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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전정국] 그대야 안녕 11화 | 인스티즈 

 

 

BGM - 과즙팡팡 (Flower Sound) 


 


 


 


 


 


 


 


 


 


 

11화 

: 뽀뽀 


 


 


 


 


 


 


 


 


 


 

 쨍쨍한 햇빛이 쏟아지는 토요일 낮. 금방이라도 베갯잇에 불을 지필 것 같이 내리쬐는 빛을 결국 못 이기고 일어나 멍하니 거실로 향했다. 비몽사몽 부은 눈을 비비며 생각 없이 소파에 스르륵 누워서 멀뚱멀뚱 천장을 보는데, 불현듯 피어나는 기억에 다시 스르륵 몸을 일으켰다. 맞다, 이번 주부터 밥 같이 먹기로 했었지. 이걸 깜빡하고 있었다니. 뇌리를 관통하는 작은 기억에 최대한 잽싸게 방으로 튀어 들어가, 대충 머리를 묶고 급하게 칫솔질을 하며 핸드폰을 찾았다. 베개 밑에 깊숙이 박혀있던 걸 어렵게 꺼내 전화라도 해보려고 주소록을 빠르게 넘겼다. 설마 나 때문에 밥 안 먹고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니겠지. 


 

 "아.." 


 

 근데.. 번호가 없다. 서로 주고받은 적이 없으니 당연했다. 준비하고 바로 나가도 점심 때가 지날 것이 분명한데 괜히 나 때문에 굶주리고 있진 않을까, 어깨에 걱정이 한가득 쌓이기 시작한다. 더 다급해지는 마음에 허겁지겁 입을 헹구고서 부은 얼굴을 찬물로 연거푸 때렸다. 대충 묶은 탓에 흘러내리는 머리가 찝찝하게 세수를 방해해 신경질이 날 법하지만,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스피드밖에 없었다. 


 


 

 


 


 


 


 


 


 


 

 "아~ 배고파~ 왜 이제 와~." 


 

 오늘도 창문을 열어놓고 그 앞에서 책을 보던 태형이가, 나를 발견하고는 순식간에 얼굴이 울상이 되어 장난스럽게 나무란다. 차라리 태형이도 까먹었으면 좋겠다 싶었지만 넌 내 불안한 생각대로 휴게실에 있었고, 널 보고 헉한 나는 가다듬지 못한 숨을 불규칙하게 뱉으며 헐레벌떡 자리에 앉았다. 미안한 맘에 네 얼굴을 볼 자신이 없어 숨을 고르는 척 고개를 숙이고 있으니 내 시야에 큰 손바닥 하나가 불쑥 들어온다. 아무래도 본인을 보라는 뜻인 것 같아 주저하며 고개를 드니 걱정스러운 얼굴이 보인다.  


 

 "숨소리 봐. 뛰어왔어?" 

 "어? 어, 응.. 헉.." 

 "걸어오지. 다리 더 아프잖아." 

 "아냐, 괜찮아." 

 "알았어. 숨 쉬어, 숨 쉬어." 


 

 좀 괜찮아졌다가 다시 아파오는 발목 때문에 나도 모르게 인상이 쓰였는지, 이를 눈치 챈 태형이가 심각하게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본다. 입이 삐쭉 나오고 눈썹 사이에도 근심이 자리하니 내 맘은 더 미안해진다. 나 때문에 지금까지 밥도 못 먹었는데 걱정까지 시키게 되는 것 같아, 다리를 접질리고 약속을 잊어버린 내가 급기야 미워지려 한다. 


 

 "미안하다고 안 해도 돼. 이미 얼굴에 이~만하게 써있어." 

 "아니야.. 그래도 미안해." 


 

 계속 차오르는 숨 때문에 말하기 전 호흡을 조절하려 한 마디 할 기색으로 숨을 크게 들이쉬니 태형이가 먼저 선수를 쳤다. 이마에 대문짝만하게 내 심정이 쓰여 있었는지, 팔로 크게 원을 그리며 과한 표정으로 웃어넘기려 하지만 그래도 내 맘은 얘기해야 하는 노릇이었다. 


