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UB BARIKE
4th feel so good!
“왔냐.”
“왔다.”
문이 열리고 송혁준이 지하실 안으로 들어섰다. TV에선 여전히 무한도전이 방영되고 있었다. 녀석이 어색한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아닌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다시 다리가 떨린다. 김성규가 내게 눈짓한다. 요즘 세상에 아직도 미신을 믿는 사람이 있나. 송혁준이 백팩을 카운터에 놓고, 명렬표를 체크하는 동안 김성규를 보았다. 자신의 존재를 아는 체 하지 않는 혁준이 녀석과 있기 민망한 듯, 핸드폰을 꺼낸다. 아니면 나와 함께 있는 게 어색하다거나. 내 시선을 느낀 김성규가 입모양으로 말한다. ‘왜 요’. 난 여우의 눈꼬리에 압도당해 씩 웃어보이고야 만다.
나도 잘 모르겠다. 축구를 하다 갑자기 김성규가 보이길래 공을 그 쪽으로 찼다. 혹시 데굴데굴 굴러가면 주워 던져줄까 싶어서. 강도와 방향조절이 미숙했던 건 실수였지 고의가 아니었다. 녀석이 머릴 부여잡고 잠시 정신을 추스린다. 난 놀란 척-머릴 맞혀버린 건 나도 놀랐다- 녀석에게 다가가 말을 건넸다. 이럴 때 빛나는 남우현의 연기력. 대종상 급.
“야, 괜찮… 어? 너 어제 그 여우?”
“아… 안녕하세요.”
녀석이 왜 늦은 시간에 하교를 하는지는 알 바 아니었다. 주번이라던가, 아니면 학생회 일을 끝냈던가. 화장실 구석에 숨어 키스라도 했다면, 적어도 남들 눈을 피하는 매너 있는 남자였다면 녀석이 지나가기 전, 여학생이 교문을 빠져나갔겠지.
“근데요… 제가 왜 여우에요?”
“새꺄! 빨리 와!”
“답답한 놈들아! 니네 먼저 하고 있던가! 미안. 너 방금 뭐라 했는지 까먹었어.”
“제가 왜 여우냐고 물어봤는데요.”
“어……. 여우같이 생겼잖아.”
여우마냥 생겼으니 여우지. 그것도 산에서 가엾은 토끼들 사냥이나 하는 얍삽한 여우 말고, 세상물정 느긋이 바라보는 티벳여우 말이다. 만약 내가 앞의 ‘티벳’을 말했다면 어땠을까. 눈초리로 흘김을 받을까. 온갖 상상을 하는 도중, 전화가 왔다. 발신자는 송혁준이었다. 잠시 BARIKE에서 기다리고 있으라 했고, 그러겠다 했다. 그리고 옆에 있던 녀석의 손목을 잡고, 무대뽀 정신으로 들이닥쳤다. 녀석과 같이 간다면 적어도 나른하진 않겠지 생각했다. 더 솔직히 말해서, 데려가야만 한다고. 같이 있어야만 한다고. 왜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설명으로 대신할 수 있는 느낌은 아니지만, 그 -티벳-여우 녀석과 같이 있다면…. 좋을 것 같다고.
그 후에 들어선 BARIKE였다. 예상한대로 어색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혼자서 무료한 방과후를 보내는 것보단 역시 둘이 나았다. 녀석은 우유 앞에 있는 고양이마냥 조신했다. 물론 우유 대신 감자깡이 있었다는게 흠이다만. 송혁준이 명렬표를 보고, 수행 카드를 보더니 내게 말했다.
“남우현, 좀 장하다? 대체 뭘 했길래 별을 다섯개 씩이나 받아?”
“분발 좀 해라, 새꺄. 이게 다 타고난 능력 아니겠어?”
“그게 뭔데요?”
김성규의 기습이었다. 난 그렇다 치고, 혁준이 녀석이 깜짝 놀랐다. 정말 ‘진심으로’ 그의 존재를 몰랐는지 의심할 정도로 리얼했다. 혁준이 녀석이 카드를 들고 김성규에게 반문했다.
“이거?”
“네.”
녀석의 존댓말과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좀 거슬렸지만 일단은 방관하기로 했다. 혁준이 녀석은 내게 불필요한 질문을 한다.
“얘한테 아무것도 안 알려주고 걍 데려왔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귀찮게 탄생의 시초부터 룰까지 하나하나 설명하며 데려왔어야 한단 말인가. 녀석은 호기심에 불타는 눈으로 날 보고 있었다. 좀 부담스러운 감이 없지 않아 있다. 그때, 송혁준이 구원의 투수로 등장했다.
