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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파라다이스!

by Re.Ong.

 

 

 

 

01.

 

 

천하의 도경수, 할수있다!

라고 한27번정도 속으로 중얼거렸을거다. 경수는 빤듯빤듯하다 못해 날이 쫙 선 새 교복을 내려봤다. 전 학교는 갈색이었는데 이번 학교는 남색.

후우. 좀 떨리네? 경수는 두 손으로 곱게 자신의 가슴을 어루만지며 지금, 3학년 7반 앞에 서있다. 할수있어. 할수있어. 웅얼거리며 그는 제발! 지금 반에서

흘러나오다 못해 창문을 터뜨리고 나올 소음이 줄어들길 간절히 원했다. 1초마다 들려오는 욕설에 벌써 그의 뒷덜미엔 땀한방울이 스르르 내려간다.

제발, 제발. 저에게 힘을주세요. 하늘이시여. 그는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를 두들겼다. 전학교에서의 지옥이 떠오른다.

빵셔틀.

그의 닉네임. 일찐들이 그를 부르는, 그나마 그게 가장 사랑스러운 애칭. 누가봐도 개 찌랭이인 그는 좋은 먹잇감이다. 두꺼운 뿔테안경을 낀 너머로 보이는 그의 눈은

막 껍질을 깐 달걀같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귀여운 병아리가 아니고 달걀. 으엉엉. 경수는 점점 떨려오는 다리에 속으로 울부짖었다. 슬쩍 손거울을 꺼내 얼굴을 살폈다.

화려한 돌싱인 외숙모가 주신 손거울. 그 뒤엔 화려한 꽃밭을 배경으로 삼아 외숙모의 사진이 붙어져 있었다. 세월을 무시한 채 찍은 스티커 사진. 핑크빛이 난무하는

사진 속 외숙모의 얼굴은 전보다 부어있었다. 특히나 눈이. 경수는 사진을 보며 한숨을 셨다. 이 따위 손거울. 소박하다 못해 메추리알만한 이것을 줄때, 숙모는

그렇게도 생색을 냈다. 그리고 경수의 작디 작은 엉덩이 만지기는 옵션. 아-악몽이야. 경수는 그때 그 느낌을 생생히 되새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도-경-수!"

 

네?! 눈을 감고 소갯말을 중얼거리던 그는 화들짝 눈을 떴다. 그 바람에 놀란건 오히려 담임선생쪽. 아무 생각없이 교실문을 열고 애를 호명했건만 이렇게

박진감 넘치는 리액션을 보여줄줄이야. 너 순간 눈으로 알낳는 줄. 선생은 중얼거리며 경수의 등을 반으로 떠밀었다. 욕설과 고함의 멋진 앙상블인 소음속에서 경수는

기절할뻔 했다. 쾅! -엄마야! 방금 막 자신의 눈앞에서 용처럼 솟구쳐오른 왠 공 하나가 천장의 싸대기를 야무지게 후리고 깃털처럼 내려앉았다. 게다가 자신의 바로 앞에 앉은 한 녀석은 대백과사전으로 짝꿍의 뒷통수를 퍽퍽 내려치고 있었다. 그럼에도 끊이지 않는 놈들의 웃음소리. 맞는 놈도 쳐웃고 있다. 살떨리는 광경인데 이상하게 사운드는

아름답다. 여기저기 화목한 웃음소리에 오히려 경수의 몸이 더욱 떨렸다. 미친놈들이야... 왠지 모르게 매점에서 따끈따끈한 빵을 사고있을 자신의 모습이 훤하게 보인다.

경수는 슬쩍 담임을 돌아봤다. 흥흥흥 콧노래를 부르며 뭔가를 적어내려가던 그가 딸칵 소리를 내며 펜을 내려놓았다.

 

"야. 야. 야!!!!"

 

일순간 합죽이. 직통으로 외침을 얻어맞은 경수는 알딸딸한 오른쪽 귀를 슬며시 어루만졌다. 담임은 조용해진 아이들을 보며 흡족해하고선 경수의 등을 툭툭 쳤다.

여기 전학생왔다. 그의 말에 아이들은 눈만 껌뻑거리며 경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괴롭히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 그 말에뒤에 앉은 몇몇놈들이 씨익 웃었다.

