녀석도 그에 어울리기 시작한다.
"하… 하아… 구자철, 너 진짜…"
"하아… 너에게는 벌, 나에게는 꿀. 좋아, 이거 일석이조네"
"… "
"어때, 반성 좀 했어?"
"… 바보냐?"
"어라, 안했어? 한번 더 줘야하나?"
"진짜 바보네… 이게 나한테 뭐가 벌이라는거야, 나한테도 달콤한 꿀이지"
"…!"
녀석의 말에 피식 웃었다. 정말이지 가만보면 나보다 더 달콤한 말을 서슴없이 하는 녀석이다. 그때, 녀석이 먼저 내 입에 뽀뽀를 한다. 기멍뭉이가 나를 이렇게나 유혹한다. 물론 녀석은 자각 못하고 있겠지만… 그런 녀석을 알기에 나는 다시한번 가볍게 뽀뽀하고 나서 녀석의 위에서 내려와야만 했다. 휴, 머릿속에 참을 인자를 몇번씩이나 새기며 커져가는 성욕을 無로 돌려놓으려 애쓰고 있을 때, 녀석이 내일 데이트를 하잔다. 오늘따라 적극적인 성용에 활짝 미소를 지었다. 내일이라… 이거 준비 좀 해야겠는데?
그 후 가족들과 좀 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성용이 먼저 잠이 들었다. 요새 성용의 잠이 많이 늘어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모든 경기를 풀타임으로 뛰면서 쌓였던 피로가 있어 금새 이해했다. 그만큼 올림픽에서 얻은 피로감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잠든 성용을 확인한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았다. 아, 컴퓨터 앞에 앉은 것도 오랜만인데? 나는 묘한 기분을 느끼며 인터넷 창을 켰다.
-서초동 데이트코스- 라고 검색창에 치자 수도 없이 많은 글들이 나왔지만, 딱히 새롭고 특별한 것은 없었다. 그래도 그 중 가장 낫겠다 싶은 것들을 일일히 적어놓고 예약까지 해놓은 나는 기지개를 켜며 거실로 나갔다. 거실로 나가보니 아버지가 아직 소파에 앉아 티비를 보고 계신다. 나는 아까 일도 있고 하니 아버지 옆에 슬쩍 앉았다. 그런 나를 힐끗 보다 다시 티비로 눈을 돌리신 아버지가 슬쩍 입을 여셨다.
"아까는 많이 화났었나보구나,"
"… 죄송해요"
"아니다, 나는 네가 그렇게 싫어하는 줄 몰랐다. 미안하구나"
오히려 내게 사과를 해오는 아버지에 순간 울컥했다. 하… 나 기성용한테 빠져서 뭔 짓을 한거냐. 이 불효막심한 놈아. 섣불리 행동한 나를 자책을 했지만 이 자책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아버지 입에서 또 기가막힌 말이 나왔기 때문이다. 아니, 아까 그말보다 더 심하다. 내 이성이 날아가버릴만큼. 성용에게 여자친구가 있는지 한번 더 나에게 확인한 아버지는 심하게 뭔가를 생각하신다. 내가 녀석에게 있어 여자친구는 아니었기에 없다고 말하긴 했지만, 그 말을 한 나는 곧 후회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아는 참한 아가씨가 있는데, 성용이하고 소개시켜줘볼까? 어떠냐, 자철아."
"…아버지!!"
생각도 못한 아버지의 발언에 나는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 그에 아버지가 또 왜이래? 하는 표정으로 날 바라봤지만, 나에게 그것은 이미 안중에도 없었다. 그저 아버지의 말이 너무도 충격적으로 다가와 아버지고 뭐고 금방이라도 다 엎어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그러나 아버지도 그 뜻을 굽히지 않고 오히려 더 강하게 나에게 제안해왔다.
"저렇게나 멋진 아이인데 아직까지 여자친구가 없는걸보면, 그동안 기회가 없었던거 아니겠냐. 이 아가씨 정말 이쁘고 참해서 둘이 잘어울릴것 같은데말야"
"안돼요! 절대 안돼요!!!"
"왜 니가 그렇게 펄쩍 뛰어? 성용이한테 한번 말이나…"
"아, 글쎄, 안된다니까요! 성용이한테 그런 쓸데없는 소리 절대로 하시지 마세요!"