 

 "근데 나 네 번호가 없더라. 안 와서 전화하려 했는데." 

 "그니까. 나도 전화하려 그랬는데 없어가지고." 


 

 이윽고 한창 숨을 고르는 날 가만히 지켜보던 태형이가 아, 하며 얇은 후드 집업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낸다. 태형이 핸드폰에 내 번호를 치면 곧 통화 연결음이 들리고 내 손에서 진동이 느껴진다. 방금 찍힌 모르는 번호를 ‘태형이’라고 저장을 하고 그제야 마음 한켠이 편해지는 것 같아 제대로 숨을 돌리니, 어느새 태형이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날 보고 있다.  


 

 "뭐 하다가 늦게 자써." 

 "응?" 

 "딱 말해. 누구야." 

 "아.. 무슨 소리야. 공부하다가~." 

 "그짓말." 

 "진짜야. 나 좋, 좋아하는 사람도 없어.." 


 

 저 음흉한 눈빛이 무엇인고 하니, 아니나 다를까. 그렇고 그런 사이의 남정네랑 연락하다가 그런 게 아니냐는, 백 프로 그런 뉘앙스로 추궁하는 태형이었다. 사실은 정국이 생각을 하다가 이러다가는 한숨도 못 잘 것 같은 불길함에 사로잡혀 다른 생각을 해보려던 게 유튜브였는데.. 이게 줄줄이 뜨는 관련 영상이 참 죄악이란 말이지. 그 탓에, 평소에는 관심도 없던 마음에 안정을 주는 영상에 눈길을 빼앗겨 그만 거의 동이 트고 잠에 든 것이었다. 나름대로의 내막을 가지고 있었지만 갑작스레 받게 된 의심에 당황해 나도 모르게 거짓말을 끄집어내니, 의구심 가득한 눈빛이 사뭇 찝찝하게 걷힌다. 나도 모르게 거짓말을 하다니. 그것도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나도 내 스스로가 영악하게 느껴졌다. 


 

 "밤에 핸드폰 너무 하면 눈 나빠져. 조금만 해야 돼." 

 "오. 어떻게 알았어?" 

 "훗. 똑같은 고등학생들의 삶이란. 배고프다, 밥 먹으러 가자."    


 

 팔을 뻗어 창문 앞에 그대로 있던 책을 당겨오는 태형이가 벗어놨던 슬리퍼를 맨발로 더듬거리며 아무렇지 않게 내 간밤을 예상 적중한다. 급하게 열심히 둘러대기는 했는데 전혀 통하지 않았나 보다. 그에 놀라 어떻게 알았냐고 하니, 웃는 얼굴로 살짝 고개를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날 채비를 하는데 순간 스쳐간 그 일말의 눈빛이 어디선가 본 적 있는 것 같아 흠칫했다. 


 

 "크큭, 뭐 먹을까?" 

 "..." 


 

 아. 그 눈빛을 언제 봤나 했더니.. 


 

 "정호석은 아직도 자고 있으려나~." 


 

 태형아, 잠깐만 서봐. 호석이 볼 때 하는 그 눈빛 뭔데. 


 


 


 


 


 


 


 


 


 


 

 "혼자 밥 먹는 게 제일 싫어." 

 "나두." 

 "혼자 먹어본 적이 잘 없으니까 더 그래." 

 "맞아, 나두." 


 

 태형이가 내 발목 상태를 배려해 찾아온 가까운 분식집. 여기는 김밥이 진짜 맛있다며 아까 메뉴를 꽤 진지하게 고민하는 거 보니 저번에 호석이한테 김밥을 강탈당했다던 그 가게인 것 같았다. 학원에 처음 갔을 때의 그 분위기가 생각이 나 속으로 웃음을 참다가, 돈까스를 오물오물 먹고 있는 태형이 보자 금방 얼굴에 먹구름이 드리운다. 밥을 혼자 먹어본 적이 잘 없어 혼자 먹는 게 싫다는 말을 하는데, 나도 거기에 백번 공감이 되어 고개를 끄덕이니 같이 먹게 된 게 너무 좋다며 애처럼 방긋 웃어보인다. 그 모습이 귀여워 나도 모르게 웃음을 흘리니, 문득 어제 일이 궁금했는지 샐러드를 한 움큼 집어먹으며 묻는다.  


