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수호] 지여애모(只汝愛慕)
04
지여애모(只汝愛慕)
크리스와 헤어지고 화류현으로 돌아오는 길목이었다. 한참을 울어 눈이 벌겋게 부어오른 준면이 제 소매로 눈가를 벅벅 긁어댔다. 크리스의 말에 눈물이 앞을 가릴 정도로 울었다. 한참을 울다가 제 풀에 지친 준면이 가빠진 숨을 급히 몰아쉬었다. 크리스가 준면의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제 손으로 닦아주었다. 고맙구나. 한 마디를 남겨둔채로 크리스가 자선전으로들어갔다. 크리스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옛 모습을 보았다. 준면은 크리스가 들어가고나서도 한 동안 화류헌으로 들어가지못하고 크리스가 들어간 자선전을 쳐다봤다.
"후우. 왜 그랬지."
어젯밤의 일이 계속 눈앞에서 아른거려서 결국 밤잠을 설쳤다. 어제밤 울어 탱탱 부은 눈때문에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준면이 휴, 하고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어제 분명 저는 크리스의 모습에서 제 모습을 보았다. 슬픔으로 파랗게 물든 크리스의 모습에 준면이 충분히 공감한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제 나라를 빼앗은 사람이었고 어제 일이 있기 전까지는 얘기만 잠시 했을 뿐 이렇다할 관계도 아니었는데 그런 사람앞에서 펑펑 운 자신이 부끄러웠는지 준면이 연거푸 마른세수를 해댔다. 앞으로 그 사람 얼굴 어떻게 봐.. 준면의 머릿속은 그야말로 뒤죽박죽이었다.
심란한 것은 크리스도 마찬가지였다. 술이 아니라 슬픔에라도 취할수있는것인가, 너무 감성적이었다며 자신을 질책했다. 아무리 제 형을 닮았다하더라도 진짜 형이 아니었고 가족이 아니었다. 그런 사람에게 저의 유일한 약점을 내보였다. 그럼에도 크게 걱정되지않는 이유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준면이 제 약점을 잡고 흔들만큼 물정이 밝은 사람은 아니란 확신이였다. 그저 자꾸 어젯밤 이후로 준면이 자꾸 생각났다. 기분나쁜 거슬림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두근거리는 설렘도 아니었다. 그냥 이유없이 생각이 났다. 단지 제 형을 닮았다 그뿐이라 생각했는데.. 갈피를 잃은 생각은 결국 출구를 찾지 못해 크리스의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마마, 소인이 긴히 드릴 말씀이 있사옵니다."
"들어오거라."
준면의 생활을 총괄하는 주환관이었다. 크리스가 보던 집무를 멈추고 주환관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냐. 다름이 아니옵고 화류헌마마에 대한 말씀이옵니다. 화류헌마마라면 준면을 이르는 것이었다. 궁에서는 생활하나 특별한 작위가 없는 몸이기에 거처하고있는 화류헌의 이름을 따서 궁인들은 준면을 화류헌마마라고 칭했다.
"요즘 궐 내의 분위기도 흉흉하거니와 화류헌마마에대한 소문이 여러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하옵니다."
"소문?"
"예, 태자마마께서 화류헌마마를 총애하여 험한 일에 휘말려들지않도록 지위를 내리지않고 화류헌에만 머물게 한다는.."
입에 올리기가 민망하기라도 한것인지 말을 이어가던 주환관이 뒷말을 삼켰다. 크리스가 어이없단 표정을 지어보였다. 말도 안되는 소문이었다. 시간이 날때 화원에서 그림을 그리던 준면과 짧은 얘기는 몇번 한적이 있으나 그게 다였다. 어이없단 크리스의 표정에 주환관이 역시 그럴줄알았다는듯 다시 말을 이어갔다.
"소인이 걱정이 되는 것은 그런 소문을 믿는 것들이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혹여나 화류헌마마에게 해를 가할 가능성도 적지 않습니다. 특별한 지위가 있는 분이 아니시니 무슨 변고(變苦)가 있으신다해도 무슨 조치조차 취할 수 없을 것입니다."
"호위무사라도 붙여야한다 이 말인가?"
"미천한 소인의 생각으로썬 그게 최선이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하거라."
"그럼 호위무사는 누구로 하는게.."
아무나 적당히 뽑아서 하라는 말이 턱끝까지 차올랐다 내려갔다. 제 친위대중에 수국에서 온 자가 있다고 들었던게 기억이 났다. 많은 친위대원중의 한명이라 얼굴까지는 기억하지못했지만 수국출신이란게 중요했다. 그것은 지금 제가 준면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이었다. 자기가 나설만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나 어젯밤일에 대한 보답쯤이라 여기며 크리스가 말했다.
