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뚜
그 때 부터일까.
커피숍에서 그 아이의 의미있는 말에 난 그를 슬금슬금 피하기 시작했다.
괜히 내가 예민한 것 아닐까 생각이 들지만 쨌든 그 때 난 첫 만남때보다 더 두근거렸으니까.
평소 느껴본 적 없는 이상야릇한 감정에 난 두렵기까지 했다.
하지만 몇 일 사이에 벌써 그가 익숙해져버렸나.
피하면서도 뭔가 가슴이 허전했고 무언갈 빼먹은 듯 했으며 그를 무시했을 때 등뒤에서 느껴지는 날 빤히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 미안하기까지 했다.
정말 내가 예민했던 걸까.
나는 피아노 연습 중 여전히 혼란스러운 맘에 결국 연습을 마치고 악보를 들고 음악실을 나왔다.
연습 더 해야되는데..
"아.."
밖에는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휴우 내 맘이 뒤숭숭해서 그런가 날씨마저 이러네.
난 악보가 젖지 않게 가방 깊숙히 집어넣고 빗속을 헤쳐나가려 하는데.
"김성규"
내 이름을 부르는 이가 있었다.
실로 오랜만인 목소리였다.
"..남..우현"
약간은 굳은 듯한 몸을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틀으니 역시나 몇일간 내가 힘들게 피해다녔던 남우현이 서있었다.
그는 저번 평소처럼 웃지도 않았고 한번씩 던지는 멘트도 날리지 않았다.
다만 약간은 굳은 듯한 무언가에 화난 듯 한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였다.
"왜...나 비 더 오기전에 가봐야돼."
목소리가 떨렸다. 목소리 떨린 거 알았으려나. 빗소리에 묻혔으면 좋겠건만.
"왜 자꾸 나 피해"
알고 있었구나
"안 피했어"
"뭐?안피해?"
"..."
"너 저번부터 이상한 거 알아?내가 인사해도 안 받아주고 쌩 지나가버리고"
"..."
"아 바쁜일 있겠지 하고 넘어가려고 해도 하루이틀도 아니고"
...내가 뭔데 니가 이렇게 과민반응이야?
"그렇다고 먼저 아는 척해주는 것도 아니고"
원래 우리 아는척하고 그러는 사이 아니였잖아.
"갑자기 왜 이러는데"
내가 아무말 없자 그는 허탈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끝까지 나를 주시했다.
비는 아까보다 더 많이 쏟아지는 듯 했다.
"내가 너한테 말 걸때마다 얼마나 떨렸는데..니가 날 무시하면 난 뭐야..?"
"...!"
떨려? 니가? 왜?
내가 놀란 듯 자신을 쳐다보자 그는 누가 밀치기라도 하면 무너질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성규야..김성규.."
"..응.."
"니가 나 안 볼때마다 진짜 울 것 같고 니가 나 무시할때마다 진짜 죽을 것 같아.."
"..."
"더러워..?넌 남잔데 내가 널 좋아해서?하..그래 더럽겠지"
어느새 그의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 고여 있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난 당황과 약간의 경악으로 물들어갔다.
"..니가 날 그런 눈으로 봐도...너랑 모르는 사이로 지내는 것보다 나을 것 같아서.."
"..."
그의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졌다.
난 여전히 놀라 그를 보고있었다.
나 때문에 운다. 매일 웃는 보습만 보여주던 그가 나 때문에 운다.
"그냥 니가 한 후배가 날 좋아하는구나 라는것만 알고있어도 행복할 것 같아서...그 정도로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아서.."
"..."
"그래서...그래서 그냥 말해버렸어 성규야..아니 성규선배"
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그에게 다가갔다.
그냥 발이 절로 움직였다.
다가오는 날 느꼈는지 눈물이 달린 그 특유의 매력있는 눈매를 보였다.