 

 "어제는 영어 끝나고 그렇게 졸리게 어딜 간 거야?" 

 "아, 호석이가 보살피는 고양이가 있더라고. 어제 같이 가서 보고 왔지." 

 "그 주황 색깔 비슷한 고양이 새끼? 아니, 새끼 고양이?" 

 "너도 알아?" 

 "그럼, 나도 알지. 바다라고 부르던데. 내가 가끔은 참치도 갖다 주고 그래." 


 

 역시 기특한 것. 너도 날개 잃은 천사였구나. 2학년 들어서는 주위에 숨어있던 천사가 왜 이렇게도 많이 나타나는지. 너무 황송할 노릇이다. 

  

 "나도 학원 가기 전에 같이 놀고 싶은데 맨날 정호석 혼자만 가. 내가 못 만지거든." 

 "왜 못 만져? 혹시.. 알러지?" 

 "어, 맞아. 바로 아네. 신기하다." 

 "대박. 나도 있어!" 


 

 마지막 돈까스 조각을 입 안에 한 가득 넣어 우물거리며 얘기하는 태형이의 입이 바빠보인다. 웅얼거리는 발음을 알아듣기가 어려워 살짝 인상을 쓰며 집중하니 나와 같은 털 알레르기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왠지 모를 반가움에 눈이 크게 뜨이자 태형이는 훨씬 더 크게 뜨인다. 


 

 "진짜? 넌 얼마나 심해? 난 가기만 해도 재채기하고 만지면 그날은 간지러워서 잠도 못 자." 

 "헐, 그 정도야? 나는 재채기하는 정도는 아니야. 만져본 지는 좀 오래 됐고." 

 "그래도 안 심해서 진짜 다행이다. 다니는 길마다 고양이들 진짜 많잖아. 난 엄청 피해가야 돼." 


 

 알레르기 있는 사람들끼리의 이유 모를 유대감이 느껴지기 시작하고 상태의 정도에 대해 가볍게 얘기를 나눠보니, 태형이는 나보다 더 심하다고 했다. 그 정도면 진짜 부주의하게 고양이 가까이 했다가는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겠다 싶다. 어느 동네를 가나 길에 나가기만 해도 자주 보이는 존재들인데 너도 피해 다니려면 고생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약을 먹으면 좀 낫지 않을까 생각해보지만 고양이를 언제 어느 때 만날지 모르는 일이니 생각은 머리에서 그치기로 한다.     


 

 "다 먹었어?" 

 "응, 배부르다." 

 "배부르다고 올라가서 자는 거 아냐?" 

 "아니겠지.. 아, 오늘 너무 늦게 왔어." 

 "다음부턴 일찍 오면 되지~." 


 

 둘 다 돈까스 그릇을 깨끗이 비우고 꽤나 만족스러운 눈빛으로 눈이 마주친다. 배가 불러오니 몸이 금방 노곤해지는 것 같아 혹시 올라가서 바로 자는 건 아닌가, 나도 잠깐 걱정이 되지만 그런 나를 다독여주는 태형이 덕에 힘을 내기로 한다. 주섬주섬 지갑을 챙겨 일어나고 오늘 늦게 온 만큼 열심히 자릿세 뽕을 뽑겠다는 다짐을 하며 비장하게 계산대로 향했다.  


 


 


 


 


 


 


 


 


 


 

 ‘자선가’, 혹은 ‘천사’. 

 정국이는 마음이 우주 같은 자선가일까, 아님 불행하게도 불시착한 천사일까. 일일 공부량을 정말 대충 끝내고, 어느새 하루의 일과로 자리잡은 정국이와의 기억 회상 시간을 한창 즐기는 중이었다. 정국이의 정체는 무엇일까 하는 깊은 고민에 빠져 있다 보니 점차 결론 비슷한 것이 도출되기 시작했다. 불시착한 천사가 인간세계에 정착하여 자선가가 된 건 아닐까 하는. 어제 수학 강의실을 지나쳐 같이 영어 강의실로 가던 늠름한 정국이 뒷모습만 생각하면 심장이 내 것이 아니게 된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떨려오고, 떨리면 떨릴수록 더 생각이 나던 탓에 사실 오늘 하루종일 어느 것에도 집중할 수가 없었다. 아까 낮에 또 섬뜩한 모양새로 절뚝이며 독서실에 뛰어오던 것만 빼면 말이다. 


