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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전정국] 그대야 안녕 13화 | 인스티즈 

 

 

BGM - 스카이콩콩 (Jasmin) 


 


 


 


 


 


 


 


 


 


 

13화 

: 해결책 


 


 


 


 


 


 


 


 


 


 

 "음.. 이거는 말이야. 그러니까." 

 "응." 


 

 어렵다. 


 

 "그러니까.. 내 생각에는 말이야." 

 "응." 

 "답이 없어." 

 "..." 


 

 토론 동아리에 외로이 혼자 발을 들였던 어제. 슬픔에 잠겨 정신없는 그 와중에도 용케 받아온 미션을 붙들고 오늘까지도 헤매는 중이었다. 비록 정국이는 없더라도 동아리원들에게 피해를 주면 안된다는 생각에 이마를 싸매고 나영이와 머리를 맞대봤지만, 떨어지지 않는 해답에 고개를 떨어뜨렸다. 애매한 주제를 떨궈준 회장이 급기야 미워질 지경이었다. 무슨 동성애 반대 근거를 써오라는 거야. 다른 윤리적이고 유익한 주제도 많고 많을 텐데. 


 

 "주제가 뭐 이래. 가서 바꿔달라 해." 

 "네가 대신 해줘. 바꿔달라고." 

 "동아리 회장 잘생겼다며." 

 "..내가? 너한테 동아리 회장 얘기한 적 없는 것 같은데." 

 "몰라. 하여튼 느낌이 잘생겼어. 나 잘생긴 사람한테 말 못하는 거 알잖아." 

 "..그냥 싫다고 해." 


 

 모르는 사람이라 내가 도와줄 수는 없다, 간단하게 한 마디로 끝내면 될 것이지 구구절절 헛소리를 늘어놓느라 바쁜 나영이의 입을 재미 삼아 살짝 때리고 얼른 문 밖으로 튀었다. 도망나오는 와중에도 선생님 생각을 받아적을 노트를 가까스로 챙겨 우당탕 뒷문을 나섰다. 자리에 비문학 쌤이 계셔야 할 텐데.. 하는 걱정을 하며 거의 나은 발목을 가볍게 놀리며 교무실로 향했다. 무작정 선생님을 찾아간다고 단번에 해결되진 않겠지만 그래도 조금 도움을 얻을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었다. 잘하면 논거에 접근하는 법이라도 알려주시지 않을까 싶어 조금은 기대하는 맘으로, 칫솔을 꺼내려는 복도의 인파들을 어렵게 피하며 다다랐지만 문에는 종이가 붙어있었고 아쉽게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시험 문제 출제 기간. 학생 절대 출입 금지.' 


 

 한 발짝 다가온 더위와 더불어 두 발짝 가까워진 중간고사를 잊고 있던 바보는 실재했고 그 바보의 눈앞은 곧 깜깜해졌다. 날짜가 벌써 이렇게 됐나 싶은 생각이 들다가도 빠르게 스쳐간 시간을 돌이켜볼 여유가 없어 다시 걸음을 옮겼다. 


 

 '부스럭-' 


 

 자. 이제 정국이한테 사탕을 줄 명분이 생겼다. 치마 주머니에 자신의 정체를 볼록하게 드러내는 청포도 사탕을 꺼내 주먹을 쥐었다. 며칠 전부터 너에게 주고 싶단 생각이 들던 것이었다. 두근거리는 맘으로 조심스레 4반 쪽으로 향하니 혼자 있는 호석이를 복도 사물함 앞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만큼 주생활 공간이 복도인 아이도 없었던 것 같다. 


 

 "오. 어딜 그렇게 도둑고양이처럼 가?" 

 "도둑고양이는 무슨. 아냐~." 

 "..." 

 "..." 

 "..왜. 혹시 우리 반에 볼 일 있어?" 


 

 그에 주저없이 그쪽으로 다가가자 나를 보고 되게 반가워하며 칫솔에 치약을 짜려던 움직임을 멈춘다. 그러다 내 망설임 가득한 얼굴을 눈치채고는 흥미로운 눈빛으로 추궁하기 시작한다. 그에 내가 아니.. 뭐.. 이러니 잠깐 내 눈과 내 노트를 번갈아보다가 어떻게 알고 귀신 같이 내 노트를 뺏어드는데, 그 폼이 꽤나 숙제 봐주는 학원 쌤 같다. 


 

 "동성애 반대 근거 1번." 