피어싱이 돋보이는 그들은 딱봐도 양아치. 순간 눈이 마주친 경수의 동공이 심하게 흔들렸다. 씨바... 알아맞췄나? 정말 슬프게도 경수는 자신의 계급이 뭔지 알고있었다.

피라미드로 따지면 맨 아래에 있는 땅을 뚫고 또 뚫고 또 뚫고 또 뚫어서 한... 지하3층정도? 한마디로 특특특 A급 빵셔다. 최고품질. 끽소리 안한채 신속배달. 팁으로 우유도 주는. 이상하게 양아치들도 그냄새는 잘맡더라. 경수는 슬며시 고개를 숙였다. 더이상 눈이 마주치면 자신의 정체(는 만인의 빵셔틀)가 탄로날까봐.

 

"그럼 자기소개해봐."

"...네..네.넷?"

"자기소개해봐. 어여."

 "어...저...어..."

 

....씨바.망했다. 다 큰 19살. 그러니깐 이제 고3되는. 야동도 몇십번 봤을테고 이것저것 시도해볼 나이도 됬고 좀 있으면 대학가고 군대갈 놈이 어..저...어.. 이게 입구녕에서

튀어나온 순간 인생끝이다. 한마디로 고추뗄놈. 게다가 어- 도 아니고 어! 도 아니고 어? 도 아닌 어....  정말 기운빠진다.

헝. 턱에 한 10kg 추를 단듯한 경수는 도저히 얼굴을 들어올릴 기미가 안보인다. 나 어떡하지? 이대로 셔틀? 저새끼들 꼴을 보니 도저히 빵셔틀로는 안끈날것 같다.

아니면 안마셔틀? 숙제셔틀? 담배셔틀? 싸대기셔틀? 와이파이셔틀? 핫스팟 셔틀? 머리속에서 별별 셔틀이 지나간다.

우물쭈물 망설이는 경수의 뒷통수를 본 담임은 허허 웃으며 경수의 등을 툭툭 쳤다. 저기 맨 뒤에 창가자리 보이니? 저기 앉은 애 옆에 앉으렴. 경수는 슬며시 고개를 한번

숙이고선 맨 뒷자리로 걸어갔다. 여기저기서 많은 웃음 소리가 들린다. 저건 분명히 비웃는거야. 비웃는거야. 비웃는거야. 하지않아도 될 자책을 하며 경수는 쓸쓸하게

웃었다. 순간 머릿속에서 귀에 피어싱을 한 한 녀석이 포켓볼을 던지며 외친다. 가랏 도경수! 빵셔틀에서 안마셔틀로 진화! 삐까삐까! 입에 빵을 물던 경수는 곧바로 손을 뚜둑 꺽고선 일찐님의 어깨를 주물러준다. 데헷, 일찐아. 이건 내가 태국에서 공수해온 안마........는 무슨 시벌. 경수는 킬킬 거리며 자신을 노골적으로 쳐다보는 기쎈 놈들의 시선을 무시하며 자리에 앉았다. 입에서 나오는 한숨때문인지, 땅이 꺼졌는지, 워쨌는지 앉은 키가 오늘따라 더 작다. 곧 의자랑 합체할 기세다. 책가방을 정리하던 경수는

옆자리에 앉은 아이를 슬쩍 곁눈질했다. 친구가 될수있을까? 경수는 고고하게 한쪽 다리를 꼰 채 창문밖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옆짝을 쳐다봤다. 창문에 흘러들어오는

빛때문인지 녀석이 왠지 빛나보인다. 게다가 눈도 왠지 슬퍼.. 경수는 안경을 한쪽 손으로 치켜올리고 더욱 관찰했다. 뭔가 시크해보인다. 괜찮아. 오히려 저런애들이

마음은 여리고 착하던데. 은근 나같은 애랑 죽이 잘 맞을수....

 

"뭘 봐. 시발아."

 

도.... ?