 

 ‘공부 끝났으면 집 가자~~.’ 


 

 오답 노트 빈 곳에 ‘우주’, ‘천사’, ‘결혼’ 등등 써놓고 뻘짓을 하며 종이를 낭비하는 중에, 무음 설정을 해놓은 핸드폰의 화면이 켜지고 그 안에 와있는 문자가 보인다. 아싸. 태형이도 공부 끝났나 보다. 문자를 보자마자 신나게 느낌표가 가득한 답장을 보내고서 얼른 가방을 챙겼다. 


 


 


 


 


 


 


 


 


 


 

 집까지 태워다주는 독서실 차량이 고장이 난 탓에 당연히 독서실 앞에서 헤어질 생각이었지만, 멀지 않은 우리 아파트까지 그냥 같이 가자는 태형이를 결국 못 말리고 나란히 걷는 중이다. 아무래도 오늘 미안하고 고마운 일을 빚 진 것 같아 출발하는 길에 저번에 받았던 바나나 우유를 사주니 태형이가 고맙다며 흥흥 웃는다. 고마워하는 모습에 덩달아 내 마음도 뿌듯해져 시원한 우유를 들이켜니 더운 밤 공기 때문에 답답해졌던 속이 한결 풀리기 시작하고, 독서실에서 나와 걷는 복잡하고 좁은 골목도 평소보다는 널찍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우유 마시니까 중학교 때 3년 내내 우유 박스 날랐던 거 생각난다." 

 "3년 씩이나 했어?" 

 "응. 그것도 혼자 했었어." 

 "헐.. 진짜 힘들었겠다." 

 "아냐, 근데 별로 힘들진 않았어. 먹는 애들이 얼마 없었어서. 가끔 쌤이 제티 주시기도 하고 그래서 좋았지, 오히려~." 


 

 둘이 기분 좋게 빨대로 쪽쪽 빨아먹다가, 태형이가 무언가를 회상하듯 말하여 들어보니 그 힘든 일을 3년 내내 했단다. 3년 동안이나 반 아이들의 칼슘을 책임져줬으면 우유배달 근속상을 따로 만들어서라도 칭찬 받아야 했던 거 아닐까. 너도 역시 정국이처럼 한 성실 하는 애들 중 한 명이었구나 싶다. 근데 생각해보니 일주일에 몇 번 무거운 걸 나르는 일종의 노동인데 가끔씩 제티 주는 걸로 때운 선생님도 나빴다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그것도 불평 없이 만족하며 했을 낙천적인 태형이 모습이 상상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입꼬리에 웃음이 걸린다. 혼자 조용히 웃다가 무의식 중에 올려다보니, 뭐가 좋은지 계속 미소 짓고 있던 태형이의 낯이 추억을 떠올리며 사뭇 아련해지는 것 같다. 사실 아련할 것도 없긴 한데. 중3 때까지 한 거면 고작 재작년일일 테니까. 


 

 "크으.. 좋았지.. 중학교 때." 


 

 그래. 시간은 사람에 따라서 다르게 느껴지는 거라고 생각한다. 너는 그때 그 시간이 무탈하고 행복했던 중학교 생활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 기억을 회상하는 너의 얼굴에 근심은 없었다. 근데.. 따뜻했던 추억의 한 폭으로 떠올리기엔 아까 우유 고를 때 흰 우유 쪽은 너무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거 아니니. 


 

 "..근데 있잖아." 

 "응." 


