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다음 목적지가 어디냐고 아무리 물어도 백현은 입에 본드라고 붙인겐지 도통 말해주지 않는다. 어느새 밖은 어둑어둑해져 날이 쌀쌀해졌고 건물의 간팔들은 화려한 네온사인을 밝혀 시내를 비춘다. 한가했던 시내 골목은 어느새 사람들로 꽉꽉 들어찼다. 하지만 그 많은 사람들 중 경수와 백현을 알아 볼 수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백현아.”
앞서서 걸어가던 백현을 불러 세우자 백현은 무슨 일이냐는 눈빛으로 경수를 돌아본다. 검은 빛인 듯 아닌 듯 반짝이는 백현의 눈동자가 참으로 예쁘다. 사람에게 눈동자가 예쁘다는 느낌을 가져 본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지금 경수를 바라보는 백현의 눈동자는 너무도 예쁘다.
“아니야….”
“싱겁긴, 얼른 따라와 다 왔어 저기야.”
넌 참 외로웠겠다 라는 말을 하려다 경수는 이내 말을 거두어 버렸다.
가만히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던 백현은 희고 고른 치아가 다 드러나도록 씨익 웃으며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한 술집 입구를 손짓으로 가리킨다. 백현이 가리킨 곳을 보는 순간 경수의 심장이 차갑게 시려오며 조금씩 떨리기 시작한다. 경수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백현이라면, 이 곳이 어디인지도 잘 알 텐데…
“경수야, 얼른 와.”
“여긴 왜….”
“들어가보면 알아.”
R Bar
이 곳은 종인과 경수가 처음으로 만난 곳이었다. 서로 꼭 약속하지 않아도 주말이면 여기서 만나던 우리였다. 물론, 이젠 종인과 경수도. 이 술집과 우리의 만남도 과거형이 되어버렸지만.
백현을 따라 들어간 술집은 여느 저녁처럼 오늘도 여전히 북적였다. 주인 아저씨는 여전히 스테이시 오리코를 좋아하는지 가게 안은 스테이시 오리코의 시원한 목소리의 Stuck이 흐르고 있었다. 짙은 담배 연기와 깔깔대는 사람들의 웃음 소리를 지나쳐 백현이 멈춘 곳은 예상대로 종인이 경수에게 고백했던 우리가 함께 백일 파티를 했던, 첫 키스를 나누었던 테이블의 앞이었다.
그 곳엔 종인과 낯이 익는 종인의 친구 서너 명이 조용히 술을 마시고 있었다. 분명 종인은 경수를 보지 못할 테지만 경수는 두려웠다. 종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 볼 자신이 없었다.
백현의 뒤에 엉거주춤 숨어 종인을 흘깃거리며 지켜보는동안 고개 한 번 똑바로 들지 않고, 술잔을 채우고, 비우고를 반복하던 종인은 다섯번째 잔을 원샷으로 들이킨 뒤 술을 목울대로 천천히 삼키더니 양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싼다. 종인에 성격을 아는 친구들은 서로의 눈치만 볼 뿐 종인에게 쉽사리 다가가지 못하고 있었고 그들이 마주한 테이블은 차가운 냉기만 감돌았다. 그리고 그 때 술집이 북적대며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이거 놔요! 형, 저 몰라요? 세훈이에요.”
“알아, 인마. 그래도 그렇지. 교복 차림으로 이렇게 오면 어쩌자는 거야.”
“나 진짜, 잠깐만. 들어갔다 나올게요.”
“안 돼. 너 지금 흥분했어. 무슨 일이야? 너 싸움이라도 벌이면 나도, 너도. 세훈아, 야. 오세훈!”
세훈에 이름을 부르는 주인 아저씨의 목소리와 함께 얼굴 뿐 아니라 귀까지 빨개져선 진흙투성이인 운동화를 끌고 종인이 있는 테이블로 걸어 오고있는 세훈에 모습이 경수의 시야로 들어왔다. 쉽게 흥분하지 않고, 화를 내지 않던 세훈에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경수는 처음 보는 세훈의 흥분한 모습에 당황해 눈동자가 동그라져 백현을 바라보았고 백현은 지켜보라는 식으로 가만히 경수의 어깨에 손을 얹는다.
