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O/세종] 차가운 숨 18
w. 발발
수능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교실 칠판 한 가운데에는 시험 카운트다운이 쓰여져있었고, 아이들은 여전했다.
어떻게 보면 학생들에게는 대입수학능력평가가 인생의 종착역같은 것이었다.
그 과정을 거치고 또 새로운 도전과 절망을 맛본 어른들은 대학이 인생의 지름길이 될 수는 있지만, 결코 모든 것을 완성시켜주지 않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알고 있었지만, 수능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이 어린양들에게 그런 씁쓸한 말을 해줄 순 없었다.
뭐 어떻게 보면 대학 하나로 인생이 바뀌기도 하니까.
하루하루를 전투하며 자유의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고삼들에게는 그나마 친구들과의 어울림이 유일한 낙이였다.
물론 자신과 지금 웃고 떠드는 친구가 그 날의 경쟁자였지만, 그렇게 따지면 이 세상에 경쟁자가 아닌 사람은 또 어디 있겠는가.
아이들은 순수하게 친구를 격려하고 의지하며 우정을 쌓아갔다.
어쩌면 수능이라는 것이 있기에 대한민국의 친구들이 진정한 친구들이 될 수 있는 것이었다.
그 가운데에는 세훈과 종인도 있었다.
여러모로 남들보다 많은 시간을 지체한 그들이였기에, 눈에서 레이져빔이 나올정도로 책을 파고들었다.
쉬는 시간 고작 십 분동안 교실 창가에 기대어 운동장을 바라보는 것도 이젠 사치였다.
그나마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니 망정이지, 아마 반에서 급식을 먹는 것이였으면 세훈이나 종인이나 둘 다 영혼없이 젓가락질을 하며 두 눈은 교재를 쫓고 있었을 것이다.
이 시기의 대한민국 모든 열아홉이 그렇겠지만 유독 가라앉아보이는 세훈을 가만히 쳐다보던 종인이 조용히 젓가락을 내려놓고 의자를 밀어 일어났다.
세훈은 밥먹다 말고 어디론가 향하는 종인을 눈으로 쫓았다.
종인이 다시 제 앞자리에 앉았을 때는 한 손에 물컵이 들려있었다.
"물."
"왠?"
"기계처럼 씹길래 윤활유 좀 넣어주려고."
세훈은 옇게 웃으며 물컵을 받아들고 한 모금 넘겼다.
곧장 내려놓지않고 물이 쏟길랑말랑 아슬아슬하게 컵을 몇 번 돌리고는 그제서야 식탁에 놓았다.
종인은 세훈이 하는앙을 지켜보다가 모르겠다는듯이 입을 열었다.
"공부 잘 안 돼?"
"지금 잘 되는 애들이 얼마나 될까."
"그럼,"
"그냥."
"..."
"그럴때잖아."
종인에게 미소를 지어보인 세훈은 고개를 숙이고 식사를 계속했다.
그런 세훈에 종인은 세훈이 마시다 남긴 물을 남김없이 마셔버렸다.
모를일이였다.
공부때문은 아닌것같은데.. 맞다, 공부때문은 아니다.
그저께 둘이 어렵기로 소문난 사설모의고사를 실전처럼 풀었는데 점수가 아주 괜찮게 나왔다.
물론 제 점수가 아주 약간 더 높긴 했지만, 세훈과 종인사이가 그런 걸로 신경전하고 그런 사이는 아니였다.
세훈도 그닥 그 점수에 연연하는 것 같진 않았고.
"다 먹은거야?"
"어? 어어."
"가자 그럼."
"어."
세훈이 일어날 것을 묻길래 아직 비우지 못한 식판을 내려다본 종인이 미련잆이 동의하며 세훈을 따라 일어나 식판을 치웠다.
세훈은 조금 앞서 걸었다.
평소 서로 걸음을 맞추며 천천히 걷는 두사람이지만 종인이 딴생각을 하느라 세훈의 걸음에 맞추지 못했다.
세훈은 별 생각없어보였고, 종인은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할만큼 다른 생각에 빠져있었다.
엄마때문일까.
저번에 저녁식사한 것 이후에는 별다른 일이 없었다.
그날이 정확하게 생각은 안나지만 세훈이 별 얘기없는 것을 보아 딱히 문제될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만약 엄마때문이라면 세훈이 이렇게 마냥 가라앉아있진 않을것이다.
진짜 엄마때문이라면 불안과 초조함이 베어있을텐데 그런 낌새도 없다.
"뭐지..."
"어?"
"뭘까.."
"뭐가?"
세훈 말대로 때가 때였고, 별 일도 없어보이는데 이상하게 찝찝한 종인이였다.
이럴 땐 말이 없는 세훈이 답답했다.
신경을 곤두세우고 읽어봐도 잘 읽히지 않는 무표정이 답답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도 읽지 못하는 자신이 답답했다.
"3일 연속 복용하시면 안되구요. 일단 2주치 처방해드릴테니까 차도없으면 다시 뵙죠."
열 흘인가.
유진은 잠을 제대로 자질 못했다.
