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붓남매(義父男妹) 01
여느 날과 다를 바 없는 하루였다.
아침 강의를 듣기 위해, 잠에서 일어났고, 방에 딸린 화장실에서 간단히 샤워를 했다.
나오는 길, 수건이 다 흡수하지 못한 곳이 있었는지, 남아있던 물기가 입고 있던 옷을 적셔 다시 갈아 입던 것 빼고는.
정말 어제와 별다름이 없던 순간들이었다.
옷장 앞에 서서 옷장을 크게 펼치곤, 골똘히, 오늘은 또 무슨 옷을 입어야 할지, 또 머리는 무슨 머리로 하고 갈지.
치마를 입을지, 바지를 입을지.
조금은 과장해서 몇십 번을 입고 벗고, 묶고 푸르는 것도 이미 내 일상 중 한 부분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준비를 모두 마친 뒤, 밖으로 나와 투벅- 투벅- 턱턱한 발걸음 소리를 울리며, 부엌 쪽으로 가 보면. 이미 차려진 밥상 앞에 앉아, 먼저 먹고 계시던 엄마를 볼 수 있었다. 그럼 나는 스치듯 눈길 한 번 주고는, 그대로 엄마 옆을 지나쳐 찻장에 밥그릇을 꺼내, 밥통에 밥을 퍼, 엄마의 맞은편 자리에 앉아 조용히 밥을 먹기 시작했다.
정말로 다른 날과 다름없던 순간이었다.
그래, 그럴 줄 알았다.
"엄마 결혼해."
"......"
"딸?"
"...뭐?"
"결혼한다고, 엄마."
"....."
앞 뒤 전이도 없이, 무슨 비가 올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가볍게 빠져나간 그 단어들에.
나는 어떠한 준비태세도 없이, 모든 것들을 온몸으로 직접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러니까, 내 말은 엄마의 말에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다는 말이다.
뭐, 그 이유야, 당최 엄만 이혼한 지 아직 1년 채 되지 않은 때였으니‥.
"이번엔 정말 괜찮은 남자야. 00 너도 분명 마음에 들 거야."
"....."
"응?"
"말은 바로 해야지. 결혼이 아니라 재혼이잖아."
"그게 그거지."
"..어떻게? 내가 있는 것과 없는 것에 차이인데."
"..넌 진짜. 꼭 그렇게 말해야겠어?"
"엄마가 이러는 게 한 두 번이야 말이야."
딱히 엄마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젊은 나이에 나를 배어버려, 제 청춘을 다 펴보지도 못하고, 집안에만 갇혀 나만을 바라보며, 살아왔던 엄마의 모습을 아주 잘 알고 있는 내가 엄마를 미워할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그랬기에 나는 엄마가 아빠와 이혼을 한다 했을 때에도.
문득 낯선 남자를 내 앞에 데려와 나에게 새아빠라 소개했을 때에도.
나는 겉으로는 온갖 불평을 늘어놓았지만, 정작 엄마의 선택에 단 한 번도 크게 반대한 적이 없었다.
나는 내가 바라는 삶이 있듯이, 엄마 또한 자신 나름의 삶이 있다는 것을 좀 이른 나이에 깨우쳤던 것뿐이었다.
"이번엔 진짜야. 돈도 많고, 착하고 친절하고 무엇보다! 나한테 얼마나 잘해주는데~."
"그럼, 지금까지 그 남자들은 안 그랬다는 거야?"
"야, 야, 너 그 소리, 그 사람 앞에서 하지 마라?!"
"창피한 건 아나 봐?"
"그럼 그게 자랑이니? 그 사람, 나 너네 아빠랑 이혼하고, 자신이 두 번째인 줄 안단 말이야. 그러니까 입조심 좀 해."
"내가 실수한 거 봤어? 다 엄마가 망쳐놓았잖아."
주제가 엄마의 옛 남자들, 그러니까 내 전 아빠들의 이야기로 전환되자.
엄마는 누가 들을세라 사색이 되어서는 오두방정 자신의 입을 툭-툭- 쳐가 보이며, 나보고 조용히 입 다물라는 제스쳐를 보내왔고.
그럼에도 나는 무심히 하고픈 말들을 거침없이 내뱉었다.
"..그래. 내가 졌다, 이년아."
그리고 결국엔 엄마 쪽이 먼저, 손을 들고 나서야. 나는 먹던 숟가락을 식탁에 내려놓으며, 우리의 대화는 끝이 났다.
**
"그래서. 오늘같이 저녁 먹기로 했다고?"
"응."
"..진짜, 너희 엄마도 능력자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럼, 지금 그 아저씨까지 합하면 몇 명째야?"
"우리 아빠 빼면, 3명째."
"..와우."
"이영애처럼 예쁘지도 않은데 잘만 만나."
"야, 그래도 너희 엄마 정도면 나이에 비해 예쁘신 거지. 우리 엄마 봐라."
"아, 그건 인정."
"야!"
오전 강의를 모두 마치고, 시간을 확인하려 가방 깊숙이 자리하던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을 때였다.
