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현이 그렇게 가버린 날 이후로 백현에게선 이렇다할 연락도 없이 일주일이란 시간이 흘렀다.
평소에 백현이 연락하기 전까진 정말 급한 일이 아니면 먼저 연락하지 않는 경수는 이번에도 인내심을 가지고 백현의 연락을 기다렸다.
예전같았으면 차분히 자신이 할 일을 하면서 지냈겠지만 요즘은 어쩐지 늘 불안하기만해서 일에 온전히 집중을 쏟아붓지 못했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혹시나 이대로 백현에게서 영영 연락이 오지 않는건 아닐까, 이젠 내가 싫어진건 아닐까 하는 마음에 경수는 불안에
떨면서도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태연하게 행동했다. 이것은 일종의 습관이었다.
속이 시꺼멓게 타들어가도 외면상으로는 전혀 티내지않고 오히려 더욱 차분해지는 경수만의 포커페이스.
그리고 요즘들어 이런 경수의 포커페이스를 알아차린 사람은 작업때문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붙어있는 종인, 딱 한사람이었다.
"아직도 연락이 없어요, 그 사람?"
"응? 아... 아니요"
점심시간에 밥을 먹으러 나와서도 습관처럼 휴대폰만 만지작거리는 경수에 결국 젓가락을 입에 물고 있던 종인이 입을 열었다.
경수가 좋아한다던 돼지국밥을 먹으러 왔지만 음식엔 거의 손도 대지 않은 경수는 원래 마른 몸이 요즘은 제대로 먹지 못해 더욱 야위었다.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잘먹더니, 요즘은 또 왜 그렇게 못먹어서 점점 말라요?"
"으응, 다이어트 중"
"뼈다귀만 남을 일 있습니까? 도경수씨가 무슨 걸그룹도 아니고, 가뜩이나 마른 사람이 무슨 다이어틉니까"
"남이사. 나 별로 안말랐어요. 뼈가 얇아서 그렇게 보이는거지"
"말도 참 예쁘게 하네요 도경수씨는"
"칭찬 고마워요"
말과 표정이 전혀 따로노는 두 사람은 이젠 아무렇지 않게 농담을 주고받을만큼 언제부턴가 자연스레 가까워졌다.
특별한 일이 아니면 거의 웃지도 않고 표정이 없는 듯 했던 종인도 요즘은 경수와 있을 때면 눈꼬리를 휘며 입술을 접어올려
웃어보일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 종인의 표정이 갑작스레 서서히 굳어지며 입이 한일자로 꾸욱 다물렸다.
종인의 태도에 의아해하며 종인의 시선이 향해있는 자신의 뒤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던 경수의 입꼬리도 어느샌가 아래로 가라앉았다.
"백현씨..."
거기엔 굳은 표정의 백현이 경수를 내려다보며 서있었다.
백현 역시 점심시간이라 식사를 하러나온 모양이었는지, 백현의 옆으로 그의 동료 두어명과 변호인이 보였다.
경수는 왜 하필 백현의 사무소 근처로 식사를 하러오자고 했는지 후회가 밀려들었다.
어쩐지 오늘따라 돼지국밥이 먹고 싶어서 종인을 꼬드겨 식당으로 들어섰지만, 그 순간부터 왠지 어딘가 자꾸만 불안한 기분에
밥 한숟갈 제대로 뜨지 못한 경수였건만, 아마 이런 상황이 올거라고 짐작이라도 했던 것일까.
"도경수"
마치 경수가 바람피는 현장을 덮치기라도 한 남편처럼 그저 경수의 이름을 부르며 아무말 없이 경수를 주시하는 백현에 경수는 애가타들어간다.
실상 잘못한 것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주늑들어서 잔뜩 겁먹고 눈치만 보는 경수나, 경수가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듯
그런 경수를 뚫어지게 노려보는 백현의 분위기는 심상치않았다.
"도경수씨"
"ㅇ..에... 네?"
"소개 안시켜줄겁니까?"
"아..."
어느새 밥숟가락을 내려놓은 종인이 의자에 몸을 느슨하게 기댄 채 팔짱을 끼고 경수와 백현을 번갈아쳐다보며 미간을 찡그렸다.
그제서야 종인의 존재를 알아차린 경수가 갈팡질팡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 이쪽은 요즘 나랑 같이 작업하는 패션 에디터 김종인씨"
"반갑습니다, 김종인입니다"
"그리고 이 쪽은..."
