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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말 안하면 아무도 몰라
"동혁이도 나한테 이거 줬거든, 내 생일에”
아.. 그랬구나. 머릿속 새하얘지고 전에 이동혁이 친구 생일선물 뭐 줘야 할지 고민하던 장면 머릿속에서 지나간다. 여자애? 응. 친해? 응. 좋아해? .. 몰라. 마지막 물음에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머뭇거리던 이동혁의 대답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동혁이가 말한 애가 애리였구나. 이동혁이 좋아하는 애가.
"여주야, 너는 이 목걸이가 무슨 의미라고 생각해?"
"..."
"나 동혁이 좋아하거든. 동혁이도 나 좋아하는 것 같지?”
“확실히 구분해야 할 것 같아. 여주야 그 목걸이 받았다고 설마 착각하거나 그러는 건..”
"야. 듣자 듣자 하니까 진짜 못 들어주겠네"
어디서부터 들었던 건지 벽에 부딪혀 쾅 소리를 내며 젖혀진 문 앞에 황인준 서있다. 착각은 니가 하고 있고. 이동혁 너같이 야비한 애 안 좋아해. 황인준 말에 시끄럽던 복도 조용해지고 황인준한테 시선 모인다. 당황한 기색 전혀 없이 신애리 소리 내서 웃고. 아 인준아, 개그맨인 줄 알았잖아. 나같이 야비한 애가 아니라, 여주같이 야비한 애지. 말 잘 하자? 신애리 멍하니 서있는 나 어깨빵치고 반으로 들어가고, 나는 신애리 따라가려는 황인준 겨우 말려서 반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자리에 앉히고 한숨 쉰 이후로 아무 말 없는 황인준. 황인준 정말 화나면 누구랑도 말 안 하는데 지금이 딱 그 타이밍인 듯. 물론 나라고 멀쩡한 건 아니고. 눈물 나오려는 거 간신히 참고 조퇴하려다 악으로 오전 수업 버텼다.
야 인준아. 황인준. 이동혁이 말 걸어도 대답 없는 황인준. 안 그래도 체할 것 같은 상황에 하필 급식으로 콩밥에 가지애호박볶음 나왔다. .. 굶으라는 건가. 이동혁 그나마 내가 먹을 수 있는 반찬 식판에 담아주는데 괜히 화나서 쳐다보지도 않고 보란 듯이 싫어하는 반찬 꾸역꾸역 먹음. 이동혁 눈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고. 먼저 일어나서 반에 와버렸다. 괜히 그랬는지 속 메슥거리는 게 얹힌 것 같기도 하고.
몸이 안 좋아서 오후 수업 마치고 가방 싸서 나가니까 교실 문 바로 앞에 이동혁 서있다. 지금 가려고? .. 어. 조금만 기다려, 가방 챙겨서 나올게. 급하게 반으로 들어가는 이동혁 두고 먼저 학교 나와버림. 계단 바쁘게 내려가면서도 나 왜 이러고 있나, 싶다. 왜 이동혁한테 화나? 그냥 나 혼자 착각한 거잖아.
“김여주”
신호등 앞에 서있는데 뒤에서 뛰어오는 소리 들리더니 이동혁 멈춰서 숨 고른다. 왜 먼저 가. ... 이동혁 말하자마자 마침 신호 바뀌고 못 들었다는 듯 무시하고 갔다.
동혁아 저번에 갔던 카페 진짜 예뻤는데. 너랑 또 갔으면 좋겠다. 뒤에서 재잘대는 신애리 목소리가 안 들릴 때까지 뛰듯이 걷다 보니 곧 집이다. 긴장했더니 토 나올 것 같아.. 시간 보려고 휴대폰 켰더니 이동혁한테 문자 와있다. [체했어?] 이젠 얼굴만 봐도 안다 그거냐. 쌩까고 그냥 집 들어가 버렸다.
가방 소파에 던져놓고 어지러워서 널브러져 있는데 초인종 울린다. 아니길 바라면서 인터폰 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이동혁 보이고. 없는 척하려다가 그건 너무 티 날 것 같아서 인터폰 들고 말한다.
"왜"
"문자 봐"
".. 어 체했어, 그니까 쉬게 그냥 가줄래?"
"야 너 진짜 오늘.. 됐다. 줄 거 있어. 잠깐 나와봐"
이동혁 무슨 말 하려다가 멈춘다. 결국 현관 열고 나감. 이동혁 약 봉투 건네면서 말한다. 소화제.
"집에 있어"
"없는 거 알아"
"..."
"그러게 점심에 싫어하는 건 억지로 왜 먹어. 나 보라고 그래?"
'응, 너 보라고 그런 거야'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 삼키고 말한다. 아니라고. 솔직히 나는 물어봐 줬으면 했는데. 힘드냐고, 무슨 일 있냐고. 바람과는 다르게 이동혁 반응 한없이 차갑기만 하다. 병원 갈래? 이동혁 무표정으로 말한다. 정말 감정 없는 사람처럼.