화면에는 익숙한 번호와 함께, 그녀의 얼굴이 크게 자리했고. 나는 계속 반짝이는 전화를 받을 생각도 없이,
그저 화면에 떠 있는 그녀의 사진만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얼마 전 그녀의 모습을 회상했다.
그리곤 나중에는 제법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입가에 미소를 내걸며, 계속해서 울리는 전화를 받았다.
그 뒤, 예상했듯이 수정이와 나는 만났고. 우리는 조금은 일은 점심을 먹기 위해, 구내식당에 자리했다.
우리는 한산하기 그지없는 구내식당에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허기를 채우던 중.
그 한산하기 그지없던 식당이 단숨에 왁자지껄 해지는 순간이 찾아왔다.
"선배! 다음 수강 뭐에요?"
"그래서?"
"갈 거야."
"김종인은?"
"걔도 별수 있겠어."
그리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건만, 워낙이 한산하기 그지없던 식당이었던지라.
듣고 싶지도, 궁금하지도 않았던 그들의 대화를 억지로 듣게 되는 꼴이 되었다.
지나가는 누가 본다면, 필 시 우리가 그들의 대화를 엿들으려 애쓰는 신입생 중 하나로 보였을 테다.
그리고 우리가 먼저 훨씬 전부터 이곳에 있었다고 말한다면, 그들이 퍽이나 잘도 믿어주겠다.
"ㅅ..선배님!"
"그건 그러..."
"야, 변백."
"왜?"
"귀여운 후배님이 너 찾잖냐."
"..아, 미안. 왜?"
"선배님, 다음 수강 뭐 듣는지 궁금해서요!"
"저는 이번에 전공 한규식 선생님 꺼 들어요!"
내가 남자, 아니 적어도 저 선배 중 한 명이었다면, 저 당돌한 신입생의 모습이 퍽이나 귀여워 보일 따름이었겠지만.
역시 남자는 남자, 여자는 여자. 나는 당장이라도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 이곳에서 나가고 싶은 충동이 크게 일렀다.
좋은 말로는, 애교. 나쁜 말로는 앵앵거리며, 어떻게든 그들에게 잘 보이려 노력하는 그녀가, 나는 참 우습게 들려왔다.
"어? 그거 김준면도 듣는데."
"우와! 정말요?! 그럼, 같이 가요, 선배!"
"백현 선배는요?"
"난...교양."
"헐, 저 선배들도 구내식당에 와?"
"..그런가보지."
"넌 관심도 없냐?"
"없을 리가."
잘생겼는데. 누구나 한 번쯤 뒤돌아 볼 만한 외모와 매력을 가지고 있는 저들.
그 누가 감히 저들에게 단 한 톨의 관심과 애정조차 없다 할 수 있겠는가.
관심. 그리고 호감. 그저 나는 그것이 다일 뿐이었다. 누구나 이성적인 상대에게 품고 있을 만한 그만큼의 정도.
그것이 너희와 나의 차이일 뿐이었다.
"근데 왜 이렇게 무관ㅅ..헐."
"왜, 또."
"나 변백현 선배랑 눈 마주쳤어, 대박."
"...."
수정이의 말에 나는 재빨리 몸을 돌려, 그 무리를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그들의 목소리가 들렸던, 그 순간부터 단 한 번의 눈길조차 두지 않았던 곳이다.
그러나 그녀의 말이 사실인지도 확인할 틈도 없었던 것이. 그는 이미 우리에게서 시선을 거둔지 오래인 듯.
그의 눈은 더이상 우릴 향해 있지 않았다.
"...."
"이야, 진심 잘생겼단 말이야."
수정이는 우리와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 잡은 그들에게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겠다는 듯,
쥐고 있던 수저를 쟁반에 내려놓으며, 아예 본격적으로 자세를 잡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런 수정이를 보며, 나는 얕은 한숨을 내쉬고는. 먹던 속도를 조금 더 높이기 시작했다. 빨리 나가야겠다.
"진짜 잘도 먹는다."
우물우물. 완벽히 불편한 공기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남은 밥들을 싹싹 긁어모으며, 마지막 한입을 넣었을까.
여전히 그곳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던 수정이가, 갑자기 나에게로 시선을 돌렸고.
뒤이어 나를 지나쳐 시선을 조금 더 내려, 깨끗해진 내 밥그릇을 보고는, 완전 무식하다는 표정으로 다시 날 바라봤다.
"아깝잖아."
"그러니까 살이 안 빠지는 거야."
"운동하면 돼."
벌써 질려 버린 것인지, 그들에게 향했던 관심은, 어느새 나에게 전환되어 있었다.
"후우. 넌 어떻게 말 한번 안 지려고 하냐?"
"져서 좋을게 뭐가 있어. 뭐든지 이겨 봐야지."
"독한년.."
"...."
언젠 가부터였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이 나보고 독하다는 말을 내뱉기 시작한 것이.
아주 옛날의 나는 그리 독한 사람이 아니었다. 굳이 어느 쪽이라 말하라면, 귀찮음이 심한.