-나? 저도 모르게 멍청하게 입을 벌렸다. 경수는 어버버 거리며 주르륵 흘러내려오는 안경을 다시금 올렸다. 주둥이 닫아. 시발. 옆짝은 경수의 여린 속마음도 모른채

두두두두 욕설을 내뱉었다. 너 금니보여. 시발. 마지막으로 한방 더 펀치날린 짝은 고고하게 고개를 홱 돌렸다. 말끝마다 시발시발. 이게 왠일이야. 멍하게 샤프 하나를

들어올린 경수는 여전히 멍했다. 나 아무말도 안했는데... 심지어 불알친구도 개씹오타쿠 같다고 욕하던 악수도 신청안했는데...  뭐지.

그때였다. 앞에 앉은 녀석이 갑자기 경수에게로 몸을 틀었다. 헐. 딱봐도 얼음내를 풍기는 차가운 인상의 앞자리 녀석에 경수는 순간 경련할뻔 했다. 진짜 이번엔 의자와

혼연일체가 됬을수도. 야, 미안. 앞자리녀석의 느닷없는 사과에 경수는 그냥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 새끼 존나 욕쟁이야. 그러게. 중얼거리며 경수는 또 고개를

끄덕였다. 말끝마다 욕이니깐 그냥 니가 무시해. 시크내를 풍기는 녀석은 경수에게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안녕. 난 오세훈이야."

"아.. 안녕."

"서울시장따위 드립은 치지마."

"응."

 

사실 난 그게 누군지도 몰라. 상식 밑천이 다 드러날것만 같아서 경수는 남몰래 입을 닫았다. 아, 맞다. 손뼉을 딱 친 세훈은 경수의 크디 큰 뿔테 너머의 눈동자에 시선을

맞춰왔다. 너 아까 존나 개찐따 같앴어. 그 말에 경수의 유리가슴은 부서졌지만 그는 입술을 억지로 끌어당겼다. 뭐라할수도 없었다. 어릴적부터 풍파와 고난, 오만 시련을

다 겪은 그가 얻은건 눈칫밥과 관찰력뿐. 매에게 먹히지 않기 위해 귀를 쫑긋 세우는 토끼랄까. 경수는 찰나의 순간에, 세훈의 입꼬리가 0.01cm 올라가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아마 얼음장같은 그가 보여줄수있는 최선의 호의와 따뜻함. 그것만으로도 자기위안을 한 경수는 그냥 웃어넘겼다. 또, 어차피 사실이니깐.(개찐따라는 사실이)

 

"쟨 변백현이야."

 

세훈의 말에 경수는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중복인가..? 아까와 같은 자세로 또 창문밖을 보는 백현, 자신의 옆 짝이 보인다. 뭐가 그리 심난한지 이마의 주름이 패여있다.

끙-끙 거리며 창문밖을 열심히 보던 백현은 고개를 홱 돌렸다. 느닷없이 마주친 눈에 또다시 경수의 몸은 트위스트. 야. 짧지만 강렬히 귀에 꽂히는 그의 말에 경수는 눈으로

대답했다. 차분한 갈색머리의 백현은 경수를 아래위로 훑었다. 두터운 안경을 끼고, 그 너머로 보이는 팽창된 눈알. 대체 미용사가 눈가리개를 하고 잘랐는지, 곡예를 한건지

듬성듬성 짤려져 있는 앞머리. 훌쩍거리는 코. 우물쭈물 하며 1초당 미세한 진동을 보여주는 입술. 최고다. 자신이 찾던 최고의 찌질남. 복도를 걸어다녀도 마치 공기와 같은

에어남. 깊게 호흡을 들이킨 백현은 세훈과 눈을 마주쳤다. 너 설마...? 세훈은 인상을 확 찡그리고선 경수를 다시 한번 흘끔, 백현을 흘끔. 안돼, 미친놈아. 그 말에도

백현은 경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리고선 내뱉는 말.

 

"너 게이 어떻게 생각해?"

 

여러분, 어디선가 바흐의 노래가 울려퍼지지 않나요? 순간 머리에 평화로운 초원이 보여지고 노랫소리가 울린다. 게이....게이.. 멍하게 중얼거리는 경수너머로 보이는

초원엔 옷을 홀딱 벗은 게이들이 연주회를 하고 있다. 홀.딱.벗.고. 경수는 자신의 눈이 점점 풀리고 있다는것을 느끼고 있었다. 게이....게이.....씨바, 어떡하지?

