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평범한 25살 대학생입니다.
사실 다른 게 아니라 제 친구가 좀 이상해서요. 여러분이 보기에도 이상한지 궁금해서 글 올려봐요.
저랑 제 친구는 어렸을 때 부터 늘 함께 지냈어요. 평생지기라는 호칭으로 절 불렀고요. 예전에는 별 생각 없었는데, 중학교 올라가고 부터 애가 조금 이상한 것 같은거예요. 갑자기 저랑 가까이 오는 친구들을 경계하질 않나, 제 이름을 부를 때 꼭 앞에 우리 누구누구 하는 호칭을 붙이질 않나…. 보통 중학교 올라가서부터는 스킨쉽이 줄잖아요. 그런데 얘는 오히려 더 늘어난 것 같아요. 옆에서 꼬박꼬박 챙겨주려고 들고, 떨어지려고 하지도 않고. 음악듣고 있으면 꼭 찾아와가지고 뭐해? 나도 같이 듣자! 하면서 제 귀에 있는 이어폰을 하나 빼가요. 귀찮아서 저리 가라고 하면 자기가 귀찮은거냐고, 나는 널 엄청 좋아하는데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면서 울망울망하게 보는 거 있죠. 어느날은 다짜고짜 하는 말이 세상에서 제가 가장 좋대요. 뭐 가장 예쁘게 보인다나 뭐라나…….
제가 피부가 하얀 편이거든요. 그런데 걔가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자기 학용품이나 핸드폰 같은 걸 다 하얀 색으로 사들이는거예요. 원래는 알록달록한거 좋아하던 애였는데. 그래서 왜그래? 하고 물었더니, 하얀걸 보고 있으면 네가 생각나서 기분이 좋대요. 그러면서 자꾸 제 볼도 만지고, 손도 만지고…. 제가 먹는 걸 좋아하는 편인데 걔는 꼭 같이 뭘 먹으러가면 저한테 맛있는 걸 다 몰아주면서 먹는 걸 지켜보거나 먹여줄려고 해요. 그러면서 오구오구, 잘 먹네! 하면서 엄청 좋아해요. 저는 커피 엄청 좋아하는데, 걔는 쓴 거 못먹어서 커피 안좋아하거든요. 그런데 커피 좋아하지도 않는 애가 밥 다 먹고 나면 꼭 커피점 같이 가줘요. 그래서 제가 너무 궁금해서 너는 커피도 안좋아하는 애가 왜 밥 먹고 가면 꼭 카페를 가자고 하냐고 물어보니까 걔가 웃더니, "내가 커피가 좋아서 커피점에 가겠어?" 이러고는 얼른와, 하고 저를 잡아끄는거예요.……. 이런거 외에도 얘기하자면 엄청 많은데. 제가 잔병치례가 많아가지고 앓아누우면 만사 다 제치고 제 집까지 찾아와서 하루밤을 꼴딱 세워서 간호해주고 가고 그러기도 하고요. 저한테 좋아한다는 말도 서슴치 않고 많이 해요.……이거, 그린라이트인가요?
noname1
답정너ㅡㅡ?;
noname2
백퍼센트 확실하네요ㅡwㅡ
noname3
행쇼하세요!
noname4
아 저리 꺼져라..ㅅㅂ; 빌어먹을 커플놈들
noname4
아.. 제 주위에도 저런 친구 하나만요.. 제발..
noname5
글만봐도 행쇼네.. 이런걸 뭐하러 물어보고 있냐 진심ㅇㄴㅇ;
noname6
와..쓰니님이 엄청 예쁘신가봐요. 어려서부터 같이 지내고 좋아하는 마음 가지는거 쉬운거 아니라는데/_\
택운은 올라오는 댓글에 머리를 부여잡았다. 역시 자기 혼자만의 착각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렇지, 이건 친구라고 보기엔 너무 이상하잖아. 도를 지나쳤다고. 최근들어 자꾸 자기를 보는 학연의 시선을 의식하게 됐다. 대학생이나 되고, 군대도 같이 다녀온 180을 넘긴 남정네 둘이서 손을 잡고 다니자고 한다던가, 자연스럽게 껴안는다거나 하는 스킨쉽들도 조금씩 신경쓰였지만 어려서부터 이랬으니까 습관 비슷한거겠지 하면서 넘어가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그런데….
