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수호]지여애모(只汝愛慕)
03
준면이 태평국에 와 생활을 시작한지 몇 주가 흘렀다. 태평국에서의 준면의 생활을 한가롭고 심심했다. 주환관에게 동의를 얻어 싱그러운 초록빛을 머금은 화원에 나가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준면의 유일학 낙이 되었다. 준면이 갇히다시피 있는 화류헌에는 준면의 또래가 한명도 없었다. 물론 곁에서 절 돌봐주는 지밀상궁이나 주환관이 있기는 하였으나 그들은 편한 사이와는 거리가 멀기때문에 준면은 점점 제가 외딴 섬에 떨어진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한참을 집무를 보고있던 크리스가 뒷목이 당기는 느낌에 목을 주무르며 크게 숨을 내뱉었다. 크게 난 창 너머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준면의 모습이 보였다. 백옥같이 하얀 피부에 살풋 짓는 웃음. 말을 타지 못한다하는것마저 어쩜 그리 닮았는지.
태평국의 황제에게는 황후를 비롯한 4명의 아내가 있다. 크리스는 그 중 황귀비(皇貴妃)-후궁 중 제일 높은 지위-의 차남이었다. 크리스의 어머니는 제일 늦게 입궐했음에도 불구하고 황귀비의 자리까지 올라 자신이 황제의 총애를 받는다는걸 증명했다. 조정에서 노파심에 정해준 황후와 다른 후궁들의 합방일을 제외하면 황제는 항상 황귀비의 처소에 행차했다. 황제는 귀비를 사랑했고, 귀비 또한 황제를 사랑했다. 황제와 귀비에게는 두명의 아들이 있었다. 형인 레이와 동생인 크리스. 레이는 태생적으로 몸이 약했다. 승마도 배우지 못했으며 검술 또한 익히지못했다. 레이는 온화하고 너그러웠다. 크리스는 그런 제 형을 참 많이 좋아햇다. 자신이 잘못을 해 혼이 났을 때도 저에게 괜찮다 말해주는 형이 좋았다. 우애는 날로 깊어갔다. 크리스의 키가 레이를 뛰어넘었을 때는 속으로 이제 형을 제가 지켜야겠다 다짐도 했다. 그러나 황궁은 그런 형제를 가만히 놓아줄만큼 온화한 곳이 되지 못했다. 궁은 권력을 탐하는 자들의 소굴이다. 레이는 몸이 약했으나 장자가 왕위를 이어받는 왕실제도에 의하면 명백한 황태자였다. 그 자리를 탐하는 검은 손들은 무수히 많았다. 그리고 어느 날, 레이가 죽었다.
독에 의한 타살이었다. 범인은 얼마 가지 못하고 잡혔다. 다름아닌 제 2황자의 어미인 덕비(悳妃)의소행으로 밝혀졌다. 황제는 크게 진노하였다. 황궁에서 이런 불미스러운 일에 일어났다는 대외적은 명분 뒤에 숨겨진 진심은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의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덕비는 폐위와 함께 사형을 당했고 그의 아들인 제 2황자또한 폐위되어 먼 곳으로 유배를 가게 되었다. 크리스가 황태자로 올라서는 순간이었다. 크리스는 제1황자가 된 순간, 더 이상 제 형의 죽음을 슬퍼하며 울 수 없었다.
크리스는 제 자리에 대해 항상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있었다. 제 형을 앗아간 자리였다. 죽은 형을 위해서라도 올바른 황제가 되어야한다고 생각했다. 황태자가 되고 나서 크리스는 어느것하나 게을리 하는게 없었다. 제 형이 꿈에 나오기라도 한 날에는 잠을 이룰수조차없어 어둠속에서 땀에 젖은 채 하루종일 무예연습을 한 적도 있었다. 어머니인 황귀비를 소홀히 대하지도 않았다. 효성이 지극한 황태자라 입소문이 났지만 속의 이유는 달랐다. 가족이라는 영원한 제 편을 잃고 싶지 않다는 저 나름의 발악이었다.
준면을 처음 봤을때 크리스는 제 형을 보는듯한 착각이 일었다. 외양이 똑 닮은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겹쳐보였다. 제가 지켜주리라 다짐했던 형을 떠올리게하는 작은 왕자를 차마 죽일 수 없었다. 너의 외양이 마음에 들어 데려온것이다, 라는 말이 틀린것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준면은 아름다웠기에.- 자꾸 죽은 제 형을 보는 이상한 느낌에 자꾸 신경이 쓰였다.