“김종인 어디 있어!”
복도를 걸어 들어오며 테이블 하나 하나를 뒤지던 세훈은 결국 종인이 있는 테이블로 도착했고 이미 세훈이 올 것을 알았던 것처럼 종인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세훈과 마주섰다.
“개새끼야, 내가 병원으로 오라고 했지.”
퍼억. 세훈에 묵직한 주먹이 종인에 얼굴을 강타하자 종인은 뒤로 한 발자국 밀려나 넘어졌고, 옆에 앉아있던 종인의 친구들이 자리에 일어나 세훈을 막아섰다. 종인과 세훈은 서로 싸울 일이 전혀 없던 녀석들이었기에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빛에 아이들은 답답한 듯 눈빛을 주고 받는다.
“방금 수술실에 들어 갔어. 지금이라도 병원에 가서 수술실 앞에서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
“오세훈, 지금 나 쳤냐?”
“당장 병원으로 가. 지금 나랑 가서! …살아서 나오도록 기도해. 만약, 정말 만약에 경수 잘못 되면 넌 죽어. 내 손에 죽는 거라고, 알아 들었어? 당장 나와 새끼야.”
세훈은 무섭게 자신을 뜯어말리는 종인의 친구 둘을 밀어 내더니 종인에게로 걸어가 종인에 멱살을 강하게 휘어잡고 나오려고 했지만 종인 역시 한 대 맞고는 참을 수 없는지 세훈의 얼굴을 돌려 자신의 주먹을 세게 휘둘렀다.
“나라고 뭐 기분 좋은 줄 알아? 내가 무슨 염치로 거길 찾아가 이 새끼야!”
빠각하는 소리와 함께 세훈의 입에서 피가 흘렀지만, 세훈은 오른손으로 피를 한 번 스윽 닦아낼 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종인의 멱살을 잡고 있던 손을 더욱 강하게 쥘 뿐.
“조용히 따라나와.”
“…….”
지금 무슨 말을 해도, 어떤 변명을 해도 들어먹지 않을 것이란 것을 종인은 잘 알고 있는 듯 세훈에게 멱살을 잡힌 채로 조용히 술집에서 끌려나갔고 그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고있던 경수는 알 수 없는 이상한 기분에 온 몸이 감긴 듯 한 마디도 더 떼낼 수 없었다.
“백현아.”
“응.”
“따라, 나가볼까?”
“왜?”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아 그냥. 미안해 백현아, 나 따라 가볼게.”
금방 세훈과 종인을 데리고 나간 곳을 따라 나왔지만, 두 사람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불안함에 경수는 손톱을 물어 뜯으며 이 곳, 저 곳을 찾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안절부절 못하는 경수의 어깨를 잡아 끈 것은 백현이었다.
“백현아, 도대체 뭐야? 나를 여기로 데리고 온 이유가 뭐야? 말해줘.”
“본 그대로야.”
“무슨 소리야 그게!”
“가자. 또 다시 병원으로 갈 건데. 괜찮지?”
“백현아.”
“스스로 알아내.”
“…….”
백현은 쓴 웃음을 짓는다. 스스로 알아내라니 …무얼?
“모르겠어. 그래, 사실은 지금 나 꿈을 꾸고 있는거야. 그렇지? 그럼 어디서부터가 꿈이지? 나 사고가 났던 것이 꿈인거야? 아니면 그보다 훨씬 이전? 아, 아니다. 학교에 도착하기도 전부터 꾸고 있는 꿈인가? 그런 거야? 백현아, 말해줘. 말해줘 제발….”
“경수야 가자. 계속 하고있는 말이지만 정말, 시간이 없어.”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거야….”
머리가 복잡하다. 다시 병원으로 가겠다던 백현을 따라 경수는 병원으로 돌아갔다. 이번엔 꼭 답을 알아내길 바라며 …
오늘은 분량이 좀 작죠? 죄송해요 끝을 어떻게 낼지 몰라서 계속해서 줄어드는 것 같네요..
다음 편이 이제 마지막 편일 것 같아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편에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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