눈을 질끈 감은 그는 태어나서 한번도 생각해본적 없는 단어로 수많은 것을 마구마구 연상시키기 시작했다. 자신과 절대,네버,리얼리, 평생 엮이지 않을 영역. 그것은 게이.

살며시 눈을 뜨자 눈앞에 변백현이 보인다. 방금 막 몇 초가 지났다. 이제 대답안하면 안된다.

말했듯이 초,중,고등학교에서 약자로 살아온 그가 얻은거라곤 눈칫밥과 관찰력뿐이다. 찐따세포로 가득찬 그의 온 몸은 본능적으로,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다. 저 문장한마디에

자신의 고3생활이 아름답게 흘러갈것이냐, 아니면 전대미문 셔틀로 남겨질것이냐. 임팔라보다 눈치빠르고, 미어캣보다 예민한 그 이름, 도경수. 19년 살면서 처음으로

손에 땀을 쥘 정도로 집중이란 것을 하고 있다.

 

"굿."

 

손가락으로 엄지를 쥐어보이며, 숨을 꾹 참았다. 바들바들 떠는 그의 얼굴이 시뻘겋다. 초딩 사촌동생이 맨날 보는 뭐, 말잘하는아이, 말못하는아이 던가? 저질그림체의

만화책에서 봤다. 상대방에게 자신의 말을 확실히 전하기 위해선 일단 가볍게 숨을 참고 눈을 초롱초롱 하게 뜬 채, 손을 이용하여 말을 하면 효과적이라고.

게이는 최고야. 경수는 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종소리가 울린다. 와아아- 아이들의 함성소리에도 경수는 끝까지 백현과 눈을 마주쳤다.

하얗던 얼굴이 벌겋게 변하는 장면을 본 백현은 그대로 인상을 찌푸렸다.

 

"야. 너 진짜 좆병신같아."

 

야무지게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자신의 짝지를 허망하게 바라보며 경수는 숨을 들이켰다. 잘못대답했나... 혹시.. 호모포비아인가? 경수는 머리를 질끈 감싸안았다.

그때 옆에서 누군가의 손길이 경수의 어깨를 어루만졌다. 야, 괜찮아. 오세훈이다. 한줄기의 희망이 보인다. 정말 누가봐도 가장 정상인같다. 경수는 혹시 친구가 될 가능성이

있나 없나, 세훈을 뜯어봤다. 저 새끼 진짜 게이야.

 

"응?"

"변백현 진짜 게이라고."

"게.......게이?!!!"

 

왁! 화들짝 놀라 소리치자, 세훈은 경수의 입을 쥐어 비틀었다. 야, 좀 작게 말해! 그때, 범상치 않은 단어에 반응을 보인 남고의 하이에나들이 슬며시 모여들었다.

게이? 게이라고? 야, 어떤 미친넘이 게이래! 제일고에 게이있다! 미친, 비누나 주워. 자기들끼리 신나서 떠들어 대던 중, 한 놈이 세훈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반장, 누가 게이야?"

"너 게이?"

"님 게이?"

"반장 게이야?"

"반장 게이래!"

 

너가 게이니? 라는 질문은 어느새 오세훈 게이새끼다, 라고 결론이 났다. 아나, 시발. 경수의 입을 비틀어 막던 세훈은 이걸 확 뭉개버릴까, 하다 말았다. 그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수많은 녀석들에게 차가운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 게이 말고 개새끼라고. 이 개새끼들아. 그리고선 깔쌈하게 올린 중지하나. 미친, 꺼져.

변백현의 친구답다. 경수는 냉기어린 세훈의 눈빛에 급쫄아 시선을 내렸다. 미안...

 

"됐고. 다음 시간 수학이야. 교재나 챙겨."

"응."


자기 몸집보다 더 크다란 책가방에서 수학책을 주섬주섬 꺼내는데도 허우적거리는 꼴이 너무 찌질해서 저절로 통탄이 나온다. 변백은 뭘 하려고 쟤를 끌어들여?

