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Jim Brickman-Serenade
열병
written by. Thames
그렇게 아이가 집을 나가고 한동안 멍하니 그 자리에 서있기만 했다. 2년동안 아이를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재운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 흔한 수학여행 하나 보내지 않았고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잘 일이 생길때는 나와 함께 간 여행 뿐이었다. 미친듯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아까 아이가 뿌리친 내 오른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드레스룸에 들어가보니 나가면서도 정리를 다 해놓았는지 셔츠와 팬츠는 각이 잡혀있게 정돈되어 있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백현이의 폰으로 연락을 하자 진동은 내 바로 옆 콘솔에서 울렸다. 참, 놔두고 나갔지. 갑자기 막막해졌다. 핸드폰이라도 있으면 문자라도 보내볼텐데. 어디로 갔는지 감도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 학교를 밥먹듯 빠지는 터라 친구도 별로 없을텐데, 지갑도 두고 간 걸 보니 멀리는 못갔을것같은데. 난 재빨리 자동차키를 가지고 지하 주차장으로 뛰어내려갔다. 매캐한 타이어 타는 냄새가 나는 지하주차장에서 내 은색 재규어를 찾는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자동차에 시동을 걸고 끼이익- 하는 마찰음과 함께 주차장을 튀어나갔다. 이 영국 아가씨는 아마도 내 난폭해진 운전에 적응을 못하는듯 특유의 가르릉 거리는 엔진소리를 더욱 심하게 뿜어냈다. 펜트하우스 주변을 맴돌다가 아이의 학교쪽으로 차를 돌렸다. 점심시간이 끝난 학교는 매우 조용하고 한산했다. 아무리 주변을 찾아봐도 빨간 트렁크를 끌고 다니는 어린 남학생은 없었다.
그 뒤로 세 시간 동안 학교와 집주변을 계속 돌아봤지만 아이의 모습을 찾을수는 없었다. 지갑도 없으면서 도대체 뭘 타고 어디까지 간거야. 슬슬 걱정되는 마음보다는 원망하는 마음이 커지면서 나도 모르게 크락션을 세게 내리쳤다. 조용한 지하주차장에 크락션 소리가 울리자 시끄러운건 나 하나였다. 내 잘못, 따지고 보면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그때만큼은 잘못을 다 백현이에게로 돌리고 싶어졌다. 왜, 형이 걱정하는데 그걸 싫어해. 네가 잘못한거야. 그렇게 어린애같은 결론을 내리고는 찝찝한 기분을 뒤로 하고 펜트하우스로 올라갔다. 지쳤다. 피곤해져서 조금만 눈을 붙이고 싶어졌다. 나중에 학교로 다시 전화나 해봐야겟다고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
그렇게 집을 나와버리고 백팩을 아무리 뒤져봐도 지갑이 보이질 않았다. 폰도 두고 나왔다. 막막해졌다. 괜히 나왔나 싶고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형의 모습은 처음이라서 많이 놀라고 무서웠다. 매일 나한테 다정하게만 대해줬는데, 형은. 일단 펜트하우스에서 나오긴 했지만 갈곳이 없어서 걱정하던 중 경수가 생각났다. 너 형이 허락하면 우리 집에서 언제든지 와서 자도 돼. 나 자취하는거 알잖아. 불현듯 경수가 생각났다. 형은 경수를 잘 모르니까 거기에 숨으면 안전할것 같았다. 재빨리 공중전화로 걸어가서 수화기를 들고 1541을 눌렀다. 미안해 경수야 나 지금 돈이 없어. 여자의 음성이 들리고 경수의 폰번호를 입력하니 수신음 몇번이 가더니 상대방을 연결한다는 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경수야, 나야 백현이."
「어, 백현아 왠일이야? 너 오늘 아프다며.」
"경수야, 나 갈곳이 없어..."
경수는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세상을 제 위주로 사는 터라 학교의 규정이나 교육과정이 자신과 맞지 않다는것을 깨닫고 하나의 망설임도 없이 다니던 인문계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그래서 지금쯤은 집에서 혼자 한가하게 TV나 만화책을 읽고 있을것이다. 나는 교활하게 돌아가는 내 머리에 놀라웠고, 약간 역겨웠다. 나는지금 완벽하게 형을 속이기 위해서 경수를 이용하고 있었다. 그래서 경수에게 더 미안하고 나에게 역겨움을 느끼는 것일지도 몰랐다. 경수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나에게 자신의 집으로 오라고 말했다. 고마워 경수야.
「택시타고와. 내가 나가있을게. 30분뒤에 나가있는다.」
할말이 다 끝난 듯한 경수는 내 말을 듣지도 않고 전화를 끊었다. 아마도 집을 청소할 생각인듯했다. 큰 도로변에 나가서 택시를 잡고 짐을 실었다. 내가 딱 택시에 타고 출발하는 순간 형의 은색 재규어가 택시 앞으로 지나갔다. 짙게 썬팅이 되어 안을 제대로 볼수는 없었지만 아마도 나를 찾으러 나온것 같았다. 지금이라도 형한테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말하고 모르는척 안길까. 하지만 형은 화가 아주 많이 난 듯했다. 도저히 말을 걸 용기가 나지 않았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가 아저씨가 목적지를 물으셨다. 성북동이요. 경수의 집 위치를 말씀드리고는 잠시 눈을 감았다. 열이 더 펄펄 끓어오르고 있었다. 말할 힘도 없었고 숨쉬기도 힘들었다. 아참, 씻지도 못하고 나왔네. 경수네 집에가자마자 샤워부터 해야지. 그렇게 생각에 생각을 꼬리처럼 물며 하다보니 어느새 강북이었다. 쭉 늘어서있는 주택가들 중에 BMW 오토바이가 세워져있는 집 앞에서 경수가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며 서있었다. 나를 보더니 택시비를 지불하고 내 트렁크를 들고 한 손으로 내 이마를 만지작대며 열을 재는듯했다.