 "..." 

 "..없네. 이거 물어보려고 다니는 거야?" 

 "..응." 

 "근데 못 찾았고." 

 "..응." 

 "자.. 보자, 보자..." 


 

 호기롭게 내 노트를 받아든 호석이가 전문가스러운 눈빛으로 노트를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사물함에 몸을 기댄다. 종이를 뚫을 것 같은 진지한 눈이 사뭇 삼엄해서 혹시 노트에 내가 뭘 썼다가 지운 자국이 있었나 싶어 다가가 같이 노트를 보는데, 아무리 봐도 없다. 열심히 호석이 눈의 자취를 따라가 보지만 그냥 비어있는 종이일 뿐인데. 그러다 너처럼 눈으로 종이를 뚫다보면 혹시 답이라도 나올까 싶어 나도 동참해볼까 했던 때였다. 


 

 "이거는 전문가 손 봐야 돼. 안 되겠어." 

 "그치? 정국이가.." 

 "기다려봐." 


 

 전문가라면 정국이겠지. 호석이가 토론 동아리 경력이 있는 자기 친구를 이렇게 또 알아봐주는구나 싶어 반가움과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호석이가 들어간 뒷문에 달라붙어 정국이를 찾는데, 내가 방금 찾은 곳으로 앵무새의 걸음이 거침없이 향한다. 긴 다리에 따라 보폭이 큰 발이 성큼성큼 동그란 뒷통수로 향할수록 콧구멍이 벌렁거리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렇.. 그렇지! 


 

 "면도 잘하는 남준아. 잠깐 나와봐." 

 "어?" 


 

 ..어라. 호석이가 정국이 쪽으로 간 건 맞았지만 정작 도움을 청한 건 정국이가 아닌 그 옆 짝꿍이었고 난 할 말을 잃었다. 아니, 거기서! 왜 정국이가 아니라..! 정국이 짝꿍이 어제 시청각실에서 만났던 그 지우개 잃어버린 애라는 것도 놀라웠지만 제 친구의 능력치를 알아보지 못하는 호석이도 놀라웠다. 그런데 하필 호석이는 그 애를 부를 때 굳이 필요없는 말로 지우개 잃어버린 애를 수식했고, 그 바로 옆에서 주황색 귀마개를 낀 채 공부에 몰두하던 정국이의 고개가 들리는 게 보였다. 귀마개 꼈어도 바로 앞에서 얘기하면 다 들리지 바보야.. 


 

 "..." 


 

 자신을 겨냥한 수식어가 제 귀에 들리자 한 쪽 귀마개를 천천히 빼며 새초롬하게 호석이를 째려보는 정국이의 옆모습이 보였다. 귀여워.. 나도 그런 눈초리 받고 싶어.. 뒷문에 달라붙어 정국이 뒷모습 같은 옆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다가 나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풀려 그만 나무문들이 자기들끼리 부딪혀 쿠당탕 소리를 낸다. 


 

 "..." 

 "..." 

 "..." 


 

 잠시 중심을 잃었던 몸을 추슬러 일어서니 약속이라도 한 듯이 모두의 시선이 나를 향하고 있다. 내가 부딪히고도 천둥 같은 큰소리에 깜짝 놀라 심장이 두근대고 귀가 빨개져 어쩔 줄 모르고 있는데, 저 멀리 이쪽을 돌아본 정국이와 눈이 마주쳤다. 눈이 커진 걸 보면 소리에 놀라 이쪽을 돌아본 듯 한데 네가 날 발견하고는 그 커진 눈의 의미가 금세 달라진다. 


 

 ‘안녕.’ 


 

 나를 발견하고는 정국이의 오밀조밀한 입술이 열심히 합을 맞춰 소리 없이 입모양으로 인사를 건넨다. 멀리 있는 내 눈을 마주치는 게 내심 반가운 눈치인 것도 모자라, 네 뜻을 알아들은 나를 보는 너의 얼굴이 은근슬쩍 뿌듯해진다. 순식간에 어리벙벙해져 인사를 받지도 못한 채 그저 그대로 쳐다보고만 있으니, 별안간 네가 바람 빠지는 웃음을 피식 흘리며 기지개를 켠다. 방금 웃은 건가. ..그것도 나를 보고? 


 

 "근데 이거 우리 동아리 숙젠데. 누가 알려달래?" 

 "아. 깨빵 동아리 들은 거구나~. 아, 당연 나는 아니고." 