세훈은 저 멀리서 도도하게 걸어오시는 백현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왜, 병신아. 백현은 자리에 앉으면서 세훈의 의자를 발로 찼다. 쾅! 수학책을 펴던 경수는

깜짝 놀라 손을 떨며 그만 책을 떨어트리고 말았다. 얼씨구. 백현은 혀를 쯧쯧 차며 수학책을 주워주었다.

 

"야. 내가 너한테 선행한거니깐 오늘 같이 밥먹고 잠깐 얘기좀 하자."

"같..같이 밥먹자고?!"

 

진심이야?! 안경알 깨트리고 눈 튀어나올라. 경수는 믿기지 않은 듯 백현과 세훈을 번갈아 쳐다봤다. 정말이야? 경수는 감격에 벅차 교실을 빙 둘러봤다.

삼삼오오 모여서 여전히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놈들. 불과 몇초전까지만 해도 저놈들 중 누군가의 전용 셔틀이 될까 걱정했지만 이젠 아니다. 씨바. 도경수 인생 최고의 행복.

역시 사람은 오래 살고 봐야해. 경수는 고개를 열심히 끄덕이며 백현을 쳐다봤다. 그래, 같이 밥먹자! 그러고선 실실 쪼개며 수학책에 이상한 도형을 그리자, 반대로 백현의

얼굴은 구겨졌다. 믿을만한가. 시발.

 

 

 

 

여기가 파라다이스!

 

 

 

제일 싫어하는 반찬, 비엔나 소시지가 급식에 나왔지만 경수는 행복했다.

왜 이걸 안먹냐며, 이렇게 맛있는걸 왜 남기냐며 세상의 온갖 욕을 남발하며 소시지를 대신 먹어준 백현때문에, 경수는 행복했다. 소시지 안먹는다고 자신을 싸이코 취급하는

변백현때문에, 경수는 행복했다. 이런게 친구라는거구나. 세훈이 사준 메로나를 씹어먹기 아까워, 천천히 빨아먹으며 경수는 아이들의 손에 이끌려 운동장 구석진 곳에

쓸쓸히 있는 벤치에 앉았다.

 

"그러니깐 지금부터 니가 관찰해야 할 사람이 저기 있어."

"어디?"

"님아. 저길 보시라고."

 

엉뚱한데에 눈돌리는 경수의 뺨을 툭툭 치며 백현은 운동장 한복판을 가리켰다. 저기 위에 흰티입고 밑에 남색 반바지 입은사람, 보여? 보이냐고,시발. 말끝마다 욕인 백현의

눈치를 살피며 경수는 열심히 눈알을 굴렸다. 찾았어. 다 먹은 메로나가 아쉬운듯, 아이스크림 막대를 몇번 씹던 백현은 그대로 땅바닥에 던져버렸다. 쟤가 김종인이야.

김종인? 저 멀리 흐릿하게 보이는 종인의 모습을 제대로 보기 위해 경수는 눈을 찌푸렸다.

 

"김종인. 나이는 우리랑 동갑. 키 183cm. 현재 유도부. 장래희망은 유도선수. 참고로 종인이는 학교에서 자랑할정도로 유망한 예비 유도선수야. 취미는 축구고

공부도 잘해. 정확히 2년하고도 3개월째 머리스타일이 바뀌지 않았음."

"........어.."

"참고로 배에 복근도 있음."

 

따...딱히 안 궁금한데. 경수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종인을 집중적으로 쳐다봤다. 30분동안 '김종인 잘생겼다'만 한 삼백번 외친 백현의 마음이 이해갔다. 진짜 잘생겼다.

멀리서 봐도 다부지게 생겼다. 게다가 키도 커. 왠지모르게 가슴이 아프다. 경수는 먹다 만 메로나를 땅바닥에 슬며시 두며 백현에게 물었다.

 

"그러니깐 내가 뭘 하면 되는데?"

"우리 학교는 고3도 주말마다 특별활동을 해. 김종인은 유도부야."

"응."

"너도 유도부에 들어."

"....어?!! 나 운동 못하는데..."

"그냥 앉아있기만 해. 어차피 유도선생은 지금 김종인한테 정신팔려서 몰라."

"...들어가서 뭐해?"

"관찰하기만 하면 돼."

