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O/세종] 차가운 숨 16
w. 발발
세훈은 수리영역을 제일 좋아한다.
이것도 답이다, 근데 저것도 답이 될 수 있다- 같은 두루뭉실 광범위한 것은 딱 질색이었다.
공식에 대입해서 답이 딱 떨어지는 수학이 세훈의 성향에 어울렸다.
그래서 이과를 선택했고, 수리영역은 2등급 아래로 떨어져 본 적이 없었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수학에 대한 세훈의 애정과 실력을 돌고 돌면서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좋아하니까 더 많이 파고들게 되고, 많이 파고드니까 잘하게 되고, 잘하니까 더 좋아하게 되고.
원래가 집중력이 괴물같은 세훈이였지만, 특히 수학문제를 풀 때는 누가 건드려도 모를 정도였다.
"후..."
그런데 지금은,
"설마 안 풀리는 건 아니겠지? 1점짜린데?"
"..아니야"
그렇지 못했다.
"아들, 학교가야지!"
"응, 뭐야 왠 그릇을 다 꺼내놨어요?"
"하도 안 써서 먼지가 다 앉았잖아, 오늘 쓸건데."
"집에 누구 와?"
세훈이 등교 준비를 할 동안, 유진은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장식장에서 분주하게 그릇을 꺼내고 있었다.
거래처에서 선물받거나 출장가서 사 모은 것을 입국할 때마다 가져와 집에 모셔두었던 것들이다.
그 비싸고 귀한 디쉬세트를 꺼내어 손님을 대접해본적은 없었다.
단지 장식용이였다.
아니 뭐 애초에 집에 세훈밖에 안 사는데 손님을 초대할 일도 없었고, 세훈이 친구를 초대한다고 해서 그 그릇들을 꺼내어 요리를 만들리도 만무했다.
세훈은 평소보다 텐션이 높아보이는 유진을 의문스럽게 쳐다보았다.
세훈은 유진을 닮아 차분한 성격이었고, 특히나 유진은 아침에는 저기압이였다.
저렇게 아침에 무언가에 흥분해서 활동하는 모습이 낯설었다.
"누구와요?"
세훈은 아까 질문을 못 듣고 그릇 꺼내는 데에 정신팔린 유진을 향해 다시 한 번 되물었다.
그때서야 유진은 세훈을 쳐다보더니 막 꺼낸 샐러드그릇을 조심스럽게 식탁에 올려놓았다.
"아들,"
"응"
"엄마가 그동안 학교생활 못 챙겨줘서 정말로 미안해. 진짜로."
"뭘 또 새삼스럽게-"
"이제 몇 달만 있으면 챙겨주고 싶어도 못 하잖아, 너 졸업하니까. 그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번 해보려고."
"아 그러니까 뭐를."
"오늘 학교끝나고 약속없지?"
"응. 뭔데, 사람 궁금하게."
"그럼 종인인가, 그 친구 데려와. 우리집에 사는 친구. 밥 한 번 먹이게."
"하아..."
"아진짜- 이게 안하던 짓을 하네? 사람 신경쓰이게?"
"..."
"오세훈-"
"...왜"
"너 지금 계속 한숨쉬고 있어."
"...그랬어? 미안.."
"쯧,,,"
종인은 무표정한 세훈의 턱을 한 손으로 잡아 제 쪽으로 획 돌렸다.
살짝 눈을 찡그려 자기에게 털어놓으라는 얼굴을 했다.
힘없이 종인의 손짓대로 딸려온 세훈은 종인에게 미안한 웃음이 지어보이고 말을 아꼈다.
종인은 세훈의 무표정함에서도 세훈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있었다.
"뭐야 진짜.."
"..별로"
세훈은 유진의 말을 되뇌이고 있었다.
며칠 전에 같이 지내는 친구가 누구냐고 물어서 마시던 물에 사래가 걸린 적이 있다.
