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훈은 루한의 어깨를 더 꽉 끌어안았다. 애써 태연한 척 하지만 어깨가 여리게 떨리는 것은 감출 수 없었다. 듣지 마. 세훈이 마음속으로 수백 번 읊은 말이었다. 듣지 마요. 듣지 마세요. 응?
정말 별 일 아니었다. 세간의 시선이 두려워 조심조심 사랑하던 둘이 오랜만에 연인이라는 이름으로 집 밖으로 모습을 비추었다. 손을 아무도 모르게 잡고 강가로 걸어 나와 멀리서 사 온 솜사탕을 손에 꼭 쥐어 주면 하얗게 웃어 보이는 얼굴이 예뻐 보여 또 웃었다. 비록 몰래 하는 사랑일지라도, 서로의 얼굴에 비친 웃음에 힘을 찾아 가면서 더 사랑했다. 그렇게 강가를 거닐다 허리를 끌어 안는 것에 시선을 옆으로 돌리자 눈꼬리를 접어 웃으며 사랑해, 하는 것에 허리를 굽혀 입술을 내렸다. 하필, 그 때에.
"대낮부터 별 게이 새;끼들을 다 보네."
루한의 눈이 떨려왔다. 뒤에서 말하는 것은 못 들은 척 넘길 수 있었지만 이렇게 앞에서 말을 하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더 충격을 받았겠지. 세훈은 본능적으로 루한을 끌어당겨 제 뒤로 감추었다.
모르는 척 자리를 뜨려고 했다. 그게 맞는 것이라는 걸 알았으니까. 화를 삭히고, 눌러 가며 조심히 걸음을 옮겼다. 그 때,
"씨;발. 징그럽지도 않나."
핀트가 나가버렸다. 세훈의 표정 변화를 느끼고 허리께를 잡으며 가지 말라고 끌어안는 손을 살살 풀어내며 금방 올 거야. 저 쪽 가서 가만히 있어요. 움직이지 말고. 라는 말과 함께 남자의 앞에 섰다,
"남의 연애질에 무슨 상관이십니까. 보아하니 애인도 없는 것 같은데."
"진짜. 호모새;끼들 욕 좀 했다고."
더럽게. 남자가 눈을 치켜뜨며 입을 열었다.
세훈과 남자의 말소리에 주변에는 득달같이 몰려든구경꾼들로 가득했다. 그 사이에서는 또 신경쓰이는 말소리가 오갔고, 세훈은 그것에 머리가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더럽다느니 징그럽다느니 듣기 좋지는 않습니다."
세훈이 미간을 찡그리며 말을 이어 갔다. 못 들은 척, 아닌 척 했었어야 하는데, 손 안에서 떨리는 어깨를 느낀 순간 그냥 사과를 받아 내어 주고 싶었다.
남자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다시 되받아쳤다.
"니네가 그래서 정신병자 소리를 듣는 거야. 멀쩡하게 생겼는데 왜 남자랑 붙어먹어. 아, 저년이 밤에 잘하나?"
씨발. 세훈이 남자의 턱에 주먹을 내리꽂았다. 주변 구경꾼들의 소리가 높아졌으나 아무도 말리러 나오지는 않았다. 니가, 함부로, 말할, 사람이, 아냐, 개새;끼야. 세훈은 한 음절씩 끊어 말할 때마다 주먹에 피치를 가했고, 남자 또한 빠져나오려 애쓰며 세훈에게 주먹을 꽂았다. 그 때, 구경꾼들 사이에서 익숙한 인영이 세훈에게로 다가오고는 세훈을 뒤에서 꽉 끌어안고 귓가에 외쳤다.
"오세훈! 하지마! 그만. 그만해, 세훈아."
밑에서 주먹을 고스란히 받아 내고 있던 남자가 그 상황을 지켜보고는 입을 떼었다.
"아, 얘가 걔? 곱닥하니 야하게 생기긴 했네. 할 맛 나겠어. 따 보고 싶기는 하다."
세훈이 루한을 밀어내며 남자에게로 다시 시선을 돌려 기계적으로 남자를 가격했지만, 루한이 세훈을 더 세게 끌어안고는 귓가에 조곤조곤 속삭였다.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한순간의 해프닝인 것처럼.
"세훈아. 데이트 그만하고 날 어두워 지기 전에 집에 가자. 늦겠다."
루한이 살짝 힘을 주어 세훈을 일으켰고, 세훈은 루한의 말에 순순히 일어서서 남자의 다리를 한 번 세게 차고는 루한의 뒤를 따랐다. 모든 게 무너지려고 하고 있었다.
***
햇빛이 커튼 사이로 들어와 방 안을 비추었다. 그 빛을 고스란히 받아 내며 세훈이 루한의 허벅지를 베고 길게 누워 있었다. 그 때의 일은 없었던 것처럼, 하루하루가 무난하고 한가로운 날들의 연속이었다. 자신을 속이는 것에 익숙했기에 그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그 이후의 미묘한 변화는 감출 수 없었다. 루한은 가는 손가락으로 세훈의 머리칼을 하나하나 쓸어내며 세훈에게 말을 걸었다.
"우리 세훈이 머리카락 왜 이렇게 많이 상했어. 속상하게."
"그러게요. 왜 상했을까."
"......"
"......"
"세훈아. 우리 그만 사랑할까."
...잠시의 정적 후에 세훈이 입을 떼었다.
"아니."
"그럼, 세훈아"
루한이 세훈의 머리카락을 계속 살살 쓸어내리며 말을 이었다.
"우리 평생 사랑할까"
"응. 평생 사랑하자."
평생. 세훈이 몸을 일으켜 루한의 입에 키스했다.
***
꽉 막힌 방에 매캐한 연기가 가득 찼다. 그 안에는 두 인영이 서로를 끌어안은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세훈은 머리가 슬슬 아파오는 걸 느끼고는 루한의 허리를 더 꽉 끌어안았다.
"흐으.."
세훈이 루한과 얼굴을 마주보고는 손으로 눈물을 닦아내었다. 안아프다, 안아프다. 세훈이 루한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렇게 한참을 있을 즈음, 숨이 막혀 오기 시작했다. 세훈은 루한과 입을 맞대고 공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세훈아."
"...응, 왜요."
마지막 대화가 될 것 같다. 세훈은 흐릿해지려는 정신을 붙잡았다.
"사랑해.많이"
루한이 다시 울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보는 얼굴이 우는 얼굴이면 좋지 않은데. 세훈이 다시 루한의 눈가를 매만졌다. 울지 마세요.
"응. 나도 사랑해. 많이."
루한이 울음을 이내 그치고는 말했다.
"세훈아. 졸려."
이제, 끝이구나.
"응. 자요. 자는 거 봐줄게."
세훈이 루한을 제 다리를 베게 해 눕히고는 전처럼 세훈이 루한의 머리칼을 쓸어내렸다.
"잘자요."
"응, 세훈이도."
이윽고 루한의 눈이 감겼다. 세훈은 이제 흐릿해지려는 의식을 애써 붙잡지 않았다.
"응. 나도."
잘자요.
| 이번엔 단편이예요! |
제목에 음마껴서 들어온 당신들, 반성하세요:) 정사라는 단어에 '서로 사랑하는 남녀가 그 뜻을 이루지 못하여 함께 자살하는 일' 이라는 뜻이 있더라고요. 잘 어울려서 넣어 봤어요:) 이번엔 좀 슬펐으면 해요. 안 그렇다면 더 발전해서 써 올게요.흑흑
다음에는 아마 불마크가 들어가지 않을까 싶은데...달달하게. 어쨌든 읽어줘서 고마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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