"되었다. 내가 직접 데려가도록 하지."
집무를 거의 끝마치고 크리스는 친위대장을 불러 수국출신의 무사를 불러오라 명했다. 곧 크리스의 앞에 흑발의 남자가 고개를 숙인채로 섰다. 친위대원 타오, 황태자마마를 뵙습니다. 겉보기에도 무술에 능해보이는 타오의 모습에 크리스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화류헌에 거처하고있는 사람을 아느냐. 화류헌마마를 말씀하시는겁니까. 잘 아는구나, 네가 앞으로 호위를 맡을 사람이다. 예? 왜그러느냐. 싫은게냐? ..아닙니다. 존명. 소인, 명을 받잡겠습니다.
크리스앞에서 펑펑 운게 부끄러워 뭐라도 하지 않으면 계속 생각이 날것만 같아 준면은 화원의 연못옆에 자리를 잡고 그림을 그렸다. 열중한 나머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지도 모른채로. 준면은 꽤나 만족할만한 그림을 그리고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옷에 묻은 풀가지를 툭툭 털고있자 뒤에서 묵직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크리스였다.
"그림을 꽤나 잘그리는구나."
"여긴 무슨 일이십니까."
"내 화원에 내가 오는게 잘못된 일이더냐?"
할말이 없어진 준면이 입을 꾹 다물었다. 오늘은 마주치고싶지않았는데. 크리스의 얼굴을 보자 그림을 그리며 잊었던 어제밤일이 다시금 생각나는것같아 준면이 괜히 발을 툭툭 움직이며 고개를 푹 수그렸다. 크리스가 준면의 행동의 이유를 눈치챈듯 화제를 바꾸었다.
"용건이 있어 찾아왔다."
"무슨 용건이십니까."
"요즘 궐내의 분위기도 흉흉하기도하고해서 너에게 호위가 한명 붙을것이다."
"..말씀은 감사하지만 괜찮습니다."
준면의 거절을 예상이라도 한것인지 크리스는 준면의 말을 못 들은 척하고 타오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크리스와 준면으로부터 조금 떨어져 서있던 타오가 다가왔다.
"수국에서 온 자다."
"..수국이요?"
"그래. 어릴때 수국에서 자라서 태평국으로 건너온자다."
준면이 크리스를 빤히 쳐다보았다. 크리스가 말을 안해도 알 수 있었다. 크리스가 제 나름대로 저를 신경써준것이란걸. 어제의 위로에 대한 보답이라도 해주는건가. 준면이 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살풋 미소를 지었다. 미소를 본 크리스가 괜히 멋쩍은듯 자긴 이제 가야겠다며 다소 급히 자리를 떴다. 저 큰 사람이 일순간 귀여워보이는건 착각인가.
"타오라구요? 정말 수국에서 왔어요?"
"예.그러합니다."
태평국으로 넘어오고나서 처음으로 만나는 수국사람이었다. 똑같이 조국을 잃었다는 동질감과 주체할수 없는 반가움에 준면이 저의 작은 두 손으로 타오의 거칠은 손을 꼬옥 잡아왔다. 나도 수국사람이에요. 반짝반짝거리는 눈으로 타오를 올곧이 올려다보았다. 타오는 제 손을 덥썩 잡아오는 수국에서 왔다는 제 주인이 될 사람을 보았다. 흰 피부에 영롱히 빛나는 갈색눈과 붉으스름한 입술. 왜 황태자가 화류헌에 묶어놓은지 짐작케하는 미모였다. 태평국에 와서 수국사람을 만난건 처음이에요. 우리 친하게 지내요. 네? 그리곤 눈부시게 화사한 미소. 준면의 미소에 타오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준면이 눈치채지못할정도로 얼굴이 달아올랐다.