최대한 평범하게 대답하려고 노력하면서 '말하면 엄마가 알아? 김종인이라고 있어.'라고 하긴 했지만,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그 날 밤을 꼴딱 샜었다.
그 때는 제가 당황해서 유진의 표정을 미쳐 살피지 못했는데, 지금와서 되새겨보면 그 표정이 놀랍지만 어느정도 예상은 했다- 혹은 역시나구나 다행이다- 이 정도로 해석이 되었다.
오늘 아침에 종인을 초대한 것까지 합하면 자신의 해석이 들어맞는 구석이 있다.
유진은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유진이 점점 사실에 가까워지고 있다.
아니 과민반응일 수도 있는데, 느낌이 안 좋았다.
슬슬 떨려오는 눈빛을 감추며 태연한 척 걔는 그런거 부담스러워서 싫어한다고 불편해할거라고 둘러댔지만, 유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우리 아들 제일 친한 친구가 누군지 좀 보고 싶어서 그래. 얼마나 성격이 좋으면 이런 까탈쟁이랑 베스트프렌드겠어~
유진은 후퇴없이 밀어붙였다.
사실 이 상황은 평범하다면 평범한 상황이였고, 오히려 세훈이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이 더 이상했다.
그래도 유진은 세훈의 방어를 눈치채지 못했다.
아마 상상도 못 할 일이겠지.
세훈은 제 옆에서 이어폰을 끼고 영어듣기를 하는 종인을 훔쳐보았다.
무표정한 눈은 온통 꼬부랑 글씨투성이인 교재를 향해 있었다.
언제 어떻게 말해야 할지 세훈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분명 종인은 놀랄 것이고, 회피할 것이고, 상처입을 것이다.
제 엄마와 부딪히는 일은 본인들 스스로 지옥의 문을 여는 행위였다.
세훈은 답답해 죽겠다는 얼굴로 창가로 고개를 돌렸다.
"훔쳐보지 말고 할 말 있으면 해라"
"...수능이 얼마 남았다고. 집중력 개판이네?"
"아 니가 자꾸 신경쓰이게 하잖아-"
"..미안"
"뭔데 그래? 이미 산전수전공중전 다 겪은 거 같은데 뭘 망설여."
"...입만 살았지"
"뭐, 뭐-"
말은 씩씩하게 해도 딱 보면 알았다.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이미 무엇에 대한 것인지 대충 짐작했을텐데 괜히 시간끌어서 애간장태우지 말자고 생각한 세훈은, 옆 반 누구랑 누구랑 사귄다더라 하는 싱거운 말을 듣는 것처럼 관심없다는 듯 손톱 거스러미를 뜯고 있는 종인을 향해 입을 열었다.
"엄마가, 너 보재."
"뭐?!"
무심한 척은 혼자 다하더니 많이 놀랐는지 크게 외치는 종인이었다.
너무 격하게 반응하는 종인에 세훈은 제가 너무 광범위하게 말한 것에 미안함을 느꼈다.
"아니.. 뭘 알고 그러는게 아니라 우리집에서 사는 친구데 밥 한 끼 같이 먹는게 예의아니냐고."
"..."
"그렇다고.."
"싫어."
세훈은 요 근래 종인의 약한 모습만 봐와서 원래 종인의 성격을 잊고 있었다.
본래의 종인은 감정적이긴 하지만 또 그래서랄까, 호불호가 뚜렷했다.
싫은 것은 죽어도 안했다.
그리고 세훈이 말하는 밥 한 끼는 종인에게는 최악의 자리였다.
저한테도 두려운 자리지만, 엄밀히 말하면 종인이 당사자였다.
세훈은 그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단번에 쳐내는 종인을 이해했다.
"알아, 나도 너만큼이나 싫어. 그런데 역으로 생각해봐."
"뭘"
"니가 그렇게 강력하게 거부하는게 엄마 눈에 어떻게 보이겠냐고."
"..."
종인은 입을 다물었다.