준면을 태평국에 데려온 첫날 밤 크리스의 꿈에는 레이가 나왔다. 오색찬란한 빛속에 레이와 저 단 둘이었다. 레이에게 다가가려 했으나 다가갈수없었다. 몇해째 부르지않아 어색한 말을 입을 떼 불러보았다. 형님. 형님. 나의 형님. 그리운 나의 형님. 크리스의 애탄 부름에 레이가 입을 열었다. 이제 그만 짐을 내려놓으렴. 그 말을 남겨놓고 레이는 살아있을적 크리스에게 항상 지어주었던 따스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나를, 이제 그만 놓아주렴.
침전 밖으로 들리는 소란스러움에 준면이 눈을 떴다. 무슨 일이 있는 건가.
"주환관, 무슨일있어요?"
준면의 부름에 주환관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간밤에 자객이 들었다하옵니다.
"자객이요?"
"예. 지금 의금부(義禁府)-왕명을 받들어 추국하는 일을 관장하던 관청-에서 배후자를 색출하는 과정에 있다하옵니다."
"그렇다면…."
"..황귀비마마께서 시해당하셨습니다."
"잠시,잠시만요. 황귀비마마라면 황태자마마의 친어미가 아니십니까."
"예. 황태자마마는 이미 귀비전으로 드셨습니다."
황태자의 어머니이자 이십여년동안이나 황제의 총애를 받고있는 황귀비를 시해하다니, 준면의 얼굴이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황귀비를 시해할만큼 배짱이 두둑한 사람도 있다는게 놀라울다름이었다. 그나저나 크리스는 어쩌고있을려나. 준면의 머릿속이 크리스의 생각으로 물들었다. 그리곤 도리도리. 내가 왜 이사람 생각을 하는거야. 어머니를 하루 아침에 잃은게 불쌍하긴하다만 내가 알 바 아니지.
…그래도 나중에 한번 찾아나 가볼까.
찾아가 안부라도 물어보려던 준면의 생각은 준면을 말리는 주환관에 의해 무참히 접혀졌다. 마지막 남은 핏줄인 귀비마마까지 변(變)을 당하셨으니 황태자마마 심기가 편치않으실겝니다. 예? 마지막이라뇨? 모르셨습니까? 귀비마마는 저희 태평국나라사람이 아니옵니다. 주환관의 말에 준면의 마음한켠이 쎄 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러면 그 남자는 정말 외톨이가 되는건가. 며칠 전 까지만 해도 저의 원수라 생각했던 남자였지만 측은한 마음이 가는건 어쩔 수 없었다.
시끌벅적한 하루가 흘러 초생달이 높은 하늘에 떠올랐다. 한 사람의 생명을 머금은 밤은 유독 다른 날보다 더 칠흑같이 검었다. 황귀비의 시해로 떠들썩한 궁 내 분위기때문에 하루종일 화류헌에 갇혀있다시피한 준면이 답답함을 못 이기고 화류헌을 몰래 빠져나왔다. 시원한 밤공기가 준면을 감싸안았다. 숨을 들이쉬자 차가운 한기가 폐부 깊숙이 들어와 몸을 얼리는 기분이었다. 특별한 목적지를 두지않고 이리저리 걷던 준면은 자선전-황태자의처소-근처까지 다달아서 꽤 멀리 온것을 깨달았다. 돌아가려 몸을 돌리는 순간 달빛을 등지고 서있는 사내를 보았다. 크리스였다.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텐데 한번도 보지못했던 크리스의 얼굴을 본 순간 그럴 수 없었다. 보면 안될 금기의 서를 본 마냥 발을 움직일 수 없었다. 인기척을 느낀것인지 크리스가 준면을 바라보았다. 둘의 시선이 섞여져 한데 뭉그러졌다. 무슨 말을 꺼내야할지 몰라 고민하던 준면이 제 손을 약간 덮는 긴 소매를 살짝 쥐었다.
"슬프지않으십니까."
"…."
"어머니..를 잃으셨습니다. 울어도 이상하지않습니다."
제딴에는 최대한의 위로였다. 슬플때는 울어야한다고 들어왔고 준면 저또한 그리 생각했다. 크리스는 울고싶을만큼 슬플것이다. 아니 슬펐다. 그것은 준면이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울지않았다. 곧 울음을 터뜨릴것만 같이 슬퍼죽겠다는 얼굴을 하고 울지않았다. 그 모습에 준면의 가슴이 더 메어왔다. 감정이 새어나오지않게 문을 꽉 닫고있는 사람이었다. 제멋대로 하는것같아 보여도 하나도 온전히 제 마음대로만 할 수 없는 자리의 사람이다. 이윽고 꽉 닫힌 철옹성같은 그의 문을 준면이 두드렸다. 슬플땐, 우는게 당연한것입니다.