경수가 백현을 흘끔 쳐다보다 이내 조그맣게 입을 열었다.
"대학 선배 변백현씨예요"
경수의 소개에 무언가 마음에 안든다는 듯 인상을 찡그린 백현은 종인을 향해 성의없이 고개만 끄덕여보였다.
종인 역시 그런 백현의 태도 쯤이야 아무렇지 않다는 듯 신경쓰지 않고 눈 앞에 서있는 경수만을 눈에 담을 뿐이었다.
"식사하러 왔어요...?"
"어"
"그럼 맛있게 먹고 가요"
경수가 백현의 등 뒤로 보이는 그의 동료들에게 고갯짓으로 인사를 하곤 다시 자리에 앉았다.
밥을 먹으려는 듯 숟가락을 드는 경수의 모습에 백현이 경수의 손목을 잡아채 일으켜세웠다.
갑작스런 백현의 행동에 놀란 경수의 마른 몸이 얼떨결에 백현의 품으로 끌려들어가자, 종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백현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백현씨..."
"뭐하는겁니까 변백현씨?"
"너, 잠깐 나 좀 봐"
종인의 물음에도 불구하고 백현은 종인을 없는 사람 취급하며 경수를 가게 입구쪽으로 잡아끌기 시작했다.
이에 종인 역시 경수의 반대쪽 손목을 잡아 백현의 행동을 막아세우자, 백현이 고개를 돌려 종인을 노려보며 말했다.
"식사하러 오셨으면 마저 식사나 하시죠 김종인씨"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셔도 그럴 생각입니다. 물론 도경수씨와 함께요. 그러니까 그 손 놓으시고 변백현씨도 식사하시죠"
"김종인씨가 끼어들 문제가 아닙니다"
"먼저 끼어든 사람은 변백현씨입니다"
경수를 사이에 두고 백현과 종인이 팽팽한 기싸움을 벌이니, 그 사이에서 안절부절 못하는 것은 경수 자신이었다.
"둘 다 여기서 이러지 말고 나가서... 나가서 얘기해요, 사람들 쳐다봐요. 응?"
아니나다를까 점심시간의 북적이는 가게 안에서 남들보다 튀는 외모의 세 남자가 심상치않은 분위기를 풍기자,
사람들의 시선은 온통 세사람에게로 향해있었다.
"도경수, 너 나가서 기다리고 있어"
"백현씨..."
"좋은 말로 할 때 말 들어"
백현이 조용히 읖조리자, 결국 경수가 핸드폰과 지갑을 챙겨 가게 입구로 향하려는데 종인은 아직도 경수의 손목을 꼭 쥔채다.
경수가 고개를 돌려 종인의 얼굴을 바라보며 팔목을 비틀어빼려했지만 쉽사리 놔줄 종인이 아니었다.
한참을 눈을 마주하고 있던 경수가 이내 종인의 눈을 바라보며 고개를 젓자, 결국 힘을 주고있던 종인의 손에 스르르
힘이 풀리며 경수의 손목을 놔주었다. 그리고 그대로 몸을 돌려 경수가 가게 밖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동료들에게 대충 둘러대는 듯 하던 백현이 종인을 흘끗 쳐다보고 아무 말 없이 경수가 나간 가게 밖으로 향했고,
종인 혼자 덩그러니 가게 안에 남겨졌다.
"가서 차 타"
"... 점심은요?"
"볼 일 생겼다고 하고 알아서 식사하라고 했어"
"백현씨는 안먹어도 돼요...?"
"차 타랬지"
경수의 말을 자르고 자신의 차를 세워둔 쪽으로 향한 백현이 조수석 문을 열고 경수를 차에 태웠다.
막무가내로 차에 태워진 경수가 다시 차에서 내리려했지만 이를 막아선 백현이 재빨리 차를 출발시켰다.
"지금 뭐하는거예요?"
"그러는 너야말로 뭐하는건데"
"내가 뭘요?"
"그 자식 누구야. 혹시 그 때 봤던 그 놈이야?"
"말했잖아요. 같이 일하는 사람이라고"
"그런데 그렇게 다정하게 앉아서 밥을 먹고 볼 때마다 같이 있어?"
"대체 무슨 말이 듣고 싶은 건데요? 내가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는데? 응?