일을 겪으면서 세훈만큼은 아니지만 자신도 꽤나 이성적으로 변했다고 생각했다.
근데 이렇게 실제상황이 되면 자기는 한참 멀었다는 것을 실감했다.
세훈의 말이 다 옳다. 틀린 것 하나 없다.
그런데 알면서도 싫었다.
아니, 싫은 것보다 두렵다고 하는 것이 맞겠지.
이런 식으로 자꾸만 마주치게 되면 눈치채는 것은 시간문제다.
"엄마.. 한 번 보고싶지 않아...?"
"..."
학교를 파하고 교문을 통과하면서 세훈은 금기어를 꺼냈다.
엄마라는 단어는 그 이후 서로에게 무언의 금기어가 되어있었다.
하지만 종인은 그 말에도 별로 동요하지 않아 보였다.
동요하지 않다기보다는 온몸으로 거부한다는 표현이 더 알맞는 것 같았다.
"내가 니네 엄마 만나서 뭐해."
"..김종인,"
"..."
"너진짜-"
"...알았으니까 그만하자. 몇 신지 정해지면 연락줘."
"..."
종인은 제 말만 하고 그렇게 앞장서 걸었다.
"아-!"
뒤늦게 쫓아가려 했지만, 갑작스런 심장통증때문에 잠시 주저앉은 탓에 이미 종인은 사라진 뒤였다.
"네가 종인이구나, 반갑다. 우리집에 사는데도 얼굴 한 번 못봤네."
"...안녕하세요."
"집도 가깝다며, 나 있다고 불편해하지말고 그냥 평소처럼 우리집에서 지내."
"...아.. 괜찮습니다..."
유진은 오랜 사회생활로 배운 것이 하나 있다.
본심 숨기기.
자식 앞에서라고 예외는 아니였다.
지금까지 이십년 가까운 세월을 세훈에게 숨기고 살았는데, 세준 앞이라고 다를 것이 없었다.
사실 너무 꿈만 같고 감격스러워서 속으로는 덜덜 떨고 있었지만, 그냥 부장타이틀을 달은 것이 아니였다.
아이들 앞에서 내색하지 않으려 애쓰면서 더욱 저녁식사준비를 바쁜 척을 했다.
그런 유진에 세훈은 조용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한숨에는 미약한 떨림을 안고 있었다.
유진의 행동이 종인의 존재를 아직 모르는 것 같았다.
정말 말그대로 자신의 친한 친구를 대접하고 싶었나보다-라고 생각했다.
제가 안정이 되니 종인이 눈에 들어왔다.
종인에게 오라고 전화를 하고나서부터 초인종이 울리고 종인이 현관으로 들어설 때까지 세훈은 종인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엄마가 종인이 오면 부둥켜안고 세준아! 이러면서 울거나, 아니면 자신과 종인을 나란히 세워놓고 니들이 바로 형제다 라면서 고백해버릴까봐.
종인은 당연히 정상일 수 없었다.
생각보다는 차분한 모습이였지만, 크고 깊은 두 눈에는 두려움과 떨림이 서려있었다.
유진은 배고플테니 어서 앉으라고, 금방 밥이랑 국을 놓아주겠다고 부산하게 먼저 부엌으로 들어갔다.
집이 워낙 넓어서 거실과 부엌은 꽤나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훈은 친구를 챙기는 척 종인에게 다가가 최대한 무심하게 어깨를 잡아 부엌으로 이끌었다.
그런 세훈에 종인은 발걸음을 떼지 않고 잠시 제자리를 고집했다.
세훈은 움직이지 않는 종인에 종인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눈을 마주했다.
종인은 세훈을 바라보며 바짝 말라버린 입술을 혀를 내어 축었다.
눈으로 무섭다고 애원하는 것 같았다.
괜찮아.
세훈은 입모양으로 종인에게 말한 뒤, 부엌쪽을 힐끗 쳐다보고는 손을 들어 종인의 젖은 입술을 조심스레 훔쳐주었다.
"..."