 

 영문도 모르고 자리를 정리하고 나오려는 남준이라는 애가 호석이 손에 들려있는 내 노트를 살짝 보고 묻는다. 그에 뭐라 짤막하게 대답하고 나서, 제 급한 성질을 못이기는 호석이가 느릿느릿 아직 자리 정리를 하고 있는 남준에게 팔짱을 끼고 연행하듯 끌고 나오려 한다. 


 

 "사실은 저 애 있잖아. 뒷문에 쟤." 

 "응." 

 "쟤가 너 불러달래. 꺄힉! 어쩜 좋냐!" 

  

 무슨 소리야, 호석아.. 달아오른 얼굴이 채 식기도 전에 그 큰 목소리로 호들갑 떠는 말소리가 귀에 박힌다. 교실 안이 꽤나 정숙했던 탓에 모든 남자애들의 귀에 호석이의 말이 흘러들어가고, 그와 동시에 오오~하며 굵은 목소리들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자동으로 분위기가 띄워진다. 아직 심장도 추스르지 못했는데 이젠 당황스러움이 물밀 듯이 밀려와 안절부절못하는 얼굴로 제자리에서 발을 동동 구르니, 별안간 저 멀리 동글동글한 시선과 다시 맞물린다. 


 

 "..." 


 

 여러 의미로 눈이 커졌던 방금 전과는 다르게 다시금 이쪽을 돌아보는 눈이 나를 보고 멈칫한다. 내가 계속 멀리 있는 너를 일부러 눈에 담고 있는 게 혹시라도 들킬까 다시 마주쳤던 눈을 내가 얼른 먼저 피하고, 키 큰 애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호석이에게 눈길을 돌렸다. 

 

 "둘이 같은 동아리야?" 

 "응, 응.. 안녕. 부르려던 건 아니었는데.. 공부 방해해서 미안." 

 "아냐, 아냐." 


 

 호석이와 키 큰 애가 뒷문으로 나오기 무섭게 뒷문을 빠르게 닫고, 조금 떨어져 있는 사물함 앞으로 둘을 이끌었다. 진짜 내가 너를 부르려던 건 아니었는데.. 의도치 않게 공부를 방해한 것 같아 미안함을 전하니 아니라며 눈썹을 한 번 들썩인다. 


 

 "그럼 둘이 해결해~. 양치하러 간다!" 


 

 키 큰 애와 나를 어색하게 사물함 앞에 남겨두고 미련 없이 칫솔을 들고 떠날 준비를 하는 호석이다. 앵무새가 내게 다시 노트를 품에 안겨주고 훌쩍 떠나고 나니, 시끌벅적한 복도에서 우리 사이에만 정적이 맴돌기 시작한다. 호석아.. 나중에 보자.. 주먹이 설레고 있어.. 


 


 


 


 


 


 


 


 


 


 


 

 정신없이 지나가는 시간을 잡을 길이 없었다. 아까 호석이가 불러준 명석킹한테 도움을 받긴 했지만 멀쩡한 근거 하나 만들어낼 수 없었다. 오죽하면 호석이가 주위 아는 사람 중에 가장 말을 잘한다며 내 앞으로 데려다준 그 친구도 주제가 별로라고 할까. 그리고 사실 아까 그 친구한테 도움 받을 땐 아닌 척 했지만, 진중한 얼굴로 호석이처럼 노트를 뚫어져라 보다가 했던 말 하나가 자꾸 머릿속에 맴돌았다. 


 

 ‘성 정체성을 남들이 찬반으로 나눈다는 게.. 참. 그 사람들한텐 얼마나 상처일까.’ 


 

 난 단지 근거를 생각하기 난해한 주제라 생각해 헤맸던 것뿐인데, 그 친구는 윤리적 접근이 아니라 사람 대 사람으로서의 배려를 기반으로 삼아 주제가 별로라고 했던 것이었다. 아까 그 말을 듣고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이 멍해지고, 그 말이 그동안의 내 모든 생각을 되짚어보고 반성해야 하는 계기를 만들어준 것 같았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그 말의 영향력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고 그 후로 내내 그 말에만 머물러 있다 보니 미뤄놨던 영어 오답노트를 잊고 있던 게 아니었던가. 석식 전 자습 시간에 부랴부랴 열심히 완성하기 무섭게 딱 종이 치더라. 그래서 다행히 영어 시간에 부끄러움을 당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마음 한켠에는 내 자신에 대한 반성과 결국엔 그 숙제를 해가지 못할 것 같다는 찝찝함이 남아있더랬다. 그래도 다행이었던 건, 그 키 큰 친구 인상이 꽤나 냉정해보여 걱정했는데 생각을 공유하는 태도가 지나치게 겸손하기도 하고 또 심성이 착한 것 같아보였다는 거다. 잘 모르는 애가 다짜고짜 뭐 좀 알려달라고 해서 혹시 짜증낼까봐 걱정했는데 그게 무색할 정도였다. 도움 구하러 갔는데 문전박대 당하면 괜찮다고 해도 솔직히 슬픈 건 어쩔 수 없으니까. 


