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2학년때 정국은 아버지의 서재로 불려갔다. 그 서재에서 아버지는 처음보는 아이와 서있었다. 아이는 고개를 숙이고 있어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아이를 아래서부터 위로, 위에서부터 아래로 천천히 바라보았다. 아이의 얼굴이 궁금해 고개를 숙이려는 순간에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정국아 예 넌 지금부터 이 아이만 믿는거다 ... 이 아이말고는 믿지말거라. ... 정국은 내 앞에 서 있는 자신과 키가 비슷한 아이를 비라보며 입술을 달싹였다 정국아. 대답은 해야지 ...네 할 말이 많은 듯 머뭇거리던 입술이 멈추고 곧 단정하게 꾸며진 말소리가 짧고 간결하게 나온다. 그러자 정국의 앞에 서 있던 아이가 고개를 들어 눈을 맞추었다. 정국은 자신에게 이 아이를 붙여준 이유를 찾으려 노력했다. 이를 알기까지 별로 걸리진 않았다. 자신의 아버지가 나쁜 짓을 많이 해 많은 사람들에게 원한을 사기에 자신이 위험하기에,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이 아이를 붙여주었다. 정국의 아버지는 정국을 바라보다 이 상황을 이해한 듯하자 방을 벗어났다. 눈을 마주친 아이가 부드럽고 유하게 시선을 내리고 등을 살짝 굽힌 채 말을 꺼냈다 안녕하십니까 이번에 전정국님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이의 행동을 느긋하게 바라보던 정국이 아이의 말소리가 흘려나오자 눈을 크게 뜨고 아이를 바라보았다. 어쩐지 초등학생 2학년 남자애치고는 선이 얇다했다. 여자애였다. 아버지의 서재가 그 아이의 부드러운 미성으로 가득찬다. 높은 천장탓인지 아련히 울리는 것 같다. 다시 아이가 부드럽고 유하게 움직인다. 아버지의 큰 책상 뒤에 있는 책상보다 더 큰 창문에서 내리는 붉은 빛이 아이의 등뒤로 퍼진다. 내 모든 행동하나하나가 부자연스럽고 느리게 느껴진다. 눈을 깜빡이는 것, 침을 삼키는 것, 서 있을 때 무게중심을 맞추는 것이 갑자기 어려워졌다. 그러면서 물에 물감이 풀어지듯 확 하고 열기가 등줄기를 타고 또 다른 붉은 빛이 퍼지는 느낌을 느꼈다. 아이는 다시 내 눈을 맞추며 표정변화 하나없이 말했다. 전정국님 얼굴이 빨갑습니다 어디 아프십니까? 주치의를 부르겠습니다. 특별한 변조도 없고 감정 하나 안담긴 소리가 적당한 템포로 울리며 나에게 온다. 아이가 내뱉는 무미건조한 말들에 내 마음이 아린다. 그 이유를 알기도 전에 내 얼굴이 빨갛다는 말에 꽥 소리르 지르고 방에서 나갔다. 내 등 뒤로 다시 무미건조하게 알겠다는 말소리가 퍼진다.
이런 글은 어떠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