 

 아직 우수에 젖어있을 줄 알았던 태형이가 조심스레 불쑥 말문을 열었다. 무엇을 말하려고 이렇게 갑자기 정성 들여 말머리를 꺼내는 걸까 의문이 들 정도로, 집중을 할 수밖에 없게 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덩달아 나까지도 진지해져 걷는 속도를 줄이고 귀에 온신경을 집중하니, 


 

 "우리 아파트 단지에 검은 고양이 있거든? 진짜 엄청 귀엽다?" 

 "..진짜?" 

 "그.. 바다보다 더 예쁠지도 몰라. 나중에 꼭 보러 와." 


 

 아주 추운 겨울날 품에서 꺼내놓는 군고구마처럼, 진중한 얼굴로 속삭이듯이 소중하게 말하는 모양새가 아기자기한 느낌을 받게 한다. 천진한 그 모습에, 오늘 몇 번째로 나오는지 모를 미소가 또 새어나와 생각지 못하게 웃음 터뜨리니 도통 왜 웃는지 모른다는 표정으로 말똥말똥 나를 쳐다본다. 가만히 나를 지켜보다가 눈을 반짝이면서 바다보다 더 귀여운 거 방금 상상한 거지, 하며 더 신이 나 얘기를 하는데 못 참고 더 빵 터지고 말았다. 듣자 하니 아까 밥 먹었을 떄부터 말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아마도 타이밍을 놓친 건 아닐까 싶다. 아니면 늦게 생각났거나. 


 

 "이름 있어?" 

 "응. 있긴 한데.. 비밀이야." 

 "응? 왜 비밀이야. 궁금해~ 알려주라." 


 

 목을 젖혀가면서 웃어대던 얼굴을 힘들게 추스르고 나서 피어오르는 궁금증을 물어보니 숨기는 모양새가 꽤나 부끄럽다. 이번엔 왜 또 그렇게 조심스럽나 해서 가까이 다가가 추궁하니 네가 고개를 더 피한다. 비좁은 골목에서 주차된 차들 사이로 숨는 너를 절뚝이며 쫓아가면 몸을 돌려 쉽게 피해버리니 점점 오기가 생기기 시작하고, 마침내 가방 끈에 손이 닿았을 때 가방이 또 다시 홱 사라진다. 


 

 "아, 맞다. 나 새콤달콤 있다."  


 

 가방에 손이 닿기 무섭게 태형이가 앞으로 옮겨 메고, 네가 작은 앞쪽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잘 안 보이는지 잠깐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다 먹은 우유 용기를 내 것까지 가져가, 막차가 끊긴 옆 버스 정류장 쓰레기통에 얼른 던져 처리한다. 곧바로 다시 자유로워진 손으로 편하게 가방 안을 찾아보는데 마침내 보라색과 빨간색 새콤달콤이 나타났다. 


 

 "저번에 두 개 사면 한 개 준대서 샀는데." 

 

 화제 돌리기라면.. 아주 성공했다. 우리가 방금 무슨 얘기라도 하고 있었냐는 듯이 능청스레 말하는 네 가방에서 나온 새콤달콤에 그만 시선이 뺏겨버렸다. 그래, 두 개 사면 하나 더 준다는데 당연히 사야지. 현명한 선택을 했구나. 


 

 "딸기는 우리 내일 먹자. 두 개 다 까면 가방 안에서 다 흩어질 것 같아." 

 "응응." 


 

 새콤달콤 주인의 총명한 결정이었다. 난 포도를 더 좋아했다. 둘 다 새콤달콤에 집중하기 위해 잠시 멈추고 포장을 벗기는 데 집중을 했다. 빨간 줄을 따라 포장지가 수월하게 돌돌 사라지고 맨 위의 하나가 똑 떨어지려는 찰나, 우리의 뒤에서 뱃고동 소리만큼이나 거대하고 날카로운 경적 소리가 하늘을 울렸다. 어두운 공간에서 둘 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 미처 보지 못한 탓에 화들짝 놀랐는데, 그와 동시에 몸통이 팔부터 길가 안쪽으로 들어온다. 놀란 태형이가 나를 안쪽으로 잡아당긴 거였다. 갑자기 들린 큰 소리에 둘 다 쿵쿵대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돌아보니, 전조등을 끌 생각도 없이 우리를 쨍하니 비추고 있는 차가 짜증이 난다. 우리가 길 한 가운데를 막고 있던 것도 아닌데 굳이 이렇게 크게 경적을 울리고 매너도 없이 전조등을 비춰야 하나 싶어, 속에서 금방 화가 차올라 비켜주기 싫은 맘이 마구 솟구쳤다. 끝까지 비켜주지 말까 못된 마음이 들어 전조등을 째려보는데, 그때 내 앞에 큰 커튼이 드리운다. 