"가자."
종인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인 후 발걸음을 떼었다.
식사는 생각보다 평범함 속에서 진행되었다.
유진은 여느 평범한 친구엄마처럼 이것저것 물어봤다.
어떻게 친구가 되었냐, 공부는 잘해냐, 어느 대학을 생각하고 있냐 등등
종인은 불편함 속에서 으리으리하게 차려놓은 잔칫상같은 음식들에 쉽사리 손을 대지 못하고 깨작거리고 있었는데, 그런 유진의 폭풍같은 질문은 차라리 도움이 되었다.
"엄마, 좀..."
"어머, 내가 밥먹으라고 불러놓고 너무 말만 시켰네, 어서 먹어. 내가 생각해도 많이 차리긴 했는데, 다 겉만 번지르르하지 맛은 장담 못한다~"
"..네"
유진이 제 맞은 편에 앉고 세훈이 제 옆에 앉아서 세훈의 표정은 살필 수 없었지만, 짐작은 갔다.
마주 앉았으면 눈이라도 마주치면서 안정을 취할 수 있을텐데, 그 것조차 할 수 없으니 속이 울렁거렸다.
종인은 밥과 국만 퍼먹었다.
뭘 먹을 생각도 안나고, 젓가락질을 하면 손이 떨려서 음식을 떨어뜨릴 것 같았다.
줄지 않는 종인의 뽀얀 쌀밥 위에 세훈이 불고기 한 점을 얹어주었다.
"좀 팍팍 먹어라, 밥 먹고 왔냐?"
"아니,,"
"얘가 요즘 입맛없다고 잘 안 먹어, 엄마."
"수능때문에 스트레스 많이 받나보구나,, 진짜 얼마 안남았네."
세훈의 말은 티내지 말라는 뜻이였다.
제가 그럴수록 시선은 저에게 향할 거라는 것을 깨달은 종인은 열심히 입운동을 했다.
침도 분비안되는 상태에서 억지로 음식을 씹으니 잘 넘어가지 않았다.
헛기침을 하며 국을 떠 먹었다.
"켁켁- 우웩-"
"어머! 괜찮니? 아들, 물!"
"어어!"
국을 목구멍으로 넘기는 순간 사래가 걸린 종인이 헛구역질을 시작했다.
급체한 것 같았다.
아무래도 이런 자리에서 식사를 하니 탈이 안 날 수가 없었다.
"우읍-"
"올라와? 화장실갈까??"
"우엑-"
세훈은 종인을 부축하려고 급히 의자를 밀어 일어섰다.
그리고 종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유진이 먼저였다.
"아가, 괜찮아? 엄마 손 잡아!"
"..."
"옳지,"
유진은 입을 막고 화장실로 뛰어가는 종인을 쫓아가며 등을 두드려 주었다.
"우읍- 우웩-"
"계속 올려, 옳지. 안되면 엄마가 손가락 넣어줄까? 아어떡해... 괜찮니?"
유진은 변기에 고개를 박고 계속 구역질을 하는 종인의 등을 쉴 새없이 두드렸다.
종인은 먹은 것없이 체해서 그런지 올리는 것 없이 고통스러워 하기만 했다.
유진은 새빨게진 얼굴로 눈시울까지 붉혀가며 종인을 도왔다.
"..."
무언가에 홀린 듯 뒤늦게 느릿하게 발을 떼어 부엌을 나온 세훈은, 화장실 앞으로 가지 못하고 거실 가운데에서 멍하니 유진을 쳐다보았다.
"어떡해 진짜, 아가 좀 올라와? 더 세게 두드려줄까?! 아님 문질러줄까?! 우리아가 어떡하니 진짜!..."
엄마가...
"우읍- 하아하아,,, 우웩!"
"어떡해..어떡해.."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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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아아아아ㅏ아 미치겠다!!! 우래기들어떡해요진짜!!!!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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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제발 연하남 만나 연하남..ㅋㅋㅋ ㅠ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