일도 때려치우고 하루종일 집 안에만 틀어박혀서 당신 오기만 목이 빠져라 기다려?
다른 사람이랑은 말도 섞지 말고 만나지도 말고 당신 말에만 귀기울여줬으면 좋겠어?
사람 심보가 정말 왜그래?"
"지금 그런 말 하는게 아니잖아"
"아냐? 뭐가 아닌데? 저번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그럼 대체 당신이 원하는게 뭐냐구.
왜. 내가 저 사람이랑 바람이라도 날까봐 불안해?
나한테 당신이 일순위가 아니게 될까봐 불안해 미치겠어?
아니면 당신이 날 버리기 전에 내가 먼저 당신을 버릴까봐 그게 걱정이야?"
경수가 흥분해서 따짐에도 불구하고 백현은 그저 아무 말 없이 도로 위를 달릴 뿐이다.
경수로썬 지금 백현의 행동을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제 몸 하나 추스르기도 벅찬데 백현의 기분까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백현을 정말 진심으로 사랑하고 늘 함께하고 싶은 마음엔 변함이 없었지만 앞으로도 계속 이 상태라면 언제까지 버텨줄지 미지수였다.
어쩌면 경수가 예상했던 것 보다 이별이 조금 더 빨리 찾아올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며 경수는 마음을 추스르기로 했다.
"차 세워요"
"뭐?"
"차 세우라구요"
"집까지 바래다줄게"
"하- 나 일하던 중에 점심먹으러 나온건데 지금 집에 데려다준다구요?"
"아..."
"됐어요. 당신은 가서 당신 일 보고 나는 내 일 할테니까. 빨리 내려줘요 얼른"
경수의 말에 결국 한숨을 내쉰 백현이 아무 말 없이 갓길로 빠져 천천히 차를 세웠다.
차가 멈춰서기 무섭게 경수가 차 문을 열고 내리더니 쾅 하고 문을 닫았다.
"화났어...?"
"당신이 언젠 내 기분 신경이나 썼어요? 됐으니까 가봐요"
"... 전화할게"
경수의 쌀쌀맞은 말에 백현이 한마디만을 남긴 채 서서히 차를 출발시켰다.
멀어지는 백현의 차를 바라보는 경수가 한숨을 내쉬며 앞머리를 쓸어올리며 택시를 잡기 위해 도로를 두리번거렸다.
당신이 또 그렇게 풀죽은 듯한 태도로 나오면 내 마음이 약해지잖아...
창문으로 비친 백현의 마지막 표정이 자꾸만 눈 앞에 아른거려 입술이 타들어가는 느낌에 경수가 마른 입술을 혀로 훔쳤다.
그 때, 경수의 눈 앞으로 익숙한 차 한 대가 들어섰다.
"김종인씨?"
"타요"
"여긴 어떻게...?"
"일단 타면 알려줄게요"
어찌된 일인지 경수의 앞에 나타난 종인으로 인해 어안이 벙벙한 경수가 종인의 다그침에 고개를 휘휘 젓고 차에 올라탔다.
부드럽게 출발하는 차에 카 시트에 몸을 맡긴 경수가 어서 말해보라는 듯 종인을 재촉한다.
"진짜 어떻게 된 일이예요?"
"뭐가요"
"시치미 떼지말고 바른대로 말해요. 김종인씨가 어떻게 여기 있냐구요"
"아까 나 버리고 그렇게 가버렸는데 그럼, 내가 뭐 거기 그대로 가만히 있을 줄 알았나 도경수씨는?"
"그건..."
생각해보니 미안해진 경수가 금새 풀이 죽어 손가락만 꼼질거리며 입을 다물었다.
"말 그대로예요. 계산하고 가게 나왔더니 그 자식이... 아 그 자식이라고 하면 기분 나쁘려나"
"... 괜찮아요. 사실 그 사람도 김종인씨한테 이 놈 저 놈 하니까. 그리고 솔직히 그 사람은 욕 들어도 싸요. 나쁜놈"
"그럼 나 안미안해해도 되는거죠?"
"계속 써요. 솔직히 보이지도 않는데 계속 변백현씨 변백현씨 하는 것도 웃겨요"
"역시 그렇죠? 의외로 쿨하네 도경수씨. 그럼 계속 그 자식으로 하는걸로"
"흐흥... 무튼 그래서요?"