둘이서 같이 술을 마시고 학연의 집에서 잠들었다. 목이 말라와 잠시 잠에서 깼을 때, 제 얼굴을 쓰다듬는 온기가 느껴졌다. 뭐하는거지, 싶어 가만히 있으려니 택운아…. 하고 작게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그 다음에는 입술에 와닿는 말캉한 느낌. 택운은 눈도 뜨지 못하고 그 상태 그대로 빳빳하게 굳어버렸고 학연은 짧게 입을 맞춘 후에 바로 자리에 누워 골아떨어졌다. 그런 학연과는 반대로 택운은 술기운도 잠기운도 확 날아가버려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울 수 밖에 없었다. 그 이후로 학연을 피해다니며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익명 사이트에 글을 올리니, (차마 잠자고 있는데 뽀뽀당했다는 얘기는 익명 사이트여도 창피해서 쓸 수가 없었다.) 댓글들이 전부 그린라이트라지 뭐냐. 아, 진짜. 진짜! 어떡해! 고민하던 택운은 그러고보니 제일 중요한 사실을 빼놨다는 걸 깨닫고 그 밑에 댓글을 달았다.
글쓴이
그런데 저희 둘 다 남자예요. 그래도 그린라이트예요?
ㄴ ???????????
ㄴ 헐 썰 좀 더 자세히
ㄴ ? 헐? 헐?
ㄴ 헐 남자랑 남자랑도 행쇼하는데..
ㄴ 와 대박 헐 이걸 왜 이제 말해
ㄴ 그러면 더 빼박캔트그린라이트
ㄴ 헐 대박.......쓰니 행쇼하세요;
ㄴ 게이예요? 둘 다 게이?
ㄴ 쓰니님은 어떤데요?
반응은 폭발적이였다. 대부분의 댓글은 그 친구가 너 좋아하는 거 틀림 없어! 라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아, 정말 미치겠네. 게다가 댓글이 폭발적으로 달리는 탓인지 택운의 글은 게시판 맨 위에 인기글로 올라가기까지 해버렸다. 아, 정말, 죽겠다. 댓글들이 초단위로 달리고 있었고 게시글 동접자 수는 100명을 훨씬 넘고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택운은 한숨을 푹 내쉬다가 이왕에 이렇게 된 거 제대로 상담이나 받아보자 싶은 생각에 댓글을 하나 더 달았다.
글쓴이
얼마전에 같이 술 마셨는데 걔네 집에서 같이 잤거든요. 중간에 깼는데 걔가 제 얼굴을 쓰다듬으면서 이름을 부르는거예요. 뭐하는거지 싶어서 가만히 있었는데 갑자기 뽀뽀하더라고요. ...이거 장난같은 거 아닐까요? 진짜 그린라이트예요?
ㄴ 쓰니야 행쇼
ㄴ 왜 여기서 답정짓이야
ㄴ 빼 박 캔 트
ㄴ 백퍼센트 확실하다니까?
ㄴ 야 빨리 걔한테 연락 넣어봐
ㄴ 그래서 쓰니 너는 어떤데? 사귈거야?
ㄴ 헐 대박이다.. 진짜 소설같아
ㄴ 자작 아님?
아, 아니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니…. 택운은 올라오는 댓글들을 확인하며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스크롤을 내리던 택운의 손이 어떤 덧글 하나에서 멈췄다.
noname 426
너 ㅈㅌㅇ이지?
ㄴ 헐
ㄴ 헐
ㄴ 헐 본인 등장인거야?
ㄴ 헐 뭐야 어떻게 된거야
ㄴ 쓰니야 얼른 와서 대답좀
ㄴ 쓰니 왜 대답이 없어?
ㄴ 진짠가봐
헐. 진짜 헐이라는 단어 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뭐야. 누군데 나를 아는거야. 여기 익명사이트 아니였어? 아래로 주르륵 달리는 댓글들은 택운에게 진짜인지 아닌지 댓글을 달아달라고 재촉하고 있었다. 택운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자판을 눌렀다. 누, 누구세요…? 너무 당황해서 아니라고 말해야겠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아, 아니라고 할걸. 멍청이. 후회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백단위의 동접자들은 택운이 댓글을 단지 3초도 지나지 않아서 헐 대박!!!!!!!!! 이라며 흥분의 도가니탕을 이루었다. 진짜 망했다. 차라리 글을 올리지 말걸. 택운이 컴퓨터를 보며 절망에 빠져 있는 그 때, 핸드폰 액정에 불이 들어왔다.
[차학연] 정택운 오후 10:12
[차학연] 나 지금 너희 집에 갈거니까 꼼짝말고 있어. 오후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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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조했습니다ㅇㅅ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