"하하. 이런 말을 해주는 것은 네가 처음이다. 모두 나의 안위를 물어보기전에 황궁의 보안에 대해 걱정했다. 재밌구나. 나를 제일 짧게 본 네가 나를 제일 위해주다니. 어쩜 너는.."
그리도 나의 가족을, 하나뿐이던 나의 편을 닮았느냐. 이건 반칙이다. 너에게 문을 열면 안된다생각했고 지금도 그리 생각한다. 허나 네가 이렇게 나오면 내게 너무 불리하지않느냐.
"나를 위로해주는것이냐."
"…위로나 되셨을런지 모르겠습니다."
준면이 대충 얼버무렸다. 크리스가 그늘진 얼굴로 쓰게 웃었다. 그 씁쓸한 미소가 준면을 가슴을 후벼팠다. 어미를 잃은 슬픔이 그대로 전해져왔다. 울고싶어도 울지 못하는 사내가 갑자기 작아보였다. 아바마마가 생전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슬플때는 소리내어 크게 우는것이 좋다고.
"나보고 지금 네 앞에서 울기라도 하라는 것이더냐."
"아, 아닙니다. 그럼 저는 이만 들어가봐야.."
화류헌으로 돌아가려 걸음을 뗀 준면의 손목을 크리스가 잡아왔다. 크리스의 행동에 준면이 멈추어섰다. 무슨 용건이 남으셨습니까.
"위로해다오."
그것은 명백한 투정이었다. 준면에게서 그리운 저의 형을 꺼내어 보았다.
"나를 위로해다오."
형님, 위로해주십시오.
"황궁에 더 이상 내 편이 없다. 완벽한 혼자가 된 것이지."
형님을 보내고 이제 어머니까지 보내드렸습니다. 형님, 저는 혼자가 무섭습니다.
"어찌 위로를 해드릴까요. 슬픈 생각은 털어버리시라고 얘기를 해드릴까요 눈치보지말고 울라고해드릴까요."
준면이 고운 손을 뻗어 크리스의 뺨을 쓸어내렸다. 가여운 사람. 당신도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 슬퍼하는 사람이었군요. 금방이라도 울것마냥 슬그머니 떨리는 눈가를 매만지고 바람에 날리는 머릿결을 정리해주었다.
"소리내어 울라고 하였느냐."
"그러합니다."
"그렇다면 울어다오."
"예?"
"소리내어 울 수 없는 나를 위해 네가 대신 울어다오."
크리스의 말에 저도 모르게 준면의 눈에서 눈물방울이 툭, 떨어져내렸다. 준면은 자신이 왜 우는지 몰랐다. 그냥, 그냥 눈물이 흘러나왔다. 크리스의 마음이 손을 뻗어 제 가슴팍을 치는것만 같은 환각이 일었다. 눈물이 방울에서 줄기로 변했다. 준면의 어깨가 부르르 떨렸다.
울지못하는 나를 위해 네가 대신 소리내어 울어다오.
남자의 슬픈 음성이 귓가에서 떠나가질않았다.
세컨드에요^,6 3편입니다! 사실 크리스는 서자였다눙ㅇ... 지여애모에서 나이는 크리스가 20살 준면이를 19살이에요 크리스가 그렇게 많은 나이가 아니랍니다 크리스도 나름 ㅇ..어려요 귀비의 죽음이 본격적인 전개를 알리는 부분이에요 이제 진도 쭉쭉 달리기 시작하려구요 잘 달릴수있을지는 심히 걱정되지만..ㅋㅋㅋㅋㅋㅋ 크리스가 준면이 대하는 태도가 왔다갔다하는건 자꾸만 어릴적 형의 모습이 겹쳐보이기 때문이었어요 :-D 더 자세히 표현하고싶었는데 제 똥손을 탓하며 흡흐그그흑흑흑 레이가 형인 이유는 ..그냥 ㅋㅋㅋㅋㅋㅋ 딱히 할 사람이 없었어요 이미지가 레이랑 잘 어울리는것같길래.. 준면이는 이번일로 크리스를 좀 달리 생각하게 될것같네요 제가 적으면서도 준면이는 통제할수 없는 캐릭터라.. 이게 뭐냐며 ㅍㅍ 쨌든 이번편도 지켜봐주신 독자여러분들 감사합니다^,^~
| 암호우닉 |
펠리컨 슈웹스 송편 카카오톡 그린티 아이셔 복숭아 콜팝 돌기 만두 스폰지밥 후후 마귀 슈잉슈잉 징어 꿀꿀이 다엘 홍홍
암호닉신청감사히받아요~ |
잘봤다는 댓글도 너무너무 좋지만 플러스로 피드백도 적어주시면 더더 감사드립니다ㅜ.ㅜ
그럼 다음편에서 뵈요 룰루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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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유지태 못알아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