 

내가? 경수는 조용히 머리를 긁적였다. 왜 내가 해? 백현이 네가 해도 되잖아. 그 말에 열심히 종인을 보던 백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안돼. 단호한 그의 대답에

당황한건 경수였다. 왜? 다시 한번 묻자 백현은 또다시 고개를 흔들었다.

 

"게이란거 들킬까봐."

"그딴건 아무도 몰라. 미친놈아."

 

백현의 뒤통수를 아프지 않게 쿵 때리며 세훈이 말했다. 니가 니 이마에 '나는 게이입니다' 라고 적지 않은 이상, 아무도 몰라. 그래도 알면 어떡해. 모른다니깐!

연신 투닥거리는 둘을 보던 경수는 조용히 속삭였다. 근데 왜 김종인이란 애를 관찰해? 그때였다. -슛! 함성소리와 함께 몇몇의 사내놈들이 종인에게로 몰려들었다.

방금 막 한골을 넣었는지 녀석들은 종인에게 엄지를 들어보였다. 대충 땀을 닦아낸 종인은 다시 뛰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멍하게 보며 백현은 중얼거렸다.

 

"내가 김종인 좋아하니깐."

"....."

"그래서 내가 너한테 부탁하는거야. 엉? 도경수. 부탁해, 시발아."

"...어..."

"하는거지?"

"근데 정확히....뭐 하면 돼?"

"아. 시발! 아까 밥먹을때 얘기했잖아.!"

 

존나 말귀 못알아듣네. 예쁜아. 그냥 관찰하고 김종인에 대한걸 알아오면 돼. 오케이?! 백현이 양손으로 경수의 뺨을 꽈악 잡자, 그가 아픈듯 바둥거렸다.

그래도 들키면 어떡해? 그 말에 백현은 더욱 더 세게 잡았다.

 

"도경수, 너에겐 특별함이 있어."

"...뭔데?"

"아무도 아무런 의심을 갖지 않게 하는 너의 찌질함."

".............................."

"니가 복도를 돌아다녀도 넌 그냥 하나의 에어! 공기! 아무도 몰라. 그게 너의 재능이야."

".................."

 

눈물나게 고맙다. 어느새 놓아주었는지, 경수는 아픈 뺨을 살며시 주물렀다. 씨바, 개아파. 슬며시 보니 백현은 또다시 김종인이란 놈한테 집중하고 있었다.

 

"그냥 김종인 관찰만 하면 돼?"

"...가끔 말도 붙여봐."

"그냥....백현이, 니가 하면 안돼?"

"아. 시발아. 안된다고 몇번을 말해야 앵간히 알아들을래."

".......왜?"

"계속 쳐다보면 좋아한다고 들킬꺼 아냐!!!!!!"

 

-아냐!!! - 아냐! - 아냐..... 가뜩이나 운동장 좁다고 신고까지 들어오는데, 백현의 외침이 메아리 될줄이야. 운동장에 있던 아이들이 일제히 백현의 무리쪽을 향해

눈을 돌렸다. 뭐야? 골기퍼 한 놈이 마악 공을 차려다 이쪽을 돌아본다. 김종인도 이쪽을 돌아봤다. 점점 뜨거워지는 얼굴을 느꼈는지, 백현은 세훈과 경수의 어깨를 툭툭 쳤다. 가자. 그러자 그들은 아무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섰다. 아, 시발. 쪽팔려. 김종인이 들었을까? 백현의 찡얼거림은 교실에서까지 이어졌다. 솔직히 뭐라고 하는지

경수는 알아듣진 못했지만 중간중간 확실하게 들려오는 욕때문에 자연스럽게 침묵을 유지했다. 어느새 선생은 들어왔고 수업은 발빠르게 진행됬다. 분명히 아는 단언데..

경수는 교과서에 적혀진 정말 간단한 문장을 머리에 넣으려고 했지만 도로 튕겨져 나왔다. 그러니깐 gay. 백현이는 게이. 김종인을 좋아한다. 게이는 남자를 좋아한다.

변백현과 김종인은 남자다. 그래서 백현이는 게이다. 그러니깐 백현이는 김종인을 좋아한..

 

"야."

"....어,  어?"

"부탁해. 도경수. 아니 경수야."

