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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발 전체글ll조회 542l

 

[EXO/세종] 차가운 숨 12

 

w. 발발

 

 

 

수목원은 안개가 자욱하다.
분명히 저 멀리서 보았을 때는 싱그러움이 가득찬 숲 속이였는데, 안은 그렇지 않았다.
기분나쁜 습기를 잔뜩 머금은 바람이 스산하게 불었다.
수목원 가운데에 커다란 호수가 있어서 바람도 꽤나 강하게 부는데, 마치 인공적인 그래픽인 양 안개는 바람에 날리지도 않았다.
울창한 나무들과 형형색색의 꽃들은 안개에 가려 자취를 감췄고, 세상은 온통 뿌옇다.

 

세훈은 지금 수목원 변두리에 있는 작은 연못 위 다리에 서 있다.
황금빛 잉어들은 배를 내보이고 물에 둥둥 떠서 겨우 아가미를 뻐끔거리며 마지막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치 앞도 안 보일 정도의 짙은 안개에, 세훈은 열 걸음 앞에 있을 종인이 보이지 않았다.
종인이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자, 바람을 타고 온 종인의 향을 느낀 세훈이 몇 걸음 걸어갔다.
그제야 마주한 세훈과 종인은 그렇게 서로를 한참 바라보았다.
세훈이 입술을 떼고 나직하게 무언가를 말하는 듯 했다.
종인은 물끄러미 듣고만 있다.
세훈의 긴 이야기가 끝나자 종인은 눈을 내리깔고 조용히 윗도리를 벗었다.
종인의 구릿빛 몸은 태는 좋았지만, 심장 밑쪽 갈비뼈 부근에 길게 꿰맨 자국이 선명했다.
세훈은 손을 뻗어 그 흉터를 매만졌다.
세훈의 거침없는 손길에 고통스러운 듯 얼굴을 찌푸린 종인이 세훈의 어깨에 얼굴을 기댔다.
세훈의 손이 흉터를 만질때마다, 종인의 수술자국이 투둑투둑 터졌다.
종인은 저항하지 않았다.
세훈은 멈추지 않고 더욱 강하게 종인의 상처를 만졌다.
살이 벌어져 피가 폭포처럼 쏟아지면서 속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종인은 곧 숨을 거둘듯이 세훈의 어깨에서 헐떡였고, 세훈은 종인의 피범벅이 된 제 손을 바라보다가 종인의 상처 속 깊숙히 손을 집어넣었다.
제 몸에 손을 넣어 이리저리 만져대는 세훈에, 종인은 죽을듯한 고통으로 소리 한 번 못지르고 기절한 것 같았다.
제게 기댄 채 축 늘어진 종인을 붙잡고서서 한참을 속을 헤집던 세훈이 종인의 심장을 잡아냈다.
제 주먹만한 뜨근한 심장은 느릿하게 수축이완하고 있었다.
곧 운동을 멈출 것 같았다.
세훈은 제 손바닥 위의 그저 한덩이의 살코기같은 빨갛고 뜨겁고 물컹물컹한 종인의 심장을 망설임없이 콱 움켜쥐었다.
종인의 심장이 물풍선처럼 터졌다.
거짓말처럼.

 

사방에 피비가 내렸다.
종인은 스르륵 쓰러졌고, 세훈은 종인의 진득하고 뜨거운 피를 온 몸으로 뒤집어썼다.
고요한 수목원은 세훈의 웃음소리로 가득찼다.
세훈은 낄낄댔다.
피때문에 눈도 못 뜨고, 낄낄대며 울었다.

 

세상은 이제,
하얗지 않았다.

 

 

 

"허억-!"

 

꿈이었다.
세훈은 반사적으로 상체를 일으켜앉았다.
벽시계의 바늘은 새벽 두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마에서 흐른 땀이 목을 타고 내려와 티셔츠 가슴께를 다 적셨다.
눈물이 귀로 흘러들어가 먹먹했다.
머리도 가슴도 먹먹해졌다.
끔찍한 악몽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너무나 생생한 꿈이라 현실일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낮에 저지르고 자다가 지금 깬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훈은 침대에서 내려와 어딘가에 내팽겨쳐있을 휴대폰을 찾았다.
그 때, 거실쪽에서 때마침 울리는 휴대폰 벨소리에 세훈은 쏜살같이 방을 뛰쳐나갔다.
발신자는 종인이였다.

