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손님?"
여자가 가게를 눈으로 뒤지고 있던 참에, 말쑥한 유니폼 차림의 남자가 다가와 묻는다.
"식사 하실거에요?" "....아뇨."
여자가 조금 망설이다가 부정의 대답을 하자 남자는 이상한 사람을 보듯 눈을 바꾼다. 그 눈을 알아챈 여자가 주머니 속에서 조금은 반듯해진듯한 명함을 남자에게 건넨다.
"이 사람을.. 좀, 만나러 왔는데요."
남자는 명함을 몇 초간 들여다 보더니 잠깐만 기다리라는 말을 하고는 어디론가 사라진다. 여자는 숨을 몇번이나 가다듬으며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머리로 곱씹는다.
잠시 뒤, 어떤 젊은 여자가 깊숙한 곳 에서 점원과 함께 걸어나온다. 그 여자는 서있는 여자의 꼬라지를 훑더니 입을 굳게 씹었다가 가까이 다가온다. "절 찾으셨다구요?" "박현호 사장이 명함을 줘서요."
박현호 라는 이름을 듣자 마자, 젊은 여자는 아. 하고 작은 탄식섞인 탄성을 내뱉고 안으로 들어오라 한다. 여자는 우물대다가 발을 조심스레 옮겨 이끄는 곳으로 따라갔다.
-
"뭐 드시겠어요?" "아니요. 괜찮아요." 꽤 단호한 여자의 대답에 젊은 여자는 놀란 눈치다. 젊은 여자는 나름의 자존심 때문에 음식을 2인분 주문한다. 하지만 여자는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는 듯 하다.
위 아래로 시퍼런 작업복을 입고 상판엔 아무것도 덧칠하지 않은 듯,
여자의 격 떨어지는 품새에 젊은 여자는 탐탁치 않은 눈초리를 흘린다. 하지만 여자는 눈을 내리깔고 테이블을 볼 뿐 역시 또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듯 하다. 사람이 여간 둔한게 아니라 곰 수준이다. "박현호 사장이 보냈다구요?" "아, 네." "그 사람이 왜 보냈을까?"
능청스레 너스레를 털자 여자는 그제서야 슬쩍 놀란 듯 하다. 젊은 여자는 재미를 느낀다.
"농담이에요. 사람을 찾는다구요?" "네." "음, 그러시구나."
젊은 여자는 이러저러한 식기들을 각 머리 앞에 하나씩 놓으며 여자를 간보기 시작했다. 여자는 채워져가는 테이블을 보며 숨을 삼킨다.
"누군데요?"
젊은 여자가 무심코 말을 던졌다. 순간 여자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정말로 얼굴색이 급히 어두워지거나 한건 아니었지만 뿜어져 나오던 사람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냉스러워지자 젊은 여자는 놀란다. 여자가 입을 굳게 다물고 있자 테이블 위의 분위기가 긴장감에 쌓인다. 젊은 여자도 긴장한다.
"돈은 얼마쯤 필요할까요?" "글쎄요. 물건을 알아야 값을 매기죠."
차라리 사람이 아닌 물건으로 대하는 것이 진정 속이 편한가. 여자는 두 어깨가 푸욱 사그러들었다. 젊은 여자는 속으로 안도했다.
"꽤 많이 들겠죠. 들어보니 중국 어느 지방에 있는지도 모르고." "........" "또 소식 끊긴건 2년 전이라면서요?" "네." "2년 동안 그 사람이 어디로 갔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요." "....." "그러니까 꽤 비싸겠네." "돈은.. 준비 할게요, 어떻게든."
젊은 여자는 여자의 말에 피식. 하고 웃음을 흘렸다. 그 웃음 소리에 여자는 젊은 여자를 쳐다본다.
"아니, 그냥. 중요한 사람인가봐요?" "얼마나 걸릴까요?" "....글쎄요. 꽤 걸리지 않을까요?" "확실하게 찾을 수 있는거죠?" "...그것도 모르죠."
여자는 젊은 여자의 흐릿한 대답에 표정이 굳는다.
- "이름이 뭐에요?"
두 사람 몫의 음식이 놓이자 여자는 젊은 여자의 눈치를 살핀다.
"괜찮아요. 그냥 먹어요."
여자는 포크와 나이프를 바꿔 쥐고 우물댄다. 멈칫 멈칫 하는 것이 생전 먹어본 기억이 없는 듯한 뽄새다. 젊은 여자는 몇 번을 흘끔대다가 먹음직할만큼 썰린 제 것과 접시를 바꾼다. 여자는 머리를 꾸벅 숙인다. 젊은 여자는 웃는다.
"이름이 뭐에요?" "네?" "이름이 뭐냐구요, 벌써 세번째다." "아.."
김태연이요. 젊은 여자가 눈을 살짝 찡그리고 잘 못들었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김태연이요." "아, 김태연?" "네."
젊은 여자는 김태연, 김태연. 두어번 곱씹어 보더니 말을 꺼낸다.
"특이하네요." "....." "그냥, 알아둬야 할 것 같아서요."
태연이 제 앞에 있는 고깃 덩어리를 쳐다보다가 흠칫 놀라고는 포크를 내려놓는다.
"저 가볼게요." "네?" "잘 먹었습니다. 연락 주세요."
태연은 젊은 여자가 놀랄 틈도 없이 룸에서 빠져나간다. 젊은 여자는 멍하니 몇 점 비어있지 않은 접시를 본다.
"저, 점장님." "응?" "아까 그 여자가 이것 좀 전해 달라던데요." 남자가 건넨 흰 봉투 앞면엔 [豚 앞다리살 20kg, 목살 5kg 25] 라고 휘갈겨 있다. 젊은 여자는 조금 갸우뚱 하다가 봉투를 뒤집어 본다. 앞면에 쓰여진것과 달리 삐뚤빼뚤하고 올망한 글씨가 보인다.
[죄송합니다. 일이 있다는걸 깜빡해서. 제 연락처는 011 891 0309 입니다. 그리고 고기 값입니다. 부족하면 맞추어 더 드리겠습니다.]
글씨와 맞지 않는 딱딱한 어체에 젊은 여자는 실실 웃었다. 봉투 안을 열어보자 만 원 짜리 지폐 스무장이 들어있다.
젊은 여자는 이 여자가 정말로 고기를 처음 입에 대 본 것이 맞구나. 하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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