 

 "찰깨. 잘 가시게." 

 "안녕! 잘 가, 태형아." 

 "웅~. 


 

 영어 시간의 끝을 알리는 종이 치고 난 뒤 몇 분 후. 오늘도 정국이 귀만 보다가 지나가버린 시간이었고, 선생님보다 먼저 나간 윤기 형은 이미 찾을 수 없었으며 선생님과 여자애들 둘이 막 나갔을 때였다. 앞자리에서 가방을 막 다 챙긴 태형이가 문을 열기 전 호석이와 나한테 인사를 건네고 금방 사라졌다. 그 인사하는 모습이 너무 반가워 보여서 잘못 보면 방금 만난 사람한테 하는 인사 같기도 했다. 하루 일과가 끝나면 누구나 좋지. 

 

 "깨빵. 잠깐만, 잠깐만. 가지 말아봐." 


 

 그때, 내 주먹이 설레고 있단 사실을 꿈에도 모르고 있는 호석이가 가방을 건드리지도 않고 핸드폰을 하다가, 별안간 폭탄 같은 말을 내 맘에 심는다. 


 

 "너 우리 단톡에 없지?" 

 "..단톡?" 

 "아~ 까먹고 있었다. 바보 같이." 


 

 의자에 퍼질러 앉아있다가 제 이마를 찰지게 탁 때린 호석이가, 앞에서 짐을 챙기고 있는 정국이를 건드리고 싶어서 안달난 내 손에 제 핸드폰을 들이밀었다. 


 

 "네 번호 쳐줘. 너 우리 학원 단톡에 있어야 돼." 


 

 학원 단톡이 있었던 모양이구나.. 들어가면 그럼 정국이 프사도 볼 수 있는 건가! 이제라도 생각이 나 초대해준다는 호석이가 고마울 따름이었고 기대감에 두근대는 맘으로 누구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번호를 치니 속사포 같은 호석의 말이 귀를 지나친다. 


 

 "지금 여기 초대할게, 들어와. 아씨. 늦었다. 바다 보러 가야 되는데."  


 

 지나치려던 건 호석이 말 뿐만이 아니었고, 5초 만에 책을 가방에 거칠게 욱여넣은 뒤 바람처럼 사라졌다. 와중에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나간 호석이가 나를 바로 초대했는지 바로 내 핸드폰에서 알림이 울렸고 그 알림을 확인하자 속에서 기쁨의 콧구멍이 벌렁거렸다. 


 

 ‘사랑의 영어 단톡방입니다♡’ 


 

 그 정신없이 뛰어나가는 와중에 저렇게 긴 건 어떻게 쳤는지 의문이 들었다. 언제나 예상능력치를 뛰어넘는 호석이랄까. 


 

 "..갈까?" 

 "어어.. 응!" 


 

 진작에 번호를 주고 받은 태형이도 잊고 있었나 보다 생각하며 대화 상대를 확인하니 학생 일곱에, 영어 쌤 한 분까지 해서 8명이었다. 그 중에 ‘전정국’이라는 이름의 미설정된 프사가 보여 배경사진이라도 있을까 흥분이 고조되는 맘으로 누르려던 찰나 앞에서 조심스러운 정국이 목소리가 들리고, 별안간 말소리에 놀라 핸드폰을 내리고 허겁지겁 짐을 마저 챙기며 대답하니 둘만 있는 공기가 다시 떨려오기 시작한다. 솔직히 말해. 너 아까 그렇게 입모양으로 인사해준 거 처음 아니지. 날 왜 그렇게 힘들게 하는 거야.. 


 

 "수학 오답 노트 다 했어?" 

 "응! 넌?" 

 "난 없어서.." 

 "아.." 