 

"여보세요!"
"...뭘 그렇게 다급하게 받아,"
"너 괜찮아?!"
"그걸 말이라고 하냐..?"
"아니, 진짜 너 괜찮은거지? 수술한 데 터지거나 심장이 아프거나 그렇진 않고?"

 

전화는 종인이 걸었는데, 말할 틈도 주지 않고 다다다 제 말만 하는 세훈에 종인이 입을 다물었다.
조용해진 종인에 아차싶은 세훈이 입을 다물고 숨을 멈추었다.
이에 종인은 낮게 읖조렸다.

 

"너 꿈꿨냐,"
"...뭐.."
"하- ...이젠 아주 쌍둥이라고 꿈도 똑같은 거 꾸나보지?"
"어?"
"이거 아주 개같다, 세훈아."

 

종인은 한숨처럼 내뱉었다.
제 꿈에서는 제가 세훈의 심장을 터트렸는데, 세훈의 꿈에서는 반대였나보다.
이런 식으로 다시 한 번 쌍둥이라는 걸 확신하게 된 종인은 안 그래도 악몽때문에 가라앉았던 기분이 아주 바닥에 내리꽂히는 것 같았다.
세훈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힘겨웠다.
종인은 조용한 휴대폰에 대고 끊자-고 얘기하려고 입술을 뗐다.

 

"끄-"
"너 당장 와."
"뭐?"
"당장 뛰어오라고-"
"지금 몇 신줄 알고 그러는거냐?"
".."
"끊어."
"보고싶어.!"
"..."
"보고싶어, 종인아-"

 

 

 

세훈은 도어락 소리에 뛰쳐나가 문을 열었다.
문 앞에는 땀범벅인 종인이 허리를 숙여 무릎을 붙잡고 헥헥거리고 있었다.
쌕쌕거리는 숨소리가 제 몸상태는 생각도 안하고 무리해서 뛰어온 듯 했다.
눈만 살짝 치켜뜨고 세훈을 확인한 종인은 신경질적으로 눈을 감고 다시 숨고르기에 집중했다.
세훈은 이 순간, 형제고 나발이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
손을 들어 종인의 얼굴선을 타고 흐르는 땀을 닦았다.
이마에서 뺨 옆으로 손을 옮겨 땀방울이 맺혀있는 턱을 매만졌다.
그리고는 못 참겠다는 깊게 입을 맞췄다.
아직 제대로 숨도 고르지 못했는데, 숨이 턱턱 막혀오는 세훈의 갑작스러운 키스에 종인은 산소부족으로 머리가 띵했다.
우악스럽게 저를 붙잡고 쉴 새없이 빨아대는 세훈을 가까스로 떼어낸 종인이 현관에 서서 벗을 새도 없이 신고 있던 신발을 벗고 집 안으로 들어와 쇼파에 털썩 몸을 기댔다.
그러고는 현관에 멍청하게 서 있는 세훈을 노려보았다.
아무 생각없이 그저 멍하게 서 있는 것 같았다.
현관에서 종인이 하는 양을 지켜보던 세훈은 문득 숨 쉬는 것을 잊고 있었다는 듯 급히 숨을 몰아쉬었다.
종인은 정신이 돌아오는 듯한 세훈에,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너 사람가지고 노냐?"
"아니,"
"뭐하자는건데 그럼,"
"자자."

 

어이가 없어진 종인이 허-하고 허망한 웃음을 뱉었다.
순간적으로 제가 잘못들은건가 싶었다.

 

"뭐라고 했어?"
"자자고 했어."
"..."
"하자고. 하고 싶다고 했어."

 

종인의 두 눈을 똑똑히 마주하며 또박또박 대답하는 세훈에 종인은 가슴 속이 무너지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지금까지 저를 억제하고 무시하던 세훈이 이제와서 제멋대로 방향을 바꾸니 혼란스러웠다.
그러면서도 세훈의 한 마디에 이렇게 흔들리는 자신이 싫었다.
병신처럼 세훈에게 끌려다니는 제가 한심했다.
이 것은 종인이 원하던 것이였지만, 이런 식의 전개는 분명 아니였다.
세훈이 악몽을 꾸고 당장 불안해서 그런 것 같았다.
임시방편같은 관계는 싫다.

 

"...세훈아"

"어."

"개새끼야, 행실 똑바로 해."
".."
"이러고나서 다음날 후회하지 말고."
"..."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늘어졌건 몸을 일으키며 계속 현관 앞에 서있는 세훈에게 다가간 종인은 위협조로 대꾸하며 도로 신발을 신었다.
울컥했지만 집에 도착할 때까지 참았다가 우는 것이 좋을 듯 했다.
아무렇지않게 잠자리를 말하는 세훈 앞에서 우는 건 정말 최악이였다.