가슴이 두근대고 갑자기 숨이 가파오르고 머리가 깨질 것 같고 잠은 안 왔다.
일단 잠을 충분히 자야 맑은 정신으로 뭘 할텐데 싶어서 수면제를 처방받긴 했는데, 막상 손에 쥐고나니 다음이 두려워졌다.
수면제를 먹고, 잠을 충분히 자서, 맑은 정신이 되돌아온다.
그럼 뭘 해야되지?
뭘 생각해야되지?
뭘 어떻게 해야되지?
애들 불러놓고 너네 진짜 사귀냐, 여자랑 남자처럼 사귀냐 물어봐야되나?
그런 다음 긍정의 대답이 돌아오면 그럼 안된다, 너넨 둘 다 남자다, 이건 아니다라고 다그쳐야되나?
아니면 아예 이참에 니네 사실 형제다라고 폭로해야되나?
끝도 없이 질문이 꼬리를 물었다.
단순히 꼬였다고 하기에 너무 큰 문제였다.
지금 세훈이와 종인이가 남자라는 것이 문제가 아니였다.
그보다 더한 문제는 둘이 가족이라는 것이였다.
유진 자신이 그들의 엄마라는 것이였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할지 도저히 감이 안잡혔다.
뭐 그건 둘째치고 일단 제가 너무 충격을 받아서 제 자신을 어쩌질 못했다.
생각이 뒤죽박죽 앞뒤가 맞질 않았다.
그러면서도 딱 한 가지 명확한 것은, 세훈이와 종인이가 서로 많이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이건 아이들이 시시콜콜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느낌이 그랬다.
장난으로, 사춘기의 혼동으로 그러는 것은 아니라는 것쯤은 여자이자 엄마의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여자의 직감과 엄마의 직감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유진은 핸들에 파묻었던 고개를 들어 마당 주차장에 주차를 해놓고 내려서 집 안을 살폈다.
열한시가 다 되어가는데도 집에는 불에 켜있지 않았다.
세훈이 아직 집에 들어오지 않았나보다.
유진은 저만치 멘틀에서부터 올라오는 한숨을 무겁게 내쉬며 집으로 들어갔다.
자기 입으로 서슴없이 고백해버린 세훈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저는 세훈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었다.
세훈이 오기 전에 얼른 씻고, 자는 척을 해야했다.
"이제 가니?"
"어."
"그래.. 음...잘 다녀와."
"네."
수면제덕분인지 간만에 깊게 잔 유진은 목마름에 깼다.
잠에 취해 눈도 못 뜨고 일어나 슬리퍼를 질질 끌며 거실로 나왔는데, 현관에서 신발을 신고 있는 세훈이 있었다.
잠이 확 달아나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배웅을 했지만, 어색한 것은 숨길 수 없었다.
잠깐 본 세훈은 별 이상이 없어보였다.
세훈의 성장기의 반을 떨어져지내서 세훈을 잘 안다고는 못하지만, 세훈이 어떤 것을 입 밖으로 꺼냈을 때는 수많은 고민과 갈들을 했다는 것과, 그러므로 후회는 하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세훈은 제가 이 문제를 거론하지 않는 이상 자기 입으로 되풀이할 생각이 없어보였고, 자신은 아직 준비가 안되어 있었다.
둘 다 제 자식이였다.
제새끼한테 상처주고 싶은 부모는 없었다.
더욱이 세준이에게는 2연타 홈런일텐데, 절대 있어서는 안될 일이였다.
제가 섣불리 나섰다가는 영영 세준이를 세준이라고 못 부를 수도 있었다, 아니 아예 세준이가 자신을 상종도 안 할수도 있었다.
생각할수록 생각만 많아지고 복잡해졌다.
어느 것 하나 옳은 것이 없는데, 하나라도 바로잡을 수 없는 현실이 막막했다.
그래도 그 중 가장 의문스러운 것은 왜 세훈이가 저에게 세준이와 좋아한다고 말했냐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세훈은 종인과 남여간의 사랑처럼 서로 좋아해서 사귀고 있다고 말했다.
그걸 왜 부모한테 말하느냔 말이다.
유진이 일때문에 해외생활을 많이 했음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한국인이 아닌 것은 아니였다.
대한민국은 자신이 동성애자인 것을 가족에게는 더더욱 숨기는 사회아닌가.
그런 문제를 세훈은 아무렇지 않게 털어놨다.
뭔가 들킬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선수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나 오늘 누구랑 밥 먹었어-하는 얘기하듯.
갑자기, 불쑥, 알려주고 싶다는 듯이, 꼭 알아야 된다는 듯...
"꼭 알아야 된다는 듯이?"
주절주절 떠오르던 잡다한 생각들 중 한 문장이 유진을 멈추었다.
어감도 좋지 않고 너무 포괄적인 문장인데, 자꾸 되뇌이기 된다.
"내가 꼭 알아야 된다..."
유진은 부엌으로 가 커피머신에 머그잔을 놓고 버튼을 눌렀다.
원두들이 갈리는 소리와 함께 본격적으로 고민에 빠져드는 유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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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성실한 연재 죄송합니다;; 흐엉 19화는 금방 업댓할테니 기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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