다른 이의 말을 빌리자면, 게으른 아이에 더 가까운 사람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나는 변하기 시작했다. 그저 처음에는 다른 사람과 나 자신을 비교하며, 저울질했던 것이.
더 나이가 먹어서는, 외모부터 성격, 언행, 집안, 행동까지 그 사람의 모든 면을 평가를 하며,
그 사람에게 1부터 100까지의 점수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넌 안먹냐?"
그러나 유일이 내가 사람이란 존재에게 점수를 부여하지 않은 아이.
"지금 백현 선배 보잖아."
정확히 말하자면, 나 스스로 점수 매기기를 포기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매번 이 아이를 볼 때마다 버릇대로 하나씩 점수를 적어 내려갔다. 외모부터 행동, 습관, 말투. 모조리 다.
그러나 그때마다 이 아이는 그런 내가 가당 차다는 듯 단번에 점수를 뒤바꿔 버렸고,
결국, 먼저 손을 놓아버린 건 다름 아닌 나였다. 이 아이는 참 독특했다.
내가 지금껏 본 아이 중에 가장 흔한 아이였으며, 동시에 가장 특이한 아이였다.
그래선지, 이 아이의 알 수 없는 행동과 성격이 지금 내 옆에 가까이 둘 수 있는 이유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게 그 선배가 좋아?"
"응."
"왜?"
"귀엽잖아."
막 괴롭혀주고 싶어.
"..볼 때마다 느끼는 건데."
너, 취향 참 독특해?
"아니. 야, 상상해봐! 저 강아지 같은 축 처진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면서.
막 가지 말라고, 하지 말라고, 반항은 못하고, 그저 옷 끝자락만 조금 잡아서
울면서 낑낑대봐! 와나..진심 돌아버리겠네."
"...."
"야, 그런 눈으로 보지 마라? 너도 똑같으면서?"
"내가 뭐."
"너도 이런 거 좋아하잖아."
"아니거든?"
"내가 널 몇 년이나 봐왔는데? 너 보면 그런 거 엄청 즐겨."
"..내가? 언제?"
"고등학교 때. 나도 좀 아니었지만, 너도 장난 아니었어."
어디서 여우같이 꼬랑지 내리려 들고, 지랄이여. 내가 널 몰라?
"....."
그래. 너와 나는 꽤 많은 시간을 함께했다. 비록 다른 곳에서, 전혀 다른 목표와 꿈을 가지고
고등학교를 올라왔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대학교까지 함께 올라와 붙어 다니는 꼴을 보면,
참.. 내가 너를 많이 좋아하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야."
"왜."
"만약."
"응."
만약, 아주 만약에 말이야. 뭐, 빨랑 말해.
"내가 너 좋아하는 사람 좋아한다고 하면..어쩔래?"
"....."
"어쩔거야?"
만약. 아주 만약. 내가 아닌, 네가 먼저 나를 떠나는 상황이 닥쳐온다면.
..아마 지금의 나라면, 어떻게 해서든, 무슨 수를 써서든, 너를 내 옆에 붙여 놓을 것이다.
그만큼, 그만큼 지금의 나는 너를 참 좋아하고 있다.
나는 아직까지 너를 잃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더 강하다.
"..봐봐."
"...."
너 보면 이런 거 즐긴다니까? 그래서 어쩔건데.
"어쩌긴"
"...."
"맞서 싸워야지. 정정당당하게."
"....."
"그리고 내가 이길 거란 말이지! 킥킥킥-."
"....."
"‥왜."
"아냐."
"뭐야 왜 또, 웃는데."
"그냥."
그래. 너는 무슨 일이 일어나든, 시간이 흘러서든, 상황이 변해서든. 절대 변하지 않길 바라.
그 어떠한 고난과 시련이 네게 슬픔을 안겨준다 해도, 그 어떠한 것들이 너를 벼랑 밑으로 떠민다 할지라도. 너는 변하지 않길 바라.
그 모습 그대로..버텨주길 바라.
너는 나에게 가장 특별한 사람이니.
너는 나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이니.
너는 절대 변하지 않길 바라.
"혹시...너.."
"뭐."
"..변백현 선배 좋아하냐?"
"..뭐?"
"아니. 그럼, 왜?"
혹시, 내가 너에게 아픔을 안겨준다 하여도.
"..그냥. 그냥이라 했잖아."
혹시, 내가 너를 배신한다 하여도.
"그리고 또 몰라. 사랑이란 게."
너는 변하지 않길 바라.
이기적인 내 옆에, 너는 계속해서 너로 남아주길 바라.
제가 잘못 알고 있는 단어들이 있어서 제목에 조금 수정을 했습니다.
누가 여주의 이붓남매인지는 다음편에 나오니, 조금만! 아주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프롤에 불맠달았는데 왜 여기엔 없냐 하시는 분들 계실텐데
미리 말씀 드리자면 초반은 스토리상 거의 불맠이 들어가지 않고.
후에 스토리가 더 진행되어야 조금씩 생길 거 같네요.
생각보다 늦게 찾아뵌 거 같아 죄송합니다.ㅠㅠ
아, 그리고 저번편 노래는 stephanie-rocketee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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