"거참, 왜이리 소란이냐. 그래도 말이라도 한번…"
"… 성용이 좋아하는 사람 있어요. 그러니까 그런거 절대 안할거에요"
결국 성용의 짝사랑설까지 만들어버린 나의 말에 아버지는 놀란 반응을 보이셨다. 성용이가 짝사랑을 한단말이냐? 의외라는 듯 물어오는 아버지에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 성용아. 그래도… 어쩔 수 없어. 이건 절대로 막아야해. 그제야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을 접으려 하자 나는 안도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역시 오지랖 넓은 우리 아버지는 너무도 쉽게 나를 안달하게 만드셨다.
"그럼 짝사랑과 잘되게 도와줘볼까?"
"아버지, 그만해요. 누구인 줄은 알고서 그런말 하는거에요?"
"흐음, 그것도 그렇구나."
"그냥 성용이한테는 아무말도 하지마세요. 저한텐 신경도 안쓰시면서 왜 남의 아들한테 그러는거에요?"
"너야 워낙 밥먹듯 바꿔대니 소개시켜주기도 미안하더구나."
"…아버지."
결국 아버지와 더 깊은 골만 만들고 방으로 들어온 나는 성용 옆에 털썩 누웠다. 진이 다빠졌다, 아버지가 저런 생각을 할 줄이야. 오히려 일찍 데려온 것이 잘못한 일은 아닐까 하는 고민까지 생겨버렸다. 고개를 돌려 성용을 가만히 바라보니 내 이런 고민따위는 별것 아니라는 듯 온화한 표정으로 잠들어있는 얼굴이다.
기성용, 우리 가족들은 니가 맘에 쏙 드나보다. 나에게 있어서는 안달날 일이지만, 너한테 어울리는 참한 여자 소개시켜주려는 걸 보면… 원래 너의 옆에는 여자, 아버지의 말처럼 참하고 이쁜 여자가 있어야했겠지? 그 자리에 내가 있어도 되는걸까? 혹시라도 니가 나중에 여자를 원한다면, 여자가 아니어도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원한다면 나는 비켜줘야하는걸까? 또 지금이야 우리 가족들이 널 좋게 봐주지만, 내 좋은 친구로서 잘 봐주고 있다지만… 만약 니가 내 애인이라고 말하면 지금 상태가 유지될까? 그랬으면 좋겠지만 역시 조금 힘들겠지? 그래도 난 너 포기 못해. 안해. 절대로. 그리고 넌 내가 지킬거야. 그러니까… 너도, 너도 조금만 버텨주라.
결국 아버지의 말때문에 온갖 생각을 하며 밤을 새야했다. 혹시나 아버지가 성용에게 쓸데없는 말을 할까 아침부터 녀석을 깨워 집으로 보내려 했다. 잠이 덜 깬 녀석이 칭얼거리는 모습이 귀여워 잠깐 망설였지만 기어코 데이트를 핑계삼아 깨워 녀석을 욕실에 밀어 넣었다. 금새 준비를 마친 녀석을 배웅하기 위해 모였다. 눈꼬리 휘어지게 인사하던 녀석이 나를 그대로 본다. 순간 그 눈웃음에 이성을 놓칠뻔한 나는 잘가라, 한마디를 던지고 방으로 피했다. 창문으로 녀석을 보니 그런 내가 섭섭했는지 투덜투덜거리며 밖으로 나간다. 그러더니 내가 미리 불러놓은 택시기사와 싸움이라도 벌일 기세에 급히 문자를 보냈다. 녀석이 문자를 확인하더니 창문을 바라보기에 손을 흔들어주니 녀석도 손을 흔들고는 택시에 탔다. 곧 녀석에게서 전화가 왔다.
"응,"
'아깐 획하고 돌아서더니 뭐냐, 이 택시는?'
"아, 아깐 나도 모르게 껴안아버릴 것 같아서"
'뭐? … 그건 잘 참았네'
"쳇, 이따가는 참으라고 해도 안 참을거다"
'…'
녀석에게 장소와 시간을 통보한 후 전화를 끊은 나는 몸을 바삐 움직였다. 나갈 준비를 하고 서초동까지 약속시간 먼저 가있으려면 일분일초가 급했다. 급한 탓에 옷은 간단하게 입으면서도 녀석과의 첫 데이트에 들뜬 나는 폼나게 향수까지 뿌려가며 미용에 신경을 썼다.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서다 뒤에서 지켜보던 아버지의 또 새여자친구 생겼냐?는 말이 귀에 들어와 그런거 아니에요! 하며 뛰쳐나와야만 했다.
끝까지 내 편이 안되주시네, 우리 아버지. 앞으로의 길이 험난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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