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05. 맑음
금붕어가 죽었다. 잔인하게 난도질 되어 있는 금붕어의 시체를 보며 난 한숨을 내쉬었다. 승현이가 또 시작되었다. 승현아- 난 떨리는 목소리가 우습다고 생각하며 승현이가 누워 있을 녀석의 방으로 들어갔다. 심장이 아려왔다. 무슨 표정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고 있을까. 오늘은 또 어떤 눈으로 날 상처입힐까. 난 아직 겪지 않은 앞으로의 일이 두려워 눈을 꽉 감았다. 하얀방에 뜨고 있지도 않은 눈이 부셨다. 어서 눈을 뜨라고 나를 재촉하는 듯한 인위적인 밝음에 억지로 살짝 뜬 시야 사이로 승현이의 뒷모습이 보였다. 승현아…. 나오질 않는 목소리를 억지로 짜내며 승현이에게로 다가갔다. 승현아- 어디 아파? 아니면… 기분이 안 좋은거야? 누워있는 녀석의 뒷모습에 어쩐지 소름이 돋았다. 승현이는 천천히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녀석의 입술엔 피가 잔뜩이였다. 무슨 짓이야 승현아…. 금붕어가…아파하잖아. 녀석은 여전히 파닥이는 금붕어를 씹고 있었다. 헛구역질이 나는 것을 참으며 승현이의 입에서 피를 닦아낸 후 얼굴을 끌어 안았다. 승현아, 제발. 형도 정말 무섭단말이야. 승현아…제발. 내 참뜻을 알아듣지도 못할 녀석이였지만, 난 혹여나 녀석이 정신을 차리지 않을까, 혹여나 다시 행복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지 않을까- 하는 ‘만약’을 갈구하며 이승현이라는 이름을 부르고 또 불렀다.
02. 15. 비
오늘은 별 일 없이 넘어가나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승현이가 칼로 자신의 손가락을 절단냈다. 심장이 아파왔다. 요즘 너무 피를 자주 보는 것 같았다. 짤려나간 승현이의 손가락을 주어담고 안가겠다고 버팅기는 녀석을 등에 업고 병원으로 향했다. 손가락 신경이 절단날 정도로 얼마나 난도질을 한거냐며 걱정스럽게 물어오는 간호사의 표정에 할 말이 없어졌다. 정신병원에서 상담을 해보라고 적극 권해주는 의사의 얼굴에도 역시, 난 제대로 의견을 펼칠 수 없었다. 그저 잘려나간 제 오른쪽 네번째 손가락을 보며 해맑은 얼굴로 내 이름을 부르고 있는 녀석의 성한 손을 꼭 잡고 있었을 뿐이였다.
02. 31. 안개
승현이와 함께 마트를 나갔다. 아픈 승현이와 외출을 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수였지만. 안개가 끼인 하늘을 바라보며 아름답다고 노래를 부르는 녀석의 맑은 표정과 마주하자, 나도 모르게 승현이의 손을 잡고 마트로 향하고 말았다. 사실 마트에 갈 필요는 없었다. 다만 갈 곳이 없었다. 끝까지 두 손을 꼭 잡고 있으면 괜찮겠지- 라는 생각으로 나선 발걸음이였는데, 내 착오가 컸다. 녀석은 결국 생선을 파는 코너에 시선이 닿자 마자 미친 고양이 처럼 날뛰며 생선을 입으로 잡아 물며 고양이와 같은 소리를 냈다. 이전에 금붕어를 뜯는 모습과, 조금 더 전에 먹고 남은 생선 가시를 이빨로 뜯는 장면을 본 나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지만,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꿈을 꾼 듯 제 눈을 의심하며 승현이를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다. 미쳤나봐- 수근수근, 승현이를 욕하는 손길이 미워 난 눈을 감았다. 이름 모를 생선을 맨입으로 뜯으며 행복해하는 녀석의 허리를 꽉 잡고 입술을 닦아주었다. 승현아, 형이 너무 힘들다. 한숨처럼 내뱉은 말과 동시에 눈물이 새어나왔다. 녀석은 내 흔치 않은 눈물에 덩달아 울며 내 목을 끌어안았다. 난 덕분에 그 자리에 앉아 펑펑 울었다. 승현아, 형이 너무 힘들어서 미안해.