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수업은 생각 보다 지루했다.
50분의 수업 내용 중 30분을 담당 선생인 미스터 윌로우가 만든 음악의 기초와 이론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을 멍하니 보는데 쓰였고, 당연하게도 학생들은 책상에 엎드려 자거나 핸드폰을 꺼내 열심히 딴 짓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봐도 무슨 말인지 전부 다 완벽히 해석 되는 건 아니라 금세 지루해져서 턱을 괴고 교실을 쭉 둘러보는데 바로 옆자리에서 나를 보고 있던 나재민과 눈이 마주쳤다.
책상에 엎드려 한쪽 팔을 쭉 뻗고 그 위에 머리를 기댄 자세로 나와 눈이 마주친 나재민은 찰나의 무표정이 꿈이었다는 듯 생글 웃으며 작은 목소리로 나만 들을 수 있게 속삭였다.
"재미없죠?"
"응..."
"원래는 이렇게까지 Boring(*지루한) 하진 않은데, 윌로우가 수업 하기 귀찮았나봐요."
작게 키득키득 웃으며 졸음이 가득 내린 눈을 슬쩍 비비는 그 애 에게 나는 충동적으로 속삭였다.
"아까, 나 같은 사람은 처음 봤다는게, 무슨 말이었어?"
내가 이 타이밍에 그걸 물어볼 줄은 몰랐는지, 잠시 입을 작게 벌리고 어...하는 바보 같은 소리를 내던 나재민은 팔에서 머리를 떼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무슨 대답을 내놔야 할 지 고민 하는 듯 볼을 작게 긁적이던 그 애는 곧 나를 돌아보며 처음 보는 진지한 얼굴로 입술을 혀로 축였다.
"...그냥, 뭐랄까. 누나 같은 사람 처음 봤거든요...그러니까, 그게, 아 This is so embarrassing(너무 쪽팔린데), 근데 누나가 그거예요. 한국말로 뭐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는데,"
"뭐?"
"My ideal type (제 이상형)."
"내가 니 이상형이라고?"
"맞아요, 그거."
방금 본인이 폭탄 선언 비슷한 걸 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내가 한국어로 사전적 정의를 해주자 새로운 단어를 알았다는 듯 거의 손뼉을 칠 기세로 기쁘게 고개를 끄덕여서 나는 미국은 이런 발언은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건가, 하고 고민 해야 했다.
하지만 곧 매우 쑥스러운 표정으로 볼을 긁는 나재민 덕분에 그냥 그 애가 과하게 솔직한 거라고 깨달았고.
"너무 부담 갖지는 마요. 그냥 말 한거니까."
"어, 어. 그래..."
내가 어떻게 부담을 안가질 수 있겠니...
나는 대충 대답하며 삐질삐질 어색하게 시선을 앞으로 돌렸지만 내 옆에서 나를 뜷어지게 바라보는 나재민의 시선이 그대로 느껴져 다시 고개를 그 쪽으로 돌려야만 했다.
아까 처럼 아기 같이 웃는 얼굴일 줄 알았는데, 예상과는 정 반대로 표정 없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어서 왠지 모르게 그 얼굴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웃음기 가신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나재민이 심하게 어색해 입술을 깨물자 한 손으로 턱을 괸 그 애가 다른 한 손으로 자신의 입술을 톡톡, 두드렸다.
"Lips. (입술.)"
즉각 깨물던 입술을 얌전히 놓아주자 그제서야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앞을 바라본다.
뭐랄까, 그 얼굴이 마치 방금 식사를 끝낸 포식자의 얼굴 같아서 나는 나도 모르게 침을 삼키고 말았다.
결국 끝까지 집중은 하나도 하지 못 한 상태로 음악 수업은 끝이 났고, 미스터 윌로우는 둘, 셋 씩 짝을 지어 오늘 나눠준 유인물에 적힌 인물들 중 하나를 골라 조사 해오라는 아주 귀찮은 숙제를 내주었다.
다음 시간에 랜덤으로 이름을 뽑아 발표하게 할 것이라는 으름장에 학생들은 투덜거리며 삼삼오오 짝을 지어 교실을 빠져 나갔다.
"누나는 나랑 같이 하면 되겠다. 그죠?"
아까의 나른한 표정은 온데간데 없이 평소처럼 생글생글 웃는 얼굴의 재민이 유인물을 대충 가방에 넣으며 말 했다.
수업이 먼저 끝났는지 교실 앞에서 기다리던 동혁이가 우리 앞으로 다가와 섰다.
"둘이 좀 친해졌어?"
해맑은 물음에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그저 가방만 만지작 거리고 있으려니, 머리 위에서 나재민의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우리 엄청 친해졌어. 그쵸, 누나?"
다행이라는 표정의 이동혁이 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동혁이의 뒤에 서 있던 나재민이 한 손가락을 자신의 입에 가져다 댔다.
오늘 있었던 일은 말 하지 말자는 확실한 무언의 사인에 나는 홀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응. 친해졌어."
처음으로 나와 나재민, 우리 둘 만의 비밀이 생긴 날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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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글 1짤 하고 싶은데, 재민이는 역시 다른 드림이들에 비해서 활동 기간이 많이 짧다보니 적절한 짤이 없어서 슬퍼요...
이번 활동 아니면 옛날 츄잉껌 때 사진 뿐인데...그 땐 너무 애기라서 이 글의 재민이랑 이미지가 안맞아ㅠㅠㅠㅠㅠ
댓글 달아주시는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한 분 한 분 답댓 달아드리진 않아도 댓글 달릴 때 마다 정말 뿌듯해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