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난 달의 그림자
우현과 성규의 이야기
월루각을 비추는 달이 오늘따라 유독 밝았다. 달의 눈물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달빛을 받아 마치 홀로 빛나는 것처럼 우아하게 서있었다. 그 월루각에 성규가 아슬아슬하게 몸을 기대고 아래의 호수를 바라보았다. 호수에 비친 달은 가끔씩 바람이 불 때마다 일그러졌다. 벌써 한 식경이나 미동 없이 아래를 내려다보는 성규에 우현은 왠지 불안해졌다. 차라리 올곧이 떠있는 달을 바라보시라고 말하고 싶은 심정에 입을 달싹거렸다.
“현아.”
“예, 마마.”
“언제쯤, 나를 죽일 생각이더냐?”
“무슨 말을,”
“너희 아버지가 나를 그리 생각하는 것을 모를 줄 알았더냐.”
“마마. 저는!”
“대답하지 말거라. 믿고싶어지니.”
우현은 성규의 말에 어떤 말을 하려했는지 잊어버렸다. 성규는 여전히 미동도 없이 호수의 달만을 바라보았다. 누군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깨질 것 같은 침묵의 균형을 깨뜨린 건 성규였다. 성규는 호수를 바라보던 눈길을 미련없이 거두고 월루각 아래로 걸음을 옮겼다. 우현은 그런 성규를 좇았다. 오늘따라 유독 밝은 달임에도 불구하고 성규는 하늘을 한 번도 바라보지 않았다. 성규의 등 뒤로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우현의 발 위를 뒤덮었다.
호원과 동우의 이야기
활짝 열어둔 창으로 시원한 바람이 들어왔다. 호원은 조금 쌀쌀해진 방 기온에 창을 닫으려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호원의 탁자 맞은편에는 동우가 고개를 꾸벅이며 잠들어있다. 호원은 턱을 괴고 동우의 단정한 정수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꾸벅꾸벅 잠마귀와 씨름을 하던 동우는 호원의 시선이 느껴졌는지 눈을 비비며 고개를 들었다. 호원은 그런 동우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동우는 반 쯤 닫힌 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전하! 오늘은 달이 참 밝습니다!”
“그렇구나.”
“소인은 달이 밝은 날이 참 좋습니다요.”
“짐도 그러하다.”
“소인은 밤에만 어미와 함께 나설 수 있었습니다요. 그러니 달이라도 밝은 날에는 세상이 그리 훤할 수가 없었지요.”
“고뿔이 다 나으면, 그땐 산책이라도 나가자꾸나.”
“약조하시는 겁니다!”
“그래.”
동우는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떠있는 달을 보며 단정했던 어미의 손톱을 떠올렸다. 동우의 눈가가 촉촉해지는 걸 호원은 눈치 챘는지 머리를 몇 번 쓰다듬어주고 몸을 일으켜 이부자리로 향했다. 동우 또한 소매로 눈가를 훔치고 호원의 옆에 몸을 눕히었다. 창으로 들어오는 달빛이 두 사람의 발 끝에 떨어졌다.
명수와 성열의 이야기
성열은 자꾸 뒤를 따르는 이에 짜증을 가득담아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런 성열에도 명수는 멀뚱히 성열을 바라보기만 하였다. 성열은 울화가 치밀어오르는 듯 가슴을 툭툭 쳤다. 명수는 그런 성열에게 조금 가까이 다가갔다.
“그만 좀 좇아오시라고 부탁드리지 않았습니까.”
“싫다.”
“도대체 제게 왜이러십니까?”
“그대가 내 질문에 답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저는 분명히 말씀 드렸사옵니다. 그런 기억이 없다고.”
“그건 내가 원한 답이 아니니 답을 듣지 않은 걸로 합세.”
“명수님!”
“그대는 휼국의 사람이고, 보룡사를 안다고 하지 않았나.”
“제가 휼국의 사람이기 때문에 보룡사를 아는 것이옵니다! 제발 좀 그만 좇아와주십시오.”
“그렇다면 내일은 내가 원하는 답을 해주어.”
“거짓말이라도 하라는 말씀이십니까?”
“아니, 기억해내라는 말일세.”
성열은 뭐라 따지려는 듯 입을 열었다가 다시 입을 다물고 몸을 돌렸다. 급한 일이라도 있는 듯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명수는 점점 멀어지는 성열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성열의 모습이 사라지고 나서야 명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아까 성열을 좇을 때와는 달리 하염없이 무뚝뚝한 얼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