 

"사랑하는 거 못 그만 두겠어. 그냥 개새끼로 살래."
"야..."
"니 말대로, 널 당장 눕혀서 물고 빨고 오만짓거리 다 하고 싶어."
"..."
"당장의 분위기때문에 이러는거 아냐."
"그럼,"
"사랑해."
"..뭐...?"
"니가 오세준이던, 내 형이던, 다 필요없어."
"..."
"신경 안 쓰기로 했어. 아니 이제 신경쓸 수가 없어."
"세훈아.."
"내가 김종인을 사랑하니까."

 

종인은 스르륵 눈을 감았다.
감은 눈에서 두 줄기의 굵은 눈물이 흘렀다.
기쁨인지 슬픔인지 모를 눈물이 흘렀다.
세훈은 몸을 낮춰 종인의 종아리를 잡아들고 신발을 벗겼다.
그러고는 다시 몸을 일으켜 눈물로 젖은 종인의 눈에 입을 맞추었다.
눈물이 입 속으로 들어갔지만, 짠맛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따뜻하고 달콤한 눈물이였다.
세훈은 입술을 떼고 종인의 얼굴을 감싸 마주보았다.
종인의 서러움가득한 눈을 내리깔고 세훈을 보지 않았다.
세훈은 무거우면서도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종인을 끌어앉았다.
누구도 떼어놓지 못하게 접착제로 붙여놓은 것처럼 꽈악 안았다.
종인도 팔을 들어 세훈의 등을 끌어안았다.
종인의 손은 언제나 뜨거웠다.
따뜻한 종인을 품에 가두니 마음이 평온해졌다.
가슴이 따뜻해졌다.

 

 

 

"우린 진짜 개새끼들이야..."

 

어느 때보다 간절했던 정사가 끝나고, 샤워도 뒷처리도 안한 채 꼭 끌어안고 누워있는 종인과 세훈이였다.
세훈의 자조적인 말에, 종인이 위로하듯 세훈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세훈은 그런 종인의 머리카락을 조용히 쓰다듬었다.
꿈에서 깨어나 종인한테 전화할 때는 악몽에 충격을 받았을 뿐, 그래도 나름 제정신이였다.
그런데 종인의 슬픔이 묻어나는 힘없는 음성을 듣고는 제정신일 수가 없었다.
제게 심장을 내어주고 쓰러져 죽어버린 모습이 세훈을 괴롭혔다.
차라리 종인의 꿈 속에서처럼 제가 죽는 것이 나았다.
종인도 그렇게 생각하겠지.
세훈은 머리가 복잡한 듯 힘없이 눈을 반쯤 감고 있는 종인을 보며 아직까지도 상기되어 발간 뺨을 쓸었다.

 

그저 집이 망하거나 반신불수가 되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그런건 사랑할 수 있으니까.
왜 우릴 형제로 묶어놔서 말도 안되는 고통을 주는지..
처음으로 엄마아빠를 원망했다.
종인이를 잃어버리지만 않았어도 이런 끔찍한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저자신을 욕하면서 사랑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저들의 사랑 자체를 부정해야하는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만약 종인이가 평범하게 세준이로 살았다면, 우린 서로 지금처럼 사랑했을까.
아닐것이다. 있을 수도 없는 일이지.
김종인과 오세훈이기에 가능한 일이였다.
그리고, 김종인은 오세준이 아닌, 김종인의 삶을 택했다.
그럼 되었다.
쉽게- 아니, 너무 돌아가지 말자.
세훈은 종인의 선택을 존중하고 따르기로 했다.
생각해보니 서로에게 가장 자연스럽고, 좋은 길이였다.
종인은 그 동안의 긴장감이 눈 녹듯 풀렸는지 어느새 잠이 들었다.
세훈은 잠든 종인의 뺨을 한 번 쓸고는 저도 잠을 청했다.
오늘은 간만에 깊이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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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편왔습니다~~ 이번 편이 제일 어려웠던 것 같아요 헝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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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너무 가슴아픈데..아픈데도불구하고 너무행복하네요ㅠㅠㅜㅜ 아무리 안될일이라고해도ㅠㅠㅠㅠ둘은떨어질수없엉..ㅠㅠㅠㅠㅠㅠㅠㅠㅠ
10년 전
발발
그행복이오래가야될텐데요ㅜㅜ
10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작품을 읽은 후 댓글을 꼭 남겨주세요,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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