"갑자기 무슨일이야, 걱정했잖아 변백현."
"미안해 경수야."
"같이 사는 형이랑 무슨일 있었어?"
"....응..집 나왔어."
내 말을 들은 경수는 한숨을 쉬며 나를 데리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예상대로 급하게 치운 흔적이 보이는 경수의 집은 남자 혼자 사는 집 치고는 깔끔했다. 경수는 수납이랑 정리를 잘하는 편이었다. 초등학교때부터 경수의 사물함이나 책상 속에는 그 흔한 종이 하나 없었다. 경수는 나에게 항상 잔소리를 해댔다. 난 그런 경수가 좋았다. 물론 친구로써 좋았다. 내가 형이랑 동거를 시작하고 부터 경수는 나와 만날일이 많지않았다. 형이 친구를 만나는것을 딱히 제재하진 않았지만 썩 그리 좋아하는 눈치도 아니라서 나 또한 친구들을 만나는것을 자제했다. 그때문에 경수는 거의 1년만에 실제로 만나는 것이었다. 마냥 어리던 경수가 나보다 더 키가 커지고 어깨도 떡벌어 진것을 보자 나도 모르게 움츠러 들었다. 난 아직도 안컸는데, 부럽다. 경수에게 욕실을 쓴다고 말한 뒤 욕실에서 물줄기를 맞으며 샤워를 하기 시작했다. 차가운 물은 천식에 아주 위험했지만 지금은 내 몸의 열을 좀 식혀줬으면, 그 생각뿐이었다. 샤워를 끝내고 허리에 타올을 두르고 나와서 트렁크에서 속옷을 찾아서 꺼내 입었다. 경수야. 경수를 불러보았지만 대답이 없었다. 어딜간걸까. 샤워하고 나서 바로 머리를 말려야 했지만 너무 팔다리가 쑤시고 아파서 그리고, 드라이어도 못찾겠어서 가만히 소파에 누워 경수를 기다렸다. 갑자기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이럴때 형은 어떻게 해줬더라.
삑삑- 하는 소리가 들리며 경수가 집 안으로 들어왔다. 한손에는 봉지가 들려있었다. 경수는 소파에 누워서 이마에 손을 얹고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나를 보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머리 말리고 누워. 안말리고 있으면 감기걸려."
〔형이 머리 말리고 자랬잖아, 안말리고 자면 감기걸려.〕
경수에게서 찬열이형이 보여 나도 모르게 살폿이 웃었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항상 이렇게 잔소리가 심하다니까. 무거운 몸을 앉히고 내 뒤에 수건을 대 오는 경수가 드라이어를 찾아오더니 머리를 말려주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나는 경수가 가지고 들어온 봉지를 뒤적이고 있었다. 천식약, 감기약, 혈압계, 흡입제. 날 형보다 더 어렸을때부터 봐왔던 경수는 이제 아무 말도 없이 나의 병에 대해서 준비를 하고있었다. 뭔가 눈가가 시큰하게 달아올랐다. 경수에게 고맙고 미안해서. 이럴때도 형 생각이 나는 내가 역겨워서 눈물이 났다. 경수는 머리를 말리느라 정신이 팔려 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것 같았다. 다 말렸다. 나 잘말리지. 경쾌한 목소리로 말하는 경수에게 고맙다고 말하며 통통한 볼을 쓰다듬어 주었다. 경수는 편했다. 마치 남동생처럼.
"백현아, 점심 먹었냐?"
"아침도 안먹었어."
"미쳤네, 알았어. 야채죽 사왔는데 먹을래?"
"...아니, 입맛이 없어."
"너 이렇게 안먹으면 저번에 그 눈에 별박아 넣은 형한테 내가 혼나는데."
경수의 경이로울 정도로 독창적인 형에 대한 묘사는 나에게 웃음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경수가 데워준 야채죽을 먹으면서도 생각했다. 간이 잘 맞춰져있는 죽이었다. 근데,
형이 해준 야채죽은 싱거운데도 맛있었어.
아 멘붕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백현이 모드는 먼가 애가 왤캐 성격파탄처럼 묘사가 될까요
전혀 그럴 의도가 아니었는데 이러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배켠아 미아내ㅠㅠㅠㅠㅠㅠㅠㅠ
경수도ㅠㅠㅠㅠㅠㅠ찬열이가 안나오니까 흥이 안나여 이런 뎬댱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건데 경수는 백현이를 사랑하거나 그러지 않아여
그냥 친구로써 애끼고 그러는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잉
이번편이 열병 중에서 가장 지루한 편이 되겠네요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타는 애교로 봐주세요ㅎㅎ
모든 시리즈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인스티즈앱
이거 방탄 찐팬이 올린 위버스 글인데 읽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