"아, 그래서 나왔는데 도경수씨가 그 자식 차 타고 가는게 보이길래..."
"보이길래?"
"혹시 무슨 일 생기면 어쩌나 싶기도 하고, 걱정도 되고 해서 어쩌다보니 따라왔네요"
"미행?"
"몰래 따라온 것도 아닌데 미행은 아니죠"
"그럼 감시?"
"뭐... 감시도 좀 그렇고 보디가드라고 해두죠"
"오... 완전 든든한데요"
경수가 방실방실 웃으며 종인의 머리를 쓰다듬자, 깜짝 놀란 종인이 순간 끼익- 하고 브레이크를 밟았다.
다행히 주위에 차가 없어서 사고는 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급정거한 차에 놀란 경수가 종인에게 소리쳤다.
"뭐예요!! 깜짝 놀랐잖아요!! 사고라도 났으면 어쩌려구..."
"그러는 도경수씨야말로 깜짝 놀라게 했잖습니까"
"내가 뭘요?"
"사람 머리를 갑자기 왜 쓰다듬고 그럽니까?"
"아니 내가 뭘요? 기특해서 좀 쓰다듬은 것도 잘못이예요?"
경수의 말에 한숨을 푸욱 내쉰 종인이 허탈하게 웃으며 말한다.
"도경수씨"
"네?"
"설마하니 잊은 모양인데요"
"ㅁ...뭘요...?"
"내가 도경수씨 좋아하는거, 자각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아...아..."
"내가 아직 아무런 대시도 안한다고해서 그렇게 무방비상태로 굴면 곤란합니다"
"에..."
말은 곤란하다고 하면서도 어째서인지 입꼬리는 올라가있는 종인이다.
"진짜예요. 어느 날 갑자기 그 자식한테서 당신 뺏어올 수도 있으니까. 긴장해요"
"치. 긴장을 왜 내가 해요? 하려면 변백현이 해야지"
"하긴. 그러네요. 그럼 그 때까지 나는 열심히 도경수씨 마음을 나한테로 돌리면 되는건가?"
"흐흥... 할 수 있으면 어디 열심히 해봐요"
"뭐 그래도 일단은, 내가 정말 도경수씨를 갖고 싶어지는 날까지는 참아보죠 뭐"
생각보다 그 날이 빨리 찾아올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옆에 앉은 경수는 그런 것도 모르고 어느새 단잠에 푹 빠져버렸지만 말이다.
그런 경수의 가느다란 머리카락을 향해 손을 뻗던 종인이 이내 맘을 고쳐먹고 손을 핸들로 가져갔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면서. 온전히 경수를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기 전까진 빈틈을 보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생각했던 것 보다, 그리고 지금껏 꿈꿔왔던 것 보다, 도경수는 종인에게 더욱 가지고 싶은, 소유하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존재가 되었다.
오늘은 평소보다 조금 일찍 찾아왔어요!!
다음 내용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은 하고 있는데 전체적으로 이렇게 해야겠다 하는건 있는데
그 사이사이의 에피소드를 어떻게 엮을지 너무 고민이예요ㅠㅠ 뭔가 쓰고싶은 내용은 많은데
머릿 속에서 정리가 안되는 기분...??ㅠㅠㅠㅠㅠ 갈수록 재미가 없어지니까 왠지 아무도 안읽으실 것
같은 느낌이랄까??ㅠㅠㅠ 흑흑... 앞으로는 1일 1업뎃이 힘들 수도 있어요... 저도 나름 바쁜...쿨럭...
가끔 절애가 아닌 단편이나 다른 글로 찾아올 수도 있구요...많이 사랑해주실..거죠...??(애절)
참! 절애의 뜻..혹시 궁금하실까봐 말씀드리는건데요,(아무도 안궁금하셨다면 쒀뤼)
사전적 의미로는 몹시 사랑하다의 뜻을 가지고 있는데, 한자를 따로 풀어 썼을 때에는 사랑을 잘라낸다라는
뜻으로 나름 이중적 의미를 표현해보았어요... 네... 그냥 제목 어떻게 지으면 좋을까 고심해서 짜냈던게 결국
그런 허접한거였어요 하...ㅎㅎㅎ
암호닉 사랑둥이><
마지막님 뽀리님 잇치님!!
저번편에 신청해주신 잇치님까지...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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