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 r i g g e r
김준수는 바보였다.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이다. 하지만 가까워질수록 그 사실은 더 명백해졌다. 쟤는 바보다. 착한게 아니야. 그냥 바보같은거야. 그래서 때로는 김준수가 한심하기도 했다. 한번 만만해뵈니 툭툭 내뱉는 말은 대책없이 튀어나오고 맴도는 공기마저 착잡하게 가라앉았다. 순환하지않는 있는 그대로의 생각들. 충분히 상처를 받을 만한 말들. 그래도 김준수는 나를 놓지않았 던 것 같다. 이유는 하나다. 나를 제외하고 그를 진지하게 대해준 이가 없었던 것이다. 물런 내가 김준수를 대하는 것에 있어 진심이었던 적은 없었다. 이용을 위한 인간관계일 뿐이었다. 그걸 멋대로 확대해석 한거다. 하지만 그 확대해석이 내 입장에서는 나쁘지않다. 오히려 이롭기까지하다.
삼학년의 춘삼월은 유난히 벛꽃이 극성이었다. 그만큼 벛꽃이 많이 날렸다. 하늘의 여백을 가득 채운 꽃잎들의 풍경에 새삼스레 설렐만큼 풍경을 이루기도 했다. 이 아름다운 꽃잎들은 곧 다가올 무언가를 암시하고 있었기에 더 아름다웠던 것 같다. 고등학교 3학년. 심히 부담스럽고 한탄스럽다. 묘하게 감성적이게 된다. 그렇게 마냥 벚꽃잎만 보고 있던 중에 김준수는 다가왔다. 인기척도 없어 어깨를 툭 치는 손길에 놀랐는데 뭐라 말하기도 전에 편지를 건냈다. 건내진 편지와 함깨 보이는 손이 빨갰다. 동그랗게 떠진 내 눈은 더 커졌다.
우습게도 김준수가 건낸 편지는 계집애나 좋아할 연분홍 색이었다. 여린 벛꽃의 색처럼. 황당해서 웃음이 터졌는데 그 사이 김준수는 어디론가 달아났다. 발이 빠른 놈이니 멀리도 뛰어갔을거라고 생각은 하면서도 북적한 주위를 둘러봤다. 하지만 이내 찾을 수 없다는 걸 알고 헛웃음을 참으며 편지지를 열었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글씨체가 귀엽다. 글씨체마저도 계집애같다니…… 워낙 계집애같이 여린 김준수니 이해는 간다.
'창민아. 안녕! 3학년이 된 걸 축하해. 물런 너는 별로 좋아하진 않을테지만… 아무튼. 이 편지 받아서 되게 당황스러울꺼야. 하지만 끝까지 읽어주길 바래. 결국 전해질지 전해지지않을지도 모르지만. 쓰는 것도, 너에게 건내는 것 물런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거든. 사실 이 편지는 처음 쓰는게 아니야. 내 세번째 서랍속에는 자물쇠가 채워진 칸이 있지? 그 칸을 열면 눈처럼 수북히 쌓인 편지지가 있는데 그 편지들은 편지지 맨 앞부분에 인쇄된 to라는 부분엔 차마 이름도 쓰지 못하는 그런 불쌍한 편지들이야.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 궁금해서라도 꼭 끝까지 봐!
사실 나는 네가 처음 말을 걸어줄 때 또 나한테 무슨 부탁을 하려고 하는걸까? 너무 힘든데. 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했었어. 근데 네가 그랬잖아. 체육복 빌려줄까? 아아. 생각해보니 그때 급식을 먹다가 불고기를 흘려서 교복바지가 되게 웃기게 됬었는데. 암튼 그래서 난 조금 당황했어. 난, 니가 나를 필요로 할 줄 알았거든. 근데 네가 그러잖아. 체육복 빌려준다고. 이 말이 얼마나 날 설레게 했는지 넌 모르지? 좀 바보같지만… 그래. 그때부터였어. 나에게 친절을 베풀어준 네가 궁금하기 시작했어. 워낙에 넌 공부도 착실하게 하고. 굉장히 잘생겼는데다가 키까지 커서 모든 아이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아서 나도 네가 좀 궁금하고 그랬었는데. 암튼 그 일이 진폭제라도 되는듯이 난 니가 정말 너무나 너무나 궁금한거야! 그래서 말을 걸어볼까 말다 맨날 생각만 하다가 너 혹시 핑클 좋아하니? 라고 물었을때. (지금 생각해봐도 조금 한심한 질문이다^^; 미안.) 너는 약간 당황해하는 기색이었는데 곧 살짝 웃더니 성유리를 제일 좋아한다고 했잖아? 난 사실 이효리를 제일 좋아했었는데 네 말에 거짓말을 했지^^; 와. 나돈데. 너 나랑 좀 맞구나! 물런 마지막말은 마음속에서만 했지만. 하핫. 아무튼 우린 그렇게 친해졌지? 난 너랑 친해지면 친해질수록 새로워진 너를 알아게는게 너무 즐겁고 좋았어.'