“그냥, 이렇게 생각하면 돼. 대행해주는 서비스라고나 할까. 우리같이 공부 안 하는 애들은 심심하잖아. 비밀리에 고객이 찾아와서 이름이랑 전화번호를 적고 가면, 그걸 방과후에 해주는 거야. 예를 들어 네가 케잌이 먹고싶을 것 같다 치자. 그럼 여기 와서 명렬표에 적고 가는거야. 그럼 우리는 너한테 전화를 할테고, 넌 뚜레쥬르에서 케잌을 사달라고 말하겠지. 그럼 우린 네가 말한 그대로 해주면 되는 거야.”
“여기 와서 귀찮게 하나하나 일일이 적고 가요? 그리고 비밀리라면서요. 고객들은 여길 어떻게 알고 와요?”
“숙제 해야 하는데 어떡하지. 옷 사고 싶다. 이런 류의 고민들보다 건수가 크다, 싶은 게 있어. 우린 흘려듣는 말로 그걸 캐치하고, 명함을 던져주고 가는 거야. 약도까지 적어서. 그럼 사람들은 여길 찾아오겠지. 그리고 쓰는 거야. 그리고 다음엔 쭉 이어져. 일일이 말고, 우리가 전화한 그 번호로 다시 문자를 보내는 거지. 아까 너한테 든 예처럼[케잌 먹고 싶어요. 홍길동]이렇게 문잘 보내면 대행해주는 거야. 우린 심심하니까.”
김성규가 아- 하고 이해했다. 송혁준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수행 카드를 정리했다. 두 번 본 김성규의 가장 큰 특징은, 기습에 능하다는 것이었다.
“저도 할래요.”
어디서 나온 패기인지, 녀석의 한 마디에 지하실은 초토화되었다. 혁준이 사실을 재확인했다. 녀석은 또 고개를 끄덕였다. 하겠다구요. 저도 시켜주세요.
“왜?”
“하고 싶어요.”
아무 말 하지 못했다. 안 했다고 봐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칩은 내가 아니라 송혁준에게 있었으니까. 그러나 속으론 내심 녀석도 함께 한다면 긍정적인 결과를 산출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송혁준은 얼떨떨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말했다.
“안 돼.”
김성규가 풀이 죽었다. 어지간히 하고 싶었나보다. 그러나 난 구원투수가 아니었으므로 볼을 던질 수 없었다. 직구던, 변화구던. 그러나 내게 더 높은 승률을 자랑하는 것은 변화구였다.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일도 느는데.. 인원은 없고…. 아- 바빠 죽겠네.”
“꼼수 부리려면 쟤 데리고 빨리 나가. 쟨 안 돼.”
타자에게 판을 읽혔다. 투수로서의 자질은 충분하지 않았다. 녀석이 구원해달라는 눈빛을 보내왔다. 난 낙담했다. 왜? 하고 이유라도 물어야 마땅했다. 무한도전은 끝나고, TV를 껐다.
“왜요?”
“이미지부터가 부적격이야. 뿔테만 쓰면 하버드도 가겠어. 우리 애들 보면 알아. 쟤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길거리에 오토바이 타고 다닐 거 같이 생기지 않았어? 딱 보니까 힘 쓸 일은 못 하겠는데. 생긴 것만 여우같이 생겨가지고.”
사람들 보는 눈은 모두 비슷하다고 느낀 순간이었다. 웃음이 터져나올뻔 했다. 김성규가 애꿎은 날 흘끔거렸다. 내가 뭘? 김성규의 적극적인 태도는 S기업의 면접관도 감동시킬 자세였다. 하지만 머리에 이상한 것만 찬 우리와 다르니까. 결론은 난 투수로서의 자질이 없었고, 김성규는 면접에 낙방했다. 녀석을 지하실로 데려온 40분 중 가장 후회하는 순간이었다. 혁준이 마지막 말을 건넸다. 병 주고 약 주는 셈으로.
“우리가 대행할 일 있으면 남우현한테 전화해.”
왜 날? 그러더니 내 명함을 녀석에게 건넨다. 김성규가 명함을 교복주머니에 쑤셔넣는다. 조심조심 넣을 것이지, 속 좁게 설마 삐져버린 건 아니겠지. 그리고 송혁준이 날 불렀다.
“용건은 하고 가야지.”
“쟨 어쩌냐.”
“니가 데리고 왔잖아, 존나 멍청한 새끼.”
“잠깐만 앉아 있어. 길 기억하면 집에 빨리 들어가던지.”
