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살의 향수 prologue.
오늘도 잠을 못 잤다. 탄소는. 당장 창문으로 팔을 길게 뻗어 지저귀는 새들의 모가지를 부러뜨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새는 무슨 죄야, 그녀는 푸르스름한 창문을 바라보며 목을 이리저리 꺾었다. 뚜둑 뚝. 이게 어떻게 해서 낭랑 십팔 세의 몸이란 말인가.
당장 요양원에 가도 거리낌 없이 받아 줄 것 같았다. 오늘은 어떤 좆같은 하루를 보낼지 퍽 설레기도 한다.
다크써클이 내려가다 못해 발끝을 찍을 것 같았다. 그녀는 얼굴에 물을 적시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매일 해가 뜨는 거에 익숙해 질 때도 됐는데 왜 늘 힘들까.
탄소는. 곧 교복을 갈아입고 제 방을 나왔다 이 도시에서는 제일 크다 해도 과언이 아닌 대저택, 현대식 기와집으로 되어있는 터라 큰어머니의 방까지 꽤 걸음이 걸렸다.
큰어머니 문안인사 드리러 왔습니다.
이 짓도 2년째였다. 잘 버티고 있는 게 맞는 가 의심이 들 때는 문안 인사 때의 내 표정을 작은 거울로 흘끗 살폈다.
아직 기품을 떨 입 꼬리가 남아있는가? 그렇다면 오늘 하루도 버틸 수 있다.
검은 세단에서 내려 학교에 도착하면 그녀는 주문을 왼다. 참자, 할 수 있다. 참자 조금만 더 참자 일 년만.
웃기는 소리다. 나 왕따잖아, 나가 뒈져버릴 수도 없고. 집안에 문제를 일으키는 날에는 정말 제명에 못살 것 같으니 가만히 있을 수밖에
아, 따돌림을 당한지는 한 4개월밖에 되지 않았다. 사건의 전말은 딱 그 시점으로 넘어간다. 그땐 날 포함한 세 명이 어울려 다녔다.
내 성격에 웬일로 친구들과 잘 논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날 피하는 둘을 보니 아니었던걸 아프게도 깨달았다.
내가 있는 곳에서 둘만의 비밀이야기를 했고 둘만 놀러 다녔고, 날 들러리로 여겼다. 그리고 나는 그런 취급을 당하면서도 병신같이 친구라고 붙어 다녔지.
우리 가위 바위 보에서 지는 사람이 이거 집까지 가져가는걸로 하자!
너희 둘은 늘 같은걸 냈다. 짠 것처럼, 아니 진짜 짠 거였겠지만. 그때 내가 집에 가져간 박스는 크고 무거웠다. 안의 내용물들은 충분히 나눠서 가져갈수 있는 것들이었고.
그때 유치하다고 생각했으면서도 아무 말도 못 한 게 후회된다.
뭐 그밖에도 한명이 짐 들어 주기, 한명이 소풍가는 버스에서 따로 앉기 같은 것도 했다. 둘이 짰으니 운이 지지리도 없는 나는 늘 걸렸고
지금 생각하니 너무 유치해서 입안이 떫을 정도다. 그리고 어느 샌가 둘은 양아치들이랑 친해졌고 갑자기 나한테 돈을 빌려달라기 시작했다.
안 갚을 걸 알면서도 빌려줬다. 어찌됐든 일 년을 함께해온 친구들이었으니까, 난 돈은 썩을 만큼 많았고
그런데 어느 날은 교실에 돌아와 보니 내 겉옷이 없었다. 아끼는 옷이었다. 엄마가 선물해 준 옷.
나는 정신없이 주위 애들에게 행방을 물었고 이리저리 돌아다녔으며 길을 잃어버린 아이마냥 초조해 하며 눈물을 그렁그렁 두 눈에 매달았다.
쪽팔려서 눈물을 흘리진 않겠다고 하늘을 쳐다보다가 문득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래로 보이는 건 학교 운동장 인조잔디에 앉아 놀고 있는 내 친구들이었고, 수진의 허리춤에 둘러져있는 내 겉옷이었다.
그 빌어먹을 엉덩이에 깔려있는 걸 보곤 잠시 이성을 잃은 것 같다.
나는 단번에 계단을 뛰어 내려가 걔 앞에 섰고 씩씩 거리는 나를 보며 어이없어하던 그 눈빛이 선명하다.
“왜 내꺼 허락 없이 가져다 입어, 내놔”
“아… 찾았어?”
나를 떨떠름하게 쳐다보는 그년의 두 눈이 가증스러웠다. 처음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어, 그러니까 내놔 빨리”
“왜 정색을 하고 그래~ 옷 좀 빌려 입은 거 가지고 인상좀 풀어~”
“그게 빌려 입은 거니? 훔쳐 입은 거지, 내가 언제 빌려준다고 했는데?”
“아 미안해!”
“세탁비도 줘 너 그렇게 깔고 앉은 거 더러우니까. 아 그 김에 빌려간 돈도 줬으면 좋겠는데”
“그만해라 쪽팔리니까”
“네가 쪽팔리지 내가 쪽팔리니?”
탄소가 말하자 수진은 기가차단 표정으로 쳐다봤다. 그렇게 쳐다보면 어쩔건데, 팍씨.
쌓아뒀던 화를 내니 속이 좀 후련하기도 하다. 오늘로 이수진과의 관계는 끝이다.
자신의 아랫입술을 잘근거리며 악에 받친 수진의 입이 기어이 열렸다.
“하…! 패국의 이름도모를 공주주제에! 그동안 내가 왜 너랑 친하게 지내고 네 비위맞춰 준 줄 알아?
네가 몇 번째 공주인지도 모르지만 공주라고 하니까~ 그래서 간보고 친하게 지낸 거야. 근데 네 나라 망한 거 알지?
네 나라가 여태 지독히도 다른 나라 괴롭혔던 것도.
어디서 칼 안 맞는 걸 다행으로 여겨”
꽤 긴 정적이 흘렀고 탄소의 곧 참고 참았던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눈물범벅이 되어도 신음 하나 내지 않았고 붉게 달아오른 두 눈으로 앞에 있는 경멸스러운, 한때는 제 친구였던 여자를 노려봤다.
그 애도 말하면서 숨이 찼는지 혹은 제 말이 무슨 뜻인지를 아는 것인지 한참을 당황한 기색으로 씩씩 거렸다.
그리곤 탄소는앞 제 손은 높게 휘둘러 에 있는 그녀의 뺨을 세게 내려쳤다. 짝- 소리가 운동장 허공으로 흩어졌다.
그 다음부턴 기억이안난다. 무언가 어지러웠고, 요란했으며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듯 내 마음은 더웠다. 속이 끓었지만 더 이상 힘을 낼 수 없었다.
열여섯에 팔리듯 지금의 가국으로 왔다. 이유는 ‘나라의 안위를 위해서’였지, 단순히 친화의 목적이었다. 내가 공주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그리고 나에겐 남편이 있다. 이 나라의 네 번째 왕자, 결혼식 날 처음 얼굴을 보고 그 뒤론 보지 못했다. 하지만 아직도 기억한다.
그의 눈빛, 사소한 행동과 그의 모든 테를 기억한다. 그의 두 눈이 마주치는 순간 한없이 숨이 막혔다.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서 다신 볼 수 없음을 알았을 때 조금은 안심했다. 서운함이라곤 없었다. 언제 봤다고? 말 한번 섞어 본적 없는 사인데.
근데 추하게도 지금은 좀 필요하다. 내 안위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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