 

 다시 긴장되고 두근대기 시작하는 가슴에 심호흡을 하고 네 뒤를 따르니 자연스레 내게 말을 건다. 네가 말 걸었다는 사실에 신이 나 나도 모르게 그대로 신남을 모두 표출하며 대답하니 머뭇대다가 난 없어서.. 라고 하는데, 순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여기서 할 말 잃으면 다시 어색해지는 거 순식간일 텐데 머릿속엔 도무지 다음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힘내! 언젠가 생길 거야! 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더군다나 아.. 난 맨날 있는데.. 하면 그 분위기는 더욱 손볼 수 없게 될 것 같았다. 그에 어쩔 수 없이 그저 아.. 라고만 하니 네가 멋쩍은 기색으로 뒤통수를 긁적이며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고 웃어보인다. 


 

 "오늘 문제는 안 어려웠음 좋겠다." 


 

 살며시 웃음을 머금고 있다가 수학 강의실 문을 열며 저 말을 하는데, 순간 내 걱정 해주는 것 같이 들려 걸음을 멈출 뻔했다. 정국이는 오답 노트를 써온 적이 없으니 사실상 학원에서 푸는 게 어렵다고 느꼈을 리 없었다. 그러니 저 말은 ‘오늘 문제는 너한테 안 어려웠음 좋겠다.’라고 들리는 게 어쩌면 당연했다.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서 네 말을 곱씹어볼 필요도 없이, 네 뒤를 따라가는 내 머릿속은 이미 그렇게 단정 지은 후였고 거기에 생각이 묶이기 시작했다. 


 

 "..." 

  

 늘 그렇듯 차가운 분위기의 수학 강의실에 발을 들이고, 자리를 잡고 창가에 앉으니 오늘도 네가 내 옆자리에 앉아있다. 매일 오는 수학 강의실이고 매일 앉는 이 자리였지만, 오늘따라 자리가 더 좁은 것 같았고 옆의 책상과의 거리가 더 가깝게 느껴졌다. 이젠 곁눈질로 보지 않아도, 네가 수학 교재를 꺼낸 뒤 의자에 가방을 거는 걸 볼 수 있었고, 샤프를 눌러 톡톡 샤프심을 조절하는 모습도 머릿속에 그려졌다. 바로 옆에 있어도, 보지 않아도 상상되기 시작했다. 넌 아무렇지 않게 평소와 같은 행동을 하지만, 난 계속 문제 안 어려웠음 좋겠다는 네 한마디에 갇혀 되뇌고 있었다. 문 바로 앞에서 조심스런 소망을 내비치던 네 말투와 얼굴이 끊임없이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온다. 물론 그냥 단순한 문제를 풀고 싶다는 네 바람에서 그칠지도 모르는 말이었지만, 그때 그 순간 나한테는 ‘나 너 좋아해.’라는 고백에 못지 않는 한 마디였다. 결국 네 생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혼자서 모든 과장을 다 떨고 있을 때, 급히 가방에서 잡히는 것 아무거나 꺼내 책상에 펼쳐놨다. 이대로라면 내가 지금 네 생각만 하고 있다는 걸 얼마 안 가 들킬 것만 같았으니까.      


 

 "..." 

 "..." 


 

 몰래 보지 않아도, 볼에 바람을 넣은 채 내 쪽을 힐끗힐끗 보고 있는 게 느껴졌다. 그러다 손가락으로 능숙하게 샤프를 돌리는 소리가 나는데 이젠 너로부터 나는 모든 소리를 접하는 것만으로도 떨려와 급히 고개 숙였다. 뒷머리를 당겨올까, 앞머리를 내려볼까. 그냥 고개를 대놓고 책에 푹 숙여보는 건 어떨까 싶을 때, 네가 문득 내게 또 말을 건다. 정말 문득 말이다. 

 

 "내가 도와줄까?" 

 "..억?" 


 

 하씨.. 무슨 억이야, 억은. 무방비 상태에서 받은 정국이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추한 반응이 흘렀고, 곧 나 자신에게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 너무 안타깝게 대답했다. 


 

 "..." 

 "..." 


 

 아직 머릿속을 추스르지 못한 탓에 아까 인사 받았을 때처럼 멍하니 눈동자가 갈 곳을 잃으니 우리 둘 사이에 적막이 맴돈다. 그러자 이번엔 웃으며 기지개를 켜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나를 보는데, 나는 순간 내가 뭘 잘못한 줄 알았다. 너무 빤히 보기에. 