도무지 끝이 날 기미가 안보이는군. 깨알처럼 조그맣게 쓰여진 글씨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이 깨알같은 글자로 A4용지나 될 크기의 편지지를 4장이나 채우다니. 읽기 귀찮아졌다. 대충 삼학년이 되어서 축하해. 공부 열심히하고 마지막까지 친하게 지내자. 고마워. 등등의 내용이 머릿속이 그려지는데 읽어야하나. 매번 받는 편지또한 결국 마지막은 창민아. 널 만나서 정말 행복해. 고마워! 등의 낮간지러운 말로 끝나던데. 실제로 김준수는 연인이나 들먹일법한 오십일, 백일을 낮뜨겁게 편지로 표현하고 했었다. 그만큼 극성이였던 녀석. 그래서 귀엽긴 귀여웠는데…
그만 읽고싶어도 앞에 나오는 주저리 때문에 놓지를 못하겠다. 인상이 절로 씌인다. 그래. 일단 읽긴 읽어야지.
'너도 그랬니? 그랬으면 좋겠다. 하핫. 음, 근데 있지. 나는 네가 좋았다고 했잖아. 뻥이냐구? 아니야. 아니야. 사실이야! 근데 그 좋아하는게 있지. 조금 힘든 좋아함이거든. 넌 똑똑하니까 이걸 보면 바로 이해할지도 모르지만 혹시나 모를까봐 다시 말해줄께. 창민아…… 나 너 좋아해. 친구로서 말고… 너 좋아해.'
머리가 멍해지다가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러자 당연스럽게 편지지가 구겨졌다. 그리고 생각했다. 괜히 읽었다. 아주 쓸데없는 쓰레기같은 짓을 했다.
편지는 몇번을 찢겼다. 체 읽지도 않은 편지들이 조각이 났다. 산산조각. 형편없이 찢겨진 편지 조각들을 변기에 넣었다. 그리고 레버를 돌렸다. 그러자 누군가가 내 옆에 묻는 다. 그건 내면의 나다. 내면의 내가 나에게 묻는다. 어떻게 할꺼야? 이 한심스런 질문에 대답할 대답은 하나뿐이다. 그 대답으로 실행해질 내 행동도 단 하나뿐이다.
사실 난 지금 굉장히 당황스럽지만 티는 안내려고 한다. 어딘가에 숨어서 발그레한 봄을 손부채질이라도 하며 식힐 것 같은 어리석고 바보같은 김준수에게 내 대응책은 단 하나밖에 없다. 모질게 내쳐준다. 찢겼던 편지보다 더 처참하게 찢는다. 너의 그 퇴폐함을 감히 마음이라 칭하는 너를. 그 퇴폐적인 마음을, 나는 찢겠다.
난 적어도 친구라는 이름으로 나마 네 곁에 있어줬다. 네 곁에 있어줌으로서 난 많은 이득을 받았지만 너 역시 내가 있으므로 손해볼 건 전혀 없었다. 겉치레에 불과하다지만 난 네가 바라는 정신적인 지주의 역활인 친구를 착실하게 연기해줬다. 그 댓가가 감히 말하기도 더러운 이따위 감정이라니. 쓰잘데기없는 동정으로 연민으로 네 눈을 봤던 나를 엿 먹었이겠단건가?
생각하면 할수록 치가 떨리고 화가 난다. 머리 끝가지 쳐올라온 이 미칠듯한 감정들은 도저히 삭혀지지가 않는다.
그래. 김준수. 넌 어리석다. 그 어리석음은 모든 이들의 치를 떨리게 만들어 결국 넌 혼자 남는다. 이것이 절대불변이야. 절대 변하지않아. 넌 동정과 연민마저도 지독하게 만든다. 넌 마지막까지 혼자다. 마지막까지 어떻게든 이득을 취하려는 머저리들에게 이용당하고 이용당하면서 버려진다. 이건 니 탓이야. 니가 병신같이 어리석은 탓이다.
니가 어리석어서야. 내가 나쁜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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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까지가 창민이 독백 비스무리 하게 될것 같아염. ^^
음; 좀 감을 못잡아서 쓰는게 힘드네염. ^^
제목을 준 천월이와 제목을 주진 않았지만 개드립을 해줘 내 엔돌핀을 과다분비시킨 혜쩡이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해염. ^^
그밖에 부족한 습작에 덧글 달아주시는 수고를 해주신 많은 분들께 캄사캄사드립니당. ^^
1화 -> http://instiz.net/writing/6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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