길을 기억할리가 없다 생각했다. 적어도 내 뇌로서는. 처음 왔을 때 과부하가 걸리지 않았던가. 난 지독한 길치였다.
“저 길친데요.”
그렇다면 김성규는 조선시대 서방을 기다리는 아내처럼 쇼파에 앉아있어야 마땅했다. 나와 혁준은 지하실을 벗어나와 지상으로 올라갔다. 녀석의 입에서 나온 말은 양파와 우주선, 노홍철과 벽돌의 연관성마냥 뜬금없었다. 이호원과 장동우라니?
“이호원이 장동우 좋아해.”
오, 하느님. 드디어 제 친구가 게이의 세계에 입성하는 것인가요.
“입만 열면 장동우, 장동우 거리길래 물어봤더니 좋다더라. 씨발. 존나 골때려. 나한테 말했는데, 그 새끼랑 잘해보고 싶다. 아… 두야….”
“그래서 나보고 지금 연애 컨설턴트를 하라고? 나랑 짱똥이랑 불알이니까?”
송혁준이 내 어깨를 잡고 전투에 나서는 무사처럼 비장하게 말했다.
“나도 불알. 너도 불알. 우리 둘도 불알. 그니까 골때리더라도… 질질 짜고 그러면 안 될거 아냐.”
불알 없는 여자가 되고 싶다. BARIKE 최초로 연애 컨설턴트를 담당한다. 난 미션 임파서블의 톰 크루즈의 역할에 해당했다.
§
어둑해진 골목길을 따랐다. 김성규는 내 뒤에서 군말 없이 잘 따라왔다. 자기 집도 못 찾아가는 여우가 어디 있어. 아, 녀석은 좀 별종이구나. 버스 정류장이 보이길래 녀석에게 집을 물어보았다. 노선을 확인하던 녀석이 여기선 40번을 타고 가면 되겠다고 했다. 오기까지는 4분이 남았다. 우리는 의자에 걸터 앉았다. 아까 지하실과 분위기는 같았다. 다만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거리를 쌩쌩 지나가는 차들이 넘쳐난다는 것만 빼고.
“있잖아,”
“근데요,”
동시에 말을 뱉었다.
“먼저 말 해.”
“아까… 무슨 말 했어요?”
게이 얘기. 우리의 불알들이 곧 있으면 초기 게이에 입문하게 되는데, 조언 좀 해 줄래. 라는 말을 내가 어떻게 꺼낼 수가 있겠는가. 웃음으로 무마하니 녀석이 다시 말을 꺼내왔다.
“무슨 말 하려고 하셨는데요?”
“말 까도 된다고. 불편해.”
너무 차갑게 얘기했나. 녀석이 하핫, 하고 웃는다. 듣기에 거북하지 않은, 기분 좋은 웃음이었다. 난 녀석의 웃음을 처음 보는 것 같다. 팔자주름이 유독 도드라진다. 어린 놈이 벌써부터 팔자주름이라니. 그래도 웃는 건 여우답지 않고 귀여웠다. 딱 제 또래의 느낌. 약간은 공부에 찌든 느낌이었지만 말이다.
“알았어, 우현이 형.”
버스가 왔다. 녀석이 일어섰다. 마치 여자친구를 배웅하는 꼴이 되어버린 것 같았지만, 아무렴 좋았다. 신기하게 녀석과 함께 있으면 묘한 느낌이 들었다. 말로 하기 어려운. 녀석이 내게 손인사를 했다. 나도 손인사를 했다. 버스가 떠나며 차창 안으로 자리를 잡는 김성규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뒤를 돌아섰다.
§ |
확실히 길어진 듯한 느낌 덕에 좋네요!! 만족해요!! 이거 쓰고 운동하고 공부해야 한다는 건 함정..ㅠㅠㅠㅠㅠㅠㅠㅠ 운동은 더함정ㅠㅠㅠㅠㅠㅠㅠ 글이라도 쓰면 국어성적 좀 잘 받겠죠????? 우현이가 본격 성규에게 무슨 맘인지 모르겠는 근데 좋은 마음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느끼게 되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앜ㅋㅁㅋ!!! 앜아ㅓㅋ앙아캌아! 그리고 직접적으로는 나오지 않았지만 제가 빠는 ☆야동★이 드디어 등장합니다 주연급은 아니고 감초 정도로 느끼시면 될 거에요~ 수열은 대체 언제 나오나..
사실 어제 홈플러스 가면서 제가 좋아했던 오빨 만나서.. 기분이 좋아요.. *-_-* 문체나 그런 건 노래에 잘 안 어울리지만 느낌 상으로 좀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날씨도 참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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