 

 "밤에 핸드폰 하는 걸로도 모자른가 보네." 


 

 대낮처럼 내 얼굴을 비추는 강한 빛에 인상이 한껏 찌푸려는 중에 조심스레 내 눈앞을 가려준 건 태형이었다. 갑자기 어두컴컴해진 시야에 살짝 움찔하니 내 어깨를 잡고 천천히 당긴다. 계속 나의 동그란 커튼이 되어주며 주차되어있는 차들의 좁은 사이로 주춤주춤 나를 살며시 끌어당기니 우릴 비추던 차는 미련 없이 붕 지나간다. 괜히 심통이 나 가는 차의 뒷모습을 째려보면 옆에서 침착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고 난 너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급한 일 있나 봐." 

 "..." 

 "여기 포도." 


 

 어떨 땐 세상에서 가장 드물고 드문 친화력을 자랑하며 마냥 밝은 기운을 내뿜는 너지만, 다른 때는 누구보다 느긋하고 여유가 많으며 침착하기까지 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지금까지 내가 봐온 태형이의 모습이 결코 전부가 아니었단 생각에, 어쩌면 내가 널 너무 단편적으로 정의하고 대해온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어 살짝 미안해질 것 같았다. 


 

 "다 왔다. 여기 맞지?" 

 "응응."   


 

 이윽고 좁은 골목을 벗어나자 바로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 정문이 눈에 들어온다. 새콤달콤을 씹으면서 별 생각 없이 횡단보도까지 가려는 네 행동에 기겁을 하고 조금 절뚝이며 앞을 막아섰다. 


 

 "됐어, 진짜 너무 충분해. 여기까지 와준 것도 너무 고마워. 얼른 가. 너무 늦었어." 

 "말이 왜 이렇게 빨라. 랩 하냐." 

 "데려다줘서 너무 고마워, 진심으로. 얼른 가, 얼른." 


 

 혹시 네가 아파트 안까지 동행한다고 할까봐 애초에 네 대답을 차단하며 속사포로 말을 뱉으니 네가 못 말리겠다는 듯이 웃는다. 그러다 슬며시 내 발목을 한 번 내려다보는데 그런 네 얼굴이 다시 좋지 않다. 


 

 "그냥 택시 탈 걸 그랬나?" 

 "아니야. 진짜 괜찮다니까. 별로 안 아파!" 


 

 난 내 다리보다 늦은 시간에 돌아갈 네가 더 걱정이다, 태형아. 끊이지 않는 내 걱정에 살짝 눈물이 맺힐 뻔하다가 애써 억누르고 네 등을 억지로 돌리니, 네가 힘을 주는 탓에 몸이 뻣뻣해지고 내 힘에 말을 들을 리가 없다. 여기까지 와준 미안함과 고마움이 마구 뒤섞여 어떻게 얘기해야 될지 모르겠어서 잠시 입을 달싹이니, 네가 갑자기 눈치를 보며 개미만한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속닥인다. 


 

 "..뽀뽀야. 이름." 

 "어?" 

 "고양이 이름.. 뽀뽀라고." 


 

 구시렁대며 혼잣말이라도 했으면 절대 안 들렸을 법하게, 바닥을 보며 웅얼거리듯이 말하고는 수줍게 흐흥 웃으며 저 멀리 우다다 달아나버린다. 근데 뽀뽀는 휴지 이름 아닌가. 이름을 왜 저렇게 지었데, 풉 웃으며 멀어지는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지는 걸 보고서 발걸음을 돌리는데. 


 

 "..아. 뽀삐." 