 

손을 덥썩 잡아오는 백현의 손에 점점 힘이 실리는것은 경수만의 착각일까? 부탁해-. 백현은 웃으며 속삭였다. 그 순간 경수는 백현의 미소에 큰 충격을 받았다.

온종일 인상만 찌푸리고 입만 열었다하면 튀어나오는게 욕뿐인 놈이 웃는게 이리도 아름다울줄이야. 컬쳐쇼크다. 그러니깐 문화충격. 경수는 그 미소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진짜지? 약속했다. 시발. 주섬주섬 뭔가를 꺼내며 백현은 경수의 손에 바나나우유를 쥐어줬다. 바나나우유를 한번, 백현의 얼굴을 한번 본 경수의 얼굴은 또다시

감격으로 얼룩졌다.

 

"..이게 뭐야?"

"뇌물이라 쓰고 선물이라 읽지."

"어?"

"몰라도 돼. 그냥 너 주는거야. 한방울도 남기지 말고 마셔."

"고마워."

 

헤헤. 헤실헤실 웃으며 경수는 손톱으로 입구를 찢었다. 너덜너덜 해져 보기 싫었지만 경수는 개의치않고 호로록 호로록 마셔댔다. 드럽게도 쳐먹네. 속으로 생각했지만,

백현은 방긋방긋 웃었다. 괜스레 입놀렸다가 애 상처받을라. 어느새 다 마셔가는 걸 보며 백현은 다시금 속삭였다.

 

"너도 이제 우리 '김변덮밥' 모임의 일원이야. 소문내면 죽여버린다."

"김변..뭐라구?"

"김변덮밥."

"그게 뭐야."

"김종인 변백현 덮치기."

".......덮..?"

 

내가 잘못들었나? 눈만 껌뻑이며 경수는 우유를 홀짝홀짝 들이켰다. 내가 말했잖아. 백현은 조용히 말했다. 마지막 남은 고3, 내 인생의 목표가 뭔지. 바나나 우유를 입에

떼지 않고선 경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마 아까 급식시간에 너무 흥분해서 못들었나보다. 경수는 그렇게 생각하며 마지막 남은 우유 한모금을 입에 넣었다.

 

"내 인생의 목표."

"..."

"김종인과 연애"

"....."

"키스."

"..........."

"그리고 섹스."

"푸우우우우우웃!!!!!!!!!!!!!!!!!!!"

 

아, 시발 뭐야! 경수의 입안에서 따뜻해진 우유는 정확히 세훈의 뒷통수를 가격했다. 콜록콜록! 코에서도 우유가 나왔는지 거기서 허연게 줄줄 흘러내린다. 눈도 따갑고 코도 따가운지 경수는 코를 연신 비비며 비틀비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미 자신의 책상과 세훈의 뒷통수는 돌이킬수없는 강을 건넜다. 아, 시발 도경수!!!! 축축하고 꾸리꾸리한 냄새에 세훈이 절규했다. 급식으로 인한 포만감에 꾸벅꾸벅 졸던 녀석들도 일제히 놀라 쳐다봤다. 물론 가만히 수업을 하던 선생님도 마찬가지. 쿨쩍 거리며 눈과 코를

비비던 경수는 수많은 눈길에 정신을 차리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백현아, 나 할게. 그러고선 경수는 조용히 휴지를 꺼내 자신의 책상을 주섬주섬 닦았다. 물론 세훈의 머리를

닦아주는 것도 잊지 않고. 퉁명스럽게 경수의 필통을 닦아주던 백현은 아직도 훌쩍거리는 도경수를 보며 한숨을 셨다. 이 새끼, 괜히 끌어들였나.

왠지 모르게 불안해졌다.

 

 

 

 

-

:) 데헷

오랜만에 쓰네요.

그냥 가벼운 코믹연애입니다.