난 뭔가에 홀린 듯 손을 들어 그의 눈물을 닦아주고,놀란 그를 무시하고 눈물 닦던 손으로
그의 눈을 가리고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키스했다.
우현의 몸이 뻣뻣이 굳는 게 느껴졌다.
"..."
내가 입술만 대고 떨어지니 그는 곧장 바로 내 팔을 끌어 자신쪽으로 잡아당기더니 고개를 틀고 내가 했던 키스를(키스도 아니었다) 비웃기라도 하듯
한 팔은 내 허리에 한 손은 내 뒷통수에 자리잡고 다시 키스를 하기 시작했다.
이번엔 내가 굳었다.
놀라 굳어 있는 내 입술을 혀로 슬슬 쓸더니 아랫입술을 살짝 물어 입술사이를 가르고 들어왔다.
그에 나는...나는 조용히 눈을 감을 수 밖에 없었다.
격렬하게 키스하는 우리 둘을 따라하기도 하듯 바깥에 비도 끝없이 내렸다.
어떻게 집에 왔는지도 모르겠다.
남우현과의 키스 후 정신없는 나를 데리고 남우현은 자신의 우산을 펴 같이 쓰고 집에 데려다줬다.
집에 오는 길에 난 정말 정신이 하나 없었다.
그리고 집 앞에서 한번 더 간단한 키스 후에 정신을 차린 나는 빨개진 얼굴로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들어온 것 같았다.
다만 그 정신없는 상황에도 한 가지 알 수 있었던 것은..나쁘지 않았단 것과 심장이 거세게 뛴 것.
"아 더워"
난 얼굴에 열을 식히려고 손 부채질을 하며 시원한 물을 원샷했다.
"..그럼 우리 사귀는 건가?"
갑자기 든 생각이다.
난 잠옷으로 편히 갈아입은 후 아까의 상황정리를 했다.
남우현이 내게 고백을 했다. 난 그에게 먼저 키스했다. 사귀자는 말은 없었다.
그럼 아무사이도 아닌가?
...근데 아무사이도 아닌데 키스까지 할리는 없잖아..?
"아아-머리아파"
난 복잡해진 머리에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고 그냥 눈을 감고 잠을 청하였다.
* * *
진짜 난 전생에 나라를 구했는지도 모른다.
어쩌다가 이런 남자가 굴러왔을까.
"성규야 밥은 먹었어?"
"피아노 치면 손 트잖아. 여기 핸드크림!"
"오늘 아침 안 먹었지?챙겨먹으라니까..하여튼 말을 안들어요..여기 삼감김밥이라도 먹어!"
이렇게 천사처럼 자상하다가도
"성규야!"
"응..?"
"나 오늘 너 집에 안 보낸다"
"..어..?!"
나를 벽에 밀치고 키스하는 늑대본능이 나오기도 한다.
그가 평소처럼 내 허리를 감싸고 나머지 한 손으론 턱을 살짝 들어올리며 입을 맞췄다.
오늘은 그냥.. 나를 쥐락펴락하는 그가 미워서일까.
내가 아무 반응없이 입을 꾹 다물고 있으니 그는 허리를 슬슬 만지며 혀로 핥짝핥짝 내 윗 입술을 핥는다.
..왜 넌 당황하지도 않는거야.
고개를 반대쪽으로 비틀더니 아랫입술을 살짝살짝 빨기 시작했다.
내가 살짝 밀어내니 밀린 듯 하면서 나를 자신 쪽으로 다시 끌어안아 밀친게 밀친게 아니였다.
..진짜 남우현 너란 남자..
"이제 다 튕겼어?"
"하.."
"그럼 본격적으로 들어가요 애인님"
나를 미치게 하는 그런 남자.
으아아아아아 나를 미치게 하는 남자는 어디 없나??
(ㅋㅋㅋ이제 글 망쳐도 뻔뻔해지기로 했어여..ㅋㅋㅋ걍 철판깔았구나 생각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