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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기침만 연신 쿨럭대는 경수의 앞으로 백현이 앞장서서 걸었다.

입에 문 아이스크림을 빌미로 따라가는 주제에 뭐가 그리 좋은지 히죽대며 성큼성큼 걷는 백현이 경수는 의아했다.


“실 없이 웃지 마.”


까칠하게 쏘아대니 금세 표정이 굳는 백현이다. 여실히 드러나던 고른 치아가 가려졌다. 왠지 보기 싫었다.


“웃던가.”


그제서야 다시금 싱글대는 백현을 이번에는 경수가 앞장서서 걸었다.

얼마 가지 않아 백현에게 발걸음을 따라잡히고 말았지만.


“다 왔어, 여기야.”


“응.”


이제 가보란 말이었는데 당연한 듯이 따라 들어오는 백현에게 경수가 물었다.


“따라 들어오게?”


“병원 같이 가자며. 같이 들어가야지.”


“…… 아니 나는.”


“괜찮아.”


말을 자르고 먼저 올라가는 백현에게 경수는 그 어떤 변명의 말도 이을 수 없었다.

 

 * * *

 

“감기 기운이 있는 것 같구요.”

 

백현은 경수의 이마에 스윽 손을 올리더니 열도 있는 것 같아요, 하고 덧붙였다. 의사는 경수를 힐끗 보더니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조금 독한 감기인 것 같네요.”


뭐 다른 증상은 없으시구요, 하는 의사의 말에 경수가 잠시 고민하자 백현이 대뜸 입을 열었다.


“폐렴은 아니겠죠?”


그 실 없는 소리에 경수가 더 부끄러워졌다. 실 없이 웃는 날이 많아 그만큼 실 없는 걱정도 잦은 걸까, 경수는 생각했다.


“원하시면 검사라도…….”

“아, 아니에요!”


다급히 손사래를 치는 경수의 허벅지를 귀엽다는 듯이 톡톡 건들이는, 기어코 의사 앞으로 자신을 끌어다 앉혀 놓은 이 말썽쟁이를 경수는 원망조차 할 수 없었다.

함께 오자고 한 건 자신이었으니, 어쩌면 이렇게 되리란 걸 전혀 예상 못한 바는 아니었다.

계속 되는 기침 탓에 당장에라도 진료실을 박차고 나갈 필요까지는 없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느껴졌다.

 

* * *

 

제법 큰 병원에 감기 하나로 몸져 누운게 죄스럽게 느껴질 때 즈음,

ㅡ 정확히 말하면 독감이었지만. 그나마 1인실은 아니라는 점이 죄책감을 좀 덜해주었다. ㅡ

백현이 병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 들어간다. 응.

드르륵 소리와 함께 들어온 백현의 손에 '본 죽' 로고가 박힌 쇼핑백이 들려있었다. 경수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나 죽 싫은데.”


“야, 내가 어떻게 만든… 아니 사온건데. 후, 까탈스럽게 굴지 말고 그냥 먹어.”

 

백현이 던지듯 건네는 쇼핑백 아래 온기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경수는 마지못해 받아들었다.


“… 까다롭긴이거든.”


하여튼 꼼꼼한 건 알아줘야 해, 중얼거리는 백현을 뒤로한 채 새지 않게 이중으로 되어있는 포장 뚜껑을 열던 경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깨죽이네.”


나 깨죽 좋아하는 거 어떻게 알았어? 묻는 듯, 고개를 휙 돌린 경수의 눈이 반짝거렸다.

백현이 멋쩍은 듯 시선을 피했다.


“크흠, 다 아는 수가 있…….”

 

“이거 만들기 힘든건데. 본 죽 아줌마 감사함다.”

 

“야 도갱…….”


자신이 박박 우긴 탓에 포도당까지 맞으며 씩씩하게 죽을 씹어넘기는 경수를 바라보던 백현은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도경수.”

 

“농담이야. 완전 맛있어. 고맙다.”

 

“그게 아니라…….”

 

“응?”


백현의 부름에 슬쩍 고개를 돌린 경수의 입술이 침에 젖어 야릇하게 빛났다.

그 특유의 하트 모양 입술이 오물거리며 '왜?' 하고 묻자, 백현은 자신도 모르게 제가 할 말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아, 아니 그게, 평소에도 밥 좀 잘 챙겨 먹고 다니라고. 허리가 그게 뭐야…….”

 

“뭐라고?”

 

“…… 한 일주일만 얌전하게 누워있으라고.”

 

백현의 말에 경수는 먹던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골똘히 생각했다. 일주일?

입에 담긴 죽을 마저 삼킨 경수는 고심 끝에 입을 열었다.

 

“3일만. 일해야 해.”


“백수 좀 해라. 당분간만.”


천원짜리 한 장 없는 경수의 지갑에 묵묵히 녹색 지폐 몇 장을 채워넣으며 백현이 나지막이 읇조렸다.