"됐으니까 제발 가"
내가 말하고도 아차 싶은 말에 이동혁 잠깐 멈칫한다. 아니.. 놀라서 말끝 흐리는데 이동혁 눈 바닥에 내리깔고 작게 한숨 쉬더니 그대로 돌아서 계단 내려가고. 밑에서 문소리 들릴 때까지 서있다가 다시 집 들어갔다.
오늘 나 왜 이럴까. 마음은 그게 아닌데 말이 자꾸 헛나가고. 마지막 이동혁 표정 생각하면 멍하기만 하다. 상처받았구나. 종일 온전치 못했던 상태에서 결국 이동혁한테 모진 말을 하고 생채기를 냈다. 눈물이 났다. 혼자 착각하며 스스로 희망고문했던 것들이 서러워서, 괜히 내 감정 쓰레기통이 된 이동혁에게 미안해서.
-
항상 당연하다는 듯 껴있던 이동혁이 내 일상에서 없어졌다. 내가 피했다. 항상 30분 늦게 등교해서 어렵게 지각을 면했고, 밥을 굶었고, 숨었다. 이동혁도 나에게 찾아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또 우리 사이를 걱정해주던 황인준도 일주일째 대화 한번 제대로 해 본 기억이 없다.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다녔는데, 이민형 눈에는 그게 아니었나 보다. 여주. 동혁이랑 무슨 일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너 계속 이러면 이동혁한테 말할 수밖에 없어. 뭘 말해. 요즘 너 정상 아니라는 거. .. 상관없어. 말하고 그대로 책상에 엎드렸다. 이민형 등 두어 번 토닥이더니 나간다.
아무것도 안 먹어 쓰린 배 쥐고 하루 내 엎드려있었다. 억지로 두세 시간씩 눈 감고 자다가 항상 이제노에 의해서 깨고. 여주야, 야자 끝났어. 조심스레 손등 위에 올려진 손 그 온기 때문에 놀라서 깼더니 앞 의자에 앉아서 나 깨우고 있는 이제노. 아.. 고마워. 어쩌다 보니 이제노랑 같이 하교하게 되었는데 그게 꼭 불편하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배려해주는 게 느껴져서 고마울 정도. 무슨 일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너 몸까지 망치면서 마음고생 안 했으면 좋겠어. 이제노 나 아파트 정문까지 데려다주고 말한다. 나 괜찮아. 억지로 웃으려고 하는데 몸에 힘이 안 들어가서 그게 참 힘들다.
"거짓말"
항상 서글서글 웃던 이제노 내 말에 웃음기 없는 표정으로 말한다. 조심히 들어가. 말하고 돌아섰다. 터덜터덜 주차장 가로질러 걸어가는데 아파트 정자에 이동혁 같은 실루엣 보인다. 못 본 척 들어가려니 김여주, 하고 내 이름 부른다. 멍청히 서있으니까 내 앞까지 와서 말하는 이동혁. 김여주. 아파트 센서 등은 고장 난 듯 깜빡이고.
"왜"
"너 나한테 할 말 없어?"
이동혁 일정한 목소리 톤으로 차분하게 말하는데 표정은 서늘하다. 무슨 할 말. 내가 물어봤잖아, 할 말 없냐고.
"할 말 없어"
"난 니가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
"..."
"김여주. 말 안 하면 아무도 몰라"
무슨 말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꺼내야 할지, 아니면 애초에 꺼내지 말지 고민하는 찰나에 이동혁 말한다. 말 안 하면 아무도 몰라. 참는 듯 하지만 말투에서 단번에 화난 게 느껴졌다. 그 말, 사람 비참하고 서운하게 만드는 거 알고나 하는 거야.
"나도 알아, 말 안 하면 아무도 모르는 거. 근데 너 나한테 그 말 하는 거 보면 내가 말 못 하고 머뭇거리는 것도 안다는 거네"
"내가 왜 머뭇거리겠어. 말하기 힘드니까 말 못 하는 거잖아. 할 말 없어? 말 안 하면 아무도 몰라, 이 말 너한테 들으니까 진짜 서운한 거 알아? 그냥 힘드냐고, 무슨 일 있었냐고 물어봐 주면 안 돼? 그게 힘들어?"
말하는 도중에 울음 곧 터질 것처럼 울컥 올라와서 참았는데 결국 눈물 비집고 나온다. 이동혁 그런 나 쳐다보고 놀랐는지 멍하니 서있고 늘상 달래줄 때처럼 어깨 토닥이려는 이동혁 손 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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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질일기도 이제 끝이 보이네용
초록글 감사합니다ㅜㅜ 댓글 하나하나 감사해요 정말 힘많이 얻어요
사랑해요 녀러분.. 더 열심히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