 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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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아 좋아요ㅠㅠ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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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2
헐 일빠라니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작가님사랑해요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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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4
신알신해놓길잘했어요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세륜모바일이라지긓 격함이 표현이안된다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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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예음마
감사합니당 :) 저도 사랑해요..전 사랑이 고픕니다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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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3
신알신 받고 달려왔어여ㅠㅠㅠㅠㅠㅠㅠ겁나 좋아요..ㅠㅠㅠㅠㅠㅠㅠ 재미쪙...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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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예음마
저도 겁나 감사해요 :)뀨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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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5
ㅋㅋㅋㅋㅋ앜ㅋㅋㅋㅋㅋㅋㅋ계속낄낄대면서봤어요
ㅋㅋㅋㅋㅋㅋ너무재밌어욬ㅋㅋㅋㅋㅋㅋㅋㅋ비회원이지만암호닉받아주세요 ㅠㅠㅠ 고쓰리
금손이세요 뿌잉뿌잉♥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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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예음마
:)뿌잉뿌잉 재밌다니..저도 행복합니다 ㅜㅜㅜㅜㅜ 고쓰리님!!!!!!!!!!1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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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6
헐 잠시만요?저 3학년 7반인데..........소오름....ㅋㅋㅋ신알신해뒀는데 처음에 똭 읽자마자 소름..ㅋㅋㅋ김변덮밥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암호닉 사슴부인 할께요!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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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예음마
:) 고3이시군요...아닌가 중3이신가.. 어쨌든 3학년 7반이라니. 사실 제가 알고있었습니다(는 무슨ㅋ?) ㅋㅋ 사슴부인님 감사합니당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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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7
아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암호닉 여세훈 신청되나요?경수 이 어뜨케ㅜㅜㅜㅜㅜ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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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예음마
여세훈님! :) 경수는 ....제일 잘나가는...남..이죵 ㅋㅋ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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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7
백현이귀여워옄ㅋㅋㅋㅋ덮치기라니 겁나귀엽네여 경수도 유도부강제입부되네옄ㅋㅋㅋㅋ 암호닉 개지 신청해여!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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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예음마
개지님:) 감사합니당. 모두가 바라는게 덮치기죠 ㅋㅋㅋㅋㅋ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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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8
헐!!!!!작가님기다렸어요ㅠㅠ!!숲속의벙어리보고작가님작품정독하고있었는데..이렇게반가울수가..암호닉철컹철겅으로해도되나여ㅜㅜ그리고아이컨텍은더안나오나욥?ㅠㅠㅜㅠ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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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예음마
철컹철겅 님. 혹시 철컹철컹 이 아닌가요? :)(아님말구요!) 아이컨택.... 너무 오래 손을 떼서.... ㅜ 게다가 그걸 잊고 있을것 같아서 그냥 새작품으로
달려왔는뎅... 조만간 쓰겠습니다! 절 기다리셨다니..너무 감사해요 ㅜㅜ 전 우주세계최고 미아인줄 알았거든요. 데헷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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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2
맞아요철컹철컹이예욥ㅠㅠ모티라오타가..☆ㅋㅋㅋㄲㄱㅋㅋ핡 감사해요아이컨택정말사랑하는데ㅠㅠㅠ우주최고미아라니ㅋㅋㅋㅋㅋ빵터졌어옄ㅋㅋㅋ작가님기다릴게요하트~♥~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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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8
아 대박ㅋㅋㅋㅋㅋㅋ완전 기대되네욬ㅋㅋㅋㅋㅋㅋ 암호닉으로 경수야신청할게요ㅋㅋㅋㅋㅋㅋㅋㅋ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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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예음마
경수야 님 :) 감사합니당! 앞으로도 꾸준히 봐주세염 찡긋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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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9
ㅋㅋㅋㅋㅋㅋㅋ 설정신선하구 ..남 도경수 언제 귀요미 되나요 ㅋㅋㅋㅋ 아 으뜩해 보는 내가 이 다 느껴진다 ㅋㅋㅋㅋ 잘보구가요♥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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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0
암닉 핑계로 신청이요! 신알과 추천은 제 사랑이에요♥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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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예음마
끄앙 핑계님 :)감사합니당♥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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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1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진짜 웃겨요 신알하고 암호닉 쓕으로 신청하고가요ㅋㅋㅋㅋㅋㅋㅋㅋ백현이는 왜이렇게 귀엽고 경수는 ..하지만 귀여....네...암튼 잘보고가용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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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예음마
쓕님 ♥ 경수.....네.. 열심히봐주세요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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