 

 24시간 운영하는 동네 마트 바깥 매대에 진열되어있는 롤 휴지들이 눈에 들어온다. 잘못 알고 누구 앞에서 나댔으면 아주 크게 쪽팔릴 뻔했음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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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아닛 작가님 안주무시고 이시간에 올려주시다니..! 무척이나 심심했었는데 너무너무 감사합니당 ㅋㅋㅋ ㅠㅠ 오늘은 태형이가 쭈우욱 나왔네요! 태형이도 참 순수하고 착한 아이지요 ㅜㅜ 서브남주가 생긴다면 태형이가 되려나요 ..?? 깨빵이와 태형이가 꽁냥꽁냥 하는 모습도 참 보기좋은데 힝힝 ㅠㅠ 얼른 정국이랑도 많이 친해졌으면..! 오늘 독서실 데이트 한 울애기들 잘 봤습니당 헤헤 오늘도 편하고 다정한 좋은 글 감사해요💜💜💜
5년 전
라잇나잇
제가 댓글 써오는 동안에 이렇게나 긴 댓글을 달아주시다니 정말 진심으로 항상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ㅠㅠ 엉엉 독자님 진짜 최고♥ 매일 보러 들어와주시고 매번 긴 댓글 달아주셔서 폭풍감덩입니다 진짜로요 ㅡㅠㅠㅠㅠ 제 마음을 알아주세요ㅠㅠㅠㅠ😭😭😍
5년 전
라잇나잇
현생에 치여 늦게 들고 온 11화입니다.. 오래 써서 허리가 너무 아파요.. 아무래도 이제 몇 주 동안 시험 기간이다 보니 연재 약속을 확실히는 못 해드릴 것 같아여 ㅠㅠ 그래도 최대한 일찍 돌아오려 노력하겠습니다 💜
그리고.. 제가 이걸 열심히 쓴다고 쓰고는 있지만, 독자님들께서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느낌으로 읽으실지 사실 조금은 걱정스러운 요즘이에요. 흐름이 잘 가고 있는 건지도 잘 모르겠고.. 모든 게 다 초보라서 어렵네요. 쓸 이야기는 많고 시간은 없고 ㅠㅠ
그래도 독자님들 반응 보면서 더 힘이 납니다! 덕분에 믿기지 않게도 간간이 초록글에 오르는 영광도 있고요! 감사드린다는 말씀 다시 전하면서 최대한 빨리 뵙겠습니다 😉

5년 전
독자2
앗...뽀뽀를 보고 그 뽀뽀를 생각했는데 아니네....
머쓱....^^
작가님 진짜 사는동안 적게일하고 많이벌고 행복하세여...
항상 재미있게 보고있어요ㅠㅠㅠㅠ 감사합니다ㅠㅠㅠㅠ

5년 전
라잇나잇
ㅠㅠ좋은 말씀 정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재밌게 봐주셔서 제가 훨씬 더더 감사드려여😍 알라뷰님들 재미난 주말 보내세용💜
5년 전
독자3
작가님 저는 제목보고 너무 설렜는데 고양이였어.. 저만 제목보고 주접떤게 아니길 바라면서... 작가님 정말 감사합니다 잘 읽고 있어요 ㅜㅠㅠ
5년 전
라잇나잇
히히.... 그럴 걸 그랬나욬ㅋㅋㅋㅋㅋ 언젠가 그러는 날이 오길 바라면서 감사하다는 말씀 꼭 전해드리고 싶어요! 재밌게 봐주셔서 제가 더 감사드리고 좋은 주말 밤 보내세요 알라뷰님😍💜
5년 전
비회원226.8
정말 너무 잼있어요 ㅠㅠ
5년 전
라잇나잇
재밌게 봐주시는 분이 또 계셨네요 ㅠㅠ !! 감격스럽습니다 🙏 비회원 분들께도 열어놓은 보람이 있습니다 댓글로 마음 전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근데 비회원이시면 다음 화 올라올 때 알림 못 받으실 텐데 ㅠㅠ 제때 글 못 보게 되실까 너무 걱정되네요.. ㅠㅠ 다시 한 번 작품 봐주셔서 감사드립니다!😍
5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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