그놈의 일은. 그 날 이후 평범한 삶을 영위받지 못한 경수가 백현은 그저 안타깝기만 했다.

 

“그게 내 꿈이다 임마. 뜻은 고맙지만 안 돼.”
“그럼 입원한 김에 몇가지 검사만이라도 좀 하고가.”
“안 되는데.”


쓸 데 없이 병원비 들잖아, 경수가 자르자 마자 백현이 소리쳤다.

“내가 내줄게!”


“…….”


자존심 센 도경수 녀석이 혹시라도 니가 왜, 싫어, 하는 물음을 해올까 백현은 주섬주섬 말을 덧붙였다.

아 그게.


“뭐든 진행된 뒤엔 돈 더 많이 들잖아. 기왕이면 미리……. 아 왜, 국민 경제 모르냐? 국민의 돈은 내 돈이고 내 돈은 국민의 것! 너와 나는 대한민국 국민이니까, 내 돈이 네 돈이고 네 돈이 내 돈! 아하하…….”


경제 시간에 허구헌날 졸던 놈이 국민 경제 운운하며 주절대는게 우스웠는지 경수의 표정이 구겨졌다.

그거 그럴 때 쓰는 말 아니거든.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사실 난 그냥…….”


“아 그냥 쫌 받아. 막말로 네 돈 드는 것도 아니고.”


“…….”


완곡한 백현의 태도에 경수가 당황했다.

난 그냥 병문안을 올 참이었단 말이야. 혼자 병원까지 도착할 용기가 없을 뿐이었는데.

차마 입에 담지는 못하고 입술만 달싹였다.

이 고집쟁이 백현을 꺾을 수가 없다. 경수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겨우 입을 열었다.


“그래.”


그 한마디에 금세 기분 좋아진 백현이 다 먹은 죽을 대신 치우고 경수에게 이불을 덮어주었다.

등을 토닥이는 손을 경수가 내쳐버리자 씨익 웃으며 어깨에 손을 올려놓는 백현이었다.

꼼꼼한 도갱아, 네 몸에도 좀 꼼꼼해지자 응?

그러자 등지며 돌아 눕는 경수에게 백현이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 너 일부러 나한테 시크한 척 하는 거지?”


지랄, 혹은 헛소리하네 등의 험한 말이 튀어나올 줄 알았던 백현이었다.

그럼 거봐 맞네, 하고 놀려주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그래, 하는 경수의 힘 없는 대답이 들려왔다.

“뭐야 재미없게.”


“나 원래 재미 없어.”


“…….”


“…….”


두 사람 사이에 순식간에 정적이 흘렀다.

병실 밖에서 뛰노는 아이들 발소리와 이미 켜 놓은 TV에서 흘러나오는 어렴풋한 웃음소리만이 소음의 전부였다.

그 잠깐의 적막을 깬 것은 백현이었다.


“…… 경수야.”


“응.”


“…….”


“말해.”


“넌 내가 싫어?”


“그럴 리가 없잖아.”


언제까지 실 없는 소리를 할 셈이야, 일침을 가하려던 경수는 입을 열 수 없었다.


“그럼, 좋아하지는 않는 거지?”


곧바로 들려오는 백현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려왔기 때문에,

쉽게 답을 할 수가 없었다.


“…….”


“…….”


“…….”


“역시.”


긴 공백 끝에 백현이 내린 결론은 그거였다.

경수는 자신을 좋아는 하지 않는다.

백현은 고개를 떨궜다.


“왜 그렇게 생각해?”


“…….”


“내가 왜 널, 좋아하지 않을 거라 생각해?”


들려오는 대답에 고개를 든 백현은 이불을 들춰내어 돌아 누운 경수의 표정을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재차 물어오는 경수의 목소리가 너무나 먹먹했다.

백현은 생각했다. 그러게, 왜 나는 네가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었지…….


“그야…….”


“내가 너를 좋아하지 않을 리가 없잖아. 하지만 백현아.”


“응.”


“난 아직 그 누구를 보고도, 웃을 자신이 없어.”


“…….”


“널 보고도 말이야. 웃을 수가 없어…….”


잠자코 듣던 백현은 미안해, 혹은 다 괜찮아 같은 그 어떤 종류의 위로의 말도 경수에게 건네지 않았다.

“…….”


다만, 경수의 손을 꼭 잡아 줄 뿐이었다.

“…… 옆에 있어줄게.”


그 다정한 목소리에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날 것만 같다고, 경수는 생각했다.


“너 잠들 때까지…….”

 

고마워, 속으로만 대답한 경수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변백현, 네가 내 친구라서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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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전

공지사항
없음
설정된 작가 이미지가 없어요
대표 사진
독자1
글 분위기랑 문체가 너무 좋아요♥♥
다음편 없나요???ㅠㅠ

11년 전
대표 사진
어설픔
감사합니다.
요즘 생각도 못했네요!
준비하겠습니다

11년 전
비회원도 댓글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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