 

 "나 작년에 그 동아리였었거든." 


 

 방황하는 눈동자가 너를 보지 못하고 있을 때, 너는 내 눈을 곧게 보다가 별안간 고갯짓을 하며 사근사근한 말투를 내뱉는다. 네 고개를 따라 내 책상에 놓인 것을 보니, 그곳엔 수학 교재가 아닌 아까 학교에서 들고 다니던 노트가 자리해있었다. 내가 꺼낸 게 교재가 아니라 그 노트였나 보다. 


 

 "..아, 아 그래? 그럼 도와줄 수 있어?" 

 "그럼." 


 

 쿵쿵 뛰는 심장 때문에 목소리도 떨릴까 싶어 걱정되는 맘을 애써 뒤로 하고, 한 글자 한 글자 조심스레 뱉으니 내 말을 들은 정국이가 어려운 일 아니라는 듯 입꼬리만 올려 방긋 웃어보인다. 원래 같았으면 볼에 바람을 넣은 채 이쪽을 멀뚱히 보기는커녕, 날 봤어도 못 본 척 했을 텐데. 이젠 내 노트를 조심스레 가져가, 근거 1번에 썼다 정신없이 찍찍 그어서 지운 걸 보고 살포시 얼굴에 웃음기를 머금는 널 내 눈에 소중히 담았다. 내가 아는 낯가리던 정국이는 이제 나를 본인 생활의 범주 안으로 받아들인 걸까. 노트 위에서 샤프를 들고 고민하는 네 손을 빤히 보다, 지금껏 했던 무수한 걱정들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바람 빠지듯 웃음을 흘렸다. 빨리 친해지겠다는 얼마 전의 다짐도, 네 일상에 없는 듯이 스며들겠다는 결심도, 지금 생각해보면 모두 하릴없는 얕은 위안만 되어줬을 뿐이었다. 그때는 오히려 급급한 해결책 따위는 필요하지 않았다. 시간이 차근차근 해결해주고 있었으니까. 


 


 


 


 


 


 


 


 


 


 


 

 거의 끝나가는 쉬는 시간. 누군가의 부름으로 인해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온 남준의 낯이 성취감으로 가득 차있다. 아직 입꼬리에 미소를 단 채 필기를 정리하려 다시 샤프를 드는데, 그때 그의 큼지막한 손에서 연두색의 동그란 사탕이 부스럭대며 기척을 낸다. 잠깐 나는 소리에 정국의 시선이 그쪽으로 머물고 잠시동안 두 눈이 서로 마주친다. 


 

 "..." 

 "..." 


 

 그 짧은 순간이 어색하기 이를 데 없다. 2학년 들어 처음 만난 둘은 서로를 짝꿍으로 둔 지 일주일이 되어가고 있었다. 오래 지나지 않아, 안면을 튼 지 얼마 안 된 두 시선 동시에 거둬지고 분위기에 다시 평화가 찾아온다. 마침 자유로운 시간의 끝을 알리는 종이 명랑하게 교실을 울리고 밖에 나갔던 아이들이 일사불란하게 제자리를 찾는다. 정해진 시간에 따라 정국도 책상 서랍에서 교과서를 꺼내려 할 때, 옆에선 다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자신도 모르게 다시 시선이 그곳을 향한다. 


 

 "..귀엽다." 

 "..." 

 "아니.. 사탕이." 


 

 이제 곧 수업이 시작될 시간이지만 한 쪽 볼이 팽팽하게 당겨질 정도로 큰 사탕을 입에 넣은 남준이 하릴없이 빈 사탕 봉지를 펴며 중얼중얼 혼잣말을 한다. 하지만 그 말을 듣고 돌아본 정국과 다시금 눈이 마주치고, 제 혼잣말이 너무 컸나 싶어 눈치를 보며 아무도 묻지 않은 말에 다급히 해명한다. 그에 정국이 무언가 생각하는 기색으로 아무말이 없자, 이게 아닌가 싶다가도 괜시리 미안해져 하나밖에 없어서.. 라고 하지만 정국은 크게 상관이 없다.  


 

 "큰일났어. 너네 반이 진도 제일 느려." 


 

 그때 반갑지 않은 말과 함께 문학 선생님이 등장하고 그에 맞춰 들떠있던 분위기가 차분해진다. 덩달아 누군가의 기분마저 가라앉기 시작하고, 조용히 돌아갔던 시선이 다시 남준의 손에 있는 사탕 봉지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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