타오가 태평국으로 넘어온것은 십여년전이었다. 타오의 고향은 수국의 수도에서 약간 떨어진 화주란 곳이었다. 타오의 아버지는 가난한 농민이었다. 한때는 열심히 일을 했지만 무거운 현실을 이겨내지못하였고 그는 결국 노름에 빠졌다. 지긋지긋한 일상에서 탈출시켜줄 유일한 비상구라 믿어의심치않았다. 하지만 정작 그가 노름판에서 돈을 딴 적은 한번도 없었다. 농사도 내팽겨치고 노름만 일삼던 아버지로 인해 빚은 산더미처럼 늘어갔다. 결국 타오는 낯선 태평국의 사람의 손을 잡고 노예로 팔려갔다. 부모님과 헤어질때 타오는 울지않았다. 오히려 이 지긋지긋한 일상을 이렇게라도 빠져나간다는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남자의 손에 이끌려 도착한 곳은 휘황찬란한 기왓집이었다. 타오의 주인이 될 사람은 예전에 태평국의 군대를 지휘하는 총사령관을 지냈던 유명한 무관이었다. 주인은 심성이 착했다. 낯가림이 심했던 제 아들과 타오가 곧 잘 어울려 노는것을 보고 타오를 하인이 아닌 제 아들의 벗으로써 대해주었다. 그리고 그는 타오의 재능을 알아보았다. 조금만 더 수련을 하면 꽤 유능한 검사가 될수도 있을것이라 생각한 주인은 타오를 제가 기르는 아이들이 있는 수련장에서 타오를 훈련시켰다. 그리고 타오가 18살이 되는 해에 그를 황태자의 친위부대에 추천하였다. 한때 총사령관을 지냈던 남자의 말은 그가 벼슬을 지내지 않는 동안에도 영향력이 있었다. 타오는 곧바로 황태자의 친위부대에 속하게되었다. 입대식이라며 황태자를 알현하여 그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영원한 충(忠)을 맹세했다.
하지만 타오는 크리스를 저의 주인으로 생각하지않았다. 타오는 그저 친위대원으로 있으며 자신이 좋아하는 무술을 갈고 닦을 수 있다는 것에 만족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황태자의 안위같은것은 저에게 별로 중요하지않았다. 저말고도 스무명남짓한 친위대원이 모두 그를 위한 사람이었다. 어릴때 저의 유일한 꿈은 제가 필요한 사람의 것이 되자는 것이었다. 그게 제가 모실 주인이던, 연정을 품은 상대던. 그리고 발견했다. 저를 필요로 할 사람을.
처음엔 준면의 아름다움에 혹하였다. 왠만한 여인보다 고운 얼굴에 마음이 흔들렸다. 건장한 사내로써 응당 당연한 것이었다. 그리고 따스히 맞잡아오는 두 손과 오로지 저만을 향한 해사한 미소. 티내지 않으려 고개를 약간 돌렸지만 얼굴이 붉어지는것을 멈출순 없었다. 가슴이 간질거려왔다. 다시 용기내어 준면을 바라보자 그는 아직도 제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있었다. 평생 긴장이란걸 하지 않았던 타오가 목울대가 움직일만큼 침을 꿀꺽 삼켰다. 준면과 맞닿은 손 사이로 땀이 삐질삐질 새나오는것같았다. 그리고 준면의 올곧은 시선에서 느꼈다. 이 사람은 나를 필요로 하는구나. 그 마음이 저와 같은 마음이 아니라 단지 수국이라는 같은 출신에서 비롯된것이라는 걸 눈치채지못할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았다. 앞으로 그의 옆에 쭉 있을 수 있단것에 만족했다. 호위무사의 충성만이 아닌 제 모든 마음을 다해 이 사람을 대할것이라, 그리 다짐했다.
"이 시각부터 마마를 제 영원한 주군으로 받들겠나이다."
타오가 무릎을 꿇고 준면의 하얀 손에 짧게 입맞추었다. 충성의 뜻이었다. 준면은 그런 타오의 행동에 이러지않아도 된다며 타오를 일으켜 세웠다. 나야말로 잘 부탁해요. 그리곤 아까 타오의 가슴을 간질이게 했던 미소를 다시 한번 타오를 향해 지어주었다. 준면의 뒤로 흰 금강꽃이 만개하는것같았다.
| 작가의 변명..ㄸㄹㄹ |
쫌 늦었죠? 거기다 내용은 이상해.. 내가 읽어도 병맛이야...(절규) 변명을 하자면 주말동안 할머니집에 가있었거든요..흡 폰으로 틈틈히 적은거라.. 머리박으라면 박겠어요..ㅁ7ㅁ8 폰으로 적은게 반이라 오타가 있을수도 있으니 발견하시면 찔러주셔요ㅠㅠ 그래도 이번화까지해서 주요인물은 다 등장시켰어요! 원래 저 호위무사를 세훈이로 할까 타오로 할까 고민많이했었는데 결국은 초반에 정한 타오로 결정했어요 타오가 더 잘어울리는것같아서..^,^ 참, 그리고 이 지여애모는 연재가 목적이 아니라 텍본이 목적이에요. 지금은 내용에 이상한게 많아도 텍본에는 제 나름대로 깔끔하게 정리할 생각이랍니다. 이번편도 열심히 읽어주신 독자분들께 감사하면서 5편에서 만나요 룰루 |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인스티즈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